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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 神敎文化

「STB특별기획 상제문화를 찾아서」제3편

by 바로요거 2010. 8. 19.

「STB특별기획 상제문화를 찾아서」제3편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10.06월호 


 최초의 세계인 마테오 리치
 
 이재국/ STB상생방송 PD

 


 1583년, 중국 자오칭에 낯선 이방인이 들어섰다. 때론 승복이나, 유학자 복장을 했지만, 단번에 주변사람과 구분되는 낯선 외모의 서양인, 그는 이탈리아 동부의 작은 산골마을 마체레타에서 태어난 가톨릭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였다. 당시 명나라는 조공관계 외에는 외국과의 친선이나 교류를 원치 않았고, 또한 임진왜란 참전으로 외국인들에 대한 경계령이 매우 삼엄했다. 때문에 1601년 그가 베이징에 들어가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리치신부는 탁월한 중국어 실력으로 문서선교를 펼쳤다. 1595년경에 첫 한문저술인『교우론交友論』을 비롯해 이듬해 암기술에 대한 내용을 담은『서양기법西洋記法』을 저술하고, 1599년에는 그리스 스토아철학의 잠언집『이십오언二十五言』을 출간하면서, 유럽의 윤리 도덕관과 암기술에 관심을 가진 당대 중국 지식인들에게 문화적인 자극을 주는데 성공했다. 이는 서양의 문물과 과학지식을 소개함으로써 가톨릭을 전파하고자 했던 예수회의 선교방식이었다. 마테오 리치신부는 뛰어난 학식과 인품, 친화력으로 당대 지식인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했던 인물이 되었다.
 
 
 상제문화를 찾아가는 여정에, 5세기 전 동양으로 건너 온 한 가톨릭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마테오 리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평을 해주셨다.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
 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道典 2:30:1~4)

 
 문명과 문명이 만날 때는 그 문명을 이룬 세계관, 종교가 함께 만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그 만남이 이해와 존중의 포옹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문명의 충돌은 가히 신들의 충돌이라고 할 만했다. 각자가 믿는 신과 세계에 대해 치열한 논리전쟁을 벌였고, 심지어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동양에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마테오 리치는 단지 서양의 문물만 전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고경古經을 연구, 번역하면서 동서양 문명의 가교역할을 하였다. ‘각기 지경을 지켜’그 벽을 넘지 못했던 ‘신명들이 거침없이 넘나들 수 있도록’동서양의 문화, 종교의 벽을 소통시켰던 마테오 리치. 그를 최초의 세계인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루지에리 선교사가 1584년에 저술한『천주실록天主實錄』이 지나치게 불교적인 색체를 띠고 있다고 판단한 마테오 리치 신부는『천주실의天主實意』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당대 지식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고, 1601년 정식으로 베이징 판『천주실의』가 출간되기 전에 이미 널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물결은 동방의 고요한 나라 조선에까지 밀려와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과연『천주실의』가 담고 있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두 사상가의 만남
 1784년 갑진년, 장차 조선 사상계를 뒤흔들 두 인물이 향리 마재에서 한양으로 향하던 배 위에서 만났다. 한 사람은 조선후기 사상계의 르네상스를 이끈 다산 정약용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초기 천주교의 중심인물 광암 이벽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다산, 내말 좀 들어보오. 세상에 사람이 생기기 전에 한분의 하느님이 계셨으니 오직 진실하신 신이라 합니다. 모든지성들도그분과비할수없는분이라오.”
 
 
 다산은 광암과의 만남을“천지조화의 시초와 형신, 생사의 이치를 듣고는 어찔하고 놀라워 마치 저 은하수가 가없음에 직면한 것 같았다.”라고 회고했다. 다산은 성호 이익을 자신의 학문적 사숙으로 삼고, 특히 경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이벽과의 만남 뒤에 자신이 경학연구를 통해 찾고자 했던‘인격천人格天으로서 상제관上帝觀’에 확신을 갖고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당시 조선 사상계의 주류는 주자朱子(1130~1200)가 체계를 세운 성리학이었다. 주자는 도교와 불교에 대항하여 원시유학의 부족한 이론체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유교의 주요 경전들을 정리, 주석을 달고‘우주의 시원이자 주재는 곧 태극(理)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논리를 세웠다. 그는‘우주 이법의 주재자로서 상제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으나‘그것은 학자가 다 말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니며,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세계’라 하여 상세한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유교의‘천天’을 상제천(上帝天)에서 의리천(義理天)으로 전환시키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후 성리학은 사변적 이론에 치우쳐 고경古經에서 보이는 절대적이고 인격적인‘거룩한 상제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기理氣의 신묘한 작용으로만 여겨지게 되었다.
 
 유가의 주요 교과서격인『심경心經』머리 부분에 ‘상제님께서 네게 임하시니, 마음을 둘로 하지 말라(上帝臨汝, 無貳爾心)’는 가르침이 있을 만큼 상제신앙은 유학자들에게 중요한 명제였다. 하지만 주자학은 이기론理氣論이 중심이 되어 인격적인 상제님의 위능威能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다.
 
