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년의 역사와 문화원리 그리고 문제점[한민족역사찾기]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10.05월호
3, 다큐 다시보기-KBS역사스페셜, 2월13일 방영
100년의 포효
- 주강현의 우리 역사 이야기 -
올 2010년(도기 140년)은 상제님의 천지공사 종료 1백년이 되는 해이다. 1백년이라는 과도기를 끝내고 천지의 한문을 넘어서서 역사의 새 장을 여는 올해 경인년.
2010년은 참으로 의미있는 숫자들이 집중되어있는 해이다. 한일합방 100년, 한국전쟁 발발 60년, 4.19 혁명 50주년, 5.18 민주화항쟁 30주년, 새로운 밀레니엄 시작 10주년….
지나간 100년은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제주대 석좌교수이자 역사민족학자 주강현 교수의 우리역사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편집자주, 이하 KBS역사스페셜 2월13일자 방송 녹취정리)
1 지난 100년의 궤적
100년 역사의 귀환, 과거를 통해서 미래의 비젼을 보자.
올해는 호랑이 해입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 대단히 큰 의미를 갖습니다. 호랑이는 활동반경이 보통 500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백두산에 사는 호랑이가 경상도 지역까지 달려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큰 스펙타클한 자기 활동반경을 갖고 있는 것이 호랑이라는 동물입니다.
한국 근대 역사 흐름을 잠깐 살펴보면, 호랑이 해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갖습니다. 다음 도표의 배경 왼쪽에 파랗게 된 곳은 비참했던 과거입니다. 1910년 경술년, 일제에게 한일 강제병탄을 당한 게 지금부터 딱 100년전입니다. 그리고 해방 전후로부터 1950년까지를 보면, 국제사회의 누적된 모순이 결국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면서 1950년에 마침내 한국전쟁으로 치닫게 됩니다. 전쟁 이후에는 배고픔 속에서도 베이비붐이 일어났는데, 그 당시 출생했던 분들이 오늘날의 50,60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1960년 4.19로부터 지금까지 꼭 5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짧은 기간동안 한국은 자랑스럽게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진했습니다. 즉 지난 100년을 대분하면 도표 왼쪽의 1910년부터 1960년까지의 50년간과, 도표 오른쪽인 1960년부터 2010년도까지의 50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밀레니엄 축제 이후 벌써 10년을 돌파했습니다.
100년이 긴 시간 같지만 장구한 역사 앞에서 보면 사실 굉장히 짧은 세월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1910년은 경술, 1950년은 경인, 1960년은 경자, 1980년은 경신, 2000년은 경진, 2010년은 다시 경인년입니다. 10년마다 경(庚) 자가 일렬로 붙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이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한국전쟁이 52년도 아니고 49년도 아니고 딱 50년에 터졌고, 4.19는 60년에, 5.18은 80년에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10으로 끝나는 해에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렇다면 2020년 2030년 2050년 2100년에도 무슨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지난 100년의 역사가 어떤 운명적 조화처럼, 예정조화처럼 저렇게 경 자가 나란히 붙어 있는 해에, 10년 단위로 큰 사건이 연이어 터진 것을 보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2.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망령
100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망령, 한일강제병합으로 되설아나다
일본의 큐슈 밑에 가고시마라는 곳이 있습니다. 큐슈 해류가 올라오는 따뜻한 곳이죠.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시키고 난 다음 조선 출병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때 소위 막부체제, 쇼군체제에 의해서 가고시마에 동원 명령을 내려요. 그때 가고시마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서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아서 그 가죽을 바쳤습니다. 기념으로 호랑이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 대한 깊은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도표를 보면 맨 위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있고 요시다 쇼인이란 인물이 있고 이토 히로부미, 또 왼쪽에 사이코 다카모리, 오른쪽엔 사카모토 료마가 있습니다. 이 중 몇명은 경술국치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쇼인이란 사람은 일본이 더 이상 막부체제의 봉건체제 하에서 살아서는 안된다고 깨달은 선지자였어요. 우리 민족한테는 아주 나쁜 사람이죠. 이 사람이 많은 지도자를 길러냅니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이어받은 제자들은 훗날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됩니다. 특히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는 이때부터 대륙 진출계획을 세우고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한일 강제병탄을 치밀하게 계획합니다. 1870년대 일본은 이미 조선 침략계획을 가동하고 있었습니다!
