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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 神敎文化

환단고기와 규원사화 속의 상제님

by 바로요거 2009. 12. 4.

환단고기와 규원사화 속의 상제님

 

단고기/규원사화 삼신관련 어구

무릇 <삼신이 하나>라는 이치는 대원일에 그 뜻이 있으니 조화의 신은 내려와 나의 성품(性)을 이루고, 가르침의 신은 내려와 나의 삶(命)을 이루고, 다스림의 신은 내려와 나의 정신(精)을 이룬다.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인저.

무릇 사람의 성품이라는 것은 신의 뿌리다. 그렇지만 신이 성품에 그 뿌리를 둔다고 해서 성품이 바로 신 그대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가 밝게 빛나며 어둡고 더럽지 않을때 비로소 참성품이라고 한다. 이로써 신은 기를 떠날수 없는 것이며, 기도 또한 신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갖추고 있는 신의 성품과 기가 잘 조화되어 합쳐진 후에 스스로 성품이나 삶을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성품은 삶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삶도 성품을 떠나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스스로의 성품과 삶이 잘 어울린 뒤에야, 이몸이 신의 성품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기운 넘치는 삶에서 비롯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품을 깨닫게 됨은 천신과 그 뿌리를 같이 함이고, 그 삶이 세상에 나는 것은 자연과 그 기운을 같이 함이며, 그 정신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모든 목숨 있는 것들과 그 업을 같이하는 것이다. 하나를 알아 셋을 품고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간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따라서 굳은 마음이 바뀌지 않을때 <참 나>라고 하며, 신통하여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을 때 신이라고 하나니 참된 나는 신이 머무르는 바른 곳이다. 이 참된 근원을 알고 올바르게 수련한다면 좋은 징조는 스스로 몰려오고 밝은 빛이 항상 비추리라. 바로 하늘과 사람이 잘 어울렸을 때 이로부터 세가지 신의 성품을 배워 계율로서 맹세한다면 비로소 하나라는 것에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품과 정신이 잘 어울려서 빈틈이 없으면 세가지 신이 하나인 상제(上帝)와 같아서 우주만물과도 잘어울리고, 마음과 기와 몸도 있는 듯 없는 듯 자취도 없이 오랫동안 존재하게 된다. 감 ,식, 촉 이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면 그것이 바로 환님(桓因) 그대로인 셈이니 이 세상 어디에나 두루 그 덕을 베풀어서 함께 즐거우며,하늘 땅 사람과 더불어 끝없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라. (단군세기 서)

'신은 능히 만물을 생겨나게 하여 각자 제 성품을 다하게 하심에 신의 깊은 듯이 있어 백성들은 모두 의지하고 빕니다. 왕은 그 덕과 의로써 세상을 다스려 각각 그 삶을 편안하게 함에 왕의 바른 다스림이 있으니 백성들 모두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다스림은 나라가 선택하는 것이며 완전함은 백성이 바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7일을 기한으로 삼신님께 나아가 세번을 빌어 온전하게 되기를 다짐하면 구환이 바로 다스려지게 됩니다. 대저 그길은 아비 되려 하는 자는 곧 아비답게 하고, 임금 노릇하고자 하는 이는 임금답게 하며, 스승이 되고자 하는 이는 곧 스승답게 하고, 아들되고자 하고 신하되고자 하며 제자되고자 하는이도 역시 아름답고 신하답고 제자답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시개천의 도는 역시 신으로 가르침을 베푼 것이니 나를 알고 홀로 있기를 구하며 나를 비게 한 다음 물건이 있게 함으로써 능히 복을 세상에 미치게 할 뿐일저! 천신을 대신하여 세상에서 왕이 되어 도를 넓혀 무리를 이롭게 하고 한사람이라도 본성을 잃는 일 없게 하고 만왕을 대신하여 인간을 주관하며 병을 제거하고 원망을 풀며 물건 하나라도 그 생겨난 바를 해치는 일 없게 하고, 나라 안 사람들로 하여금 망령됨을 고쳐 참에 이르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단군세기)

임자 35년 모든 한을 상춘에 모이게 하여 삼신을 구월산에 제사케하고 신지인 발리로 하여금 서요사를 짓게 하였다. 그 사에 가로대.

