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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사 바로알기

고두막한(동명성왕)에게 대패한 한나라 무왕 유철

by 바로요거 2010. 1. 4.

고두막한(동명성왕)에게 대패한 한나라 무왕 유철

 

북부여 5대단군 고두막한과 중국 역사상 최대의 수치

 

고두막한(동명성왕)의 등장

 

한나라 무왕 유철이가 고조선의 정통 맥을 이은 북부여로 쳐들어온다.
당시 북부여의 4대 고우루 단군은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면서, 우리 조선 민족이 다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치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고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 고두막한이 마침내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 무왕 유철의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으로 우뚝 선다.

마침내 나라를 구한 고두막한은 기원전 108년, 졸본에서 일어나 나라 이름을 북부여 에서 동방의 대광명이라는 뜻의 동명부여(또는 졸본부여)라 바꾸고 동명성왕으로 즉위하였다.
기원전 87년에는 다시 북부여를 계승하여 조선 역사 부활의 푯대를 세우니 이분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성왕(東明聖王)인 것이다.

이 때 고두막한은 본래 북부여 4대 단군의 승계자인 해부루를 동쪽 가섭원 땅에 가서 살게 하였는데 나라이름을 동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으로 동부여라 했다.
해부루는 북부여 4대 단군의 동생이다.

이로써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5대 고두막 단군이 되는데, 그때부터 북부여의 후기시대라 한다.
북부여는 시조 해모수 단군으로부터 6대 만인 고무서 단군 때에 막을 내린다.

6대 고무서 단군은 딸만 셋이 있었는데 둘째딸이 바로 소서노인데, 고주몽과 혼인을 시켜 사위로 삼아 주몽으로 하여금 북부여를 계승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주몽이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되었으며, 그후 기원전 37년에 나라 이름을 高句麗로 변경하여 고구려 700년 역사의 창업 시조가 됐다.

이것이 고조선이 멸망한 후 열국시대로 들어서는 과정이다.
북부여가 단군조선의 정통맥을 계승한 것, 이것이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지금 우리 역사에서는 북부여 역사는....?

북부여기 상에 해모수 단군에서부터 역대 단군들이 나오는데 5대 단군 고두막한이 바로 동명성왕이다.
고두막한은 중국 한족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할 위기에 놓인 우리 동방 조선의 역사를 부활시킨 구국의 영웅인 것이다.
한나라 무왕 유철이가 조선을 침탈하려고 덤벼들었다가 고두막한에게 참패를 당했던 것이다.
한나라 무왕이 고두막한에게 대패한 이 사건, 이것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수치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