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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세 흐름 읽기/수수께끼*미스테리

천축국(天竺國)의 발생

by 바로요거 2009. 7. 10.

② 천축국(天竺國)의 발생


 
  천축국(天竺國)을 살펴보기로 한다.
송(宋)나라 때 정초(鄭樵)가 지은 통지(通志)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天竺後漢通焉卽漢時捐毒國也 從月氏高附以西南至西海東至磐越國 皆天竺之地 天竺有別城數百城置長 有別國數十國置王 雖各小異而俱名天竺 都臨恒河 名迦毗梨河 本名新淘源出崑崙 分爲五派總爲恒河其水. 中略

  천축국(天竺國)은 후한(後漢) 때 있었던 나라다. 한(漢)나라 때는 연독국(捐毒國)이다. 월씨(月氏)의 고부국(高附國)에서 서남(西南)으로 가면 서해(西海)에 이르고, 동쪽으로 가면 반월국(磐越國)에 이른다. 모두가 천축국 땅이다.

  천축에는 독자적인 성(城)이 수백이 있는데, 각 성에는 장(長)을 두었다. 독자적인 나라도 수십이 되었는데, 왕(王)을 두었다. 비록 그 이름들이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천축(天竺)의 나라였다.

  도읍지에는 항하(恒河)흐르고 있는데, 강 이름은 가비리하(迦毗梨河)였다. 본래 그 이름은 신도(新淘)로서, 원 물줄기가 나오는 곳은 곤륜산(崑崙山)이다. 이곳에서 다섯 물줄기가 내려오다가 합쳐져 항하(恒河)의 물이 된다.

  통지(通志)의 본문을 보면 한(漢)나라 때는 연독국(捐毒國)이라고 했다. 연독국은 본래 신독국(身毒國)이다. 신독국의 원 뿌리는 동이국(東夷國)이 조상으로 되어있다.


  당(唐)나라 때 두우(杜佑)가 지은 통전(通典)에서 천축국(天竺國)을 살펴보기로 한다.

  天竺後漢通焉 卽前漢時身毒國 從月氏 高附國以西南至西海 東至盤起 皆身毒之地 身毒有別城數百 城置長 有別國數十 國置王 雖名小異 而俱名身毒 都臨恒河 一名迦毗梨河 靈鷲山 胡語曰耆  山  山有靑石 頭似鷲鳥 其時皆屬月氏 月氏殺其王而置將 令統其人…

  천축은 후한(後漢) 때 일컬어졌고, 즉 전한(前漢) 시에는 신독국(身毒國)이다. 월씨(月氏)의 고부국(高附國)에서 서남으로 가면 서해(西海)에 이르고, 동으로는 반기(盤起) 즉 반월국(盤越國)이 있는데, 모두 신독국(身毒國)의 땅이다.

  신독국(身毒國)은 독자적인 성(城)을 수백 개 가지고 있으며, 성(城)에는 장(長)을 두었다. 그리고 독자적인 나라 역시 수십 국(數十國)으로, 나라에는 왕을 두었다. 비록 그 이름들은 다르지만 모두 신독(身毒)에 속해 있었다. 도읍지에는 항하(恒河)에 흐르고 있는데, 일명 가비리하(迦毗梨河)라고도 한다.

  영취산(靈鷲山)이 있는데, 몽고말로는 기도굴산(耆  山)이라 한다. 산에는 푸른 돌이 있는데, 산 정상이 흡사 독수리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당시에는 모두 월씨(月氏)에 속해 있었다. 월씨는 천축의 왕을 죽이고, 그곳에 우두머리를 두고 그들을 다스렸다.


  이를 통해 보자면 전한(前漢 B.C.206∼AD.8년) 때는 연독국(捐毒國)이나 신독국(身毒國)으로 불리었고, 후한(後漢 A.D.25∼220년) 때 와서 천축국(天竺國)으로 불렸음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월씨국(月氏國) 동남(東南)에 있다고 했는데,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서 월씨국을 찾아보았다.