'아침해를 먼저 받는 동녁의 땅에 삼신께서 밝히 임하셨네. 환인께서 먼저 모습을 드러내시고 덕을 심으시니 넓고 깊게 하시니라. ... (단군세기)

'대시에 위 아래 사방은 일찌 아직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더니 옛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 빛이 있어 밝더라. 상계로부터 또 삼신이 계셨으니 곧 한 분의 상제시라. 주체는 곧 일신이니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나, 쓰임은 곧 삼신이시라. 삼신은 만물을 끌어내시고 전 세계를 통치하실 가늠할 수 없는 크나큰 지능을 가지셨더라.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최상의 꼭대기의 하늘에 앉아 계시니 계신 곳은 천만억토요 항상 크게 광명을 발하시고 크게 신묘함을 나타내시며 크게 길한 상서를 내리시더라. 숨을 불어 만물을 만드시고 열을 뿜어 만물의 종자를 키우시며 신묘하게 행하여 세상일을 다스리시니라.

아직 기氣있기 전에 먼저 물을 낳게 하여 태수太水로 하여금 북방에 있으며서 사명으로서 검은 색을 관장케 하시고, 아직 기機있기전에 먼저 불을 낳게 하여 태화로 하여금 남방에 있으면서 사명으로서 붉은 색을 관장케 하시고, 아직 질質도 있기 전에 먼저 나무를 낳으시더니 태목으로 하여금 동방에 있으면서 사명으로서 푸른색을 관장케 하시고, 아직 형이 있기에 앞서 먼저 금을 낳아 태금으로 하여금 서방에 있으면서 흰색을 관장케 하시고, 아직 체도 생기기 전에 먼저 흙을 낳더니 대토로 하여금 중앙에 있으면서 노란색을 관장케 하니라.

이에 하늘 아래 두루 있으면서 오제의 사명을 주관하는 바 이를 천하대장군이라 한다. 지하에 두루 있으면서 오령의 이룸을 주관하는 바 이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생각컨대 저 삼신천일天一이라 하고 지일地一이라 하고 태일太一이라 한다. 천일은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를 주관하며 태일은 치화를 주관하느니라.

생각컨대 5제(五帝)는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를 말하나니, 흑제는 생명이 다함을 주관하고, 적제는 빛과 열을 주관하고, 청제는 낳아 기름을 주관하고, 백제는 성숙을 주관하며, 황제는 조화를 주관한다.또 생각컨대 5령은 태수 태화 태목 태금 태토라 하나니, 태토는 크게 윤택하게 하며, 태화는 녹이고 익히며, 태목은 지어 이루고, 태금은 재량하여 자르며, 태토는 씨뿌림을 주관한다.

이에 삼신은 곧 5제를 감독하고 명령하사 각각 넓히고 나타내게 하고, 5령으로 하여금 기르고 이루게 하도다. 해가 뜨면 낮이라 하고 달이 뜨면 밤이라 하며, 별의 움직임을 측량하여 춥고 더운 것과 연대를 기록케 하니라.(고기잡이는 배띄워 바다를 지키고, 농사에는 수레를 내어 땅을 지키니라.)코다 삼신일체三神一體의 만물의 원리됨이여! 만물원리의 덕이여, 지혜여, 힘이 됨이여! 높고도 넓어서 세상에 가득하며, 깊고 묘하여 불가사의하게 운행함이여!

그런데 사물은 모두 사물의 이치를 가졌으나 이치가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고, 사물은 모두 사물의 도리를 가졌으나 도리가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고, 사물은 모두 사물의 기능을 가졌으나 기능이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고, 사물은 모두 무궁함이 있으나. 무궁함아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 하였나니, 세상에 있으며 산다 하고 하늘로 돌아가면 죽었다 하는데,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라(生由於死, 死由於生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상기).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삶이 있고, 삶이 있으면 반드시 이름이 있고,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말이 있고, 말이 있으면 반드시 행이 있느니라.

이를 산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가 있으면 반느시 싹이 있고 싹이 있으면 반드시 꽃이 있고, 꽃이 있으며 반드시 열매가 있으며, 열매가 있으면 반드시 쓰임이 있나니라. 이를 또 태양의 움직임에 비유컨대,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밝음이 있고, 밝음이 있으면 반드시 살핌이 있고, 살핌이 있으면 반드시 행함이 있고, 행함이 있으면 반드시 이룸이 있나니 대저 천하 일체의 물건은 개벽을 좇음으로써 존재하고, 진화를 닮는 일 있음으로써 존재하며, 순환에 닮음 있음으로써 존재하니라.