 다산은 성리학의 관념적인 천天으로는 당시 조선사회의 여러 부패와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오히려‘공경하고 두려워할 도덕적 준거로써 인격적인 상제님’을 잃어버린 것이 이런 문제를 야기한 원인이라 생각했다.
 
 
 지금 사람들은 천天을 리理로 하고 귀신을 공용功用으로하며 조화의 자취를 이기二氣의 양능良能으로하여 마음의 앎이 아득하고 어둑해서 한결같이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같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않는 곳에서는 마음을 속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여유당전집與猶當全集』
 
 
 그는 유교의 본질이 상제신앙에 있음을 깨닫고 주요 경전 속에 드러난 상제사상을 정리하여 방대한 주석을 내놓았다. 다산철학의 출발점이자 근간은 인격천으로서의 상제천, 즉 상제님의 천명을 세우는 일이었다.
 
 
 상제님이란 누구인가? 이는 천지신인天地神人밖에서 그것들을 조화하고 재제안양宰制安養하시는 분이다. 상제를 하늘이라 이르는 것은 마치 국왕을‘나라’라하는것과같다. 저푸르고형체를갖춘하늘을가리켜상제라하는것이아니다.『 춘추고징春秋考徵』
 
 
 그러나 상제신앙을 회복하려고 했던 다산의 견해는 주자학 일변도의 학풍 속에서 이단시되어 상제문화는 또다시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또 한 명의 인물 광암 이벽은 정약용과는 사뭇 다른길을 걸어간다. 다산과 달리 광암은 신앙으로서 서교를 받아들였다.
 

 마테오 리치가 쓴『천주실의』의 내용은 이미 이수광(1563~1628)의『지봉유설芝峰類設』에서 언급되었으며, 18세기의 중요한 실학 사상가였던 성호 이익, 하빈 신후담, 순암 안정복 등의 저술에도 서학의 교리와 서양문물이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있었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제자들 특히 성호학파로 불리던 이익의 제자들이 모여 서학을 연구하였다, 나아가 1779년(정조 3년)에는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 주어사에서 이벽, 권철신, 정약전 등이 모여 정기적인 강학회를 열어나갔다. (훗날 조선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주는 곧 상제上帝
 이벽과 이승훈이 소개한 서교의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두 남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서교신앙은 분명히 유교적인 전통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들의 철학적 전통과 서교 신앙에 합일점이 있었음을 말한다.
 
 성호 이익의 손자로 당대의 천재로 꼽히던 이가환은 서교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이벽과 공개토론회를 가진다. 사흘간 계속된 이 토론에서 결국 이가환은 이벽에게 설복당하고 말았다. 이벽은 서교 교리서「성교요지」에서 天主라는 표현보다 上帝또는 上主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 마지막 49장을 보면“예수님은 신하와 각료를 거닐고 태평성대를 이룩하신 요순과 같은 어지신 임금이요, 세상을 경계하고 바로잡기를 중유仲由와 민손閔損, 공자孔子같으신 성현이시로다.”고 하여 예수의 존재를 유교의 성왕, 성현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벽이 당대 내노라 한 유학자들을 차례로 설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유교를 바탕으로 서교를 전하려 했기 때문이다.
 
 서학西學으로든, 서교西敎로든 철학과 종교의 두 면을 모두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그 합일점이란 과연 무엇일까? 은자의 나라 조선에 거대한 사상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달리 표현하자면 동서양 문명을 소통시킨『천주실의』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吾天主, 乃古經書所稱上帝也.
 천주는바로옛경전에서말하는상제입니다.『천주실의』
 
 
 마테오 리치는『천주실의』의 첫 머리에서 동방과 서방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진리를 알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양능良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장에서는‘공空’,‘ 무無’, 또는‘태극太極’과 같은 개념이 본래 순수한 양능良能을 가렸으며, 양능은 고대 유교의‘상제신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歷觀古經, 而知上帝與天主, 特異以名也
 옛날 경서들을 살펴보면, 상제와 천주는 단지 이름만 다를뿐임을알수있습니다.『 천주실의』
 
 
 그러나 1601년 리치신부가 죽고 난 다음, 과연 천주天主와 상제上帝가 동일한 신적 존재인가에 대한 논쟁이 예수회 선교사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논쟁은 프란체스코와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선교사들의 참여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후 로마 교황청의 입장변화와 청 왕조의 종교정책이 맞물리면서 중국의 전례논쟁(Quaestio de Ritibus:
 공자나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문제)으로까지 이어지고, 결국 그 사회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접근하려는 적응주의(accommodationism)는 폐지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유교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요소를 서학에서 찾으려고 했던 보유론補儒論도 힘을 잃게 된다.
 
