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회진출 어디까지 왔나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대학가와 사회에서 ‘여성주의(페미니즘·feminism)’담론이 활발히 전개됐고 직업세계에서 성공을 거둔 여성들이 ‘커리어 우먼’으로 화려하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2007년 지난 한해 국내 여론을 접수한 신조어 중 하나가 ‘알파걸’이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페미니즘 세대의 첫 열매요, 성과로 평가됐던 알파걸.
이렇게 지난 20여년간 ‘강한 여성’이 끊임없이 주목받아 왔지만 화려한 여성의 현실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여전히 어둡다.
2008년 한국의 여성과 관련한 담론과 현실의 한계를 짚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을 살펴본다.
#그녀들의 화려한 현실
지난 2007년 한 해 동안에는 자기계발과 직업 성취를 우선시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관심을 끌었다.
탄탄한 직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신생활을 즐기며 자기계발에 돈을 아끼지 않는 30대 싱글 여성을 일컫는 ‘골드미스’는 2000년대 초반 벤처산업 열풍과 함께 알려지기 시작해 이제 사회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직장 여성 10명 가운데 7명은 ‘골드 미스’를 꿈꾼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가 하면 미국에서도 경제력은 있으면서 배우자는 없는 여성인 ‘스완 SWANS (Strong Women, Achiever, No Spouse)족’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었다.
‘강한 여성’의 시대를 확고히 알려주는 신조어는 역시 ‘알파걸’이었다.
하버드대 아동심리학 교수인 댄 킨들러 박사가 2006년 발표한 ‘새로운 여자의 탄생-알파걸’에서 비롯된 알파걸은 학업, 운동, 리더십, 모든 면에서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 엘리트 소녀를 말한다.
경제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을 짚는 ‘우머노믹스(Womwnomics)’란 신조어도 화제였다.
영국의 권위있는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해 4월 ‘우머노믹스가 되돌아오다(Womenomics revisited)’란 기사를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을 집중 조명했다.
우머노믹스는 여성(Women) 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세계경제포럼(WEF) 조사결과 남녀가 평등한 나라일 수록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이 높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일컫는 ‘남아선호사상’도 흔들렸다.
지난 해 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기혼 여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1991년 40.5%에서 2007년에는 10.1%로 4분의 1이 줄었다.
신한국의 여풍은 허풍인가
2007년, 외무고시 합격자 10명 가운데 7명은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 절반이 여성으로 알파걸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지난 해 11월 한국 사회 여풍의 실체를 보여주는 초라한 성적표가 발표됐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2007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여성권한척도는 93개국 가운데 64위로 2006년 59위에 비해 오히려 5계나 내려간 것이다.
한국의 여성권한척도(GEM)는 국회 여성의원 비율 13.4%, 고위 임직원 및 관리직 여성비율 8% 등인 현실이 93개 국 중 64위를 차지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과 정치 분야에 재기발랄한 알파걸 신입 여성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지만 한 분야에서 리더로 활약하는 여성은 여전히 극소수로 아직까지 예외 적인 사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리천장이란 개념이 나온지 20년이 되는 지난 해 한국에서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서 비상임이사(사외이사)를 임명할 때 30%는 무조건 여성으로 뽑게하는 법률 개정안이 4월 발의됐지만 연말 대선정국에 밀려 연내 통과 되지 못했다.
알파걸의 화려한 면모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KTX 여성 승무원 문제로 대변되는 ‘여성 비정규직’도 있다.
여성 비정규직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44만명의 여성임금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67.6% (435만 5,000만명)에 달했고 ,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은 남성 정규직의 4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여성들이 더 발전하기 위해 2008년 주력해야 할 과제들은 무엇이 있을까.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정부에서 여성을 위한 각종 정책과 제도를 발표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문화와 발상의 전환이란 지적이다.
사회학자들은 “남성들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늘어나면 남성 고유의 영역을 빼앗긴다고 여기는 게 사실”이라며 “이를 극복하는 것이 양성평등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의 인력개발과 발전이 남성의 영역을 좁히는 ‘레드오션형 발상’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발전이 된다는 블루오션형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
세계적으로 유명한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는 미국 100대 기업 중 여성 관리직 비율이 높은 상위 10% 기업들은 1996년∼2000년까지 주가 수익률이 해당 산업의 평균보다 약 12배에 이른 반면 하위 10%의 기업들은 0.4배에 그쳤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직장 여성과 커리어 우먼에게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 등에서 임원으로 근무 중인 서유순, 오철숙, 이영숙씨는 말단 사원에서부터 20년간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지난 해 발간한 ‘여성 리더가 알아야 할 파워코칭 27’을 통해 엄마가 꼭 아이를 길러야 한다는 발상 대신, 사회적으로 확산 되고 있는 가사 도우미나 아이 돌보미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연구실장은 “외연적으로 확대되는 정책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작용하는가가 문제”라며 “여성정책은 속성상, 상징정책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책의 공식 목표와 실질적인 기능간의 간극을 밝히고 이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하림기자 peace@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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