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白頭山(2) | |
[조선일보 2006-09-15 00:03] | |
[조선일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부부가 네모진 연못에 헌화하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 되었다. 9·11테러 5주년을 맞아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북측 빌딩 터에 만들어 놓은 ‘추모의 연못’에 헌화하는 장면이었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직사각형 형태의 ‘추모의 연못’이다.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물에다 꽃을 띄우는 방법은 일리가 있다. 이 연못을 누가 기획했는지 몰라도 상당한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물은 종교적 의미가 다양하게 함축되어 있다. 첫째로 이 빌딩에서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용도이므로 물이 있어야 맞다. 육신이 불에 타면서 얼마나 고통을 겪었겠는가. 이 영혼들을 위해서는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너진 빌딩 터에 추모의 연못을 설치한 것은 물로 불을 꺼준다는 의미이다. 둘째로 물은 정화(淨化)하는 작용을 한다. 기독교의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줄 때 물을 사용한 것은 정화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정화를 하는 수단으로 물을 이용한다. 흔히 쓰는 ‘목욕재계(沐浴齋戒)’라는 말도 먼저 물로 정화한다는 뜻이 있다. 셋째로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희랍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이 물에서 왔다”고 했다. 동양의 상수학(象數學)에서도 시작을 상징하는 숫자인 1은 물을 지칭한다. 물이 있어야 생명이 살 수 있다. 넷째로 물은 기(氣)를 저장하는 기능이 있다. 풍수에서 이 부분을 특히 중시한다. 배산임수(背山臨水)에서 ‘배산’이 화기(火氣)에 해당한다면 ‘임수’는 수기(水氣)에 해당한다. 수기는 화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저장하고 감싸주는 기능을 한다. 그래야지 그 터가 오래간다고 본다. 물이 없고 화기만 왕성한 터는 일어설 때는 급속하게 일어서지만, 망할 때는 순식간에 망한다고 본다. 이처럼 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종교적·생태적 의미가 심중하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사발을 떠놓고 매일 새벽마다 남편 잘되고 자식들 잘되라고 기도한 것도 물이 지닌 이러한 영성(靈性)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러한 영수(靈水)가 장독대가 아닌 2700m 백두산 꼭대기의 높은 제단에 올려 져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 얼마나 장엄하고 신성한 산인가!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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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白頭山(3) | |
[조선일보 2006-09-17 23:00] | |
[조선일보]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에 고기가 많이 모이듯이, 이질적인 음(陰)과 양(陽)이 섞이면서 묘용(妙用)이 발생한다. 백두산의 천지(天池)는 바로 이러한 묘용을 보여주고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물은 양중음(陽中陰)이다. 백두산이라고 하는 불 속에 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태풍 한가운데의 고요함과 같다. 이런 곳은 기도발이 받는다. 그래서 산 위에 물이 있는 곳은 아득한 상고시대부터 기도터로 여겨졌다. 그러나 백두산과 같이 자연적으로 산 위에 연못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고대인들은 산 위에 물이 없으면 인공적으로 물을 담을 수 있도록 구멍을 팠다. 높은 바위절벽이나 암봉(巖峰) 위에다가 바가지 크기나 세숫대야 혹은 주먹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홈을 팠던 것이다. 이런 구멍 내지는 홈을 ‘알터’ 또는 ‘컵마크(cup mark)’라고 부른다. 고대인들의 기도터이다. 필자는 지난 십 몇 년 동안 이런 곳을 찾아서 답사하였는데, 공통적으로 산 정상 부근이나 높게 솟은 바위 꼭대기에 인공적으로 판 이런 구멍이 발견되었다. 이 바위 구멍 속에는 물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백두산 천지와 같은 기능을 하는 ‘양중음’의 장치를 바위 기운이 강하게 내려오는 곳에다가 인공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예를 들면 부산의 금정산(金井山)에 뾰쪽뾰쪽 솟아 있는 바위 봉우리 꼭대기를 올라가 보면 세숫대야 크기만 한 홈이 파여 있다. 물론 고대인들이 기도를 하기 위한 용도로 파 놓은 것이다. 속리산(俗離山) 문장대(文藏臺)도 거대한 화강암이 힘차게 뻗은 곳으로, 바위에서 방사되는 불기운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지점이다. 이 문장대 바위의 꼭대기 부분에도 역시 알터가 있다. 대구 팔공산(八公山)도 산 전체가 지글지글 끓는 화기(火氣)가 충만한 산이다. 그 화기가 뭉친 지점에 그 유명한 갓바위 부처상이 조성되어 있다. 갓바위 부처상 뒤쪽의 바위에도 올라가 보면 고대인들이 파놓은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구멍이 있다.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런 지점은 이미 영험한 기도터였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알터는 전국 바위산 꼭대기 부근에 수백 군데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백두산 천지는 가장 거대한 알터인 것이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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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살롱(279)] 백두산(4) | |
[조선일보 2006-09-20 08:32] | |
