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총화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교총화는 조선시대 말 팔공진인이라는 분이 집필하신것입니다.
그는 자하 선인의 제자로서 신선이 되어 팔공산에 거한다하여 팔공진인 이라 칭하게 되었으며,자하선인은 지금도 살아서 당나라 여덟 신선(唐八仙) 중의 한분인 여동빈과 함께 가야산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신교총화를 집필한 당시에는 400여살이었다고 전해내려옵니다.
상명여대에 가면 자하문이 있는데, 이는 자하선인을 기리기위해 세워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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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역사를 알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와 도가 부흥하고 있으며 서양에서는 뉴에지 문화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기위해서는 가장 근본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가장 안타까운 진리가 결론만을 말하는 진리입니다. 근본이라 함은 항상 표면적으로 이세상에 드리워져 있기 마련입니다.
오스트리아가 낳은 정신분석학의 일인자로 불리우는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정신상태는 그의 첫 인상에서 모든것을 표현한다.]
항상 마음속에 흐르는 파장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것입니다.
역사가 구비치고 민족혼이 구비치는 것을 우리는 민족성이라 합니다.
프로이드가 말한 첫 인상이라는것은 어느 누구도 숨기지 못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흐르고 있는 민족성도 숨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민족정신을 알기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하여야합니다.
역사중 가장 근본이 되는 상고사 연구가 필요하겠죠.
한번 거슬러 올가가면서 신교의 자취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교(神敎)를 말하면 제사 문화라 할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천의식입니다.
조상을섬기는 행위를 흔히 제사라 말합니다.
옛날에는 차를 올리는 의식으로 조상님께 예를 다했다고 합니다.`차례`라는 어원도 그로 인해 비롯되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하실수 있을겁니다.
지금의 제사문화는 조상을 섬기고 천지를 섬기는 의미를 벗어나 가족이 한자리에 만나는 형식으로 바뀌고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조금은 원래의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그날 하루 조상을 생각하는 자세는 아직도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신교(神敎)의 맥입니다.
우리나라에 외래 종교가 처음 들어온것이 불교입니다.
국난때엔 호국정신으로 민중에게 큰 구심점이 되주었던 불교... 그럼 불교가 들어오기전에는 우리에겐 종교가 없었을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우리에겐 신교(神敎) 가 있었습니다.
무려 7500년동안 우리와 함께했던 신교가 있었습니다.
불교 또한 신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결코 제사문화는 중국에서 넘어오거나 유교를 바탕으로 나온 문화가 아닙니다.
제사문화는 본래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고유문화입니다.
옛부터 우리민족에게는 수많은 제사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중시되는 제사는 1년에 두번씩 삼신상제를 모시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사계절마다 지내는 제사가 있었고, 24절기 마다 지내는 제사가 있었으며, 소원을 비는 제사가 있었고 또, 가정내에서 지내는 제사등 헤아릴수도 없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제사가 많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모시는 신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다신관(多神觀)입니다.
신교에서는 삼라만상이 모두 신(神)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즉 "천지간에 가득찬 것이 신이라" 는것입니다.
이 말씀은, 본래 이 대우주 천지의 물질적 구성 자체가 영적 성질을 지닌 기운 즉 영기(靈氣)로 이루어졌다는 말씀이며, 이 현실세계를 살다가 저편으로 돌아간 사람들 즉 인격적인 신명(神明)들로 이 우주의 속세계가 무수히 차 있다는 말씀도 되는 것입니다.
신교의 근본사상은 다신(多神)에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일원적(一元的)다신입니다.
부엌에는 조왕신, 화장실에는측신, 집안을 보호하는 토주신 가택신, 성조대신, 마을을 보호하고 아기를 점지해주고, 벼락을 다스리고, 잡귀를 몰고 다니고, 사람의 명을 거두어가고, 산행을 보호하고..
