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4일 (목) 17:00 뉴스메이커
[조명]이땅의 모순은 이땅의 종교를 만들었다
|
인간은 한계를 통해서 성장한다.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안주할 수 없는 것이 정신의 본질이다. 역사에 도전하고 문화를 개혁하며 계급을 혁명하는 것은 그런 인간정신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자 시도다. 이러한 노력은 형이상학과 종교의 영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세계관으로 풀이되지 못하고 기존의 가치가 세상을 규명하지 못할 때, 인간은 좌절하거나 더러는 이를 돌파하려 한다. 인류의 지성과 문명이 인간의 문제를 해명해준다면 철학적인 번민과 종교적인 고뇌는 없어도 될 것이다. 시대마다 당대의 문제를 경험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그에 맞추어 새로운 이상을 세우는 일도 당연하다.
어떤 믿음이 종교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집단과 의식과 교의를 지녀야 한다. 민족의 정서를 관통하는 무속의 세계관이 종교가 되지 못한 것은 그만큼 강력한 집단의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이래 외래 종교가 들어오면서 우리 민족도 강력한 종교를 체험했고 이 땅에서 새로운 종교도 태어난다.
종교는 또 다른 사회 시스템이다. 기존의 권력과는 다른 형태의 권위를 조직하고 스스로 결집된 힘을 갖춘다. 그래서 세속의 눈에 종교가 권력으로 비칠 때도 있고 두려움을 갖는 경우도 있다. 세상의 모순이 커질수록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한 종교의 힘은 커지고 더러는 현실 권력과 맞서기도 한다. 우리 역사는 그것을 반복해서 경험해왔다.
세상에 절망이 넘치고 있다는 방증
거리에 넘치는 교회와 종교단체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크게 종교에 의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민족의 정서가 종교적이거나 세상에 절망이 넘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땅의 모순은 이 땅의 종교를 만들어냈다. 더러는 외래 종교의 뿌리에 우리의 가치를 접목하기도 했고, 어떤 것은 민족의식의 심연에서 싹을 틔우기도 했다.
새로운 가치와 이념이 생길 때 이는 기존 질서와 당연히 충돌한다. 종교에서도 당연히 발생하는 일이다. 갓 생겨난 종교는 이단으로 혹은 사이비로 비난받으며 스스로 조직해나간다.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창종주와 함께 그 종교의 생명도 끝나고 만다.
이 땅에서 태어나 활착에 성공하거나 번창한 종교는 몇 가지 모습을 띤다. 첫째는 외래 종교를 기반으로 한국적인 가르침을 펼치는 데 성공한 예로, 불교와 기독교를 모태로 종파적인 특징을 세운 경우다. 기독교의 틀 안에는 통일교가 대표적이고 천부교·영생교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불교의 경우 천태종과 진각종·총지종 등이 이에 해당한다. 미미하지만 도교와 유교를 바탕으로 한 종파도 있다.
둘째는 민족 정서를 기반으로 종교를 세운 경우다. 천도교와 대종교·증산도·대순진리회 등이 이 경우에 속한다. 그밖에도 한국적인 종교로 분류할 수 있는 종파가 있으나 미약하거나 반사회적이라는 비난 속에 교세를 크게 펼치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종교적 가르침이 보편성보다 특수성을 강조하고 개방적이기보다 폐쇄적이라면 그 생명이 길지 못할 것이다. 그 한계를 뚫고 세계화에 성공한 것이 통일교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긴 교명을 가진 통일교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이는 그 뿌리가 기독교에 있음을 나타낸다.
통일교, 한계 극복 세계화에 성공
통일교는 기존 교단의 비난과 교의 비판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펼치는 데 성공했다. 구원과 선교의 목적을 국내에만 묶어두지 않고 국가의 한계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교세를 펼침으로 세계화할 수 있었다. 자신의 한계도 벗어날 수 있었다. 청파동의 작은 교회에서 시작한 한국적인 구원의 원리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었고 결국 세계 200개 가까운 나라에서 종교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에서 시작했지만 이미 세계화에 성공한 것이다.
기존의 가치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실천과 종교적 실행을 찾아내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종파로 거듭나는 데 성공한 경우가 있다. 불교에 뿌리를 둔 천태종·진각종·총지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천태종은 그 역사만으로 보면 중국 수나라 천태산에 머물던 지자(智者) 대사를 종파의 개조로 삼는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창종했지만 그 맥이 사라졌다가 근세에 상월 원각 조사를 거쳐 거듭났다. 알 수 없는 철학보다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르침을 펼쳐 성공할 수 있었다.
진각종과 총지종은 밀교라는 불교의 독특한 영역에서 종파적 가르침을 시작했다. 비현실적이고 교리 중심의 종교에서 벗어나 실천할 수 있고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성공한 유형이다.
