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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 神敎文化

공자, 석가, 예수를 내려 보내신 아버지 상제님

by 바로요거 2009. 6. 3.

공자, 석가, 예수를 내려 보내신 아버지 상제님

한 사람만 오면 
- 아버지 상제님의 천명을 실천하는 삶 -

-종정님 도훈 (道紀138년 2월 24일 상생구원의 날)-

 

 

Ⅰ. 말씀을 시작하면서

태을주와 시천주 주문

상제님의 도문에 들어와 신앙하는 이들이 얻는 구도의 열매는 태을주 와 그 음양 짝이 되는 시천주侍天主주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말씀은 이 두 주문으로 시작하고 끝마무리를 합니다. 오늘 처음 도문에 들어온 초입신도들도 이것을 잊지 말고, 앞으로 오는 가을 개벽기에 죽느냐 사느냐를 판가름 짓는 진리의 열매, 그 주제와 직접 연결돼 있는 태을주를 제대로 배워서 늘 태을주를 입에서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태을주는 어떤 주문인가? 왜 앞으로 오는 대개벽기에 태을주를 읽지 않고 는 인간으로서 생존할 수가 없는가? 한마디로 태을주 속에 우주의 진리의 혼백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열매가 태을주다!’이렇게 알면 더도 덜도 없어요. 그리고 역사적 으로 보면‘인류의 깨달음의 문화사는 태을주를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태을주가 인간의 삶 속에 주어지는 과정이었다.’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 함께 태을주를 세 번 각성해서 읽고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로 하겠습니다.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파하

태을주를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태을주를 받아 내려 처음으로 읽었으며, 누구의 손길에 의해 이 주문이 완성되었는가 하는 태을주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태을주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시천주 주문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시천주 주문이 어떻게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 내력과 기본 정신을 제대로 깨달아야 태을주를 더욱 절실하게 읽게 됩니다. 왜냐하면 앞서도 말했듯이 인류 문화사의 깨달음의 열매가 태을주이며 그 열매를 따는 도의 본원 주문이 바로 시천주 주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도의 삶에서 원 뿌리가 되는 주문은 태을주이며, 인간으로 오시는 천주님을 모심으로써 구도의 열매를 직접 따는 주문은 시천주 주문입니다. 따라서 태을주를 제대로 읽으려면 시천주주의 깊은 뜻을 체험해야 하고, 역으로 천주님을 제대로 모시려면 태을주를 잘 읽어서 천지의 조화성신을 통해 천지일심을 크게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태을주는 가을 개벽기에 온 인류를 구원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나의 영적 건강과 생존의 문제와 중요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제님 말씀대로 언제나 태을주를 입에 물고 다녀야 합니다. 밥 먹을 때나 걸어 다닐 때도, 잠을 잘 때도 늘 태을주와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을 강조하면서 오늘 말씀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Ⅱ. 상제님이 밝혀주신 선천 성자들의 구원론의 실체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먼저 오늘 말씀의 주제 성구인 2편 40장을 보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하여 따르리라.
‘예수가 재림한다.’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道典2:40:1∼6)


이 말씀은 인류 문화의 국지적인 일면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선후천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천지 이법을 바탕으로 인간 역사의 핵심 문제를 지적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즉,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이 선천 성자들 누구도 언급하지 못한 진리의 기본 주제를 직접, 너무도 쉽고 간결한 언어로 정리해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특히 한평생 기도 생활을 해 온, 구도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너무도 큰 의미를 심어줍니다. 동서양 인류의 종교 역사의 지평을 확대해서 보면, 우리 인류에게 구원에 대하여 이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전해 주는 말씀이 흔치 않습니다.

그러면 1절부터 말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천 년 기독교 역사의 아버지 하나님

예수가 말한 아버지 하나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린다.”

상제님은 지금 1절과 2절에서 동서의 2대 종교를 정리하고 계십니다. 서양 기독교와 동양 불교의 구원론의 최종 결론을 그들을 내려 보내신 하나님이 지상에 인간으로 강세하셔서 직접 정리를 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즉, ‘너희 들이 기독교를 알려면 예수 재림설의 실체를 알고, 불교의 구원론을 알려면 미륵불 출세의 실상에 대해서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먼저 1절을 볼까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니” 여기서 예수 재림 문제가 나옵니다. 예수 재림이란 기독교 구원론의 총결론으로서‘심판의 그날, 우리 주님께서 천사장의 나팔 소리를 들으시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는 주님이 오실 때 그 영광 속으로 하늘에 들어 올려져서 천국으로 가고, 믿
지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이 휴거설이 바로 기독교 2천년의 종말 신앙 역사에서 구원론의 총 결론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본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He has sent me). (요한복음 7:28~29)

예수는 스스로를‘하느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人子’이라 하였을 뿐,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말한 구절이 성경에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알고 보면 예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 우주는 그 중심에 온 하늘땅을 다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 그 아버지를 증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는 지상에 건설되는 아버지 하나님의 나
라, 성부 하나님이 지배하는 지상천국시대를 선포하러 온 것입니다.

또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신자들에게 세례를 줄 때, 예수가 다가가서 “나에게도 세례를 주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예수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올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옵니다. 그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소리가 울려옵니
다.(마태복음 3:13~17)

1906년에 출판된 <국한문 신약전서>를 보면 예수에 대하여‘上帝의 子예수그리스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라는 겁니다. 이것을 누가 정확히 봤냐 하면 예수의 수석제자인 베드로입니다.

 

어느 날 예수가 제자들 에게“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묻자 베드로가“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 니다.”(마태복음 16:15~16) 하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베드로가 종통 계승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석가모니가 연꽃 한 송이를 말없이 들어 보이자 빙그레 웃음으로 대답한 가섭에게 종통을 전수한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는 분명히‘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결론은 자신을 내려 보내신 아버지가 오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건설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왕국[The Kingdom of God] 지상천국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입니다.

이에 대하여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백성들에게“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마태복음3:2)註) 고 선언을 합니다. 기독교의 주제는 이 한 말씀에 압축되어 있고, 여기서 출발을 합니다.

왜 진실이 왜곡된 것일까?

기독교는 2천 년 전부터‘하나님의 나라가 손에 닿을 듯이 가까웠다[the kingdom of God is at hand]’고 했습니다. 2천 년이라는 세월은 인간의 세대로 보면 약 70세대의 긴 세월입니다. 그러나 도의 세계, 대우주를 다스리시는 조화주 하나님의 세계에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죠. 천국이 가까웠나니 회개하라! 하나님의 왕국, 천국이 임박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이룬다는 것인가요? 예수를 내려 보낸 하나님 아버지가 직접 계시를 해 주신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기록된 문서가 바로 소위 묵시록이라 하는「요한계시록」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어떤 내용이 있습니까?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백 살이 넘게 장수하며 기도를 가장 사무치게 한 이가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로마에 전도하다 혹독한 고문을 받고 밧모섬에 귀양을 갔습니다. 이곳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간절한 기도를 합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계시는 천상 궁전에 불려 올라가 아버지의 백보좌 앞에서 직접 천명을 받으며 앞으로 오는 가을 대개벽에 대해 한 소식을 듣
게 됩니다.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And I saw a great white throne, and him that sat on it, from whose face the earth and the heaven fled away; and there was found no place for them. (요한계시록 20:11)

또 내가 새 하늘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And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were passed away; and there was no more sea.(계시록 21:1)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하시니라.
And he that sat upon the throne said, “Behold, I make all things
new.”(계시록 21:5)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이것이 2천 년 전 요한을 통해 선언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개벽 메시지입니다. 요한은 앞으로 하늘과 땅의 질서가 바뀌 는 것과 새 질서로 옮겨 앉은 신천지 위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건설되는 것을 본 것입니다. 가을개벽의 실제상황이 전개될 때, 그 세계를 열어 주시 는‘크고 흰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상제님입니다.
예수가 말한‘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바로 기독교 탄생 이전 수천 년 전부터 동방 신교문화에서 신앙해 온 천상의 호천금궐에 계신 상제님입니다.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님임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 궁궐에서 상제님을 친견한 요한조차도, 개벽 상황을 신교로 잘 받아 쓰다가 계시록의 마지막에 가서는“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
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계시록 22:21) 하고 예수의 재림을 노래 부 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계시만 받았을 뿐, 우주의 통치자로서 하나님, 최고신이신 상제님에 대한 참모습을 구체적으로 선포하지 못한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성서 주석본이 수백 가지임에도 이‘새 하늘 새 땅’ 이라는 말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없어요. 기독교에는 선후천 개벽관의 우주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봄여름은 선천 세상이고 가을겨울은 후천이다. 하나님은 이 우주 1년, 즉 12만9천6백년을 한 주기로 대자연을 무대로 삼아 인간 농사를 지으신다. 우주는 약 13만 년을 한 주기로 순환 무궁하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이 천지 창조의 원 설계도, ‘우주 1년 선후천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이 가을철을 맞아 지상에 직접 오셔서 건설하시는 후천 조화선경 낙원의 인류 구원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재림만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떤 근거로 예수 재림설을 2천 년 동안 확신하고 있으며, 가톨릭과 개신교를 떠나서 모든 신자들이 하나같이 예수 재림을 그토록 믿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아버지가 오셔도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인간으로 오시는 아버지를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아버지 하나님이 138년 전에 인간으로 오셨어!”하면, “아니,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으로 오시냐? 그럼 인간이지 하나님이냐?”라고 반문합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아버지 하나님은 인간으로 오실 수 없는 분’이라고 완전히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는 성령적인 존재이며 또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때의 하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그 하나님은 초월적 하나님이죠. 이 우주를 창조하고 이를 초월해 있는 절대자입니다. 그런 절대자 하나님은 영원히 인간으로 오실 수 없고 오직 하나뿐인 외아들을 보내 인간 구원사업을 이루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백보좌 하나님 아버지의 강세로 성취되는 신천지 개벽과 아들의 재림 사건이 모순되는 믿음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대표적인 예화 하나를 들어보겠어요.