유원의 기와 지묘의 신은 저절로 하나를 잡아 셋을 포함하여 가득히 빛났으니 있을 곳에 있고 감응하여 대응하니라. 오되 시작된 곳이 없고 가되 끝나는 곳이 없으니 하나에 통하여 만가지를 이루지 못함이 없음이라. (삼신오제본기제1)

'생각컨대 천일天一의 신께서는 아득하게 위에 계시나니 곧 삼대三大삼원三元삼일三一을 가지고 이를 영부하여 크게 내리시사 만만세의 만만백성에게 내리시니 일체는 애오라지 삼신께서 만드신 바니라. 심 기 신(心氣身)은 반드시 필수적으로 서로 의지해야 할 일이로되 아직은 반드시 영원토록 서로 지키지 못하고 영 지 의(靈智意) 삼식(三識)은 곧 영 각 생(靈覺生)의 삼혼(三魂)이 되고, 또 그 소질에 따라 형 년 혼(形年魂)을 넘치게 하느니라. 일찌기 경계에 따라서 느끼고, 숨쉬고, 접촉함이 있으니, 참됨과 망령됨은 서로 삼도(三途)를 끌어들여 갈라지고 말았도다. 때문에 이르기를 참 있음으로써 살고 망 있음으로써 멸하느니라고 했느니라. 이에 사람과 사물의 생겨남은 다같이 그 참된 근원을 <하나>로 하느니라. 성 명 정(性命精)을 삼관(三觀)이라 하나니 관을 수신(修身)의 요회(要會)라 하느니라. 성은 명을 떠나지 않고 명은 성을 떠나지 않나니 정은 그 가운데 있느니라.

심 기 신을 삼방(三房)이라 하고 성화(成化)의 근원(根源)이라 한다. 기는 심을 떠나지 않으며 심은 기를 떠나지 않나니, 신은 그 가운데 있느니라.

감 식 촉을 삼문(三門)이라 한다. 문을 행도(行道)의 상법(常法)이라 한다. 감은 식을 떠나지 않으며, 식은 감을 떠나지 않으며, 촉은 그 가운데 있느니라.

성을 진리의 원관(元觀)이라 하고, 심은 진신(眞身)의 현방(玄房으)로 하고, 감을 진응(眞應)의 묘문(妙門)으로 한다. 이를 탐구하고 성에 의해 진기(眞機)를 크게 발하나니, 신을 분명히 하고 심을 구한다면 진신은 크게 나타나 화응하여 서로 감응하고 진업(眞業)을 크게 이룰 것이니라. (삼신오제본기제1)

사람과 물건은 같은 삼진(三眞)을 받았으나, 다만 무리는 땅에 혼미하여 삼망(三妄)이 뿌리를 내리고, 진과 망이 어울려 삼도(三途)를 이룬다. 어버이의 도는 하늘을 모범 삼나니 참됨으로써 하나같이 거짓 없고, 스승의 도는 땅을 모범으로 하나니 부지런함으로써 하나같이 게으르지 않으며, 다스림의 도는 사람을 모범으로 삼나니 협력함으로써 하나같이 어김이 없도다.' (삼신오제본기제1)

삼신산三神山-백두산-을 천하의 뿌리산이라 한다. 삼신으로 이름 삼음은 대저 상세이래로 삼신이 이곳에 내려와 노닐으시고 삼계를 널리 감화하심을 믿기 때문이라. 360만의 큰 둘레의 하늘은 크체가 불생불멸이시며 그 용이 무궁무근이나, 그의 법식과 이치는 때가 있으며 장소가 있으니 신의 지극히 자상하고 지극히 현명하여 여의자재하심은 끝내 이를 알 수가 없다. 그를 맞이함에는 흡사 눈에 보이는 듯이 하고, 그 바치는 일은 문득 들리는 바 있는 것 같이 하고, 그 한탄함에는 기꺼이 하사받음이 있는 듯이 하고, 그 서약함에는 숙연하여 얻는 것이 있는 듯이 하며, 물건을 바칠 때에도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바침이니, 이렇게 만세 인민이 인식추앙하여 모두가 다 기쁘게 믿는 것이다.

