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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원적지...오마이 뉴스

by 바로요거 2008. 7. 28.
불 붙은 발바닥으로 민주광장에 서다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7-06-08 10:07 | 최종수정 2007-06-08 10:28 기사원문보기
[오마이뉴스 이정환 기자]

▲ 2003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축제 당시
ⓒ2007 김진석
젊은 세대 중 '이애주'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혹시 6월 항쟁과 월드컵 개최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축제에 참가했던 사람이라면, 위 사진이 낯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신이 1987년 6월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이애주'는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특히 6·26 평화대행진 서울대 출정식에, 서울시청 앞 광장의 이한열군 장례식에 참가했던 당신이라면, 그의 '시국춤'은 얼마나 가슴 뛰는 기억이겠는가.

이제 20년이다. 사진들에서도 여러 차이가 발견된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리와 흐트러진 머리카락, 관객이 보이지 않는 무대와 그렇지 않은 '마당'.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신문으로 모자를 만들어 쓴 학생들. 그리고 작지만 큰 차이를 또 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일 이애주 교수(서울대)와 만나고 난 후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고, 운동가들 막 나오는 거야. 당시 북받치던 노래 말이에요. 아주 처절하게…. 아무 약속도 없었는데… 그렇게 한마음으로 몇천명이 부르는 거야. 그러니 나도 신명이 극도에 달하는 거지. 막 불 같이… 너무 뜨거워서 불길이 붙어버린 거지. 살이 벗겨지고 발바닥이 다 데었더라구. 시멘트 바닥이었으니까…. 끝나고 나서야 알았죠."

2007년 6월 9일

▲ 1987년 6월 26일 평화대행진 서울대 출정식 '바람맞이' 공연
ⓒ2007 박용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이애주 교수
ⓒ2007 이정환
춤꾼 이애주가 다시 당신 앞에 선다. 오는 9일 열리는 민주주의 시민축제 서울 지역 행사를 통해, 4년 만에 '6월 광장'에 돌아온다.

6월 항쟁 20년인 만큼, 대규모로 벌어지는 '신명판'이다. 남대문 광장에서 6·10을 상징하는 610명의 풍물패와 함께 하는 길놀이가 시작이다. 6·10 해방북춤은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이어지고, 이애주 춤 공연단 80명과 풍물패 100명이 등장한다. 그리고 한바탕 대동춤까지, 이애주 교수는 함께 걷고 노래하고 춤출 예정이다. 주제는 상생 평화다.

- 2003년 공연과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진혼굿이 주였다면, 이번에는 상생과 평화가 주제니까. 6월 희생자뿐 아니라, 역사 속에 산화해 간 분들의 영령을 불러요. 그리고 우리 자신까지도 포함해 예를 올려요. 넋과 혼을 아주 크게 풀어주는 거죠. 나쁜 것은 다 떨쳐 버리고, 밀어 버리고. 모두 소리치면서 노래하고 걷고 뛰는 활기찬 '상생', 그것이 곧 평화라는 거죠."

'상생'. 정치권을 통해 자주 듣게 되는 단어다. 하지만 증산도에서 처음 썼다고 하는 '상생'이란 용어에는 단서가 붙어있다. '해원상생(解怨相生)'이다. '너만 살지 말고, 나만 살지 말고, 함께 살자'면 먼저 원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데 '너'의 한을 풀어줄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은데, 자꾸 '상생의 정치'란다. 이애주 교수의 '상생 평화'란 주제에 다소 심술이 난 이유다.

"승무에서 '승(僧)'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 온 중생, 모든 사람을 의미해요. 승무 역시 모든 사람들의 몸짓이란 거죠. 길닦음춤에서 베를 가르고 지나가죠? 길이 '도(道)'고, 닦을 '수(修)'잖아요. 수도(修道)더라구. 춤은 수행이구나, 몸 수행하면서 정신 수행하는 거구나.

춤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걸음이죠. 하지만 우리가 전진만 하느냐, 물러서기도 하죠. 전진만으로 역사가 되나요? 전진하면서 물러서고, 물러서면서 전진하고…. 결국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거죠. 삼진삼퇴(三進三退)란 춤사위가 있어요. 이게 사실은 삶의 원리고, 역사의 원리죠."

괜한 심술이었다. 춤은 '삶(生)'과 다르지 않다는 철학, 게다가 이 교수의 춤에는 한을 풀어내는 해원(解怨)까지 있지 않은가. 그만 '물러서려 하는데' "육십갑자나 삼진삼퇴나 똑같다"는, "회갑도 그렇다"는 이야기로 번지면서, 이 교수는 벌떡 일어나 직접 춤까지 시연한다. 일단 끊어야 했다.

- (이애주 교수는 1947년생이다) 교수님, 올해 회갑 아니세요?
"나이는 묻지 마요(웃음)."