    月氏.
古國名. 先居甘肅西境. 漢時爲匈奴所破. 西走阿母河. 臣服大夏. 都河北. 曰大月氏. 留居故地者爲小月氏. 大月氏强盛時. 奄有印度恒河流域. 克什米爾. 阿富汗及蔥嶺東西地…


  월씨(月氏)는 옛 나라 이름이다. 처음에는 감숙성(甘肅省)의 서쪽 경계에 거주했다. 한(漢)나라 때 흉노(匈奴)에게 공격을 받아 서쪽으로 도망을 간 곳이 아모하(阿母河) 강 주변이었다. 월씨(月氏)는 그곳에서 대하(大夏)라는 나라의 신하(臣下)로 복종했다. 
  도읍지는 아모하(阿母河)의 북쪽에 있었는데, 이들을 대월씨라고 한다.

  그러나 옛 땅(감숙성의 서쪽 경계)에 계속 머물러 살고있는 이들은 소월씨라고 불렀다.

  대월씨가 강성했을 때에는 인도 항하 유역, 극십미리, 아부한과 총령 동서 지역까지 점령을 했다…


   大夏. 중국고금지명대사전 69쪽

  晉時十六國之一. 匈奴赫連勃勃背秦稱大夏天王. 據朔方通萬城. 有今陝西西部寧夏東南部及內蒙古鄂爾多斯之地…爲吐谷渾所滅

  진(晉)나라 때의 19국 중의 한 나라이다. 흉노의 혁연발이 있었는데, 그가 진(秦)나라로부터 등을 돌리고 나라를 세워 대하(大夏)의 천왕으로 칭하고, 북방 지역의 1만 성(城)을 차지했다. 

  지금의 섬서성 서부, 영하 동남부와 내몽고 곽이다사의 땅이다.…토곡혼에 의해 멸망되었다.


  천축국(天竺國)의 발생은 전한(前漢)시 신독국(身毒國)의 후예(後裔)로서 후한(後漢) 때 천축국(天竺國)이 생겼음을 나타내고 있다.

  앞에서 보는 것처럼 천축국(天竺國)은 인도(印度)가 아님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만 천축국이 후한(後漢) 때 와서 발생한 것으로 보아 불교는 고대로부터 곤륜산(崑崙山) 일대에서 발생하여 후한(後漢) 때의 천축국으로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천축국(天竺國)의 성(城)은 수백 군데로 되어있고 따라서 나라들도 수십 국이라고 적고있다. 이제까지 중천축국(中天竺國), 남천축국(南天竺國), 동천축국(東天竺國), 그리고 서천축국(西天竺國)과 북천축국(北天竺國) 이와같이 오천축국(五天竺國)만 있는 게 아니라 수백 곳의 성(城)과 수십 개의 나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지금의 인도(印度) 동북부에 있는 항하(恒河) 북쪽으로 펼쳐져 있는 천축국(天竺國)은 다섯 나라가 아닌 수십 국이 있었음을 본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기에 후한(後漢) 초기에 천축국은 중국 대륙의 서북부와 서부, 그리고 곤륜산(崑崙山) 남부와 서장성(西藏省), 청해성(靑海省), 사천성(四川省) 서부, 운남성(雲南省) 동남까지 광범위한 지역까지 확산되어 있었다.

  다섯 천축국 중 가장 불교가 성한 나라는 중천축국이다.


후한(後漢 A.D.25∼220년) 때부터 진(晉 A.D.265∼420년)나라 때까지 천축국은 번성했다. 그후 위진(魏晉)시대에 다섯 천축국은 일시 쇠퇴하였으나, 양(梁)나라 무제(武帝 A.D.502∼519년) 천감(天監) 초에 천축국에서는 비단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후위(後魏) 선무제(宣武帝 A.D.500∼503년) 때에는 남천축국에서 준마를 바쳤다고 되어 있다.

