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아서)②`위기돌파 기업사`
이데일리 | 기사입력 2008.12.26 10:22
- "바람이 강하면 연은 더 높이 뜬다"
- "기회는 위기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이데일리 문영재 민재용기자] '가동중단, 감산, 감축, 공포, 추락, 비상경영···'
한국 경제 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말들이다. 그만큼 경제흐름이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가면서 산업 현장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수출과 내수 모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여만에 찾아온 위기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모두들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를 직시하되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달러가 없어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나라를 수년만에 세계 5대 외환보유국으로 바꾼 저력을 발휘했다. 세계개발은행은 이를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기적은 또 있다. 전쟁 폐허를 겪은 세계 최빈국을 수십년만에 메모리반도체· LCD, 디지털TV· 조선 세계1위, 조강(철강)생산 세계5위, 자동차생산 세계6위의 10대 세계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키는 힘을 보여줬다.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고 했다. 희망만 가지면 그곳에서 행복의 싹이 움튼다고도 했다.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경험이 축적돼있고, 10년전에 비해 크게 개선된 산업경쟁력과 기술력, 우수한 인재를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제 그 자산을 써 볼 '기회'가 왔다. 위기는 곧 기회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땀 흘린다면 위기극복이라는 알찬 열매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편집자)
외환위기 충격이 온나라를 강타한 지난 97년. 대기업 A사에 OEM(주문자상표부착)으로 전기밥솥을 납품하던 쿠쿠전자(당시 성광전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더 이상 납품물량을 보장할 수 없으니 독자생존할 방도를 찾으라는 A사의 통보였다.
납작 엎드린 채 일단은 버텨나가는데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정면승부(독자 브랜드 출시)에 나설 것인가. 당시 구자신 사장(현 쿠쿠 회장)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위기 뒤에 숨은 '기회'라는 녀석을 찾아내다
시장은 이미 꽁꽁 얼어붙은 상황. 대기업들조차도 주춤주춤하는 상황에서 OEM밖에 해보지 못한 중소기업이 내놓는 독자 브랜드 밥솥을 누가 사 줄 것인가. 기술력만 믿고 모든 것을 걸기에는 너무나 위험했다.
구 사장은 그러나 시장 전체의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고 판단했다. 경쟁상대가 될 대기업도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독자브랜드로 맞붙기에는 지금이 오히려 적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직원들도 호응했다. 사장실을 찾아와 "회사 경영이 정상화 되는 날까지 월급을 삭감해도 좋다"며 경영진과 함께 가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OEM만 하던 회사에 영업조직과 전문가가 있을 리 만무했다. 마땅한 외부 인재를 구하지 못한 쿠쿠전자는 자체 영업팀을 꾸려 '발품영업'에 나섰다.
품질이 좋다보니 입소문을 탔고, 현금거래를 하는 대신 전자대리점 마진을 높여주다보니 점차 대리점들이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 98년 시장에 출시된 독자브랜드 쿠쿠는 1년여만에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눈앞에 놓인 위기에 절망해 그 뒤에 몸을 숨긴 '기회'라는 녀석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과연 지금의 쿠쿠가 있었을까" 구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쿠쿠는 자체 브랜드 출시 이후 8년만인 2005년 9월 국내 971만대, 해외 30만 5000대를 판매해 전기밥솥 누적판매 1000만대를 돌파했다. 99년부터 지금까지 밥솥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면서 밥솥종주국이라는 일본 등 해외시장을 누비고 있다.
쿠쿠의 이야기는 한국기업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례는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드문 일도 아니다.
우리 기업들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가며 성공신화를 만들어 왔다. 크고 작은 위기를 수십차례 넘기며, 위기속에서 기회를 잡는 기업이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터득해 왔다.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높이 뜬다
IMF 외환위기는 삼성에게도 커다란 시련이었다. 모든 것을 다 바꾸자고 주창한 '신경영 선언'(93년)으로 그나마 체질개선에 주력해 온 삼성이었지만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전력용 반도체사업 해외매각, 서비스·물류 부문 분사, 무선호출기 사업철수, 오디오 사업의 해외이관·분사, 냉장고 제조부문 삼성 광주전자 이관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은 98년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의 생존이나 멸망을 결정짓는 것은 복잡한 경영이론이 아니라 경쟁력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력이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다. 패배 그 자체 보다는 패배의식이 더 무서운 법이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바로 자포자기하는 구조적 패배주의다"
이 전 회장은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이 뜬다고 강조했다.
그의 지적처럼 삼성의 반도체, 휴대폰, LCD 등 모든 일류사업들은 수십번의 위기 속에서도 행동력(결단)과 자신감, 희망을 통해 세계 최고수준으로 성장했다.