지금부터 한 20년 전에 광주도장에서 강연회를 할 때 겪은 이야기입니다. 상제님 진리를 전해주고 나니까 뒤에 있던 어떤 노신사 둘이서 함께 일어 나 힘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아니, 아들이 오는 게 아니고 아버지가 직접 오신다고 했으면 그렇게 똑 부러지게 얘기를 했어야지. 왜 그렇게 구체적인 말씀을 하나도 안 해서 헷갈리게 만들었나요! 우리들이 그동안 모든 걸 다 바쳐서 주님을 위해 한 생애를 보내다가, 이제는 늙어서 여생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상제님 이 진정 아버지로 오신 참 하나님이시라면 과거에 아버지가 오셔서 새 세상을 개벽해주신다고 이런 한마디 정도는 했어야 되지 않습니까. 왜 헷갈리게 하셨습니까?”그러면서 나한테 막 화풀이를 하는 겁니다.

이런 얘기를 자기들 신앙하는 쪽에 가서 해봐야 받아들일 리도 없고 사탄 들린 것처럼 취급을 하니까 상제님 도문에 와서 답답한 심정을 그렇게 토로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어떤 신인가?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 생기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신앙하는 아버지는 대우주의 주권자, 통치자 하나님이신 상제님이 아니라 여호와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호와는 과연 어떤 신인가 하는 겁니다. 구약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출애굽기 3:6)

이 내용은 상식으로도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이 3박자를 말이죠. 또 에스겔에는“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에스겔 34:30)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두 구절만 봐도 여호와는 이스라엘 족속을 약속의 백성으로 삼아 통치를 하는 유대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본래 아라비아 반도에 뿌리를 둔 유대족의 부족신이자 조상신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원래 전쟁 전문가인 군신軍神입니다. 중동 지방의 족속 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전쟁 신입니다. 시편을 보면“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편 24:8) 라고 찬양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또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하셨느니라.’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라는 구절이 있고, 사무엘상에는‘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사무엘상 6:19)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을 볼진대 여호와는 때에 따라 생명을 무수히 죽이는 전쟁신입니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자기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길을 막는 자는 뱃속에 있는 애까지 다 도륙하라, 멸망을 시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사무엘상 15:3)고.

얼마 전 가톨릭의 차동엽 신부는 <맥으로 읽는 성경>이라는 프로그램에서“모르는 사람들이 구약을 읽어보면‘아니, 이게 무슨 하나님이냐. 제 백성을 위해서 남의 백성을 씨도 안 남기고 뱃속의 애까지 다 쳐 죽이라 하는분이 무슨 하나님이냐.’라고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또 신화의 아버지 조셉 캠벨은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 프로에 서“십계명은‘살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장章에 가면‘가나안 으로 가서 거기에 있는 것은 모두 죽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범주가 구속된 사회의 도그마입니다. 참여와 사랑의 신화는 오로지 무리의 안을 맴돕니다. 밖을 향하면 태도는 표변합니다. <이방인>이라는 말이 드러내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방인과 한솥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이지요.” 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한 책이『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습니다. 오직 내 백성만 위하고 타민족은 적대시하는 살육적인 신관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것입니다. 중동 전역에서 거의 하루걸러 자살 폭탄이 터지고, 서로를 죽이는 참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신이 유일초월신으로 바뀐 역사 과정

이렇듯 여호와는 때로는 인격신으로, 때로는 성령의 불길로 나타나 명령 을 내리고 계시를 해주는 유대민족의 의식 속에 절대자 창조주 역할을 하는 조상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이 기독교 신도들의 마음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창조주 아버지 신앙으로 바뀌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증산 상제님이 지적해주시는 예수 재림의 심각한 문제점이 여기에 있 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옛 약속「구약舊約」과 새로운 약속이라는「신약新約」, 두 가지 경전이 있습니다. 「구약」과「신약」을 비교해보면 신관, 인간관, 아버지관의 체계가 다릅니다. 「구약」의 창세기 첫 문장이‘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구약」첫머리에서는 분명히 본래의 조물주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The Maker]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쭉 나가다가 창세기 2장 4절에 이르면 갑자기‘여호와’가 나옵니다. 그러다가「신약」으로 넘어 가면‘여호와’라는 호칭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고‘아버지(The Father)’로 만 나옵니다. 여호와신이 구약에는 나오지만 신약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아버지가 유대족의 여호와신이라면, 왜 신약에는 단 한 번도 여호와라는 호칭이 안 나오고 그냥 아버지일 뿐일까요? 이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구약의 민족신 신앙에서 원래 우주 만유를 다스리시는 참 하나님 아버지 시대를 여는 신약시대의 인류 보편 신앙문화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관 변화의 신·구약(새로운 약속과 옛 약속) 신앙 역사를 추적 하다보면 지적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고대 민족사의 초기 시대인 모세 오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지금부터 약 4천 년 전(BCE 2000년경) 아브라함의 족속은 수메르제국 내에 있던 갈데아 우르(Ur:도시국가)지역에 살다가註), 강대국들의 잦은 침입과 기근 등으로 우르가 쇠잔해지자 유프라테스 강을 강을 건너 가나안(현재, 팔레스타인 일대)땅으로 이동합니다. 이때부터 아브라함 족속을 헤브루(Hebrew : ‘강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라고 부르게 됩니다.

 


 약 3,500(BCE 1,500)년경 전후에 기근이 들자 헤브루족의 일부는 나일강 유역으로 이동을 하여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갑니다. 강제노역을 하며 고통과 절망의 삶을 살던 히브리족은 BCE 1,300년 경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이 때 모세는 민족정신을 하나로 강력하게 묶기 위해, 그들 민족의 하나님인 만군萬軍의 신 여호와와의 계약을 통해‘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10계의 첫 번째 계율)는 유일신 신앙을 선포하게 됩니다. 즉
여호와신이 모세를 통해 시나이 산에서 유대족의 통치자 하나님으로서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이 지속되도록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십계명)을 일러 준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종교역사상 유례가 없는 계약종교인 오늘날의 이스라엘 유대교 역사의 출발점입니다.


그 후 헤브루족은 모세를 이은 여호수와의 인도로 팔레스티나 지역에 정착해 살았는데, BCE 1,000경에는 다윗왕이 흩어지고 분열된 족속을 통일하여 히브리왕국을 건설함으로써 약400여 년 간 번영을 누립니다. 그러나 다윗왕에서 솔로몬왕으로 이어지던 통일왕국은 다시 이스라엘왕국과 유대왕국으로 분열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209년간(BCE 931~BCE 722년) 존속하다가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망하고, 유대왕국은 345년간(BCE 931~BCE 586년) 존속하다가 신흥강국인 바빌로니아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유대왕국을 멸망시킨 바빌로니아왕은 솔로몬궁전과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유대의 지도층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바빌론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유대족은 자괴감에 빠지고 민족정신이 분열되게 됩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유대족의 선지자들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여자가 원죄를 지어서 이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는 원죄론과 유대족 선민의식과 그들 외의 타종교를 우상숭배로 매도하는 극도의 배타적인 사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당시는 유대백성들의 고통과 절망과 분노를 해소시킬 무언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2,500여년(BCE 538년)에 이르러 메소포타미아의 새로운 강자 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바빌로니아는 멸망당합니다. 유대족이 바빌로니아로부터 풀려날 때까지의 약 50년간(BCE 586~538)을 역사에서는 유대족의 바빌론 유수기라고 합니다.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인 예루살 렘으로 귀환시킵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신전을 재건축하도록 재정지원까지 해주고 종교적 자유인으로 만들어줍니다. 바로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을 메시아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메시아로 인식한 페르시아 왕이 신봉하던 종교가 바로 ‘조로아스터교’였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조로아스터교의 메시아사상을 유대교 교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페르시아 왕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이 모든 것은 거룩하신 주님의 은총이시다. 유대민족을 선택하신 여호와만이 전지전능하신 유일신이시다!”하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유대교를 정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첫째, 신은 여호와 한 분뿐이다. 둘째, 유대민족은 신의 선택을 받았다. 셋째, 인류의 종말이 오고 신이 메시아를 보내어 인간을 구원하신다 하는 유대교의 메시아사상, 유일신 신관이 정립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동지역 유대족의 여호와가 인격신에서 초월신으로, 대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신격이 변색되어 버립니다. 신관 자체가 지역신에서 우주의 절대자 신격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상제님 말씀 그대로 여호와신은 본래 중동의 지방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러한 신앙관을 그대로 계승하여 기독교인들은 여호와신을 우주의 조물주로 신앙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여호와신이 원 조물주이고, 창조주이고, 우주의 주관자로서 인간으로 올 수가 없는 초월신입니다. 그 여호와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독생자인 예수를 내보냈으며, 예수는 육화한 하나님으로서 심판의 때가 되면 믿는 사람을 건져 올리기 위해 다시 이 세상에 재림한다는 것이죠.

기독교 삼위일체 신관의 진실

기독교의 신관, 인간론, 구원론의 기본 틀을 구성하는 진리의 핵심, 즉 성삼위일체 신관을 보면 아버지가 계시고 그가 보낸 아들, 그리고 제3위位의 하나님으로 성령이 있습니다. 그들은‘하나님은 하나이신 세 분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구별되는 세 인격
이며, 그 세 인격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시다’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그 본질은 하나이며 현실 사역에서는 세 위격의 하나님으로 나누어져서 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창조를 하시고, 아버지가 보낸 아들은 그 능력과 신성이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동일한 하나님으로서 구원의 사역을 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 구원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기도에 대한 감응과 성취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손길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도 있지만 아버지로부터 온 영, 아들로부터도 오는 영, 즉 성령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서기 313년, 동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시대만 해도 이 삼위일체론은 확고하게 정립된 정통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부聖父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법신法身적인 우주의 주권자로서 천상 궁전의 옥좌에 앉아 실제로 인간과 신들에게 명을 내리며 통치하시는 인격신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오직 만유 생명체의 ‘존재의 근원’으로 계시는 초월자, 절대자, 형이상학의 신과 창조주 신으로 받들고 있지요.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런 아버지 하나님관은 인간 세상에는 영원히 올 수 없는 분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아버지관입니다.