삼신산에 어떤 설에서 '삼은 신이 되고 신은 또 백으로 되며, 신은 또 고가 되는 고로 고는 바로 두가 된다. 때문에 또 백두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하고, 또 말하기를 '개마는 해마리의 전음이다.'라고했다. 고어에는 힌것을 해라하고 두를 마리라고 하니 백두산의 이름도 역시 이예서 생긴 것이다. (삼신오제본기제1)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 처음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을 아이시다라 한다. 또 사타려아라고도 한다. 어느날 꿈에 신의 계시를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정안수를 떠 놓고 하늘에 알린후 돌아가며 술을 마셨는데, ... (삼신오제본기제1)

'사람과 물건이 함께 삼신에게서 나왔으니, 삼신으로써 한근원의 조상으로 삼느니라.' (삼신오제본기제1)

하나의 기[一氣]로부터 셋으로 갈려진 기는 곧 이다. 극極은 즉 무無다. 저 하늘의 근원은 곧 삼극을 꿰뚫어 허虛가 되고 빈 것이다. 안과 밖도 역시 그런 것이다. 하늘의 궁을 곧 빛이 모이는 곳, 만 가지 변화가 나오는 곳이라 한다. 하늘의 일신은 능히 그 허를 체로 할 뿐 아니라 곧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고로 말한다. 일기는 즉 천이며 곧 빈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중일中一의 신이 있어 능히 삼이 된다. 삼신은 곧 천일 지일 태일의 신이다. 일기는 그가 스스로 능히 동작하여 이루고, 가르치고, 다스리는 삼화의 신이 된다. 신은 죽 기이고 기는 곧 허이며, 허는 즉 일이다(진정한 천지일심의 자리가 바로 허무-무극-의 경계를 말함이며 그 성격은 中道이다.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일심의 자리이다).

고로 사람에 삼진이 있다. 성,명,정의 삼수의 진이라 한다. 진은 즉 충이고, 충은 곧 업이고, 업은 곧 속이며, 속은 즉 일이다. 그리하여 일에서 시작하여 일에 끝난다는 것은 돌아서 진으로 되오는 것을 말한다. 곧 일은 즉 삼이라고 하는 것은 선에 대합하는 것이다. 미립의 작은 알갱이를 쌓아서 일로 되돌아 오는 미이다. 곧 성의 선이라 하는 것이고 곧 명의 청이라 하는 것이며, 곧 정의 후라고 하는 이유다. 다시금 또 무엇이 있어서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하는 것일까? 진은 이를 <물들지 않음>이라고 한다. 이 물듦을 망이라 하고 선을 불식이라 한다. 그 식을 악이라 하고 청을 불산이라 한다. 산을 탁이라 한다. 후를 불축이라 한다. 축을 박이라 한다.

하나를 잡아 삼을 머금은 이유는 곧 그 기를 하나로 하며 그 신을 셋으로 하기 때문이라,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간다 하는 이유는 곧 그 기를 하나로 하며 그 신을 셋으로 하기 때문이라,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간다.하는 이유는 역시 신을 셋으로 하고 기를 하나로 하기 때문이다. 저 삶을 사는 자의 체는 일기이다. 일기란 안에 삼신이 있고 지의 근원도 역시 삼신에 있다. 삼신은 밖으로 일기를 포함한다. 그것은 밖에 있는 것은 일이고 내용도 일이며 그 통제도 일이다. 역시 포함되어 있을 뿐 놓을 수 없다. 그것이 글자가 이루어진 근원이 된다. 회를 포함하고 잡고 돌아온다.는 뜻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삼신오제본기 제1)

'환(桓)은 전일(全一)의 광명(光明)이라. 전일을 삼신의 지혜와 능력이라 하고, 광명을 삼신의 참된 덕이라 하니, 온 우주만물에 앞섬을 말함이다.' (환국본기 제2)

'옛 풍속은 광명을 숭상하였으니 해로써 신을 삼고 하늘로써 조상을 삼았나니, 만방의 백성은 이를 믿고 서로 의심치 않으며 아침 저녁에 경배하며 이를 가지고 일과로 삼았다.'

태양은 광명이 만나는 곳으로서 옛날부터 삼신이 계시는 곳이라. 사람은 빛을 얻음으로써 농사짓고, 하는 바 없는 듯하면서도 스스로 교화되나니, 아침엔 함께 동쪽산에 올라가 해가 처음 뜨는 것을 경배하고 저셕엔 곧 함께 서쪽 강가로 나아가서 달이 처음 뜨는 것에 경배한다. 이에 앞서 한인꼐서 때어나시사, 절로 다섯가지 사물을 만들고 기름을 아시고 다섯가지 가르침을 가르치시고 다섯가지 일들을 다스리시었다. (신시본기 제3)

대저 신시 이래 신의 다스림과 성인은 교화는 점점 세월을 따라 오히려 더해 가며 점점 깊어간다. 나라를 세우고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근본은 세상의 주변의 나라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으니 그 신풍과 성속은 멀리 천하에 전파되었다. 천하만방의 사람들로서 신성이화를 흠모하는 자들은 반드시 삼신산을 추모하고 숭상하여 동북쪽에 신명산이라 불리는 곳이 있게 되었다. 그 말류의 폐단에 이르러서는 차츰 허랑방탕한 일에 빠져들더니 더 나아가서는 차츰차츰 더 기괴하고 황당무계한 설이 쉴새없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른바 연나라 제나라의 바다위에 괴상한 도사얘기도 나왔다.