정부 고위 관료가 공개석상에서 "차라리 신발산업을 밀어주는게 낫겠다"며 삼성의 반도체 진출선언(83년)을 폄하할 때 삼성은 오히려 미국과 일본으로 반도체기술 연수단을 파견하는 '고행'을 선택했다.
시판 휴대폰에서 결함이 발견됐다는 보고에 바로 15만개 제품을 수거, 공장 임직원들 앞에서 한꺼번에 불태우며 '품질'만이 생존을 보장한다고 외쳤다.
외환위기 때 반도체 말고 모든 사업에서 철수하라는 해외 전문가와 투자자들의 요구에도 "당신들은 1~2년을 보고 투자할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적어도 5년~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한다"며 거부했던 경영진의 강단도 삼성의 위기극복에 한몫 했다.
◇기본을 다시 가다듬다
지금은 세계5위 자동차메이커로 성장한 현대자동차. 이 회사는 지난 70년대 말 2차 오일쇼크와 정부의 자동차 소비억제책이 맞물리면서 판매부진과 재무구조 악화의 위기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지 못한다며 이른바 '한국 자동차산업 무용론'까지 거론했다. 총체적인 위기 국면이었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현대차는 사업계획을 전면 재조정하는 한편 생산성 향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전사원 1인1건 제안' 같은 캠페인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자잘한듯한 이같은 캠페인은 당시 해마다 수십억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가져다줬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사례였다.
현대차는 또 신제품 개발과 품질개선, 30만대 생산체제 비전제시, 연구개발(R & D) 투자 확대와 독자엔진 개발, 수출차종 수출국 다변화 등의 위기 타개책을 빠짐없이 추진했다.
외환위기 이후 현대차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글로벌 확장전략이다. 업계에서는 IMF 이후 10년간 현대차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로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도공장을 증설하고 중국에 생산거점을 확보함으로써 신흥개도국의 수요를 선점할 수 있었고 현대차는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지난 98년 기아차 인수는 '규모의 경제'를 누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저평가 고민'..한국 경영사 큰 획을 긋다
2000년,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한국 기업경영사에 큰 획을 긋는 결단을 내린다. 국내 대기업 그룹 가운데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LG전자, LG화학 등 LG그룹 주력 계열사들은 높은 기업가치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출자구조 등으로 인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주가가 낮다고 회사가 망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기업가치 저평가는 향후 직간접적으로 자금조달, 재무구조, 브랜드 가치, 시장신뢰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LG로서는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LG전자와 LG화학을 각각 분할해 전자와 화학지주회사를 만든 뒤 각각의 지주회사를 합쳐 통합지주회사 ㈜LG를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에 얽힌 지분관계를 싹 정리했다. 3년에 걸친 작업끝에 지주회사 체제로 재탄생한 LG는 경영 투명성 제고, 지배구조 선진화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기업가치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계열사들의 실적 또한 눈에 띄게 개선됐다. 과거처럼 몇몇 주력사들이 출자부담까지 안고 가야했던 구조였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살 길은 '이사회 중심 투명경영'이었다
SK그룹이 지난 2003년 'SK글로벌'사태를 딛고 '더 행복한'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데는 지배구조 개선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으로 시장신뢰를 쌓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말 SK텔레콤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들의 반란'으로까지 일각에서 표현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메모리반도체 설계업체 에이디칩스 인수건을 사외이사들이 부결시킨 것. 회사측은 이미 이사회가 열리기 열흘 전 에이디칩스 인수계획을 공시까지 했었다.
사외이사들은 인수 타당성을 물고 늘어졌다. 회사는 이같은 이사들의 지적을 전격수용했다. 이사회에서는 표대결없이 인수포기가 결의됐다.
SK그룹은 이사회 중심경영이 가장 잘 정착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사회야말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로 작동하고 있다. SK그룹의 이같은 정책은 지난 2003년 SK글로벌 사태를 겪으며 강화됐다.
SK글로벌 사태는 SK그룹 뿐 아니라 한국경제를 한때 흔들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이 파산할 경우 주력 계열사까지 흔들려 그룹 전체가 공중분해될 수 있는 위기상황이었다.
SK가 위기극복 방안으로 선택한 것은 투명경영을 통해 다시 시장신뢰를 쌓겠다는 것이었다. 사외이사 비율을 일찌감치 과반수 이상으로 높이고, 깐깐하기로 이름난 이사후보들을 대거 받아들여 명실상부한 이사회중심 경영을 정착시키는데 주력했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이사들을 상대로 경영설명회를 가졌다. 본사에는 사외이사들의 집무실이 따로 만들어졌고 이들을 보좌하는 이사회 사무국도 강화됐다.