 


또 한 가지 기독교인들이‘인간 세상에 오시는 참 하나님 아버지’를 영원히 못 찾게 해버린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영지주의靈知主義의식으로 쓰여진 또 다른 한 권의 복음서, 「요한복음」1장에 나오는 이 구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and the Word was with God,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and the Word was God. (요한복음 1:1~3)


기독교인들의 논리를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곧 아버지의 아들 예수(육화한 말씀 : incarnated logos)로 성육신되었으니, 그분은 살아 계신 말씀인 하나님의 현현이요 계시이며 인지되는 모든 현상 세계의 근원이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분명한 임재하심이다.’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가톨릭의 교황이 됐든, 신부가 됐든, 개신교 목사가 됐든, 장로가 됐든,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도 누구를 불러다놓고 물어봐도 한결같은 대답을 합니다.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시고 만유의 근원으로 본래부터 완전자로 계시고, 우리 주 예수님만이 바로 이 아버지가 보내신 유일한 독생자요 구원의 하나님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꼭 다시 오신다.” 고 말입니다.

이러한 여호와 신관이 복잡하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상제님은“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 석가 공자 예수 모두 내가 내려 보낸 성자들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는“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다.”는 말씀을 망각하고 지난 2천년 동안, 예수를 내려 보낸 대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이신 참 하나님 아버지의 강세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예수의 재림을 기다려왔다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유대족은, 예수가 탄압을 받고 죽었다가 하늘로 올라갈 때 분명히“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으로 간다.”고 했는데도 아버지 하나님의 복음을 왜곡하여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아버지 상제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2천년 동안 깊은 고민을 하신 겁니다. 기독교인들이 아버지를 찾으면서 처절하게 기도를 하는데 그 아버지를 전부 유대족의 신 여호와로 알고 있으니 그 기도가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 상제님께 전혀 상달이 안 된단 말입니다. 그것을 쐐기 박기 위해서 2천 년 전에 상제님은 천 상 백보좌에서 사도 요한을 끌어올려 새 하늘 새 땅 신질서를 창조하시는 가을 천지개벽의 실제 상황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오셔서 충청도 금산의 예배당에 가시어 기독교의 잘못된 아버지 신관을 직접 심판을 하셨습니다.

임인(壬寅: 도기 32, 1902)년 가을에 하루는 상제님이 호연이를 데리고 금산의 한 예배당에 가십니다. 그 때 목사가“하느님이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맘 변치 말고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자, 우리 서로 서로 손잡고 함께 믿읍시다.”하고 열 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상제님이 그 설교를 들으시고는 단상으로 나가시 며“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되느니라! 천지만사의 이치란 천지에 모여 사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거늘 네 어찌 중생을 속이느냐! 중생들을 그릇 인도 하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잡지 못하느니라!”하시며 환부역조換父易祖의 큰 죄를 호되게 꾸짖으십니다. 그리고“벼락신장은 어디 있느냐. 속히 벼락 을 치라!”하고 건물이 흔들리도록 큰 음성으로 천상의 벼락 신장한테 벼락 을 때리게 하십니다.(道典5:17~18)

천지의 원 주인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이신 조화주 상제님이 친히 기독교 교당에, 그릇된 아버지 신관의 구원 신앙에 개벽을 때리신 것입니다.

석가불의 미륵불 출세 예고와 불교의 미륵불 왜곡

미륵신앙의 기틀을 다진 진표 율사

증산 상제님은 2절에서“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린다”고 하십니다. 미륵부처님의 출세, 이것이 바로 불교 3천년 신앙의 총 결론입니다. 동방의 미륵불 신앙의 원조는 바로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의 도승 진표입니다. 진표 스님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륵부처님에게서 직접 도통을 받고, 이 땅에 미륵님의 도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신앙의 기틀을 다지신 분 입니다.

진표는 일찍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륵님의 도를 구하다가, 27세 때 서해안에 있는 변산 마천대 백척 절벽인‘부사의방장’에 들어가 일심으로 계법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수기授記를 얻지 못하자, 죽을 결심으로 바위 아래로 몸을 날렸어요. 그때 청의동자가 살며시 나타나 몸을 받아 살려주었습니다. 이에 큰 용기를 얻은 진표 대성사는 21일을 기약하여 서원을 세우고, 돌로 자기 몸을 짓찧으며 힘줄이 끊어지는 고행[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참회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드디어 21일째 되던 날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부처님이 천중을 거느리고 내려오셔서, 진표 대성사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시며“장하도다 대장부여! 네가 이토록 몸을 아끼지 않고 도를 구하다니, 참으로 장하도다!”하고 무수히 칭찬을 하셨습니다. 또“내가 한 손가락을 튕겨서 수미산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네 마음은 불퇴전不退轉이로구나.”곧‘네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움직일 수 없구나.’하시고 징표를 주셨습니다.

진표 대성사가 도통을 하고 우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니, 앞으로 천수백 년 후에 대우주가 개벽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륵부처님께“이 동방 땅에 천주님이신 미륵님이 인간으로 강세하시기를 소자 진표가 간구하옵나이다!”하고 평생을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미륵천주님에게서‘나의 모습 그대로 불상을 세우라’는 천명天命을 받고 미륵불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금산면金山面금산리金山里에 있는 금산사金山寺의 미륵불상입니다.

진표 대성사는 금산사의 미륵전을 세운 후 금강산 발연사와 속리산에 지금의 법주사인 길상사를 세웁니다.

‘미륵불’왜곡의 실감나는 현장

그러면 과연 불교인들은 미륵불 출세에 대해 어떻게 인식을 하고 있을까요?

속리산 법주사를 가보면 불교 3천년 역사에서 미륵님을 왜곡한 가장 생생한 현장을 만나게 됩니다. 법주사 마당에 청동 미륵상이 있는데, 그 미륵상의 기단 아래에 조그마한 석실(용화전)이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벽에 부조를 새겨놨어요. 거기에는 석가모니가 주불이 되어 위엄있게 앉아있고 그 앞에 한 열 일고 여덟 먹은 조그만 동자가 공손하게 예를 갖추고 서있습니다. 그 동자가 바로 미륵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얘기냐 하면, ‘석가모니 당대에 미륵이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가 요절을 하여 도솔천의 보살로 있으면서 서원을 하고 기도를 많이 해서 말법시대에 다시 인간으로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도를 통해 미륵불이 된다. 그 때가 언제냐? 석가모니가 입멸하고 나서 56억 7천만 년 후 이다’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미륵은 본래 석가모니불의 당대 제자였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기의 불교 최고最古경전인『숫타니파타』마지막 장인「피안도품彼岸道品」에도 바바리의 16제자에 관한 이야기註)가 나오지만 수행승 미륵이 미래불이 된다는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팔리어 연구의 권위자인 리스 데이비스Rys Davis는 미래부처님이신 천상 도솔천의 미륵불은 이 수행승 미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미륵사상연구의 대가인 일본의 와타나베 쇼코渡邊照宏도『미륵하생경』, 『미륵대성불경』등 미륵불과 관련된 주요 경전에, 수행승 미륵이 미래불이 된다는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미륵경에 기록된 불교의 총결론

그러면 미륵불의 출세는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일까요?

『법화경法華經』을 보면, ‘내 법이 천 년 정법正法, 또 천 년 상법像法,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천 년 말법末法을 거쳐서 새로운 변화가 온다. 그 때는 다른 분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오는 변혁에 대한 불교의 개벽 소식은『미륵경彌勒經(상생경 · 하생경)』에 그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석가부처는“앞으로 미륵님이 이 세상에 오시며 그 때는 1년 사시가 조화되고 모든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된다.”고 꿈 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자기 아들 라훌라와 수석제자 가섭을 포함한 10대 제자들을 불러 도솔천을 손으로 가리키며 아주 중대한 선언을 합니다. “3천 년 말법이 되면 저 도솔천에 계신 천주, 미륵님이 인간으로 오시는데, 너희들은 그 때 열반에 들라.”고 말입니다. 이것은‘나의 법이 궁극이 아니다. 내가 죽고 난 후 3천 년 경, 말법시대에 천주님이 도솔천의 보좌를 떠나 속세의 인간으로 오시어 지상에 용화낙원 세계를 건설한다. 그 도솔천의 주인, 미륵님이 진정한 부처이니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서 궁극의 도를 통하라’는 것입니다. 석가 부처는 스스로 자신
의 가르침은 인류를 건져 낼 수 있는 완성된 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한계이며 그의 가르침의 최종 결론입니다. 석가모니가 자기에게 매달려 있는 구도자들에게 대기발령을 내린 겁니다. 요컨대 불교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는‘천지 질서가 바뀌는 가을개벽이 오며, 그때 새로운 깨달음을 열어 주시는 새 부처님, 희망의 부처님, 구원의 부처님이 오신다! 그분은 도솔천의 천주(하느님)이신 미륵불이다’라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내가 미륵이니라.”(道典2:66:5)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인류사회를 구원하는 주인은 석가모니가 아닙니다. 석가모니는 과거의 부처요 미래의 부처는 미륵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절간에 가보면 석가모니불이 주불[主佛: Lord buddha]로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미륵 의 실상이 이토록 심각하게 철저히 왜곡되어 고승대덕은 물론 모든 수행자와 일반 신도들도 미륵불의 실상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천의 동서 2대 종교의 가르침의 한계

동서양의 2대 종교라 할 수 있는 불교와 기독교 가르침의 총 결론이 무엇 입니까.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석가모니의 도법으로 인류의 이상낙원이 건설되는 것이 아니고, 또 예수 성자의 가르침, 그의 속죄론, 부활론 등으로 온 인류가 총체적, 본질적으로 구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사적인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북방 불교로 보면 올해가 3,035년으로 지난 1974년, 갑인甲寅년이 불기 3,0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 기독교에서는 예수 재림 시기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구약의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 2천 년, 아브라함에서 예수 초림까지 2천 년, 예수 초림으로부터 재림까지 2천 년 해서 전체를 6천년으로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는 동서의 기독교와 불교의 구원론의 결론인, 미륵불의 강세와 예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전개되
는 가을 대개벽의 시간대로 이미 들어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직도 사람들이 길을 못 찾고 있습니다. 아니,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아닌 참 하나님 아버지가 오신다는 것 자체를 전혀 믿지를 않고 있고, 불교는 미륵이 56억 7천만년 후에 온다는 설에 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 우리나라의 불교인들은“강증산 상제님이 미륵님이다. 도솔천 하나님이다! 대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다!”이런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질 못합니다.