1987년 6월 26일

꼭 20년 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교수의 춤을 '눈물'로 기억하고 있다. 2002년 <오마이뉴스> 인터뷰 기사에 어느 독자는 '잊지 못할 연세대에서의 춤!'이란 제목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추던 춤을 눈물로 기억한다"고 적었고, 또 다른 독자 역시 "이름 없는 노동자로 선생님의 춤을 보면서 많이도 울었다"며 안부를 전했다.

물론 슬픔의 눈물만은 아닐 것이다. 이 교수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6·26 평화대행진 서울대 출정식에서 '바람맞이'를 마치고 말이다. 발바닥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 이 교수는 TV 화면을 통해 느꼈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공연이 끝나고 모두들 거리로 나갔어요. 난 못 나갔지. 잘 걷지 못하니까, 부축을 받아 겨우 집에 돌아갔는데. TV를 보면서 약을 바르고 있었어요. 마침 뉴스가 나와요. 시청 앞도 나오고 명동 앞도 나와요. 전국에서 함성을 지르고 최루탄 터지는 그런 뉴스가 막 나오는데…. 눈물이 '주르륵' 막 나더라구."

ⓒ2007 이정환
어느 날 갑자기 맺힌 눈물은 아니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맞서 김민기·김영동·김지하·임진택·장선우 등과 함께 일찍부터 문화 저항 운동에 나섰다. 덕분에 그는 '떠밀리듯' 뉴욕으로 떠나, 슈퍼마켓 점원도 하고, 보따리 장사도 했다고 한다. 1982년에야 고국 땅에 돌아왔지만, 독재는 여전했다.

서울대 교수로 이애주의 저항도 다시 시작됐다. 민중문화운동협의회 활동에 참여했고, 연우무대 공연을 통해 '바람맞이 춤'도 탄생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생명의 씨앗을 상징하는 '씨춤', 씨앗에 물을 주고 햇볕을 주는 '물춤과 불춤' 그리고 생명의 씨앗이 꽃으로 피어나는 '꽃춤'이 어우러진 '바람맞이'가 시국을 '탄' 것은 아니었다.

"상업 공연이었어요. 표값도 싸지 않았는데, 공연 날 보니까 줄이 엄청나더라구요. 꾸역꾸역 막 밀고 들어오니 춤판이 돗자리 하나밖에 없네?(웃음). 제자들에게 약속했어요. '너희들 얘기'를 다 넣어주겠다. 박종철·이한열·김세진·이재호…. 다 너희들 얘기 아니냐. 그런데 같이 공연하는 사람들이 장단을 못 맞춰주겠다는 거야."

- 왜요?
"왜긴 왜겠어. 겁나니까. 그래서 못했지. 서울대 춤패 애들이 '선생님 때문에 애들 앞에서 얼굴 못 들고 다닌다'고, '거짓말한 꼴이 됐다'고 그러는 거야. 그럼 너희한테 가르쳐 줄 테니까 할래? 하겠대. 밤새도록 가르쳤지. 경기도 도당굿 가락이라 굉장히 어렵거든요? 기성인도 어려운데, 학생들이니 얼마나 어렵겠어. 그런데도 해냈지. 그래서 공연하게 된 거야. 6월 26일에."

"누님! 사회가 춤추게 하셔야 됩니다"

 
▲ 이한열군 장례식에서 춘 한풀이 춤
ⓒ2007 고명진
결국 '시국춤'은 이애주 교수,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불의가 판을 치는 시대와 어우러진, 그리고 시대의 아픔을 느끼는 젊은이들과 함께 만든 춤판이었다. 이 교수는 '바람맞이' 직전, 후배들에게 들었던 말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새고 앉아 있는데, 후배 정희섭(현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이 '누님, 어쩌다 이렇게 앉아있게 됐수' 그래요. 이 상황이 대체 뭐냐, 이 얘기지. 또 다른 후배는 이래요. 누님! 사회가 춤추게 하셔야 됩니다. 누님 춤으로 사회가 춤을 춰야 한다구. 굉장한 말을 하더라구."

- 정말 굉장한 말이네요. 두렵지 않았나요?
"두렵지 않았어요. 참여한 거야. 동참한 거야, 그냥.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그냥 나는 몸으로 같이 행동한 것뿐이에요. 무슨 생각하고 몸 실천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 시국춤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부분적으로는 맞죠. 때 '시(時)'고, 나라 '국(國)'이니까. 그때, 그 나라에 맞는 춤이니까. 그렇게 해석하면 맞는데, 사실 처음에는 참 생소하더라구요."

- 지금은 어떠세요?
"시국춤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춤은 당연히 계속 있어야죠. 그런데 과연 지금 나라의 몸짓이 있는가. 잃어버린 나라의 몸짓, 민족의 몸짓, 우리의 몸짓을 되살려야죠. 지금 우리가 정말 정신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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