개선이 아니라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주주와 고객,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행복경영'이 자리를 잡고 SK네트웍스 정상화 작업에 속도가 붙으면서 SK는 위기 이전보다 더 강한 클린컴퍼니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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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는 위기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이데일리 문영재 민재용기자] '가동중단, 감산, 감축, 공포, 추락, 비상경영···'
한국 경제 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말들이다. 그만큼 경제흐름이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가면서 산업 현장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수출과 내수 모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여만에 찾아온 위기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모두들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를 직시하되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달러가 없어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나라를 수년만에 세계 5대 외환보유국으로 바꾼 저력을 발휘했다. 세계개발은행은 이를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기적은 또 있다. 전쟁 폐허를 겪은 세계 최빈국을 수십년만에 메모리반도체· LCD, 디지털TV· 조선 세계1위, 조강(철강)생산 세계5위, 자동차생산 세계6위의 10대 세계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키는 힘을 보여줬다.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고 했다. 희망만 가지면 그곳에서 행복의 싹이 움튼다고도 했다.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경험이 축적돼있고, 10년전에 비해 크게 개선된 산업경쟁력과 기술력, 우수한 인재를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제 그 자산을 써 볼 '기회'가 왔다. 위기는 곧 기회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땀 흘린다면 위기극복이라는 알찬 열매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편집자)
외환위기 충격이 온나라를 강타한 지난 97년. 대기업 A사에 OEM(주문자상표부착)으로 전기밥솥을 납품하던 쿠쿠전자(당시 성광전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더 이상 납품물량을 보장할 수 없으니 독자생존할 방도를 찾으라는 A사의 통보였다.
납작 엎드린 채 일단은 버텨나가는데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정면승부(독자 브랜드 출시)에 나설 것인가. 당시 구자신 사장(현 쿠쿠 회장)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위기 뒤에 숨은 '기회'라는 녀석을 찾아내다
시장은 이미 꽁꽁 얼어붙은 상황. 대기업들조차도 주춤주춤하는 상황에서 OEM밖에 해보지 못한 중소기업이 내놓는 독자 브랜드 밥솥을 누가 사 줄 것인가. 기술력만 믿고 모든 것을 걸기에는 너무나 위험했다.
구 사장은 그러나 시장 전체의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고 판단했다. 경쟁상대가 될 대기업도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독자브랜드로 맞붙기에는 지금이 오히려 적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직원들도 호응했다. 사장실을 찾아와 "회사 경영이 정상화 되는 날까지 월급을 삭감해도 좋다"며 경영진과 함께 가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OEM만 하던 회사에 영업조직과 전문가가 있을 리 만무했다. 마땅한 외부 인재를 구하지 못한 쿠쿠전자는 자체 영업팀을 꾸려 '발품영업'에 나섰다.
품질이 좋다보니 입소문을 탔고, 현금거래를 하는 대신 전자대리점 마진을 높여주다보니 점차 대리점들이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 98년 시장에 출시된 독자브랜드 쿠쿠는 1년여만에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눈앞에 놓인 위기에 절망해 그 뒤에 몸을 숨긴 '기회'라는 녀석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과연 지금의 쿠쿠가 있었을까" 구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쿠쿠는 자체 브랜드 출시 이후 8년만인 2005년 9월 국내 971만대, 해외 30만 5000대를 판매해 전기밥솥 누적판매 1000만대를 돌파했다. 99년부터 지금까지 밥솥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면서 밥솥종주국이라는 일본 등 해외시장을 누비고 있다.
쿠쿠의 이야기는 한국기업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례는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드문 일도 아니다.
우리 기업들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가며 성공신화를 만들어 왔다. 크고 작은 위기를 수십차례 넘기며, 위기속에서 기회를 잡는 기업이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터득해 왔다.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높이 뜬다
IMF 외환위기는 삼성에게도 커다란 시련이었다. 모든 것을 다 바꾸자고 주창한 '신경영 선언'(93년)으로 그나마 체질개선에 주력해 온 삼성이었지만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전력용 반도체사업 해외매각, 서비스·물류 부문 분사, 무선호출기 사업철수, 오디오 사업의 해외이관·분사, 냉장고 제조부문 삼성 광주전자 이관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은 98년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의 생존이나 멸망을 결정짓는 것은 복잡한 경영이론이 아니라 경쟁력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력이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다. 패배 그 자체 보다는 패배의식이 더 무서운 법이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바로 자포자기하는 구조적 패배주의다"
이 전 회장은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이 뜬다고 강조했다.
그의 지적처럼 삼성의 반도체, 휴대폰, LCD 등 모든 일류사업들은 수십번의 위기 속에서도 행동력(결단)과 자신감, 희망을 통해 세계 최고수준으로 성장했다.