  천축국에서는 담비(貂) 표범(豹)등의 가죽이 많이 생산되었고 물소 코끼리 등이 많았다는 기록이다. 

  천축국은 고원지대이므로 금 동 철 아연 주석과 바위틈에서 채취된 꿀벌 생강 옥 산초 향 산호 과일 감귤 같은 과일 종류가 많이 생산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역의 대진(大秦)과 남쪽에 있던 안식(安息:월남지방)과 부남(扶南)국간에 무역을 활발히 했다는 기록이다.

  특히 천축국에서는 문자가 발달되어 천문(天文)과 역서(曆書:달력과 역술서적), 그리고 산술(算術) 서적 등이 매우 발달되었다. 또 전투용의 활, 창, 갑옷과 병법과 지리가 발달되어 고도의 문명국임을 알 수 있다.

  수(隋)나라 양제(煬帝 A.D.605∼617년) 때는 서역의 토번국(吐蕃國) 외 여러 서역국들과의 교역이 활발했지만 유독 천축국과는 교역이 불통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다섯 천축국은 당(唐)나라가 들어서면서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나라 초기부터 서역 평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현장(玄裝) 법사가 답사할 때만 하더라도 중천축국 속에 건타라국(建馱羅國)이 있었다. 건타라국 주위에는 가엽미라국(迦葉彌羅國)이 서북으로 있었고 돌궐(突厥)도 있었다. 돌궐 주위에는 바라문(婆羅門)이 있어 계빈( 賓) 왕과 돌궐 왕들은 강한 군사를 가지고 있었다.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위서서역전(魏書西域傳)》《고승전(高僧傳)》《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의하면 서북부 주위로는 파사(波斯), 반반(盤盤), 계빈( 賓), 언기(焉耆), 구자(龜慈), 소륵(疏勒), 고묵(姑墨), 우전(于 ), 구반(句盤) 등의 강대국이 있었다. 이들 나라 남동쪽에는《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제5권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허황옥(許黃玉)의 조국인 아유타국(阿踰 國)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니까 아유타국은 중천축국의 제후국인 셈으로 건타라국의 옛 도읍지에 인접해 있었던 나라이다. 이들 나라는 모두 중천축국의 속국이었으며 불교의 본산지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아유타국은 대승불교(大乘佛敎)를 숭앙하고 있었음을《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서 밝히고 있다.

 

천축국(天竺國)①  

 

 

  안사고(顔師古)의 말에 의하면 연독(捐毒)은 신독(身毒)이며, 신독(身毒)은 천축(天竺)이라 했다.
  고묵, 우전, 소륵, 구자, 언기 등의 남동쪽에,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제5권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허황옥(許黃玉)의 조국인 아유타국(阿踰 國)이 있었다. 


 
  신독국(身毒國)은 전한(前漢, B.C.206∼A.D.8년) 때까지 214년 간 중원대륙의 북방과 서역의 방대한 지역에 걸쳐 있었던 나라이다.
  한(漢)나라 초기에는 작은 제후국이었으나, 한나라 후기(A.D.25∼220년)에 들면서 광대한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청해성 감숙성 신강성 서장성 운남성까지 확장되었는데, 약 3만 리나 되는 강역이었다. 이름하여 천축국(天竺國)이다. 워낙 강역이 넓은 탓으로 동 서 남 북 중(東南北西中)의 다섯 천축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다섯 천축국 중에서 유독 불교가 강성했던 나라는 중천축국이다. 허황옥의 조국 아유타국이 속해있던 곳이다.
   중천축국은 신강성 남부와 감숙성 일부, 청해성 일부, 그리고 서장성 남북부 지역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점하고 있었다.

  석가의 활동무대도 주로 설산(雪山)이 있는 서장성 고원(高原)지대와 감숙성(甘肅省) 북부지대에서 남쪽으로 뻗어있는 남산(南山) 줄기에 우뚝 선 기연산(祁連山)이다. 이곳 기연산이 바로 석가가 득도(得道)한 설산(雪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