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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 神敎文化

하느님 신앙의 종주국, 대한민국

by 바로요거 2009. 7. 20.

 

하느님 신앙의 종주국, 대한민국

인류의 역사시대가 열리다

 10,800년 전에 소개벽이 있었다. 이 소개벽을 당한 조난민들은 고산지대로 피난을 갔는데 천산산맥 알타이산맥 일대로 그들은 몰려들었다.



 天山(하늘산) 알타이산 일대에 살고있는 조난민들의 삶은 황폐하고 비참했다. 천상天上에 계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몹시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하느님께서는 그 불쌍한 백성들을 구휼하고자 하시었다. 하느님께서 그 조난민을 구원할 큰 성인聖人을 보내시니 그가 곧 환국桓國의 초대 임금 안파견 환인이었다.



 안파견 환인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알타이산 일대의 조난민을 구휼하고 백성을 교화하며 나라를 건국하였다. 안파견 환인이 이렇게 환난에 빠진 백성을 구원하고 하느님 신앙문화를 가르치고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桓國을 건국하니 후손들은 그 위업을 기려 "인류의 아버지"란 뜻으로 안파견(아버지, 아보기, 아파치, 슈메르어 아바)이라 불렀다.



 환국의 7대 지위리 환인 때에 알타이산 일대에는 급격한 기후 변동이 있어 거주환경이 척박해지고 인구가 급격하게 불어나 사람들이 더이상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갔다. 알타이산 일대의 주민들은 살 곳을 찾아 유랑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되어 BCE6천년경 중앙아시아 일대는 인구의 대분화가 일어났다. 엔릴(Enril)을 비롯한 슈메르의 신화 영웅들은 메소포타미아로 이주해갔고, 모헨조다로 등 인더스문명을 일으킨 이들이 이동해갔으며, 에스키모 인디언 잉카인들도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갔으며, 또 커발한 환웅를 비롯한 배달무리들은 이 때 동방 백두산으로 이주하였다.



 동방 배달의 역사는 이로부터 열렸다. BCE3898년 10월 상달 커발한 환웅이 하늘산에서 무리 3천을 이끌고 백두산으로 이주하여 신시神市(신들의 도시)에 도읍을 정하고 동방에 배달나라를 세우니 이를 신시개천神市開天이라 한다.



 신시개천神市開天이란 무엇인가? 신시는 새하늘 새땅을 찾아 이주해온 커발한 환웅이 도읍을 연 장소를 말하고, 개천은 환웅이 저 하늘산에서 가져와 동방에 편 문화적인 요소를 말한다. 원래 백두산 일대에는 호족과 웅족이 살고 있었는데, 동방으로 이주해온 환웅의 무리들은 그들에게 하늘산에서 가져온 고도로 발달된 문화의 새소식을 이렇게 전하였다.



 ‘우리는 저 하늘산에서 온 사람들이여. 우리는 하늘산에서 하느님을 모셨기 때문에 고도로 발달된 광명문화 속에 살아온 하늘백성이라는 소문을 너희들도 들었을거여. 너희들도 우리처럼 神性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을 거여. 너희들도 우리처럼 광명과 신성 속에 살고 싶으면 하느님을 한 번 믿어 보시겠나?’



 삼성기三聖記에는, 커발한 환웅이 3.7일을 택하여 신단수神檀樹 아래 하느님께 제사지내고 몸을 닦고 수행하시어 신선이 되시고, 천지의 상象을 읽고 신神을 뜻대로 부리신(執象運神) 그런 분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듯 성신聖神과 같은 환웅이 호족과 웅족에게‘자네들도 하느님을 한번 모셔보시게(開天)’하고 권유를 하니, 그들은 하늘백성에 편입되고자 마늘과 쑥을 들고 동굴에 가서 수행을 하며 몸을 닦고자 하였다. 웅족과 호족은 같이 공부를 시작했는데 곰족은 환웅이 제시한 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공부과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족은 본래 그 족속이 사나워서 그 과정을 인내하질 못하고 도망가고 말았다.



 곰족은 '하늘백성'이 되었다. 곰족은 하느님 신앙을 받아들이고 수행과정을 통과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우리말에서 곰 = 神의 뜻으로 쓰이는 것은, 곰족이 광명의 족속이 된 이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하였다. 예전에 애기를 낳으면 집앞에 내거는 줄을 곰줄 또는 신줄이라 하고, 신을 모시는 공간을 감실이라 하며, 가미가제 = 神風에서 보듯 곰이 신의 뜻으로 쓰임을 알 수가 있다. 곰이 '최고 높은 또는 왕'의 뜻으로 대감마마 상감마마 거서간 니사금 등의 용례에서 쓰이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고, 곰이 '최고'의 뜻으로 인체의 제일 높은 곳을 가마라 이르고, 우리나라의 최고의 지붕을 "개마고원"이라 부르는 데서 그 용례를 확인할 수가 있다.