정부 고위 관료가 공개석상에서 "차라리 신발산업을 밀어주는게 낫겠다"며 삼성의 반도체 진출선언(83년)을 폄하할 때 삼성은 오히려 미국과 일본으로 반도체기술 연수단을 파견하는 '고행'을 선택했다.
시판 휴대폰에서 결함이 발견됐다는 보고에 바로 15만개 제품을 수거, 공장 임직원들 앞에서 한꺼번에 불태우며 '품질'만이 생존을 보장한다고 외쳤다.
외환위기 때 반도체 말고 모든 사업에서 철수하라는 해외 전문가와 투자자들의 요구에도 "당신들은 1~2년을 보고 투자할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적어도 5년~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한다"며 거부했던 경영진의 강단도 삼성의 위기극복에 한몫 했다.
◇기본을 다시 가다듬다
지금은 세계5위 자동차메이커로 성장한 현대자동차. 이 회사는 지난 70년대 말 2차 오일쇼크와 정부의 자동차 소비억제책이 맞물리면서 판매부진과 재무구조 악화의 위기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지 못한다며 이른바 '한국 자동차산업 무용론'까지 거론했다. 총체적인 위기 국면이었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현대차는 사업계획을 전면 재조정하는 한편 생산성 향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전사원 1인1건 제안' 같은 캠페인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자잘한듯한 이같은 캠페인은 당시 해마다 수십억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가져다줬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사례였다.
현대차는 또 신제품 개발과 품질개선, 30만대 생산체제 비전제시, 연구개발(R & D) 투자 확대와 독자엔진 개발, 수출차종 수출국 다변화 등의 위기 타개책을 빠짐없이 추진했다.
외환위기 이후 현대차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글로벌 확장전략이다. 업계에서는 IMF 이후 10년간 현대차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로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도공장을 증설하고 중국에 생산거점을 확보함으로써 신흥개도국의 수요를 선점할 수 있었고 현대차는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지난 98년 기아차 인수는 '규모의 경제'를 누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저평가 고민'..한국 경영사 큰 획을 긋다
2000년,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한국 기업경영사에 큰 획을 긋는 결단을 내린다. 국내 대기업 그룹 가운데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LG전자, LG화학 등 LG그룹 주력 계열사들은 높은 기업가치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출자구조 등으로 인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주가가 낮다고 회사가 망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기업가치 저평가는 향후 직간접적으로 자금조달, 재무구조, 브랜드 가치, 시장신뢰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LG로서는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LG전자와 LG화학을 각각 분할해 전자와 화학지주회사를 만든 뒤 각각의 지주회사를 합쳐 통합지주회사 ㈜LG를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에 얽힌 지분관계를 싹 정리했다. 3년에 걸친 작업끝에 지주회사 체제로 재탄생한 LG는 경영 투명성 제고, 지배구조 선진화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기업가치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계열사들의 실적 또한 눈에 띄게 개선됐다. 과거처럼 몇몇 주력사들이 출자부담까지 안고 가야했던 구조였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살 길은 '이사회 중심 투명경영'이었다
SK그룹이 지난 2003년 'SK글로벌'사태를 딛고 '더 행복한'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데는 지배구조 개선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으로 시장신뢰를 쌓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말 SK텔레콤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들의 반란'으로까지 일각에서 표현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메모리반도체 설계업체 에이디칩스 인수건을 사외이사들이 부결시킨 것. 회사측은 이미 이사회가 열리기 열흘 전 에이디칩스 인수계획을 공시까지 했었다.
사외이사들은 인수 타당성을 물고 늘어졌다. 회사는 이같은 이사들의 지적을 전격수용했다. 이사회에서는 표대결없이 인수포기가 결의됐다.
SK그룹은 이사회 중심경영이 가장 잘 정착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사회야말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로 작동하고 있다. SK그룹의 이같은 정책은 지난 2003년 SK글로벌 사태를 겪으며 강화됐다.
SK글로벌 사태는 SK그룹 뿐 아니라 한국경제를 한때 흔들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이 파산할 경우 주력 계열사까지 흔들려 그룹 전체가 공중분해될 수 있는 위기상황이었다.
SK가 위기극복 방안으로 선택한 것은 투명경영을 통해 다시 시장신뢰를 쌓겠다는 것이었다. 사외이사 비율을 일찌감치 과반수 이상으로 높이고, 깐깐하기로 이름난 이사후보들을 대거 받아들여 명실상부한 이사회중심 경영을 정착시키는데 주력했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이사들을 상대로 경영설명회를 가졌다. 본사에는 사외이사들의 집무실이 따로 만들어졌고 이들을 보좌하는 이사회 사무국도 강화됐다.
개선이 아니라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주주와 고객,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행복경영'이 자리를 잡고 SK네트웍스 정상화 작업에 속도가 붙으면서 SK는 위기 이전보다 더 강한 클린컴퍼니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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