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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 神敎文化

2. 신교는 신선도(神仙道)맥

by 바로요거 2008. 3. 26.

2. 신교는 신선도(神仙道)맥

 

    * 하루는 성도들이 태모님께 ‘교이름(敎名)을 무엇으로 하실 것인가를 여쭈매 “천하를 통일하는 도(道)인데 우선 때가 이르니 ‘선(仙)’이라고만 하라. 후일 다시 진법이 나오면 알게 되리라.” 하시니라.(도전 11:25)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유불선(儒佛仙)의 기운을 쏙 뽑아서 선(仙)에 붙여 놓았느니라" 하시니라. (도전 4:16)

지금의 사람들은 근본정신인 이 신교에 대한 가르침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왜 신교라는 말을 썼는가 하면, 이신설교(以神說敎) 때문에 신교라고 얘기합니다. 신을 대상으로 신의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뜻입니다. 우선 신(神)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우주의 절대자를 지칭하는데 그 분을 상제(上帝)라고 호칭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독특해서 그냥 상제라고 하지 않고 접두사를 붙여서 삼신상제(三神上帝)라고 합니다. 고구려 중기에 불교가 수입되었지만, 그것이 국교로 선포되지는 않았습니다. 불교는 일반적인 외래종교로서 평범하게 얘기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만 해도 속리산에 가서 천제를 지냈다는 분명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 천제가 과연 막연한 하늘에 대한 제사였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였습니다. 인간과 모든 만물을 지배하는 상제께 천제를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일반적인 신에 대한 개념입니다. 옛 부터 우리민족은 물활론(物活論)적인 애니미즘(animism)으로, 만유정령설이라 해서 무생물에도 신이 내재해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신을 섬기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문화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전에 용왕(龍王) 또는 용신(龍神), 수신(水神)에게 풍어제를 지내거나, 산에 나무를 하러 들어가면 산신제를 지내고, 묘자리 하나를 파도 산신제를 지내는 것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애니미즘입니다.

요새 샤머니즘(shamanism)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자가 많이 나오는데, 이 중 엘리아데 같은 사람은 아주 유명한 연구자입니다. 그 밖에도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한 것이 신교인데, 신교문화는 한마디로 신과의 교감과 제사문화라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민족에게 있어 우주의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 바로 신교입니다. 이것은 절대신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7500년동안 우리민족의 국교로서 자리잡아왔던 근본적인 가르침이 신교인데, 이 신교가 왜 중요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바로 이 신교가 유불선(儒佛仙)의 모체종교라는 점입니다. 유불선이라는 종교가 신교에서 가지를 쳐 뻗어나갔던 것입니다.

신교의 기원은 환인 천제부터였는데, 7대동안의 역년이 3301년이니까 평균잡아서 500살 정도로 장생불사를 했습니다. 신교의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장생불사(長生不死)인데, 그 맥이 소설 '단'에 나오는 그런 신선의 맥, 선도(仙道)의 맥으로서 신교의 맥입니다. 노자 장자의 맥이 아니라 그것은 신교의 맥입니다. 신교와 본래 신선도는 결국 한 뿌리인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로써 후천 장생불사의 신선세계가 열린다는 것도 신교 즉, 신선 도맥과 연관지어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가지로 뻗어서 갈려나간 선천 유불선의 진액이 결국은 신교의 선맥(仙脈)으로 다시 귀결되어집니다.

초대 환인천제께서 천산(天山)에 내려와 장생불사하면서 삼신상제께 천제를 지냈습니다. 그 때는 제정일치(祭政一治) 시대로서 환인 자신이 정치적인 군장이면서 프리스트(Priest-성직자)의 역할을 동시에 했습니다. 그는 전 백성들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아 통치를 했는데, 그 구심점이 바로 삼신상제(三神上帝)님께 드리는 천제(天祭)였습니다. 천제는 3월 16일과 10월 3일 두번에 걸쳐서 지냈습니다.

우리민족에 있어서 위대한 선각자들은 전부 신교의 신앙자들이었습니다. 연개소문, 광개토경호태열제, 을지문덕 장군 등은 3월 16일이 되면 말을 달려 강화도 마리산에 이르러 삼신상제께 천제를 지내고, 10월 3일이면 백두산에 가서 천제를 지냈다는 것이 분명히 역사에 나오고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도 신교의 맥을 이은 분입니다. 또 고주몽성제도 직접 신교의 맥을 이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신교의 맥이 언제부터 끊어졌는가, 대진국이 망하면서 끊어졌습니다.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고구려가 망한 이후의 정통을 전부 신라로 잡고 있는데, 신라로 잡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신라에 화랑도가 있었지만, 우리민족의 본래 영토와 뿌리는 한반도가 아닙니다. 우리민족은 대륙민족이지 반도민족이 아닙니다.

사대주의자 김부식에 이어 일인들의 식민사관으로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정신이 말살되었지만, 당당하게 우리는 고구려의 후손, 대진국의 후손입니다. 대진국이 망하면서 신교의 맥은 끊어졌다고 보지만, 고려시대에는 복원관(福源觀)이라는 제도를 두고, 조선시대에는 소격서(昭格署)라는 관청을 두어, 비록 불교가 국교로 되고 유교가 국교로 된 사회였지만 삼신상제께 천제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미미하게나마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고려의 복원관과 조선의 소격서에서 태을제(太乙祭)를 지내 왔으나, 조선왕조로 넘어오면서 초기에는 그 전통이 살아있다가 유교사회가 본궤도로 진입하면서 그 위상이 격하되다가 기어코 사대주의 사상에 영혼을 팔아버린 조 광조와 유생들에 의해 삼신상제님과 천지신명에게 제사 올리던 제기(祭器)와 신위(神位)까지 모조리 파묻혀 버리고 소격서가 폐지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