류큐(琉球)를 손에 넣고 조선을 빼앗은 후에 만주를 무찌르고 중국을 제압하여 …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유지를 이어받는 것이 상책이다. -요시다 쇼인
이들 대부분이 정한론, 곧 한반도를 치겠다는 이론을 밝힙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1910년 이지만 이미 1800년대 후반부터 그들은 한반도를 침략하겠다는 깃발 아래, 메이지 근대화를 통해서 힘과 총칼의 논리를 제국주의 논리로 둔갑시켜서 청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또 러일전쟁 후에 한국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결국은 경술국치까지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지금의 경술국치 100년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사이코 다카모리나 이토 히로부미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빛과 그늘
한국 사람들은‘빨리빨리’를 참 좋아합니다. 영국에서 나온 관광 가이드 책을 보면, 한국에 가려면 꼭 알아두어야 될 한국어가 20개 있다고 나오는데 그 중에 ‘빨리빨리’가 있어요. 제가 보기에 한국인 자체가‘빨리빨리’기질도 있겠지만, 한국의 100년 역사가 격변에 격변을 거듭하여 밥을 느긋하게 먹을 수 없었잖아요. 빨리 빨리 먹어야지.
지나고 나니까 어제 같은 옛날이지만, 100년 동안 한국 사람들은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어요. 100년 동안 누적된 숱한 모순이 45년부터 50년 사이에 일시에 터져나와 버렸어요. 나올 수 있는 모든 사상은 대한민국에 다 나왔어요. 그리고는 끝내 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분단의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50년에 전쟁이 끝났으면 가난하게 사는 게 당연하잖아요. 아주 심하게 이야기하면 밥도 못먹어야 되요. 그런데 10년 만에 4.19가 일어나요. 민주화가 아쉬웠던 겁니다. 4.19는 그 당시 아시아 민족해방운동이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운동이었어요. 그렇지만 또 1년 뒤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어요. 그 때부턴 민주화가 일시 퇴행했지만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쌍두마차, 이것이 60년대, 70년대, 80년대,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외국사람들은 10년 만에 자기 고향 가보니 간판이 바뀌었다고 하면서 옛자취가 사라졌다고 서운해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0년 만에 고향엘 가보면, 간판이 아니라 아예 건물이 없어져 버려요! 그만큼 격변의 사회를 지나왔어요. 전쟁은 단순히 남한과 북한만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전체가 함께 분단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한민족은 엄청난 디아스포라, 이산(離散)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민족은 이렇게 격동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해주로 끌려갔습니다. 스탈린에 의해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로 끌려갔습니다. 또 애니깽이라고 해서, 멕시코 파인애플 농장으로 하와이로 바나나 농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가하면 일본에는 제일동포들이 엄청나게 남아있습니다. 제일동포 중 일부는 북송교포라고 해서 니가타 현에서 북한으로 넘어갔습니다. 보세요. 중앙아시아로, 중국으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한국인이 안 나가 있는 곳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습성 중 하나가 지난 70년대 80년대 90년대, 역사의 지문을 자꾸 지우려고 해요. 지난 전쟁의 참화로부터 산업화 민주화까지, 그 과정을 지켜낼 수 있는 우리의 저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계까지도 우리의 저력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는 지난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뛰어넘어서 또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4 100년의 뜸, 드디어 발효하다
누룩을 다 아실 겁니다. 이것을 발효시키면 막걸리가 됩니다. 최근 막걸리 판매량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아십니까? 상상을 초월해요. 2004년에 2245억, 2008년에 불과 4년 사이인데 두 배가 넘었어요. 2009년 2010년도 통계가 아직 안잡혀요. 따블이 아니라 따따블이라고 하죠. 두세 배일 꺼에요. 대단한 겁니다.
도표를 보세요. 붉은 막대가 막걸리인데 2009년 1월부터 10월까지 기준이에요(2008년 전년 비교). 11월 12월 연말에 먹은 막걸리는 계산이 안된 거에요. 막거리가 37.8%이고 맥주가 0.2%입니다. 소주는 조금 내려갔어요. 위스키는 팍 다운되었습니다. 포도주 도 다운 되었어요. 복분자도 내려갔습니다. 보십시오. 2009년도에는 막걸리를 정말 많이 마셨네요.
이것을 볼 때마다, 한국의 역사가 누룩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에서 지난 100년 역사의 비극을 많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이제 발효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역사가 발효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민족, 대단히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것이 이제부터 새로 발효되어 성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과거에는 깔보고 어찌보면 무시했던 막걸리가, 이제 조금이나마 제대로 대접받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이 이제서야 민족적 품격을 되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것을 깨우치는데 100년이나 걸렸습니다. 참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런 백년 동안의 뜸들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 역사가 새로운 차원으로 발효되고 있는 것입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에 이야기했던‘법고창신’(法古創新)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말을 축약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고 합니다. 창신(創新)이되 법고(法古), 법고(法古)이되 창신(創新). 이 양자의 변증법적 관계, 탁월한 차원의 통일이죠!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옛것을 본받았다는 것은 복고적인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변하면 문화도 따라 변합니다. 방송도 변하고 문학도 변하고 민속도 변하고 모든 부분이 변화 발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고하고 창신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적 문화의 원리를 저는 신바람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의 핵심은 사실 신바람, 신명이 한국문화의 핵심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바람으로 일합니다, 신바람으로!