대저 저들의 땅이 구환九桓의 신시神市와 서로 접해있어 문물의 교류도 왕성했던 터라 저절로 풍문에 접할 수 있어 괴기하다느데 놀랐던 게 아닐까? 게다가 상상으로 늘리고 부연하는 자도 있어 가로대 '삼신산은 봉래 방장 영주산으로 발해 가운데 있다 운운'함으로써 세사을 미혹하는 주요 원은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람은 동쪽으로 바다에 가보아도 아득하기만 할 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발해 가운데 다른 바다가 있다는 말도 못 들었고,'삼신산도 역시 발해 가운데 있다 운운'했으나, 실은 바로 삼신산이 아니고 각각 세개의 섬에 있는 산이니 봉래는 쑥이 무성하게 자란 내경으로서 곧 천왕이 내려오신 곳이요, 방장은 사방 일장의 각으로서 곧 소도가 있는 곳이요, 영주의 영은 주도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으로서 곧 천지가 샘솟는 곳이다.

통틀어 말하자면 삼신산이라 하는 산이니 삼신은 곧 상제인 것이다.그렇지만 더욱 그 황탄한 자는 삼신의 원 뜻을 알지 못하고 곧 금강산을 봉래산이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산이라 하고, 한라를 영주산이라 함이 모두 그런 따위이다. (신시본기 제3)

대저 그 옛날 신시의 인문교화는 근세에 이르러 건재하게 행해지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천경신고天經神誥-천부경과 삼일신고-는 오히려 후세에 전해진 바가 있는 듯 거국적으로 남녀가 역시 모두 말없는 가운데 받들고 있는 바로서, 곧 인간의 생사는 반드시 삼신이 주관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열살 미만일 때예는 묵숨의 안전과 위험, 우환, 잘나고 못남 따위는 애오라지 모두 삼신께 의탁한다. 저 삼신은 곧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만드신 천일신(천주天主)이시다. (신시본기제3)

제5장 인물(167자)

사람과 만물이 한가지로 삼진(三眞)을 받나니 생각하면 사람들은 땅에서 헤매어 삼망(三忘)이 뿌리를 내렸고 진과 망이 서로 삼도(三途)를 지었다.

가로대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라. 사람은 온전하고 만물은 치우치니라.

참성품은 착함도 악함도 없으니(즉 中이다. [도전강좌방]의 '서전서문'을 참고하라) 상철上徹이 통하고, 참목숨은 맑음도 흐림도 없으니 중철인이 알고, 참정기는 두려움도 엷음도 없어 하철인이 보전하니, 참眞으로 돌이키면 일신이 될지니라.

가로대 심과 기와 신(心氣身)이라. 심이 성에 의지하여 선악을 이루나니 선은 복이 되고 악은 화가 된다.(惡함을 고치고 선함을 본받으면 마음이란 천지보다 더 큰 조화의 근원이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상기해보라) 기가 명에 의지하여 청탁을 이루나니 맑은 것은 오래가고 탁한 것은 쉬 사라진다. 심이 정에 의지하여 두텁고 엷음을 이루니라. 두터움은 귀하고 엷음은 천하다.

가로대 느낌(感)과 숨쉼(識)과 부딪침(觸)이라. 굴러 열여덟 지경을 이루나니 느낌에는 기쁨, 두려움, 슬픔, 성냄, 탐함, 싫음이요, 숨쉼에는 향내 술내 추위 더위 번개 습기요, 부딪침에는 소리 빛 냄새 맛 음탕 다침이니라. 뭇사람은 착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과 두텁고 엷음을 서로 섞어서 가닥길을 따라 함부로 달아나다가, 낳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에 떨어지고, 철인은 느낌을 그치며 숨쉼을 고르며 부딪침을 금하여 한 뜻으로 되어가서, 가닥을 돌이켜 참함에 나아가서 큰 고동을 여나니, 성품을 트고 공적을 완수함이 이것이니라. (소도경전본훈 제5)