 배달국의 1대 커발한 환웅은 광명의 겨레로 편입된 신성스런 곰족의 여인과 결혼하시었다. 하늘산에서 온 환족桓族이 땅의 족속인 곰족과 결혼을 하니, 이로서 배달국은 하늘족과 땅족의 결합으로서 그 나라를 성립하였다.



하느님 신앙은 누가 열었는가?

 환인, 환웅같은 고대의 신성神聖들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 창생을 교화한 광명문화를 우리는 신교神敎라고 부른다. 한민족의 고대 신성神聖들은 신단수 아래 하느님의 천명을 받아, 인류문화의 새벽을 열고 역사의 여명을 열어나갔다.



 신교神敎는 하느님께서 열어주신 가르침을 말하며 또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받드는 신앙을 말한다. 누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았던가? 누가 하느님 신앙을 열어 갔는가? 하느님 신앙은 환국의 7분의 환인과 배달국의 여러 환웅들이 받들었고 그들이 하느님 신앙을 열어나갔다.



우리민족은 태초 이래로 하느님을 모셔왔다. 왜? 하느님께서 환국과 배달국을 열어주셨고, 인류의 첫새벽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나라의 앞길을 열어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보은하기위해 년년세세 하느님을 모시고 제사를 받들어 왔다.



 환단고기에 보면 이런 노래가 전한다. 아아, 우리민족의 앞길을 열어주신 대조신大祖神의 은혜여 가이 없어라!



 “어아어아, 우리 백백천천 사람마다 원융하며 굳게 뭉친 한마음이로세, 배달나라의 광영이여, 백백천년의 대은덕이여, 우리 대조신, 우리 대조신이여 於阿於阿我等百百千千人皆大弓堅勁同心倍達國광榮百百千千年大恩德我等大祖神我等大祖神” (단군세기)



 단군조선 시절 제천행사(하느님에 제사) 때 나라 전체가 모여 어아가를 춤추고 노래하며 대조신의 크나큰 은혜 누구라도 잊지말자며 맹세하고 그 공덕을 찬양하던 아름다운 풍속이 온누리에 넘쳐흘렀다. 하느님께서 창생의 길을 열어주신 은혜를 어찌 잊으랴. 민족의 대조신께서 나라의 광영을 열어준 은혜를 어찌 잊으랴!



우리민족의 정신의 원형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민족 9천년 역사의 장구한 세월동안 내려오는 민족정신의 원형질은 바로 이것, “제천보본祭天報本 문화”이다.



제천보본祭天報本 문화란 무엇인가? 하느님께서 인류의 새벽을 열어주시고, 우리민족의 앞길을 열어주셨으니 아아 그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근본에 보답하리라. 하느님을 모시고 근원에 보답하리라. 대조신께서 하늘 신앙의 길을 열어주셨으니, 아아 그 은혜를 어찌 잊으랴!



우리나라가 하느님 신앙의 종주국이다

그대여 인생의 근본이 무엇인지 아는가? 인생의 근본에 보답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사람이 인생을 사는 가장 큰 근본은 ‘하느님을 모신 것’에 있다. 인생이 하느님을 모시는 큰 근본을 바로 잡으면 만가지 기틀이 바로 잡힌다.



 인생의 큰 근본을 잡는 공부는 이렇듯 우리나라에 그 진정한 길이 있다. 인류사상 모든 진리의 뿌리는 우리나라에 있으며, 인류의 진정한 참진리는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 사람은 이상하게도 우리 것의 진정한 가치를 잘 모른다. 우파니샤드를 배우는 사람은 있어도, 그리스 신화를 연구하는 사람은 많아도, 탈무드는 누구나 읽으면서 우리민족에게 내려오는 이 심오한 하느님의 진리를 공부하는 사람은 없다.


 인류 최초의 하느님을 모신 민족은 우리나라이다. 유대민족이 야훼를 신앙한 것은 4천년의 역사가 안 된다. 우리 민족이 하느님을 모신 역사는 무려 9천년이나 되지 않는가?