신의 종류도 많았고 그들에게 빌었던 제사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모셨던 민족이었습니다. 천지인의 정신을 계승했던 신교(神敎) 를 계승했던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어렸을때 시루떡을 해서 마루에도 놓고, 방마다 놓고, 대문에 놓고, 옥상에 놓고, 지하실에도 놓고 남은것은 이웃끼리 나누어 먹고,팥죽을 쑤어서 여기저기 뿌리는 풍습 또한 신명(神明) 대접을 극진히 하던 신교(神敎) 문화에서 나온것입니다.
대학생 되어 지방에서 서울로 하숙 할때도 꼭 부모님이 팥죽을 쑤어 주시고, 어떤 지방은 소금을 주시면서 꼭 가서 뿌려라 그러시던 기억이 있을겁니다.
그것은 팥죽의 붉은색이 잡귀를 몰아낸다는 믿음과 소금의 기능적인 면을 취한 풍습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결코 중국에서 넘어 왔거나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삼신상제라 불리우던 분은 과연 어떤 분이셨을까요?
신교는 우주의 주재자를 삼신상제라 불러왔습니다.
인류 문명의 시원 민족인 우리 한민족사에 비추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인류의 정신적 아버지 안파견으로부터 우리의 조상이 약 1만년 동안 섬겨온 신앙의 핵심 대상은 삼신상제(三神上帝)님이십니다.
이 삼신(三神)을 지금은 얼핏 국조삼신으로 잘못 알고 있고, 자손줄을 내려 준다는 삼신할머니 정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 삼신사상이 뻗어나가서 지구촌의 여러 종교에도 영향을 줍니다. 정확히 말하면 삼신사상에서 뻗어나가 새로운 종교가 만들어진것입니다.
삼신상제`... 얼핏 들으면 "상제가 셋?"으로 이해하실수도 있습니다.
삼신(三神)을 천신(天神)과 지신(地神)과 조상신(祖上神)으로 얘기하는 건 잘 모르고서 하는 얘기입니다. 삼신은 천신 지신 조상신이 아니라 하나이면서 셋으로 작용하는, 천지인을 주재하는 우주의 유일상제(一上帝)를 말합니다.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절대자를 일신상제라 부르지 않고 삼신상제라 부르는 이유를 우주의 조화 기운이 3수원리로 존재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三神상제님이란 말은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님이 세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주조화의 본체가 3수의 창조원리로 변화 작용한다는 심오한 이치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삼일심법(三一心法)의 민족정신으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천년동안 3의 성수(聖數)신앙으로 생활화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3이라는 숫자와 깊은 인연을 느끼는 것은 바로 우주의 근본을 꿰뚫어 본 삼신사상으로 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민족이 역사의 발전과 세계통일의 원리를 최초로 밝혀낸 삼진귀일(三眞歸一)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 自上界로 却有三神하시나 卽一神上帝시오 主體則 爲一神이시나 非各有神也시며 作用則三神也시니라.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그리고, 환인, 환웅, 단군성조는 이 우주의 3신의 진리를 대각하시고 그 정신을 대행 하신 분들이며, 한민족의 자손과 역사를 주재하시어 민족의 수호 3신이 되신 각각의 인격신(人格神)입니다.
삼성기 상편에 환인께서 최초로 삼신상제의 진리를 득도하여 하늘을 대행하여 신교의 진리를 편 분이라 적고 있습니다.
7세 환인천제, 18세 환웅천황, 47세 단군성조는 모두 삼신상제님을 섬기는 구도의 길을 우리 민족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일제에 의해 신격화 되어버린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곰이 21일 동안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고행하는 이야기의 본래 진실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삼신의 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의 통과의례를 우화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삼신상제님을 어떻게 신앙하는가 그 마음자세를 초대 단군성조님의 말씀을 단군세기를 통해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 하늘의 법은 오직 하나이고, 그 문을 둘이 되게 하지 않는다. 너희는 오직 지순한 정성으로 일심할 때 마침내 하느님을 뵐 수 있으리라. - 天範은 唯一이오 不二厥門이니 爾惟純誠하야 一爾心이라야 乃朝川이니라.]
이렇듯 우리 민족은 본래부터 삼신상제님을 섬기는 제사를 가장 중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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