또한 태백산(백두산)은 신시씨(환웅천황)가 하늘을 오르내리던 신령스러운 땅이며, 단군의 등극 역시 그 땅에서 비롯하였으니, 이로서 그 제사를 태백에서 처음으로 행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동방에 있어 만세에 걸친 나라의 제전이 되었으니, 고대의 나라 임금은 반드시 먼저 상제(上帝)(一大主神)로부터 단군에 이르기까지 삼신(三神)을 삼가 섬기는 것을 도리로 삼았다.(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은 바로 삼신상제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끊어진 신교를 부활한 최수운대신사가 선포한 侍天主신앙의 본질이다. 또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본연의 길道이 바로 삼신신앙이다).(규원사화 단군기)

발해 때는 보본단(報本壇)이 있었고, 고려 때는 성제사(聖帝祠)가 있었으며, 요나라에는 목엽산(木葉山)의 삼신묘(三神廟)가 있었고, 금나라에는 개천홍성제(開天弘聖帝)의 사당이 있었다. 우리 세종께서는 단군묘(檀君廟)를 평양에 설치하였는데, 세조 원년에 위패를 고쳐 '조선시조단군지묘(朝鮮始祖檀君之廟)'라 하였다. (규원사화 단군기)

대저 신시씨의 일을 들은 사람은 현실에 맞지 않고 괴이함에 의심을 많이 한다. 지금은 오직 단군만을 숭상할 줄 알 뿐, 그 앞에 신시씨가 세상을 열어 창조하였음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세속은 그 연유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단지 한나라의 서적에 의지하여 이르기를 "선교(仙敎)는 황노(黃老)의 한 부류이다"라고 하니, 신인으로서 가르침을 베푼 것이 우리 신시씨의 세상에서부터 비롯하였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한다.(聖神이 立極하여 교화함은 본디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이다) (규원사화 단군기)

이때부터 항상 순행을 나가면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마침내 만세에 길이 전하는 풍습이 되었다. 이는 동방 특유의 성대한 제전으로 외국과는 가히 비할 바가 아니다. '태백'이라는 하나의 산은 족히 곤륜(崑崙)의 이름을 누르고도 남음이 있으니, 예전의 삼신산이 곧 태백산이다. '삼신(三神)'을 또는 '삼성(三聖)'이라 하는데, 지금의 문화 구월산에 삼성사(三聖祠)가 있어서 환인과 환웅 및 환검을 공경하여 제사를 지낸다. 지금에 와서 단군의 가르침이 비록 꾸준히 행해지지는 않지만 신령스러운 교화의 가르침은 여전히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온 나라의 남녀가 여전히 은연중에 받들어 믿고 있는 것으로서, 곧 사람의 삶에서 나고 죽고 하는 것은 반드시 삼신이 주관한다고 말하며, 10살 이전 어린아이의 신변과 목숨의 안위 및 슬기롭고 어리석음과 못나고 뛰어남 등을 모두 삼신제석(三神帝釋-삼신상제라는 호칭이 불교식으로 윤색된 말)에게 의탁한다.

'삼신'은 곧 하늘과 땅을 열고 백성과 사물을 만들어 다스린 삼신을 말하는 것이다. '제석' 등의 말은 비록 불가의《법화경》에서 나왔지만 역시 하늘 임금의 뜻이다. 이것은 단지 옛 역사가 승려의 손으로 옮겨진 까닭일 뿐이니, 망령되게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옛날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한나라 무제에게 아뢰어 "폐하께서 겸손하게 사양만 하시고 내어 비치지 않으신다면 이는 삼신(三神)의 기쁨을 끊는 것입니다" 하였는데, 그 주석에 삼신은 상제를 말한다 하였으니, 삼신이란 말은 당시 한나라에도 통용되었던 것이다. (규원사화 단군기)

그러므로 신시씨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미 백두산에 있으면서 점차 서남쪽으로 옮기고, 다시 패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삼씨(三氏)의 겨레들은 각자 더욱더 사방으로 옮겨갔다. 또한 태백이 이미 동방의 신령스러운 땅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의식은 반드시 그 산에서 시작하였으니, 예로부터 동방 민족이 이 산을 숭상하고 공경함은 남다른 것이었다. 또 옛날에는 짐승들이 모두 신의 교화에 젖어 그 산에 편안히 깃들여 살며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며, 사람 또한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는 등의 신을 모독하는 행위를 감히 하지 않았으니, 만대에 걸쳐 항상 받들고 보호하는 지표가 되었다.