결론을 정리하면, 예수와 석가, 이 동서양 2대 성자의 깨달음의 속 내용은 한마디로 천지의 질서가 바뀌고 그들을 내려 보내신 다른 분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상의 지존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배경을 통해서 인간으로 오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어떠한 권능으로 구원사업을 펼치시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가르침을 쉽게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선천 종교의 깨달음의 한계요, 구원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입니다.

최수운 대신사의 천주님 강세 선포와 동학 신도들의 상제관 왜곡

동학 속에 깃든 인류 구원 소식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 다음 3절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동양과 서양의 불교와 기독교의 서원과 기도에 감응하셔서 마침내 인간으로 오시기 위해 준비를 하시는 그 출발점, 즉 동방 한민족의 근대 역사의 서막을 알린 동학에 대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조선을 비롯한 동양 각국이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폭압에 침몰당해 가던 19세기 말, 하늘에서 동방의 이 땅에 이름 없는 한 구도자를 불러 세워 신교의 도맥을 계승하게 하고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새 세상이 열릴 것을 선언케 하셨지요. 그 구도자가 누굽니까? 바로 동학東學의 교조 수운水雲최제우 崔濟愚대신사입니다.

최수운 대신사는 경신년(1860년 4월 5일)에 인류의 새 세상을 선포하라는 상제님의 천명과 신교를 받고 도통을 합니다. 그것이 우주사의 새 장을 열어 놓은 천주님과의 천상문답 사건이죠. 당시 상제님은 수운에게“주문 呪文을 받으라.”하시고 본 주문 열석 자와 강령 주문 여덟 자를 내려 주셨는데, 그 주문이 바로 서두에 읽었던 시천주 주문입니다.

시천주는‘인간으로 오시는 천주님을 모셔라. 인간으로 오신 천주님을 모셔야 한다. 지금은 인간으로 오시는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 천주님을 모시는 때다. 내가 내려 보낸 공자, 석가, 예수가 가르치던 선천의 성자 시대, 아들 시대는 다 끝났다. 그 기운을 다 거두어서 이제는 내가 인간 역사에 직접 개입한다. 이제부터는 내가 친정을 한다, 그러니 너희 창생들은 나를 잘 모셔라.’이런 뜻입니다.

그렇건만‘여전히 동학 신도들은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린다, 최수운 대신사가 다시 올 것을 기다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기적을 체험한 동학 신도들의 교조 갱생의 믿음

최수운 대신사가 천명과 신교를 받들어‘인간으로 강세하시는 천주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시대를 선언하며 동학을 창도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경상도 일대에 동학이 널리 퍼집니다. 그 급속한 전파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는 동학을 사도난정邪道亂正으로 규정하여 최수운을 체포합니다. 그리고 갑자(甲子: 道紀前7, 1864)년 2월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최수운 대신사는 처형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망나니가 최수운 대신사의 목을 칼로 아무리 내리쳐도 목이 떨어지질 않는 겁니다. 결국 최수운 대신사가 청수를 모시고 상제님께 기도를 하고 나서야 목이 떨어져 죽습니다.

상제님은 인간으로 오셔서“내가 동방에 와서 30년 동안 금산사 미륵전에 머무르면서 최제우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주었더니 조선 조정이 제우를 죽였으므로 내가 팔괘 갑자八卦甲子에 응하여 신미(辛未: 道紀1, 1871)년에 이 세상에 내려왔노라.”(道典2:94:6~7) 고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나 동학 신도들은 자기들의 대선생大先生이 다시 강세한다고 믿습니다. 임종 전의 이적 때문에, 천주님의 선仙의 조화를 썼던 자기들의 교조가 다시 인간으로 오신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학에는 기독교 이상으로 부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증산 상제님은 인류구원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 동서양의 불교와 기독교, 이들 선천 종교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동방 한국 땅에서 조선 왕조 말기에 창도된 동학, 이 3대 종교를 예로 들어주셨습니다. 이 가운데 서학(기독교)과 동학은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어요. 자기들이
모신 교조가 다시 재림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상제님은 4절에서“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이라고 하십니다. 각 종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역사적으로 다른 실제 인물들이 다녀갔는데 지금 상제님은 누가 와도 한 사람은 온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한 사람만 강세하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이 말씀의 이면에는 숱한 문제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속에 전개되어온 실제의 구원사의 전 과정들이 다 생략되고 최후의 결론 과제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개벽의 그 날을 앞두고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바로 이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분이 꼭 오신다는 것이고, 그 한 사람이 오면 모든 종교의 신앙인들을 비롯한 온 인류가‘내가 섬겨온 바로 그분의 이상이 성취되었다’고 인정하고 따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상제님의 이 말씀을 불교인들에게 얘기하면“미륵님이 재림 예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하고 못 받아들일 것 아닙니까? 자기가 믿는 종교의 역사와 교리와 구원론의 핵심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누구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누가 오든지 한사람만 오면 온 인류가‘아~ 마침내 나는 구원을 받았구나!’하고 저마다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고 하신 것일까요?

지금 이 말씀 속에는, 앞으로 오는 가을 우주개벽의 실제상황에서 살아남는 은혜가 너무도 지극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큰 구원 의 은총을 받기 때문에 오직 개벽 후 최후의 심판이 끝나고 나서야, 어떤 분이 오든지 간에 그분이 바로 자기가 기다리던 아버지 하나님이며, 도솔천 천주이신 미륵님이며, 옥황상제님이라고, 누구도 쉽게‘그 한 분’을 받아들인다는 깊은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 재림은 아버지의 강세를 두고 한 말이다

자, 그 다음 5절을 볼까요.
상제님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재림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신앙에 대해 너무도 크게 상심하시어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를 해주십니다.

“‘예수가 재림한다.’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동서고금의 모든 성자들, 나름대로 깨진 자들은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을 얘기했어요. 그것이 기독교 구원관의 결론이요 불교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잘못된 아버지관의 진리 전수로 빚어진 재림 신앙이 있었다는 겁니다. 상제님은 지금“‘예수가 재림한다’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는 한 말씀으로 선천 종교의 잘못된 구원관을 지적해주고 계십니다.

즉, ‘예수가 재림한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의 체계를 세운 바울과 12사도들의 믿음 속에서 나온 그릇된 가르침이다. 예수가 오는 것이 아니요, 예수를 내려 보낸‘나’곧 아버지가 올 것을 말한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서교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지상의 인간 역사 위에 천상의 천국을 직접 건설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동양 문화의 두 중심축으로 알려진 인도와 중국에 와서 한 생애를 바친 분이 바로 이마두(마테오 리치) 대성사 님(1552~1610)입니다. 『도전』2편 30장을 보면 이마두 대성사님에 대한 말씀과 함께 그 결론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에 그쳐 중 진표가 석가모니의 당래불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道紀前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도기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에서 말하는‘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道典2:30:12~17)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다! 곧‘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인데, 상제는 곧 나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증산 상제님이 바로 동서 2대 종교에서 신앙해 본래의 조화주 하나님이심을 역사적인 안목을 갖고 깨칠 수 있게 됩니다.

자, 지금까지 동서양의 2대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의 구원론의 총 결론과 이들의 구원론의 과제를 바로잡은 동학의 결론, 즉 상제님의 강세 소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유교와 도교에서는 아버지 상제님의 강세에 대해 어떻게 예고하고 있으며 그 왜곡의 실상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공자의 깨달음과 고조선에 대한 역사 은폐

공자의 깨달음

먼저 유교를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공자의 상제님 강세에 대한 깨달음과, 상제님과 천자문화의 종주국인 고조선에 대한 역사 왜곡과 은폐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공자는 누구보다도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오신다는 것을 주역 공부를 통해서 천리를 꿰뚫어 철저히 알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주역을 가장 많이 읽은 인물로서 주역 해설서를 열 편이나 지었습니다. 그것을 소위 열 날개의 십익十翼이라 하는데, 유교의 경전인『주역周易』중에서 경문(經文:占의 原典)을 이론적·철학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 중에「설괘전說卦傳」을 보면‘제출호진齊出乎震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 간艮은 동북지괘야東北之卦也니 만물지소성종이소성시야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일새 고故로 왈 성언호간曰成言乎艮이라. 하나님이 동방[震]에 출세하신다. 동북 간방은 만물의끝남과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고로 하나님의 진리 말씀이 간방에서 이루어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완성된 진리가 동북방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또 공자는 만년에 제자들에게“도지불행道之不行을 아지지我知之요 승부부어해乘浮浮於海하야 욕거구이欲居九夷라, 내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알았노라.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에 가서 살고 싶구나.”( 『論語』「子罕」) 하고 자기의 심경을 고백합니다.

여기에는 기가 막힌 사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과연 공자가 역사의 정의를 아는 성인인지 정말로 한번 따져주고 본질을 물어야 할 문제입니다.