‘거리굿, 뒤풀이, 살풀이’이 세 가지로 한국문화를 다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거리굿은 굉장히 스피드합니다.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힘이 그대로 스며 있어요.
또 한국사람들은 본론보다 뒤풀이를 굉장이 중요시 합니다. 뒤풀이에서 에너지가 싹틉니다. 기분 좋으면 3차를 마다하지 않고, 노래방까지 가고, 또 폭탄까지 먹습니다. 전 민족이 폭탄을 터트립니다! 무슨 폭탄인지 아시겠죠?(웃음) 그런데 그러한 역동성이 단절될때는 급격히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두가지 측면
을 함께 통찰하자는 것입니다.
또 한국 사람들은 살을 풀어야 합니다. 한, 맺힌 것은 모두 풀어야 되죠. 살풀이는 휘몰아갑니다. 샤만틱 한 거죠! 다이나믹 코리아에요. 이건 대단하죠. 월드컵때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잖아요. 다이나믹 코리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신바람 축제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잘못되면 편향된 마녀 재판같이 흐를 수도 있어요. 이게 굉장히 무서운 거에요.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샤만틱한 에너지가 있어요.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이것이 때로는 스피드하고 에너지틱하고 다이나믹한 코리아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5 다가올 100년의 포효
한국은 지금 어떤 현재에 와 있는가. 저는 한 여섯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첫 번째, 중국이 우리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 걸 생각해보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좋은 표현입니다. 그러나 나쁘게 본다면 얼마나 비굴하게 잘 대했으면 그랬을까. 착한 콤플렉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사대주의라는 문제를 가지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두 번째, 세계화에 대한 것입니다. 세계화, 좋습니다. 그러나 세계화를 자꾸 부르짖는 것에는 다소 콤플렉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 최대, 세계 최고를 부르짖기보다는 작지만 강한 나라, 작지만 강한, 단소강국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한국인들은 의외로 인종차별 강합니다. 요즈음 다문화 가정이 많은데 문제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도 다 같은 세계인입니다. 아시아의 친구이고, 우리 이웃입니다. 우리 가족입니다. 문명과 야만, 이 두가지가 바로 지난 제국주의의 역사의 대국이었습니다. 우리는 야만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을 포용해야 합니다.
네 번째, 속도 콤플렉스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스피디하고 에너지틱하다고 했어요. 전격적인 것을 아주 좋아해요. 하면 된다, 일주일에 끝내겠다, 일년에 끝내겠다! 하지만 때로는 진지전, 지구전도 필요합니다. 천천히 백년을 기다릴 수도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때로는 300년 걸리는 건물을 짓겠다는 의지! 이런 의지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두르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 안목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섯 번째, 한국 사람들은 외형에 치중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외형은 일종의 하드웨어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드웨어보다는 오히려 소프트웨어로 가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IT사업이 성공했잖아요. 한국인들은 손재주도 있고 감각도 있습니다. 작은 국토에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로 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 한국 사람들은 지나치게 돈을 좋아해요.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신숭배, 자본 중심으로 흐르기보다는 인간 중심의 길도 생각해야 됩니다. 분배와 성장 따로가 아니라 같이 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도표의 오른쪽에 있는 오렌지 빛깔, 즉 오랑캐의 삶, 단소강국, 문화다양성, 진지전, 소프트웨어, 인간중심. 이 길로 간다면 한국이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해왔어요. 그렇다면 앞으로 50년 뒤에는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습니까. 2010년 경인년, 2030년 경술년, 2050년 경오년. 자신의 10년 뒤 30년 뒤를 그려보세요. 여러분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감고계훈(鑑古戒訓)이라는 숙어가 있습니다. 옛날을 통해서 큰 교훈을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지나간 100년 역사에서 우리는 감고계훈의 교훈을 반드시 배
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는 민족의 운명을, 지난 백년을 반성하면서 다가올 미래를 과거 속에서 찾고, 과거 백년은 다가올 미래의 서막이라는 뼈저린 교훈 속에서, 힘찬 대한민국 힘찬 한민족을 호랑이의 우렁찬 기개로 맞이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10.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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