잃어버린 하느님 신앙

 우리민족이 하느님 신앙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두가지쯤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민족이 하느님을 모신 신앙의 역사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환인이 환국을 연 것이 BCE 7,200년경이니 하느님 신앙이 시작된 것이 얼마나 장구한가? 환국 배달국에는 하느님 신앙의 은혜를 받아 신성과 광명문화가 열렸지만, 단군조선으로 내려오면서 하느님 신앙은 제천문화 형태로 바뀌고, 단군조선이 분열하면서 하느님 신앙은 구심체를 잃고 백성들의 개인 신앙과 습속으로 흩어져 존속되었다.



 둘째는 하느님 신앙문화는 인류의 뿌리 문화였다. 인류문화는 하느님 신앙문화가 뿌리를 열고 예수 석가 공자의 유불선이 가지를 벌여 현대문명의 나무와 숲을 일구어 나갔다. 다시 말하면 신교는, 우리민족의 하느님 신앙은 인류의 뿌리문화였고, 유불선은 우리민족의 신교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각기 지역으로 뻗어나가 인류문화의 지엽시대를 연 것이다.


 그러면 우리민족의 하느님 신앙은 왜 인류역사 속에서 전혀 조명받지 못하고 철저히 외면받고 은폐되어 그 흔적도 찾기 어려운가? 그것은 한 그루 나무의 성장과정에 비유해서 설명을 할 수가 있다. 한그루 나무는 봄에 싹이 솟아 여름에 줄기와 가지에 물이 오르면 뿌리는 잊혀지는 법이다. 만화방창 가지가 벌여지고 꽃이 피면 뿌리는 땅 속 어둠 속에 머물러 잊혀지는 신세가 아닌가.


 우리민족의 하느님 신앙이 바로 그러했던 것이다. 우리민족의 하느님 신앙은 유불선이 꽃피는 동안 땅속 어둠 속에 머물러 묻혀야 했고, 우리민족은 약소국의 신세로 전락하여 한반도로 쫓겨들어오고 恨의 민족이 된 것은 뿌리민족의 숙명으로서 그러했던 것이다.왜? 하느님 신앙이 우뚝 건재하면 유불선 성자들의 종교는 꽃을 피우지 못하니까...



지금까지 알아본대로 하느님 신앙은 인류의 뿌리문화로서 유불선의 원류였다.

 하느님 신앙문화는 유불선등 모든 종교 사상을 포괄하는 바탕이 큰 문화라서 유불선 처럼 그런 개성과 특징이 강한 문화가 아니었다. 하느님 신앙은 한그루의 나무의 뿌리가 나무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듯이 우주 전체를 포괄하는 무변광대한 도라 할 수 있다.


상고의 우리민족의 하느님의 도는 인간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인류의 보편적 생활 문화로서 존재하였고, 인간을 구속하는 규범이나 제약이 크게 두지 않았다. 가령 도교나 불교같은 경우는 산 속에 가서 도를 닦는 특성을 가지지만, 본래 우리 고유의 도는 인간 삶을 떠난 구도행위에 그 의의를 전혀 두지 않았다. 우리민족의 하느님의 도법은 그 광대무변함이 마치 물과 공기와 같아서 그 규범을 따로 정하지 않았으므로 소의경전이나 종교적 구심점을 크게 두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엽종교로서 개성과 특징이 강한 유불선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이러한 바탕 위에서 들어왔다. 9천년래 하느님을 모셔온 참으로 신심이 발달한 민족이지만, 그 고유의 종교는 규약도 경전도 없고, 종교적 구심체도 없고, 불교가 들어와서 보니까 참으로 그들이 뿌리내리기 좋은 토양이었다. 불교는 중국에 들어오며 저항이 심하여 격의불교라는 우회수법으로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들어오며 별 저항도 없이 우리민족의 본래 신심을 손쉽게 차지하였다. 이차돈의 순교는 고유신앙세력의 저항을 일거에 무너뜨렸고, 불교는 또 배타적이기보다는 현지 적응적 전략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무불巫佛습합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자연스레 토착화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신교를 바탕으로 나간 유불선은 다시 우리나라에 역수입되어 들어와 불교 5백년, 유교 5백년, 기독교 300백년의 시대를 열어갔다. 유불선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와 돌아가며 그 꽃을 피웠다. 뿌리문화와 유불선 줄기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차례대로 꽃을 피운 것이다. 인류사상 모든 종교가 차례로 들어와 꽃을 피운 이런 사례를 가진 나라는 없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나라를 표본으로 인간농사를 짓고 계신 그 증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불선은 개성과 특질이 강하여 우리 민족의 하느님 신앙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새끼가 어미를 잡아 먹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상극과 도역倒逆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불교는 고유신앙을 수용하며 그것을 전부 불교화하고자 했고, 유교는 자기들의 신념 이외에는 전부 이단으로 처형했으며, 기독교는 우리 고유신앙을 미신이란 이름으로 덧씌워 말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가 불교의 나라, 유교의 나라, 기독교의 나라가 되면서 약소국이 되버린다. 우리나라는 본래 하느님 나라인데, 우리민족이 본래의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면서 약소국, 노예국이 되고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하느님의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하느님의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인류 전체를 포괄하고 통일할 수 있는 한철학을 가진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하느님의 나라여서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순민의 나라, 평화의 나라이며, 종교적 배타성을 내세워 격심한 종교전쟁을 벌인 적이 없는 나라이다. 고려 때 몽고족을 따라 일본 정벌을 감행할 때도 하늘 바람(神風)이 막아서 그 일이 중단되었고, 효종이 북벌을 준비했으나 출정을 앞두고 사망한 것도 하늘백성들은 남의 나라를 칠 수 없는 섭리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다.