공자가 살았던 때가 2,500년 전이 아닙니까? 고조선이 초대 단군성조부터 쭉 내려가서 47대 고열가 단군 때 문을 닫았습니다. 그 때가 BCE 238년입니다. 그렇다면 공자는 그보다 약 200년 전, 고조선이 망하기 훨씬 전의 인물입니다. 당시 공자가 살던 산동성의 노나라에서 보면 바다 건너에 분명히 단군왕검의 조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공자는 조선이라는 말을 아예 쓰지도 않고, 구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도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으니 나는 저 바다 건너 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입니다. 분명히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고, 조선 백성이 있고, 조선 문화가 있었는데, 이렇게 동방의 역사를 왜곡시킨 것입니다.

그는 조선이 천자문화의 고향이요, 천자를 내려 보내신 상제님을 신앙하던 상제문화의 원 뿌리요,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중국 땅에서 상제문화, 천자문화의 고향이요 심장부가 바로 산동성입니다. 산동성의 상징이 바로 태산인데, 그 태산 꼭대기에 상제님을 모시는 전각, 옥황전玉皇殿이 있습니다. 그 옥황전으로 올라가려면 마지막 관문인 서신문西神門을 지나게 되는데, 그 서신문을 통과하면서 정면을 바라보면 눈앞에 기절초풍할 장면이 펼쳐집니다. 왼쪽의 도교 사원인 벽하사碧霞祠정문 앞에서 옥황전으로 향하는 첫 문 바로 위에 붉은 바탕에 노란 색으로 네 글자가 쓰인 현판을 만나게 되면서 말입니다.

그 네 글자가 무엇입니까? ‘자기동래紫氣東來’입니다. 자줏빛 자, 기운 기, 동녘 동, 올 래 자, 자 자는 자금성 할 때의 자 자로 천자를 상징합니다. 자기 동래란 천자 기운, 즉 천자 문화의 기운이 동방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이‘자기동래’는 심양의 고궁 봉황루, 서태후가 세운 이화원 등 여러 곳에 걸려 있습니다. 본래 이것은 노자가 함곡관을 지날 때 문지기에게 써준 문구라고 합니다.

공자의 기운을 거두심

공자의 고향 산동성 곡부를 가보면 완전히 공자의 세상입니다. 공자의 유적지는 크게 공자 사당인 공묘孔廟, 공자의 자손이 살고 있는 곳의 관청인 공부孔府, 그리고 공자와 그의 자손들 무덤이 있다는 공림孔林이렇게 세 구역으로 구분하여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공림은 공씨 집안의 공동묘지로 그 규모가 약 2평방킬로미터에 달하며 공자가 죽고 난 후 2,500년 간 70세대에 걸쳐 약 10만 여명의 공자 후손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묘는 노나라 애공이 세운 사당으로 역대 황제들이 계속 증축하여 지금은 22만 평방미터에 달하며,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수많은 부속 건물이 마치 궁전처럼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자를 대성大聖, 또는 지성至聖이라 하여 제왕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상제님의 강세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제대로 쉽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50세에 지천명知天命을 외쳤으면서도 그 주재자이신 상제님을 은폐시킴으로써 자기가 종주가 되어 진리의 눈동자인 상제 문화를 약화시키고 무너뜨렸습니다. 그런 공자의 가르침 아래 우리 동방 한민족은 조선 5백 년 동안 사색당쟁으로 찢어지고, 최후에는 참혹하게 망해서 결국 일본제국의 침략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라가 분열되어 근 천만 명이 죽거나 병신이 되는 패망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왜곡된 거짓 역사의 결론은 진리의 근원인 상제 문화를 완전히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이에 대해 상제님은“공자야, 네가 천추千秋에 대접을 받았으니 내 세상 에는 그 녹祿을 끊으리라. 그러나 네가 간절히 비는 고로 물밥은 내려 주리라. 이제 천하에 공자 신명이 머물 만한 땅이 없게 되었느니라.”(道典4:46:1∼3), “너는 내 도道를 펴라고 내려 보냈거늘 어찌 제자들을 도적질 해먹게 가르쳤느냐. 그 중생의 원억寃抑을 어찌할까. 그러고도 성인이라
할 수 있느냐! 너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道典10:40:9∼10)
하시며 공자를 심판하시고 그 기운을 거두는 공사를 보신 것입니다.

도교의 대라천과 상제님 소식

이어서 도교를 살펴보겠습니다. 도교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하냐면, 공자처럼 이치를 통하고 석가처럼 좌선을 하여 심법이 밝아져서 무엇을 보는 게 아니고, 천지의 신도神道를 크게 통해 몸을 가지고 천상에 올라가 신도 세계를 보고 내려와 그것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예를 들면, 도교에서는 대라천을 말합니다. 이 우주는 동서남북에 8천씩 32천의 복합적인 다천 구조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최상천이 있는데, 동서남북의 여러 하늘을 벌려 놨다 해서 큰 대 자, 벌릴 라 자를 써서 대라천이라고 합니다. 이 대라천에 대해 선가의 8대 신선 가운데 하나인 당나라 때의 여동빈은 “옥황상제께서 사시는 곳이 삼천대천세계의 천종天宗(하늘의 종주)이니 영원히 물러서는 법이 없고 견줄 것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높다. 그러므로
대라라고 한다.”(呂純陽曰: 玉帝所居, 爲三千大千世界天宗, 永無退轉, 至高無比, 故云大羅.)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라천은 삼계의 모든 하늘 중에서 가장 높은 하늘, 즉 하늘에서 가장 높은 하늘-하늘 세계의 최상 하늘-을 말합니다. 이 대라천의 수도[현도玄都]가 바로 옥경玉京이며 그 아래에 삼십이천이 있고 각 하늘에는 천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옥황상제님이 그 대라천에 살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즉 대라천은 대우주를 다스리시는 옥황상제가 머무는 곳으로서 온 하늘의 종주宗主이며 그 어느 하늘과도 비할 수 없이 지극히 높으므로 대라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도교의 깨달음의 세계는 불교나 또는 유가보다도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다 내려 보냈다

이어서 6절에서 증산 상제님은“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하고 정리를 해주십니다. 곧 상제님은 본래 유불선 기독교에서 외쳐온 참 하나님입니다. 예수를 유대에 내려 보낸 아버지 하나님이요, 도솔천의 호명보살로 있던 구도자 석가모니를 인도에 보내신 도솔천 천주님이며, 공자에게 천명을 내리신 상제님입니다.

“내가 내려 보냈느니라!”
여기서 말씀하신‘내려 보낸 대상’은 크게 보면 동서의 성자들뿐만 아니 라 모든 범부 중생들, 그리고 자연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까지를 다 포함 합니다. 천지 안에 있는 만백성을 우주의 주관자이신 상제님이 내려 보내 쓰고 계 신다는 말씀입니다.

공자, 석가, 예수는 모두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다!
이 말씀은 달리 표현하면‘석가가 이 세상에 온 본래의 사명이 저마다 있다, 예수가 이 세상에 내려온 사명이 있다, 공자와 노자가 이 세상에 온 사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모든 인간이 나름대로 이루어야 할 사명, 업을 받아가지고 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상제님이 선천 성자들에게 내리신 본래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불지형체佛之形體요 선지조화仙之造化요 유지범절儒之凡節이니라 불도는 형체를 주장하고 선도는 조화를 주장하고 유도는 범절을 주장하느니라. (道典2:150:2)

상제님께서 예수에게 말씀하시기를“야소야, 너를 천상에서 내려 보낼 적에 내 도를 펴라 하였거늘….”(道典10:40:16)

상제님께서 동서의 성자를 내려 보내실 때, 불교의 석가모니에게는“불지형체라, 이 형신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자리를 찾는 공부를 하라.”하고, 동방의 노자와 중동의 예수에게는“선지조화라, 조화의 도를 펴라.”하셨습니다. 또한 유가의 공자에게는“유지범절이라, 인간에게 범절을 가르쳐라. 인간이 되는 윤리, 천지의 도를 바탕으로 한 도덕을 가르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각 성자들이 받은 명命과 과제가 달랐던 것입니다.

지난 선천 봄여름 상극의 세상에서, 인류는 크게 유·불·선·서도의 4대 종교의 씨를 뿌려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제 천지의 가을철을 맞이하여, 인류 구원의 총 결론으로서 이들을 내려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친히 가을 문화를 열어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선천의 지난 봄여름 세상은 가을철에 아버지께서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성숙의 대통일 문화, 열매 문화, 알캥이 문화를 내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려 보내신 성자들이 천명으로 받은 사명은 바로‘가을철의 추수문화를 열기 위해 아버지께서 직접 오신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선천 종교의 구원론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상제님은 선천 종교의 구원론의 총 결론을 2편 40장에서 여섯 개의 절로 간결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그럼 이 성구말씀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상제님은“선도와 불도와 유도와 서도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근원이 되었나니”(道典4:8:1) “각 족속의 모든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아 후천문명의 기초를 정하느니라.”(道典4:18:4)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불·선·기독교를 모르고, 그 구원론의 최종 마무리 핵심 제대로 모르면 천상의 진리 주재자 아버지를 모르게 되고, 마침내 아버지 하나님이신 상제님이 강세하여 열어주시는 상제님의 진리에 대한 확신, 즉 오늘의 증산도가 진정으로 인류 보편의 구원 진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 방황을 하게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친 일심신앙으로 성공
할 수 없는 것입니다.

