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천하대세 흐름 읽기/예언&비결*미래정보

나철 선생의 예언이 성취 중인 한민족의 미래

by 바로요거 2015. 3. 12.

나철 선생의 예언이 성취중인 한민족의 미래

 

호남인 나철 선생의 예언이 성취 중인 한민족의 미래

전남 보성출신으로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인 단군대종교를 만든 홍암 나철

 

 홍암 나철 선생이 태어난 전남 보성군은 국비10억을 포함하여 군비60억을 투자하여 2015년까지 국민의 역사문화교육 공간으로 나철 기념관을 짓는다.

 

 

전남 보성출신으로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인 단군왕검 천왕의 경천애인을 내세운 대종교를 만든 홍암 나철 선생께서 돌아 가시기 전에 남긴 신비롭고도 절절한 예언시가 있다.

조계칠칠(鳥鷄七七) 일락동천(日落東天) 흑랑홍원(黑狼紅猿)
분방남북(分邦南北) 낭도원교(狼道猿敎) 멸토파국(滅土破國)
적청양양(赤靑兩陽) 분탕세계(焚蕩世界) 천산백양(天山白陽)
욱일승천(旭一昇天) 식음적청(食飮赤靑) 홍익이화(弘益理化)

"조계(을유 1945년)년, 음력 7월 7일(양력 8월 15일) 일본은 동쪽 하늘에 떨어지고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양분하니, 그들의 사상과 종교가 국토와 나라를 망치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세계를 분탕칠치지만, 하늘산(백두산)의 하얀 태양(백의 한민족)이 강성해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융합하여 마침내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건설한다.”

 
 

항일광복운동의 아버지-홍암 나철 선생

 

나철 선생은 통일한국이 강성해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융합한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실현할 것이라는 예언을 해 놓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 8천만 민족이 선택하게 될 자유.민주 시장.복지 평화.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한반도가 통일되고, 홍익인간 이화세계가 실현된다는 의미와 같다.

가수 조영남씨는 나철 선생의 일대기를 써서 한국어, 일본어판으로 출간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영남씨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도 근세 사회에 나철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나철은 단군을 옹호하다가 꽤 성공하고 일제의 종교 탄압을 못 견뎌 자살하니 이런 사람을 모른 척하는 게 참 이상하다. 이게 책을 쓰게 된 동기의 하나.’ 라는 소회를 전한다.

선각자 홍암 나철 선생은 목숨으로 예언을 하셨으니, 후손인 우리들은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과 지구경영’을 쉼없이 이루어 내자. 단군왕검 천왕의 홍익인간 철학으로 대한민국이 세계정신 문명의 중심국이 되어야만 선생의 예언은 비로소 완벽하게 실현될 것이다.

 

 

홍암 나철선생(1863~1916)은 개화주의자인 왕석보와 김윤식에게 신학문을 배우고, 조선 말 과거에 급제하니 전라도에서는 ‘나급제’라는 별명으로 유명하였다. 백봉도사를 만나 한민족의 경전인 ‘삼일신고’라는 비서(秘書)를 전해받고,


독립운동을 더욱 치열하게 전개하기 위하여 1909년 ‘대종교’를 중광하였다. 홍암 나철 선생은 청산리전투 승리의 주역인 북로군정서 등 당시 항일독립군 및 독립운동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상징이었다.

조선말의 독립운동은 외교, 의열, 전쟁, 정신문화운동, 마지막으로 자결순국이라는 여러 방법으로 전개되었다. 홍암 나철선생은 이 모든 방법을 순차적으로 다 동원하여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셨으니 가히 항일독립운동의 화신이요, 아버지라 칭할 수 있다.

일제침략은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구로다 중장의 강압적인 조약 체결 후, 20년 간 일본은 조선 합병을 위하여 호시탐탐, 온갖 작태를 부리는 중,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한다. 그 승리를 뒤에 업고 1905년의 을사조약과 1910년의 경술국치로 조선을 강제로 병탄한다.

 

 

나철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은 외교운동으로부터 시작되니 러·일 강화회의가 진행 중인 포츠머스 군항으로 가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으려 한 것이다. 이 시도가 일제의 방해로 좌절되자, 오기호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천황에게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이같이 과감한 외교활동은 보통 사람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 조선 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 주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 을사오적의 망동을 배후로 더욱 조선을 옥 재워 온다. 마침내 덕수궁을 포위하고 고종황제를 위협하여 국새를 빼앗아 찍음으로써 을사조약을 체결한다. 외교적 독립운동이 효과가 없자 나철은 을사오적을 처단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 새로운 자주적 정부를 조직하려 했다.

1907년 서울, 나철 선생은 권총 50정을 구입하고 결사대원 18명을 규합하여 을사오적을 처단할 의열 계획을 세운다. “여러 의사들이여! 여러 의사들이여! 오늘의 일은 대한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길이요, 우리 2천만 국민의 생사에 관한 문제다. 여러분, 진실로 자유를 사랑할 수 있는가? 바라건대 결사적인 의지로 이 5적을 죽이고 국내의 병폐를 쓸어 버리면 우리는 물론 우리 자손들이 영원히 독립된 천지에서 살 수 있으나, 그 성패가 오늘에 달렸으면…”
그러나 기일이 촉박하고 대원들의 연습 부족으로 거사는 실패하고 만다. 이에 굴하지 않고 선생은 ‘단군교의 중광(重光)’을 천명하고 대종교의 교세를 국외로 확대하여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도록 이끌어 간다. 일제는 대종교를 불온 단체로 낙인찍어 모질게 탄압하였고 선생은 스스로 숨을 멈추는 선도(仙道) 최고의 경지인 폐식법(廢息法)으로 목숨을 거두심으로써 일제에 맞섰다.

선생이 돌아 가시자 ‘대한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 등, 국내외에서 맹렬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1917년 대동단결선언, 1918년의 대한 독립선언, 1919년에는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에 불이 붙어 세계로 전파된다.

 

 

대한민국 정부의 기반이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초를 닦은 신규식,이시영.이동녕.조소앙, 빛나는 청산리 대첩의 개가를 올린 백포 서일과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 장군, 민족사학의 선구자 단재 신채호, 항일무장단체 의열단을 만든 김원봉 등 이름을 빛낸 항일독립인사 대부분이 모두 나철 선생이 만든 대종교의 충실한 신자들이었다.


무엇보다 선생의 모든 활동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과업은 700년간 외세와 정치적 이유, 우리 자신의 무관심으로 땅 속 깊이 묻혔던 단군정신을 불러 내어 단단하게 이음으로써 우리에게 국혼 부활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저작권자 ⓒ kookmi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만 되는 고급정보-<한민족 뿌리역사,한민족 정신문화,한민족 고유신앙,신교,종교,사상,철학,인생문제,인생목적,영성문화,치유문화,건강과수행,수행방법,수행목적,태을주수행,귀신,영혼,전생,윤회,신의세계,사후세계,우주변화원리,우주의 목적,우주의 비밀,우주역사질서가 총체적으로 바뀌는 가을개벽소식,상생문화,STB상생방송,증산도>-서적, 자료 무료 증정 및 무료 대여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내용을 잘 살펴보신 후에,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daum.net/ilsimsycheonzoo/15978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