 
 언어의 소통 - 의미의 소통
 언어는 의미를 담아내고, 또한 관념을 지배한다고한다. 어떤 분야가 발전·분화되면, 그 만큼 새로운 개념과 언어가 생겨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때문에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 적절치 못한 표현을 제외시켜 용어를 통일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과 오해를 없애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만약 의사소통과정(speech chain)에 장벽이 있다면 결코 문화의 장벽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특정 문화권에는 단 하나의 종교가 있는 종교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복수 종교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종교의 시대에 사용하던 언어를 여전히 구사하니까 적합성이 없는 겁니다. …
 중략… 여러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데도 여전히 자신의종교만이절대적이라고주장하는것은상황을인식하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적절하지 않은 언어를 발화하는 겁니다. 그럴 때 과연 내 언어에 적합성이 있는지 돌아보고, 규범의 강제를 떠나 다른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
 
 
 아무리 다문화·다종교시대라 하더라도 종교 간의 대화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문제를 회피할 수만은 없다. 믿음과 체험을 담은 종교언어를 정돈하고 통일하는 과업은 신중해야 할 것이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행여 표현에 사로잡혀 그 언어가 담고자 했던‘본래의 의미’를 보지 못한다면, 동서양의 물꼬를 튼 선각자들의 노력이 꺾였던 수세기 전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테오 리치의 업적을 다시 한 번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천주실의』는 선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유교신앙에서 나타난 절대자의 인식(Knowledge of God)이 바로 서교에서 말하는 하느님[Deus]과 다르지 않다는 일종의 철학적 논설의 성격을 가진다. 때문에‘천주天主는 바로 상제上帝’라 밝힌 것은 동양의 전통과 문화를 열린 자세로 다가간 끝에 얻은 위대한 깨달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현재의 중국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의 호칭을 리치가 번역한‘상티上帝’혹은‘쉔神’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다시 처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가지는 배타성 때문에 모든 인류의 보편적인 구원론을 현재의 기성종교에서 찾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헌데 마테오 리치가 찾은 동서 문화의 합일점‘상제신앙’에서 그 보편구원의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안운산 종도사님께서는“우주만유라 하는 것이 이 대자연의 법칙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 역사 섭리라 하는 것도 그렇다. 생장염장이라는 틀 속에서 대자연이 성숙됨에 따라서 역사 섭리도 인류의 문화도 성숙이 되는 것이다.”(道紀137년 10월 28일)라고 하셨다.
 
 열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제 지엽문화의 틀에서 벗어나 인류문명의 발전과정 전체를 볼 수 있는 성숙한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시간, 원구단과 제천의례를 통해 한민족이 상제문화를 잃어버린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 상제문화를 되찾기 위한 출발점은 어디로 정해야 할까. 『도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본래 유(儒)·불(佛)·선(仙)·기독교(西仙)는 모두 신교에 연원을 두고 각기 지역과 문명에 따라 그 갈래가 나뉘었더니 이제 성숙과 통일의 가을시대를 맞아 상제님께서 간방 땅 조선에 강세하시매 이로써 일찍이 이들 성자들이 전한 천주 강세의 복음이 이루어지니라. (道典1:6:1)
 
 동방에서는 우주 삼계(天·地·人)의 생명의 근원과 그 변화의 길을 일러 도(道)라 하고, 이 도의‘주재자 하느님’을 제(帝) 또는 상제(上帝)라 불러 오니라. (道典 1:4:1)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모든 것의 시작, 상제문화의 시원으로 돌아가 그 연원을 바로잡는 데에서 이 여정은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유불선 이전, 인류문화의 황금시대인 신교시대에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상제님이 계셨다. 상제님이 모든 삶의 가치이자 생활의식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교를 한마디로 ‘상제문화’라고 한다.
 
 상제신앙을 단순히 종교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좁은 안목이다. 왜냐하면 상제신앙에서 정치와 종교, 교육과 예술 등 모든 인류문화가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1,2편에서 언급했던 역사 왜곡이나 제천의례를 둘러싼 논쟁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겉으로는 영토문제나 역사기술 문제로 보이지만 실상 동북아 문명의 종주국은 누구인가. ‘상제문화’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것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에 주인이 누구인가! 스스로 역사의 계승자임을 밝히고 그 정신을 지켜나가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제사문화의 본고향이니라. (道典1:1:6)
 
 신교神敎와 상제문화의 종주국으로서 우리는 당당히 그러하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다. 상제님을 찾는 사람, 상제문화를 수호하는 사람, 그들이 바로 우리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 사람들이‘상제문화’라는 단어조차 낯설게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민족의 정신사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북공정 이후, 신교문화의 꽃을 피웠던 한민족 고대사의 중심지 발해연안지역, 즉 요하, 홍산 지역은 이제 한국인의 발걸음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고 있다.
 
 4편에서는 상제문화의 시원을 찾기 위해 옛 조선의 땅 홍산 지역으로 떠나고자 한다.

 


 


 <참고자료>
 도전(도전편찬위원회)
 개벽실제상황(안경전)
 천주실의(마테오 리치, 송영배 외 편)
 천국문명을 건설하는 마테오 리치(양우석)
 다산 정약용(이동환 외)
 신과 인간의 경계(김상근)
 성교요지(이벽)
 조선후기 유교와 서학(금장태)
 인문학 콘서트(정진홍 외)
 다산의 상제사상 연구(김영일)
 이벽 성교요지『Ⅰ』(김옥희)
 한국사傳(KBS)
 예수와 공자의 만남 왜 좌절됐나(프레시안, 김기협 역사칼럼) 

 

출처: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10.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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