Ⅲ. 상제님이 동방 조선 땅에 강세하신 구원 섭리

상제님이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일진대, 그렇다면 왜 지구촌의 그 넓은 땅 을 두고 이처럼 작은 동방 한국 땅으로 꼭 오셔야만 했을까요? 지금부터 증산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상제님 말씀으로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신명대접을 잘한 한민족

그 이유는 첫째,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온, 인류 제사문화의 본고향이기 때문입니다.(道典1:1:6)

우리 동방 한민족은 상제님을 가장 먼저 모시고, 가장 오랫동안 섬겼으며, 가장 잘 섬기는 민족입니다. 사실 인류 문화사에서 한민족처럼 신을 잘 섬기는 민족이 없습니다. 한민족의 국조가 됐든, 선령신이 됐든, 지역의 신명이 됐든, 또 비를 내려 주는 우사雨師신명, 산신, 바다의 용왕, 칠성신이 됐든, 자연신이 됐든 인격신이 됐든, 어떤 신이든 그렇게 잘 섬깁니다.

이에 대해 증산 상제님은“이 세상에 조선과 같이 신명神明대접을 잘하는 곳이 없으므로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각기 소원을 따라 꺼릴 것 없이 받들어 대접하리니 도인道人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천하사天下事만 생각 하게 되리라.”(道典2:36:2∼4)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한민족은 동서의 모든 민족과 종교에서 섬기는 신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민족이다. 그래서 신관의 통일이 가능하다. 동방 한민족은 이 우주의 지고신인 아버지 하나님, 상제님뿐만 아니라 모든 신들을 다 섬겨 왔기 때문에 신명들이 너무도 감사해서 이 조선 땅으로 다 모여들었다. 천지 안의 모든 신명들이 하나님 사업에 수종들어 가을우주 개벽기에 인류를 건지기 위해, 상제님이 오신 이 땅에 모여 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신명들을 잘 섬겨온 우리 한민족에게 보은 줄을 열어주시기 위해, 그 신명들을 다스리시는 통치자 하나님이신 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시게 된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한민족으로 꼭 오셔야만 했던 첫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간도수의 우주 섭리로

둘째, 상제님은 섭리적으로, 자연의 이법으로 이 땅에 오시게끔 정해져 있습니다.
동방 신교의 변화[易] 철학에서는 하늘보다 땅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본래 생성生成이라는 말이 천생지성天生地成, 하늘은 낳고 땅은 이룬다는 말에서 나왔죠. ‘땅에서 모든 것이 완성된다.’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동양 문화의 자연관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동서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모든 변화가 완성되는 그 땅의 중심지는 어디일까요? 주역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앞에서도 말했듯이‘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 동북 간방艮方에서 모든 동서 성자들의 말씀, 구원의 약속이 이뤄진다.’는 한소식입니다. 주역에서 말한 이 동북 간방이란 지금의 극동 아시아(Far eastern Asia), 바로 우리가 사는 이 한반도입니다.

이에 대해 종도사님은 지리학적으로 여러 차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한국은 지구의 혈 자리다. 지구의 정기가 응축되어 있는 혈이 바로 한반도다.”‘지구의 조종祖宗곤륜산에서 맥이 뻗어 나와 동북아의 백두산이 중조中祖가 되어 금강산을 맺었다. 그 금강산의 맥이 호남의 삼신산으로 해서 시루산에 맺혔다. 상제님은 지구의 지기가 수렴된 이 시루산으로 오신 것 이다. 지구가 태초에 형성될 때부터 이미 고부 객망리의 시루산에서 삼신상제님이 오시도록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말입니다.

동양의 최 약소민족으로 전락한 조선의 운명

셋째, 지금으로부터 138년 전, 당시의 역사적 현실 때문에 상제님께서 조선으로 오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道典5:4:6)

조선 강토가 서양으로 둥둥 떠 넘어가는구나.(道典5:164:2)

내가 천지를 개벽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인간과 하늘의 혼란을 바로 잡으려고 삼계를 둘러 살피다가 너의 동토에 그친 것은 잔피에 빠진 민중을 먼저 건져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어 주려 함이라.(道典3:184:10~11)

19세기 후반, 서양 제국주의 열강들은 동남아시아, 중국을 거쳐 동북아의 중심인 한반도 조선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불란서 등 서구 열강과 동양의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에 의해 동북아의 작은 땅 조선은 인류 역사상 새로운 분쟁의 중심지로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위급한 때에, 상제님은 누란의 위기에 처한 한민족을 먼저 건지시기 위해 조선 땅으로 오신 것입니다.

한민족의 문화 정신의 비밀

넷째, 인류 문화사의 역사 배경으로 볼 때 상제님은 천지의 열매 문화, 가을 문화를 출산하기 위해 동방의 이 땅에 오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제님은 우주의 유일자이신 조화옹 하나님이십니다. 서교에서도‘장차 오실 아버지 하나님[The Father who is coming]’이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늘 근원을 찾으시는 분입니다. 역사의 근원, 문화 생성의 근원, 신앙의 뿌리를 찾아 머무시는 분입니다.

언제든지 동쪽에서 먼저 일어나니 동으로 힘써라. (道典3:306:9)

서양이 곧 명부冥府라. 사람의 본성이 원래 어두운 곳을 등지고 밝은 곳을 향하나니 이것이 곧 배서향동背西向東이라. 만일 서양을 믿는 자는 이롭지 못하리라.(道典2:120:1∼3)

본래 천지의 기운은 동방에서 태동되어 서쪽으로 갑니다. 자연의 태양이 동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천지의 이법에 따라 문명의 태양도 동에서 먼저 떠서 서쪽으로 갑니다. 증산 상제님은 이 동토東土와 인연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인연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조선이 천지신명들의 통치자이신 상제님을 신앙하는 상제문화의 시원 국가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 조선은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등 세계 종교의 시원문화인 신교神敎의 종주국이요, 인류의 뿌리 문화인 이 신교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방의 유일한 주인공입니다. 배달 한민족의 역사 가 6천 년이고, 그 전 환국시대부터 헤아리면 9천 년 역사가 넘어요. 말 그 대로 동서양 인류 문화의 종주국이지요.

그런데 조선 5백년을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뿌리 문화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요즘 드라마 <대왕세종>을 보면 명 나라의 사신이 와서 여자를 몇 명 내놔라, 말을 몇 마리 내놔라 하고 강짜를 부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래 천자의 나라인 조선을 억압하고 핍박하면서 중국이 종주국 행세를 하려 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증산 상제님은“중국은 동서양의 오가는 발길에 채여 그 상흔 傷痕이 심하니 장차 망하리라. 이는 오랫동안 조선에서 조공 받은 죄로 인 함이니라.”(道典5:402:7∼8) 하고 중국을 심판하는 공사를 보신 바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민족은 유·불·선·기독교 등 기성 종교를 신앙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부정당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한국사람 중에 상제문화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상제님이 누구신지 아세요? 상제라는 말을 들어봤어요?”하면 제대로 아 는 사람이 백에 하나, 천에 하나나 아니, 백만 명에 한 사람이나 있을까요?
‘상제’하면 무당, 점쟁이들이 믿는 신, 중국 사람들이 섬기는 신 정도로나 알고 있습니다.

이 상제문화를 회복하려고 한 역사적인 일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 고종임금이 1897년에 원구단을 쌓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로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게 된 것이죠.

초목을 보면 뿌리를 바탕으로 줄기가 뻗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대자연의 법칙이요 우주의 창조 법칙입니다. 천리를 따르는 인류문화의 성장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뿌리 없이는, 뿌리를 복원하지 못하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상제문화, 신교문화가 아니면 인류의 통일문화, 가을의 결실문화, 열매문화를 출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증산 상제님이 동방 조선 땅에 오신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 한민족이 동서 문화를 통일할 수 있는 뿌리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우리 동방 한민족의 신교의 문화 토양에서 유·불·선·기독교의 강력한 신앙 문화가 꽃피었기 때문에, 뿌리·줄기 문화 시대를 지나 인류문화 의 통일·결실기를 맞아 열매문화, 보편적 구원의 진리를 열어 주시기 위 해 이 땅에 오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류의 뿌리 성씨로 강세

다섯째, 상제님은 인류 성씨의 뿌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증산 상제님은 지금부터 138년 전, 신미(辛未: 도기 1, 1871)년 9월 19일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진주 강씨 문중에 태어나셨습니다. 상제님은 당신이 강씨 성으로 오신 이유에 대해“세상에 성姓으로 풍風가가 먼저 났으나 전하여 오지 못하고 다만 사람의 몸에 들어 체상體相의 칭호로 쓰이게 되어 풍신, 풍채, 풍골 등으로 일컫게 되었을 뿐이요, 그 다음에 강姜가가 났나니 강가가 곧 성의 원시라. 그러므로 이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로 반본하는 고로 강가가 일을 맡게 되었느니라.”(道典2:37)고 밝혀주셨습니다.

강씨 성은 염제 신농(炎帝神農, ?∼서기전 3078)씨의 성으로 현전하는 최고最古의 성씨입니다. 신농씨는 의학의 아버지로서, 또 장터문화와 농사법을 가르쳐 주신 한량 없는 덕을 인류에게 베푸신 분입니다. 이때는 원시로 반본하는 가을철이므로 상극의 원한에 찌든 천지와 인간을 건져내시기 위해 아버지 상제님께서 인간 역사의 성의 시원, 성의 뿌리인 강씨 성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Ⅳ. 말씀을 매듭지으며

증산도 구원론의 핵심

가을철의 구원 섭리, 보은과 상생의 삶

오늘 말씀을, 상제님의 성구 말씀을 통해 최종 끝마무리를 짓기로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사회 속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되느냐 하는 생활 신앙의 모든 것을 바로 잡아주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1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 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라.
2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하시고
3 이어 말씀하시기를“나도 단군의 자손이니라.”하시니라.
4 하루는 말씀하시기를“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5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6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7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8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하시고
9 또 말씀하시기를“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10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하시니라.(道典2편 26장)

앞으로 우리 인류는 가을철의 통일문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가을에는 만물이 근원으로, 뿌리로 돌아갑니다. 때문에 진리의 근본을 바르게 보고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증산 상제님이 말씀하신 원시반본의 참 뜻은 무엇이며 가을개벽을 목전에 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원시반본이란 무엇인가?