[조선일보] 우리나라의 산 이름 가운데 흰 ‘백(白)’이 들어가는 산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백두산을 비롯하여 단양군과 영주시에 걸쳐 있는 소백산(小白山·1439m), 강원도 태백시의 태백산(太白山·1567m)이 대표적이다. 한민족은 옛날부터 흰색을 숭상하여 왔다.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왜 흰색을 성스러운 색깔로 여겼을까. 이는 시베리아, 몽골에 사는 북방 유목민족의 흰색 숭배 전통과 궤를 같이한다. 북방의 광활한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높은 산 정상에 녹지 않고 쌓여 있는 흰 눈은 성스러운 대상이었다. 중앙아시아의 드넓은 초원을 여행하면서 설산(雪山)을 바라다보면 흰색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흰색이 지닌 순결함과 높은 산이 주는 고소(高所)의 성스러움, 그리고 녹지 않는 눈에서 그 어떤 영원함을 느꼈던 것이다. 이는 유럽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몽블랑 만년필의 외형적 특징은 끝부분의 흰색 마크인데, 이게 트레이드마크이다. 흰색 마크는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4807m)에 쌓여 있는 만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베리아에서는 껍질이 하얀 자작나무를 특별한 성목(聖木)으로 여긴다. 시베리아 샤먼들은 자작나무 껍질을 태우면서 굿을 한다. 자작나무 껍질이 흰색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흰색 숭배도 이러한 북방의 전통이 그대로 계승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태백산과 소백산은 정상 부근에 봄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눈이 쌓여 있어서, 멀리서 바라다보면 꼭대기의 흰색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백두산은 소백산이나 태백산보다 훨씬 높고, 정상 부근에 눈이 오랫동안 쌓여 있다. 정상 부근에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어서 백두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름에 ‘백’자가 들어간 가장 주된 이유는 흰 눈 때문이 아닌가 싶다. 등산장비가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백두산에 오르기가 어려웠다. 그 대신에 올랐던 산이 백두산의 두 아들에 해당하는 소백산과 태백산이다. 정감록(鄭鑑錄)을 보면 소백과 태백의 중간지역인 ‘양백지간(兩白之間)’을 특별히 주목한다. 난리가 났을 때도 여기에 가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우리 민족에게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백산숭배(白山崇拜)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조용헌·goat1356@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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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백두산(5) | ||
[조선일보 2006-09-21 23:14] | ||
[조선일보] 백두산은 중국 한족(漢族)을 제외한 동북아시아 유목민족 모두에게 공통된 성산(聖山)으로 여겨져 왔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청(淸)나라이다. 우리가 오랑캐라고 여겼던 청은 백두산을 신성시하여 일반인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봉금(封禁) 조치를 취하기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백두산의 1258m 지점에 위치한 연못에서 청나라의 시조가 탄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백두산에 있는 그 연못 이름은 그들 이름으로 ‘포륵호리’였고, 한자로 표기하면 ‘원지(圓池)’이다. 옛날에 세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 연못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까치가 날아와 붉은 열매를 막내 선녀의 옷에다 놓으니, 막내가 이 열매를 먹고 임신을 하여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이 사내아이가 바로 그들 민족의 시조로서, 그 성씨(姓氏)를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원지를 지난 1993년에 답사한 백두산 전문가 이형석(69) 박사에 의하면 연못의 둘레는 1.2km이고, 그 위치는 백두산 동쪽자락에 있다고 한다. 이는 또 두만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 내용은 청나라 관찬사서(官撰史書)인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청나라 태조 누루하치는 이 시조신화를 굳게 믿었기 때문에 백두산을 성지로 여겼던 것이다. 청의 전신이 후금(後金)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금(金)나라이다. 이들은 모두 ‘애신각라’의 후손들인 것이다. 하필이면 성씨를 ‘애신각라’라고 정했다는 점도 대단히 흥미롭다. ‘애신각라’의 뜻을 풀어보면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가 된다. 말하자면 이들 오랑캐들은 ‘경주 김씨’ 후손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여진족이 세운 금·후금·청은 오랑캐가 아니라, 신라의 후손들이 만주에 이민 가서 성공하여 세운 형제의 나라였던 것이다. 백두산의 원지와 비슷한 맥락에 있는 연못이 바로 태백산의 ‘황지(潢池)’이다. 태백시의 해발 700m에 있는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이다. 강의 발원지는 생명의 발원지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황지의 옛날 이름은 ‘천황(天潢)’이었다고 한다. 천지(天池)와 같은 의미이다. 백두산과 태백산은 그 무대장치(?)가 유사하다.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성산이기 때문이다. (조용헌·goat1356@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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