 외국이 하느님의 나라를 치면 어찌 되는가? 다른나라가 하느님 나라를 치면 반드시 큰 화를 입는다. 수양제 수문제의 몇백만 대군도 우리나라를 삼킬 수가 없었고, 당태종 장손무기 이적 같은 28장 대장수들도 하느님의 나라를 처들어와서는 성공할 수 없었다.



우리민족의 고유신앙은 본래 하느님 신앙이었다

 우리민족이 하느님 신앙을 잃어버린 것은 뿌리민족의 숙명으로서 그러했으며, 유불선의 격심한 탄압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앞에서 말했다.



 불교는 칠성신앙, 49제, 명부대왕, 삼성당, 나반존자, 당간지주 등이 저희들의 것인양 끌어안고 우리 고유신앙을 말없이 점령하고 있다. 2천년동안의 스님들이 우리 고유신앙과 불교사이의 옳고 그른 문제를 가려주지 않는다. 되려 한용운, 청담, 성철같은 스님들은 칠성과 삼성 등의 우리 고유신앙 비판 철폐운동을 벌이며 우리 창생들이 우리 하느님 신앙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훼방하고 오도하였다.



 유교는 우리 고유신앙을 담당하는 이들을 무속집단화 하여 가장 천민계층으로 떨어뜨렸다. 조선시대에 주자학 이외의 교설을 펴는 것은 이단으로서 가차 없이 단죄를 당하므로, 육왕학도 들어올 수 없었고, 천주교도 수많은 순교를 당해야 했다. 유교의 이런 서슬퍼런 단죄 앞에 누가 어떻게 우리민족 고유의 하느님 신앙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으리오.



 기독교는 자신들이 서양적 또는 근대화의 대변인인양 가장하여 처들어와서, 우리 고유신앙을 정령신앙(애니미즘) 토템이즘, 범신론 등의 저급신앙과 미신의 대명사인양 몰아세우며 그들의 영역확장에 광분하였다. 서양과학의 사조 앞에 숨을 쉴 수 없었던 동양은 서양적인 것에 경도, 기독교가 가장 근대적인 종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20세기가 저물어가자 세계 사상계는 어떠한 변동이 일어났는가? 양자역학 등 20세기 초의 새로운 과학적 성과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뉴에이지 운동이 지배하는 시대로 몰고갔고, 근대화와 산업화에 몰두해있던 우리나라도 차차 서양적인 것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며 서양적인 것의 위력과 권위에 의심을 품는 사상적 동향이 마구 일어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단계에서 기독교계의 우리 고유신앙에 대한 애니미즘, 범신론적, 미신이라는 공격에 기가 죽어 대꾸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범신론이야말로 기독교의 커다란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진정한 신관임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종교는 모두다 미신을 깔고 있으며, 기독교의 구약성서야말로 가장 미신적 요소가 많은 책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 고유신앙은 본래 하느님 신앙이었다. 우리 고유신앙은 유불선의 탄압을 하도 받아서 그 명맥을 유지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다.


 우리는 알지 않는가? 우리민족의 하느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절규했던 규원사화 북애노인의 슬픈 노래를. 인류 아침의 찬란한 역사를 전하기 위해 분투하다 일제의 마수에 걸려 두만강에 그 죽음을 버려야 했던 환단고기 계연수의 비극적 사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