천지가 가을철로 들어설 때, 대자연과 인간이 변화하는 제1의 근본정신, 우리 인간이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도, 그것을 상제님은 한마디로 원시반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시반본이란 문자적으로‘시원을 찾아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봄이 되면 땅 속에 있는 양기가 쭉 뻗쳐 올라와 초목의 이파리가 나오고 꽃이 핍니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이파리, 줄기에 있던 수기가 전부 뿌리로 돌아가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야 겨울철을 나고, 다시 다음 해에 사계절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창조 질서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시반본은 가을철을 맞아 만물이 열매를 맺게 하고 한마음으로 조화되어 통일하는 성숙의 도입니다. 원시반본에는‘가을철에는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다죽는다, 소멸된다’는 구원의 절대 명제가 담겨 있습니다.

환부역조란 무엇인가?

2절을 보면, 상제님은“환부역조하는 자와 환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십니다. 그러면 환부는 무엇이고 역조는 무엇일까요? 환부는 아버지를 바꾸는 것이요, 그 결론이 바로 역조입니다. 환부와 역조 는 인과관계인 것이죠. 구체적으로 말해서 환부는 아버지, 즉 직계조상을
바꾸는 것으로 이것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반면에 역조는 조상을 바꾸는 것으로 집단적인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한민족은 고조선의 개국조이신 단군의 자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인간으로 오셔서“나도 단군의 자손이다.”라고 선언하셨지요. “너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천지신명과 지구촌 만백성을 다스리는 나도 인간으로 올 때는 시원문화의 혈통을 따라서 왔다.”하는, 동방문화의 역사의식, 문화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깨쳐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환부와 역조를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도 있고 또 환부와 역조를 제각기, 병렬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천만 명이 넘는 숱한 사람들이 한민족의 국조인 단군 할아버지를 버리고“고조선 역사는 원래 없는 것인데 임의로 만든 것이다.” 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신인 여호와에게 매달려“나의 아버지 여호와시여.”하면서 찬양을 합니다. 이게 바로 역조입니다. 그러면서도 환부입 다. 민족의 아버지를 완전히 바꿨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진리의 근본 바탕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하고 내 생명의 근원, 뿌리인 나의 조상을 제대로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조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깨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에게는 선령先靈이 하느님이니라. 너희는 선령을 찾은 연후에 나를 찾으라. 선령을 찾기 전에 나를 찾으면 욕급선령辱及先靈이 되느니라. 사람들이 천지만 섬기면 살 줄 알지마는 먼저 저희 선령에게 잘 빌어야 하고, 또 그 선령이 나에게 빌어야 비로소 살게 되느니라.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蔭德을 중히 여기라. (道典7:19:1∼3,5)

모든 사람에게는 제 조상이 하나님이다! 먼저 조상에게 기도를 하고, 그 조상 이 하나님이신 상제님께 기도를 해야 비로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가을 개벽기의 구원의 방정식입니다.

가을의 추수 정신은 원시반본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뿌리를 찾아야 삽니다. 조상은 자손의 뿌리입니다. 내가 조상을 잘 섬기면 뿌리의 힘이 강해져서, 선령들이 자손 줄을 찾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내가 선령의 품으로 돌아가 조상 선령과 내가 쉽게 하나가 됩니다. 서로 생명의 기운, 기도 기운을 주고받아 조상인 뿌리와 열매인 자손이 함께 튼튼해져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인간의 구원이란 인간과 하나님, 이렇게 일 대 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절대적 중간자가 있어야 합니다. 조상 선령신이 나의 구원의 직접적인 손길로 작용하는 천상의 일차 하나님입니다. 모든 인간은 내 조상이 하나님의 대행자입니다. 각 자손을 건져내는 조상이 하나님 노릇을 한다는 말입니다. 지구촌의 인간은 모두 신명계에 있는 자기 조상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역사役事를 끝매듭 짓는 주인공이 바로 증산 상제님의 도법을 받은 우리 일꾼들입니다.

가을개벽의 구원을 위해 이것을 실천하자

그렇다면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원시반본’은 무엇인지 정리해 볼까요?
첫째, 무엇보다 내 생명의 근원인‘부모와 조상 선령’을 잘 받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혈통 줄을 바로잡아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구원의 첫 번째 손길로 작용하는 선령을 박대하거나 부정하는 자는 가을철에 열매 맺을 수 없는‘죽음의 종자’라고 무섭게 경계하셨습니다.

둘째, 지구촌의 각 민족은 제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각 민족에게는 그들의 시원사에 자리 잡고 있는 시조신이 창세의 뿌리가 되는 주신입니다. 우리 한민족의 시원사에는 국조 삼신, 즉 맨 첫 자리에 계신 환국의 환인천제와 환국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한 배달의 시조 환웅천황, 고조선의 시조 단군왕검이 계십니다.

셋째, 인류문명도 그 근본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금의 다양한 문화, 문명의 근원은 인류의 시원 문명인‘동방의 신교문화’입니다.

넷째, 가을 개벽기에 인간은‘본래의 신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앞으로 인류는 태을주 수행과 도통 문화를 통해서 타고난 신성을 환히 열어 인간과 신명이 하나 되는 신인합일神人合一· 신인합작의 조화문명 세계를 열어 갑니다.

다섯째, 대자연과 하나인 인간의 본래 심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천지의 계절이 가을철로 바뀌는 이때, 인간은 천지이법에 대한 본질적인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닦아 본래의 마음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지의 뜻과 하나 되어 가을개벽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니 사람이 천지의 마음을 얻어 제 마음 삼느니라. (道典2:90:4)

끝으로, 이 가을 개벽기에 우리가 돌아가야 할 원시반본의 최종 귀결점은 천지의 원 주인이시며 대우주의 통치자요 조화주이신‘증산 상제님의 도법’입니다. 자연과 문명, 인간과 신도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의 대도진리를 만나 인류 구원의 천명을 실천함으로써만 삶의 궁극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 1년 사계절에서 여름철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인간 대개벽기, 천지가 하추 교역하는 환절기에 인류를 구원하는 열매는 바로 인간으로 오신 참 하나님, 인존 천주님이신 상제님의 새 진리입니다. 지금은 무슨 최첨단 기술이나 컴퓨터, 또는 그 어떤 학술로써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오직 선천 상극의 낡은 천지를 문 닫고 상생과 조화의 가을의 신천지를 창조해 주신 참 하나님, 증산 상제님의 도법을 만나 이를 생활화함으로써 비로소 인생으로서 궁극의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때는 천지성공 시대天地成功時代라. (道典4:21:1)

이 때는 생사판단生死判斷을 하는 때니라. (道典2:44:3)

천하사 일꾼의 심법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다음 성구들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세계 대운이 조선으로 몰아 들어오니 만의 하나라도 때를 놓치지 말라. (道典2:36:1)

병겁이 밀려오면 온 천하에서 너희들에게‘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하고 송장 썩는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여 아무리 비위脾胃가 강한 사람이라도 밥 한 술 뜨기가 어려우리라. (道典4:39:2~3)

병겁이 밀어닥치면 너희들이 천하의 창생을 건지게 되느니라. 그리하면 천하의 억조창생이 너희들의 가르침을 받들고 너희들에게 의지하게 되리니 통일천하가 그 가운데 있고 천지대도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지며 만세의 영락榮樂이 그 가운데서 이루어지느니라. (道典7:50:3~5)

개벽의 운수는 크게 개혁하고 크게 건설하는 것이니 [성과 웅이 하나가 되어야 하느니라. (道典2:58:7)

선경세계는 내가 처음 건설하나니, 나는 옛 성인의 도나 옛 가르침으로 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낡은 삶을 버리고 새 삶을 도모하라. 묵은 습성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그 몸이 따라서 망하느니라. (道典2:41:1~3)

지구 1년 초목농사의 목적은 가을철에 추수를 하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지에서 인간 농사를 짓는 우주 1년 변화의 목적 또한 가을철에 인종 씨를 거두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천지 이법입니다. 춘생, 봄에는 낳고 추살, 가을에는 죽입니다. 천지의 거룩하신 큰 덕성도 봄에는 만유의 생명을 낳고, 가을에는 낳아서 길러낸 인간과 만물을 추살로 다스립니다. 추살의 서릿발로 명줄을 다 끊고서 쓸 만한 종자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영원히 소멸시켜 버립니다.

천지의 만물 농사가 가을 운수를 맞이하여, 선천의 모든 악업이 추운秋運아래에서 큰 병을 일으키고 천하의 큰 난리를 빚어내는 것이니 큰 난리 가 있은 뒤에 큰 병이 일어나서 전 세계를 휩쓸게 되면 피할 방도가 없고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느니라. (道典7:38:5∼6)

병겁은 선천 인간의 모든 악업과 신명들의 원한이 축적되었다가 여름철이 끝나고 가을로 들어서는 실제적인 개벽의 시간대에서 발동합니다. 곧 천고의 깊은 원을 맺은 모든 신명들이 가을 천지의 숙살肅殺기운을 타고 발동해서 인간 역사에 들어와 괴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이 병겁의 급박한 상황에 대해“이 뒤에 이름 모를 괴질이 침입할 때는 주검이 논 물꼬에 새비떼 밀리듯 하리라.”(道典5:291:11), “ 당래에는 병겁病劫이 들어와 천하를 진탕으로 만들 것인데 뉘라서 활방活方을 얻어 멸망하는 인종을 살리리오.”(道典7:32:2) 하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천지에서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일 때에도 씨종자 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道典8:21:2), 또“병겁이 밀려오면 온 천하에서 너희들에게‘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하고 송장 썩는 냄새가 천 지에 진동하여 아무리 비위脾胃가 강한 사람이라도 밥 한 술 뜨기가 어려 우리라.”(道典4:39:2~3) 하셨습니다.