무릇 우리 선조들은 모두 신시씨가 거느린 3천의 무리에서 나온 후예들이다(환웅천황께서 이끈 문명개척단인 제세핵랑군을 말함). 뒷 날 비록 여러 씨(氏)의 구별이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단군 선조께서 똑같이 어여삐 여기는 신의 후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환인(桓因)·환웅(桓雄)·단검(檀儉)의 삼신이 나라를 열고 기초를 바로잡은 공덕을 항상 전하여 이야기하고 잊지 않았으니, 곧 옛 백성들이 그러한 신령스러운 산을 가리켜 '삼신산'이라 하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규원사화 단군기)

대저 신시씨가 하늘에서 내려온 이래로 신의 교화가 점차 세월에 따라 더욱더 깊어 감에, 나라를 세우고 세상을 경영하는 근본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는 자못 다르게 되었기에, 그 신성한 풍속이 멀리 한나라 땅에까지 퍼져서 한나라 땅의 사람 가운데 신의 교화를 사모하는 자가 있었으니, 오로지 삼신을 추앙하여 동북 지방에는 '신명의 집(神明之舍)'이라는 명칭까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말단의 폐해에 이르러 곧 점차 허무맹랑함에 빠지고 더욱 기괴해지더니 괴이하고 허망한 말들이 꼬리를 물고 갈마들어 나왔는데, 심지어 '연나라와 제나라의 바다 위에 신선의 술법을 닦는 괴이한 사람이 있다'라고 말해지기까지 하였다. 무릇 그 땅은 우리의 진방(震邦)과 더불어 서로 접해 있어서 백성과 사물의 교류가 특히 왕성한데, 직접 그 풍문을 듣고는 놀라며 이상하게 여겼다. 또한 생각을 미루어 넓히고 억지로 이치에 맞춰 말하기를 [삼신산은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으로 발해 가운데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 증거가 없음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바라보면 마치 구름과 같은데 결국에는 능히 다다르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세상의 주목을 미혹케 하였다.《신선전》에서는 또 '海中'이라는 글자만으로 추측하고 단정지어 말하기를 [바다 위에 삼신산이 있는데 봉래·방장·영주산이라 하며, 이를 일컬어 삼도(三島)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해상(海上)'이나 '육오(六鰲)' 등의 황당무계한 말들이 한가로운 사람들의 붓 끝에서 연이어 나왔음에도 우리나라 선비들은 다시 그것을 억지로 흉내만 내어 [금강산이 봉래산이며, 지리산이 방장산이고, 한라산이 영주산이다]라고 말하니, 이는 또한 한나라의 선비가 뱉은 침을 도리어 받아 곱씹는 격이다.《사기》의 <봉선서>에 말하기를 [삼신산이란 발해의 바다 가운데 있다고 전해진다. 무릇 가본 적이 있는 사람에 의하면 뭇 신선들과 불사의 영약이 모두 있으며, 그 곳의 사물과 짐승들은 모두 희고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으며……] 하였고, 또한 선가(仙家)의 서책에서 혹은 말하기를 [삼신산에는 넋을 부를 수 있거나 먹으면 늙지 않는 등의 풀이 있는데 일명 '진단(震檀-동방의 우리나라을 말함. 仙의 뿌리가 백두산에서 유래된 동방신교인고로 仙家의 사람들이 유독 삼신산을 찾은 것이다.)'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규원사화 단군기)

생각건대 옛 기록에 전하는 '구변진단(九變震檀)'이란 얘기는 반드시 이러한 것에 연유함이 있을 것이나 '불로진단(不老震檀)' 운운하는 것은 아마도 역시 전해들은 사람의 착오일 것이다. 그러한 즉, 연나라와 제나라의 방사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바다 속의 삼신산'을 말하는 것 역시 똑 같이 꿈 속을 노닐며 그 주인을 속이고 또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된다. 지금 우리나라에 [원하건대 삼신산의 불로초를 얻어, 윗채에 계신 백발의 어버이에게 바치고자 한다]는 글귀가 있으니, 아마도 노인을 봉양하는 자가 젊음을 찾아 드리고자 하는 전형적인 글인 것 같은데, 그 근원을 따져 보면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할 뿐이다. 어찌하여 백두산에 가서 단제(檀帝)의 영정에 절을 하고 만수를 기원하지 않는 것인가? (규원사화 단군기)

