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역사] 동서문명 중심지…숱한 침략 당해
이라크의 역사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만나는 메소포타미아(‘강의 사이’라는 뜻) 평원을 중심으로 한 문명과 이를 욕심낸 외부 세력 침략의 되풀이였다.
기원전 4000년 이 기름진 평원에선 세계 최고(最古)의 수메르 하천 문명이 일어나 이전까지 유목에 의존했던 고대인에게 최상의 정착지를 제공했고, 쐐기 문자의 발명, 바빌로니아 왕조 시절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50년경) 제정 등으로 이어지면서 메소포타미아는 국제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이런 천혜(天惠)의 정착 조건은 곧바로 북부 아시리아라는 외세(外勢)를 유인했고, 아시리아는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뒤 인위적으로 유프라테스 강의 수위를 높여 바빌로니아 전체를 수몰시키기도 했다.
이라크는 바빌로니아·아시리아에 이어, 이슬람 영향 하에 있던 아바스 왕조(750~1258년) 시대에 두 번째 번영기를 맞는다. 아바스 왕조는 기존의 아랍 중심주의에서 탈피해 초민족적인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고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바그다드는 그 당시 세계의 양극(兩極)인 지중해와 극동을 연결하는 중심 고리가 됐고, 동쪽의 페르시아·인도·중국 문명과 서쪽의 비잔틴 문명이 이곳에서 만났다.
그러나 이라크는 또다시 몽골과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받게 되고, 153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400여년 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후 1920년 영국의 위임 통치령을 거쳐 1932년 파이잘을 국왕으로 한 입헌 군주국이 됐다. 1958년 쿠데타를 통해서 왕정이 타도됐고, 1968년 아랍 통일을 표방한 바트당이 집권했다.
이후 이라크는 ‘제3의 번영기’를 맞았다. 번영의 원동력은 바로 풍부한 석유 자원. 낙후된 아랍권에서 유일하게 선진화에 성공하는 듯한 이라크를 배우려는 사람들로 바그다드가 붐볐고, 제2의 도시 바스라는 국내외 관광객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또다시 ‘역사의 저주’가 시작된 것일까. 1990년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은 끝내 초강대국 미국의 ‘분노’를 샀고, 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에 이어 20일 다시 미국의 무력 공격을 받게 됐다.
출처 :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