일꾼들은 이런 말씀을 생각만 해도 머릿속에서 개벽상황이 연상되어 의식이 성성히 깨져야 합니다. 우주원리를 바탕으로 개벽관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매 순간 순간 사람 살려내는 살릴 생 자 포교 의지가 깊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나는 세상을 위해 내 한 목숨을 바치겠다. 상제님의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겠다!’하고 날마다 결의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진정한 천하사 일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증산 상제님은 천하사 일꾼의 심법에 대해“개벽의 운수는 크게 개혁하고 크게 건설하는 것이니 성과 웅이 하나가 되어야 하느니라. (道典2:48:5)”하셨습니다.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대개벽의 운수는 크게 뜯어 고치고 크게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능히 해내려면 성과 웅의 심법 세계를 체득해야 합니다. 이것을 관념적, 추상적으로만 생각해선 안 됩니다.개벽은 곧 닥칠 실제상황입니다.

상제님은“너희는 낡은 삶을 버리고 새 삶을 도모하라. 묵은 습성이 하나라 도 남아 있으면 그 몸이 따라서 망하느니라.”(道典2:47:3) 하셨습니다. 생활개혁에 대해 이보다 더 무섭고 준엄한 가르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주의 가을 개벽기에 살고 있는 우리 일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섭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금 눈과 귀로 보고 듣고 맞닥뜨리는 생활 속의 모든 악폐와 묵은 습성을 다 거두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기본 과제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바탕에 성인의 심법을 깔고, 영웅적인 지략을 갖춘 일꾼으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천지부모이신 상제님 태모님의 삶을 그대로 본받아 영웅적이면서 도덕적인 일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염념불망 태을주를 읽고, 때로는 밤을 지새워『도전』을 보고, 걸어 다니 면서도 상제님 태모님의 성구 말씀을 암송하면서 천하창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참석한 모든 이들이 근본신앙, 진리중심 신앙, 도장 중심 신앙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인간으로 오신 아버지 하나님의 진리 핵심을 제대로 전하여 가을 천지 새 문화의 주역으로 우뚝 서는 생명력 있는 일꾼, 증산 상제님 천지사업의 일등 역군이 되기를 축원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참고각주>

註1) 1. 회개하라 Repent
 ‘회개하라’는 말을 히브리어로는‘테슈바흐 teshuvah’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첫째로, ‘되돌아오다 return’, 둘째로‘대답하다
 answer’셋째로는‘회개하다 repent’는 뜻이 그것이다. 지금 기독교 교회와 성당의 모든 교의敎義는 이 중 세 번째 의미인‘회개하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러나 테슈바흐의 핵심적인 영혼구원의 참 뜻은‘돌아오다’라는 의미에 있다.
 “신에게 돌아가는 것이 신에게 대답하는 것이다.”『( Worlds like fire』120~126쪽)라고 한 오쇼Osho의 말과 같이,‘ 회개하라’는 말을 하면 깊은 저주를 내뱉는
 것 같으며 상대방에게 죄인인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그러나‘돌아오라’고 하면 거기에는 죄나 저주라는 관념은 전혀 없다. 단지 그대가 생명의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으니 이제 그만 놀고 돌아오라는, 사랑으로 가득 찬 구원의 음성만이 들릴 뿐이다『.( 이것이 개벽이다』上226~227쪽)
 ‘Repent’의 원어는‘메타노이아 metanoia’인데, 그것은‘마음을 바꾼다 change of heart’는 뜻으로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회향回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회
 개’는‘죄’를 전제로 하는 말이며, ‘메타노이아’를‘회개’로 번역한 것은 후대 교회의 이권과 결탁한 의도적, 관습적 오역일 뿐이며, ‘메타노이아의 원의’와 관련
 이 없다『.( 큐복음서』64쪽 도올 김용옥 편·역주)
 2. 천국 the kingdom of heaven
 ‘천국’은 장소topos의 개념이 아니다. ‘왕국 kingdom’이라는 상투적 표현 때문에 오해가 발생하기 쉬운데, 왕국에 해당되는 원어는‘바실레이아basileia’이다.
 그것은 장소 개념이기보다는‘지배reign’를 뜻하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마태는‘하늘의 바실레이아 the kingdom of heaven’(마 3:2)라는 표현을 썼고, 마가는
 ‘하나님의 바실레이아 the kingdom of God’(막 1:15)라는 표현을 썼는데, 모두‘하나님(하늘)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큐복음서』66쪽)
 
 
 註2) 아담과 이브 창조 사건의 무대, 이라크 남부 갈데아 우르 아담과 이브의 창조사건의 무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이자 수메
 르인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이라크 남부지역이었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도 수메르인의 도시 갈데아 우르였다. 수메르 문명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우르가 북방 갈데아족의 지배를 받게 되어 갈데아 우르라 불린 것이다.
 
 註) 불교 경전 『현우경賢愚經』 「바바리품波婆離品」에 나오는 미륵불 왜곡의 실상
 미륵 부처님의 출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57억 6백만년설(잡심경), 56억 7천만년설(보살처태경현우경), 인수(人壽) 8만4천세설(장아함경) 등이 있는데, 모두 현실적인 감각의 시간 개념과는 젼혀 거리가 먼 내용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불교 신자들이 기존의 그릇된 상식에 사로잡혀, 미륵 부처님은 석가여래의 제자로서 56억 7천만년 뒤에 오신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현우경(賢愚經)』 「바바리품(波婆離品)」을 보면, 바바리(바라문교의 지도자)의 제자 16인이 석가부처로부터 미래 세계에 대한 설법을 듣는 내용이 나온다. 이때 석가부처가 장차 미륵불이 오셔서 설법을 통해 1회에 93억 인, 2회에 96억 인, 3회에 99억 인을 깨닫게 할 것이라고 말하자, 바바리의 제자 16인의 한 명인 수행승 미륵(Tisya-Maitreya)이 자신이 미륵불이 되고 싶다고 하여, 석가부처가 이를 허락했다고 한다. 이 내용을 보고 수많은 불제자들은 바바리의 제자였던 수행승 미륵이 후세에 미륵불로 출세할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미륵불 출세에 대한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현우경 바바리품을 소개한다.
 
 我復次說當來之世 此閻浮提土地方正平坦 廣?無有山川 地生濡草猶如天衣
 아부차설당래지세 차염부제토지방정평탄 광단무유산천 지생유초유여천의
 
 나는 이제 미래세상 일을 말하리라. 이 염부제의 땅은 고르고 평평하며 평탄하고 넓어 산이나 내가 없고, 땅에는 부드러운 풀이 나서 마치 천의天衣와 같을 것이다.
 
 爾時人民壽八萬四千歲 身長八丈端正殊妙人性仁和具修十善
 이시인민수팔만사천세 신장팔장단정수묘인성인화구수십선
 
 그때의 사람들은 수명이 8만4,000세요, 키는 여덟 장丈이며 얼굴은 단정하고 묘할 것이다. 사람들 성품은 어질고 고와서 열 가지 선행을 두루 갖출 것이다.
 
 彼時當有轉輪聖王名曰勝伽(晋言具也) 彼時當有婆羅門家生
 피시당유전륜성왕명왈승가(진언구야) 피시당유파라문가생
 一男兒字曰彌勒 身色紫金三十二相衆好畢滿光明殊赫
 일남아자왈미륵 신색자금삼십이상중호필만광명수혁
 
 그때 전륜성왕이 있어 이름을 승가勝伽라 할 것이다(진晋나라 말로는 구具라는 뜻이다). 또 그때 어떤 바라문 집에서 한 사내를 낳을 것이니 이름을 ‘미륵彌勒’이라 할 것이다.
 그는 몸이 자금색이요, 서른두 가지 거룩한 모습[三十二相]과 온갖 좋은 상을 갖추어 광명이 특히 빛날 것이다.
 
 出家學道成最正覺廣爲衆生轉尊法輪 其第一大會度九十三億
 출가학도성최정각광위중생전존법륜 기제일대회도구십삼억
 衆生之類 第二大會度九十六億 第三會大會度九十九億
 중생지류 제이대회도구십육억 제삼회대회도구십구억
 그는 집을 떠나 도를 배워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널리 중생을 위하여 거룩한 법륜을 굴릴 것이다.
 그 첫 번째 법회에서는 93억 중생을 제도할 것이요, 두 번째 법회에서는 96억 중생을 제도할 것이며, 세 번째 법회에서는 99억 중생을 제도할 것이다.
 
 如是比丘 三會說法得蒙度者悉 我遺法種福衆生 或三寶中興
 여시비구 삼회설법득몽도자실 아유법종복중생 혹삼보중흥
 供養者出家在家持齊戒者燒香燃燈禮拜之者 皆得在彼三會之中
 공양자출가재가지제계자소향연등례배지자 개득재피삼회지중
 中三會度我遺殘衆生然後 乃化同緣之徒於
 중삼회도아유진중생연후 내화동연지도어
 비구들이여, 이 세 번의 법회에서 구제를 입은 이들은 모두 내가 끼친 법을 중생들에게 심은 이와, 3보寶를 일으킨 이와, 집을 떠나거나 집에 있거나 제법과 계율을 가진 이와, 향을 사르고 등불을 켜고 예배한 이들로서, 그들은 모두 그 삼회 법회에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 번 법회에서 내가 남긴 중생들을 제도한 뒤에, 인연이 같은 중생들을 교화할 것이다.
 
 於時彌勒問佛此語徒座而起長か白佛言 願作彼彌勒世尊
 어시미륵문불차어도좌이기장궤백불언 원작피미륵세존
 그때 미륵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그 미륵세존彌勒世尊이 되기를 원합니다.”
 佛告之曰 如汝所言 汝當生彼爲彌勒如來 如上敎化悉是汝也
 불고지왈 여여소언 여당생피위미륵여래 여상교화실시여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 말과 같다. 너는 장래에 거기 나서 미륵여래彌勒如來가 되어 위와 같이 교화敎化할 것이니, 그 모든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