무릇 제나라와 연나라의 선비들은 신비하고 괴이한 말에 깊이 현혹되고 또한 이를 높이 여겼다. 제나라의 위왕(威王)과 선왕(宣王) 및 연나라의 소왕(昭王) 때부터 사신을 보내 삼신산을 찾게 하였으니, 진(秦)과 한(漢) 때의 송무기(宋無忌)·정백(正伯)·교극(僑克)·상선(尙羨)·문자고(門子高) 같은 무리는 모두 연나라 사람이고, 문성(文成)·오리(五利)·공손경(公孫卿)·신공(申公) 등의 무리는 모두 제나라 사람이다. 옛날 태공(太公)이 제나라를 다스리며 도술을 닦았더니, 뒷날 그 땅의 사람들이 도술 부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강태공이 동방신교를 지나족에게 전하였음을 말함). 곧 이것은 또한 태공이 세상의 풍속을 그렇게 이끈 것이므로, 연나라와 제나라의 선비들이 어찌 괴이한 말들을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규원사화 단군기)

또한《신이경(神異經)》을 보았더니 [곤륜산의 서쪽에 큰 뱀이 있어 산을 휘어 감고 있는데 그 길이가 3만리이다] 하였다. 길이가 3만리나 되는 큰 뱀이 곤륜의 서쪽에 또아리를 틀고 앉았으면 서역의 뭇 나라들이 응당 그 비늘조각 아래에서 짐승을 길렀을 터인데,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릇 이상한 말을 짓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듣는 사람이 모르는 것을 빌미로 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한나라 땅의 기괴한 선비들도 단지 동방의 삼신 얘기에 빙자하여 공연히 시끄럽게 거짓말을 퍼트려 인심을 선동하고 이로서 듣는 자들을 미혹케 하였다. (규원사화 단군기)

이제 삼신제석(三神帝釋)을 숭배하는 풍조가 자못 성하여, 집집마다 잠자리의 바로 윗 벽에 박달나무로 만든 못을 박고, 종이 주머니에 깨끗한 흰 쌀을 가득 담아 걸어 두며 이름하여 '삼신낭(三神囊)' 혹은 '제석낭(帝釋囊)'이라 한다. 매년 10월 새로운 곡식이 날 때면 주부는 반드시 손을 정결히 하고 새로 마련한 시루에 떡을 쪄서 그 신에게 정성을 올리며 큰 복을 바란다. 이것은 단군조선(檀朝)때 생겨나 지금까지 남겨진 풍속인데, 속된 백성들은 다투어 무당과 박수를 받들면서 혹은 길흉화복과 장수하고 단명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무당과 박수에게 의탁하며 말과 행동을 그것에 따르니, 이는 곧 옛 풍속의 끄트머리로 흐르는 폐단이다(신교시대 祭政一治의 삼신신앙이 모두 사라지고 우리나라 민중의 무속신앙으로 남아 전해졌으나 그나마 본연의 모습도 거의 변질되어 버렸다). 그러니 어찌 연나라와 제나라 선비를 향하여 그들이 괴상하다고 비웃을 수 있겠는가. 슬프도다! (규원사화 단군기)

날아다니는 반딧불에도 빛이 있고, 썩은 나무에서도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감나무 배나무는 가지에 접을 붙이면 능히 과실이 무성해 지고, 오리나 닭 등은 알을 품어 능히 새끼를 낳아 기른다. 이것은 몸의 바탕 외에 따로 응결된 힘이 있어서 그러한가? 그러한 사물과 사물들의 응결된 힘이 서로 교접하여 능히 생명을 낳게 되는 것인가?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정령(精靈-천지의 정령신 즉, 천지도깨비인 망량신이다. 고로 상제님께서는 천지는 망량이 주장한다 하셨고, 또 증가甑哥를 도깨비 성씨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이 있어서 일관되게 흐르고 두루 감싸안으며 그 몸의 바탕을 밀어 움직이게 하는 것이겠는가? 한나라 사람의 말에는 반고(盤古)와 삼황(三皇)이 세상을 처음으로 연 창시자라 하는데, 이것이 진실인가? 동방 사람의 말에는 삼신(三神)이 세상을 처음으로 가른 창조자라 하는 데, 이것이 진실인가? 내가 감히 그 옳고 그름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한 큰 정령(精靈)이 있어서, 이 세상을 잡아 유지하고 이 세상을 주재하여 펼치며 능히 밀어 움직여서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간다고 한다면 곧 믿을 만한 것이 될 것이리다. (규원사화 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