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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무슨 의미일까요?

by 바로요거 2015. 8. 19.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무슨 의미일까요?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 과연 무슨 말이며, 여기에 숨어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직장에 출근할 때면 가끔 서울역사박물관 앞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해서, 역사박물관 앞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럴때면 반드시 마주치는 비석 세 개가 있는데,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리기 일쑤입니다.

돌아서 갈 수도 없고 꼭 그 앞을 지나가게 되는데, 직접 찍은 사진을 한 번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거슬리는 문구가 바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왜 이 비문을 하필이면 서울역사박물관 앞에다가 세워 놓았을까요?

알면서도 그냥 세워 놓은 것인지, 아니면 역사를 몰라서 그냥 세워 놓은 것인지...

 

 

 

 

 

이 세 개의 비석에 대한 설명을 해 놓은 것을 보면 아래 내용과 같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조부 은신군의 신도비 등>

가운데의 비석이 은신군신도비, 왼쪽 것이 은신군묘표, 그리고 오른쪽의 비석이 낙천군묘표인데, 이것은 이미 돌아가신 은신군과 낙천군 두 분에 대하여 후손들이 간략히 기록한 것인데,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궁금할 것이고, 역사에 대한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대주의적인 표현에 대한 반발심이 생기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 무슨 뜻이며, 언제부터 누가 어떤 경우에 사용을 하게 된 것인지

아래의 글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명조선(有明朝鮮), 유일한국 (有日韓國)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으로 손꼽히는 송강 정철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有明朝鮮左議政寅城府院君 諡文靑公松江鄭澈之墓’그 뜻은 “(유명)조선국좌의정을 역임했고, 인성부원군의 군호를 받았으며, 사후 문청공이란 시호를 받고 호가 송강인 정철의 묘”란 뜻이다. 이렇듯 16세기 이후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묘비에는 당사자의 관직과 성명 앞에 으레 ‘유명조선(有明朝鮮)’이란 말이 관용구처럼 따라붙는다. 

그런데 앞에 붙어있는 유명조선(有明朝鮮)이란 글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여러 의견이 있으나 이는 ‘명나라가 있는 조선’즉 ‘명나라 속국인 조선’이란 뜻으로, 종주국 명나라에 대한 조선왕조 사대부들의 사대모화사상의 발로로 해석되어 진다. 혹자는 병자호란 때 조선에게 치욕을 안겨준 오랑캐 청나라에 대한 반발로 해석하기도 하나, 송강 정철의 묘는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에 조성된 것이므로 그러한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위화도회군이라는 정변(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새로운 왕조를 창업했으나 백성들과 고려왕조를 지키려는 신하들로부터 지지를 못 받게 되자 강력한 외부의 힘을 끌어들여 스스로 소중화(小中華)를 표방하며 명나라의 속국임을 자청한다. 즉 중국의 대국이 승인한 나라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역사적으로 동족(同族)이었던 북방의 몽고족과 여진족 누루하치가 세운 후금(後金=청나라)을 오랑캐로 여기게 되었다.  

조선조정은 임진왜란 때 위기에 빠진 조선을 돕겠다던 누루하치의 제안을 오랑캐라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명나라에게 원병을 처한다. 명나라는 조선에 파병 이후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져 이자성의 농민반란으로 1644년에 망하게 된다. 이에 앞서 중원을 지배할 욕망을 불태우던 청나라 태종은 명나라를 도모하기 전인 1636년 후방에 있는 조선을 침공해 인조임금에게 삼전도에서 항복을 받고 앞으로 청나라를 형님나라로 모실 것을 약속받는다. 물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치욕이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고 있는 인조임금. ⓒ 역사복원신문


그런데 만일 청 태종이 조선과 청나라가 원래 동족이라는 역사의식이 없었다면 아마 인조임금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물론 조선이라는 나라도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청 태종은 항복만 받고 인질을 잡음으로써 후방의 위협을 없앤 다음 중원을 도모할 기회를 노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만다. 결국 아들인 순치제에 이르러 청나라는 산해관(山海關)을 지키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의 투항으로 합세하여 북경으로 진군하여 이자성을 몰아내고 결국 중원을 장악하게 된다.  

청나라는 조선에게 군신(君臣)관계 즉 속국임을 요구했고, 조선조정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조정에서는 겉으로는 청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겼지만, 마음속으로는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기며 복종하지 않았다. 청나라 지배하에 있으면서도 대내적인 기록을 쓸 때는 “崇禎紀元後 00 甲子 0年 " 하며 죽어도 청나라 연호를 안 쓰고 망해버린 명나라 의종황제의 연호를 썼다. 이 얼마나 명나라에 대한 사대모화의 향수가 지극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통해 청나라의 눈부신 발전상을 소개하며 “모든 분야에 그 장점들을 도입하자”고 제안하니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어찌 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의 습속을 따르겠는가?”고 했으니 얼마나 명나라에 대한 사대모화가 극을 달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죽어서는 묘비에 없어져버린 명나라를 그리워하며 ‘유명조선(有明朝鮮)’이라는 문구를 써서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청나라에 대항했던 것이다.  

▲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은신군신도비에도 '유명조선국' 이라는 문구가 뚜렷하다. 은신군은 정조임금의 이복동생이다. 청나라 연호를 쓰던 시절임에도 왕손의 묘비가 이랬다. 그야말로 조선왕조는 뼈속까지 명나라를 향한 사대였다.

이러한 조선왕조 사대부들의 명나라를 향한 사대모화주의는 구한말에도 이어졌다.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고 빌붙어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들은 종주국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가자 그들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친일파들은 기득권을 계속 누리면서 “일제시대는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안중근과 김구는 테러리스트” “유관순은 여자 깡패” “독립군은 마적단” “정신대는 자발적 창녀”라는 망언을 일삼는 뉴라이트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들은 아마 죽어가면서도 “천황폐하만세‘를 외치고, 묘비에 유명조선(有明朝鮮) 대신 유일한국(有日韓國)이라고 쓸 것 같다. 이런 자들이 대한민국의 권력층으로 있는 작금의 현실이 참으로 슬플 따름이다.

▲ 일제식민지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뉴라이트들이 대한민국에는 너무도 많다.     © 역사복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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