천태종과 진각종은 금강대학과 위덕대학을 세울 정도로 성장했고 그 교세를 꾸준히 펼치고 있다. 기성의 불교교단이 과거를 돌아보고 있을 때 이들은 현실과 미래를 주목한 것이 종파가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이다. 종교가 종도의 헌신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서 신뢰를 얻고 힘을 모으는 데 성공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순수하게 한국 땅에서 태어난 종교는 독특하다. 민족 정서에 뿌리박아 외래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의 변혁을 시도했다. 구한말의 혼돈 속에서 잉태되어 민족의 활로를 종교에서 찾으려 했던 특이한 동기에서 출발한 종교다. 원불교·천도교·대종교·증산도·대순진리회·보천교 등이 이에 속하고 그밖에도 태극도·성덕도·청우일신회·천존회·순천도·갱정유도 등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다.
구한말의 혼란은 자연스럽게 말세관으로 이어졌다. 저항력을 갖출 틈이 없이 밀어닥친 외부의 충격은 곧 세상이 망할 것 같은 걱정으로 집단을 이끌었다. 질서가 무력해지고 권력이 붕괴되며 가치가 의미를 잃어 가자 기존의 세상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었다.
몇몇 종교적인 천재는 현실을 구원할 대안을 제시했다. 인간이 하늘님이라고 일깨운 최제우와 일원의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박중빈, 신명을 되찾을 것을 가르친 강일순, 삼일철학을 펼친 나철, 정역으로 세상을 바꿀 것을 말한 김항은 구한말의 시대상황이 낳은 종교적 개혁자들이다. 그들은 개벽(開闢)이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퍼뜨렸고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인간관을 이야기했다. 일정 부분 민족에게 희망을 전했고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민족정신을 종교적 보편성으로 이끌지 못한 경우 반짝 떠올랐던 민족종교들은 속절없이 사라졌다. 게다가 일제는 민족정신 아래 종교적 무리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천도교는 동양의 정신으로 평등한 인간 세상의 구현을 꿈꿨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잠시 멈췄고 대종교와 보천교 등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 힘을 키우지 못하고 좌절했다. 민족에 바탕을 둔 이들의 종교적 실험은 여타 한국 종교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상제에서 비롯한 증산계열의 종교들도 당대를 관통하던 수운(水雲) 최제우와 동학의 종교적 가르침과 꾸준히 교류하며 발전해왔다.
민족종교 중에서 큰 산맥을 이루는 것은 동학계열과 증산계열의 종교다. 동학을 바탕으로 발생한 종교는 시천교와 상제교를 비롯해 대종교·수운교·인천교·동학교·대동교·백백교·천법교·무궁교 등 10여 개 종교가 있었다. 일제가 사교로 규정하거나 불온집단으로 치부해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천도교를 제외하고는 종교적인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에 격변하는 시대환경을 넘지 못했던 점을 교세 쇠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시대 변화를 배경으로 태어난 종교가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역설적인 이유 때문에 사라지고 만 것이다.
최제우·박중빈, 종교적 개혁자들
증산교에 뿌리를 둔 종교도 여럿 있다. 대순진리회·증산도·보천교·무극대도교·미륵불교·동화교·태을교·용화교 등 지금도 활동하는 다수의 종단이 있다. 증산계열의 몇몇 종단은 최근 들어 급격한 교세 확장이 눈에 띈다. 현실의 모순이 너무 깊어 실제적인 개벽을 원하는 이가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대순진리회는 일찍부터 교육과 포교에 눈을 돌려 꾸준히 발전해가고 있다. 시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일에 게으르지 않은 결과다.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불교적인 교의를 받아들여 종교를 세운 것이 원불교다. 소태산(少太山) 박중빈 종사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기치로 시작된 원불교는 일제 강점기에 절망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종교가 특수성을 벗고 보편세계로 나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교의와 체제와 의식을 만드는 데 성공하여 신생종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원불교는 일찍부터 사회사업에 힘을 모았다. 소리 없이 곳곳에 학교를 짓고 복지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종조가 가난한 농부를 위해 간척사업을 하고 저축조합을 만들었던 사례를 잊지 않고 지속한 결과다. 종교가 세상의 추앙을 받기보다 세상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한 노력은 원불교의 역사를 통해 살필 수 있다.
종교를 비롯한 인간의 형이상학적 노력은 시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 시대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이 시대의 종교를 보면 어렴풋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종교는 한국적 문제에 대한 반영이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살아왔고 무엇을 꿈꾸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싶은지 우리의 종교 속에 그 전모가 담겨 있다. 그것이 특수성의 굴레를 벗지 못하면 보편성이라는 더 큰 세상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종교가 구원보다 굴레를 던지는 상황 속으로 빠질 수도 있다. 오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한국에서 태어나 펼쳐지고 있는 종교를 통해 돌아보자. 그 속에서 구원과 영광을 찾을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다.
<김천〈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내손안의 모바일 경향 “상상” 1223+NATE)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기사제공 ] 뉴스메이커
'실시간 지구촌 개벽소식 > 뉴스*시사*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플레이션(경제학)-Inflation (0) | 2008.03.13 |
---|---|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0) | 2008.03.13 |
세계경제포럼 소식-미국발 국제금융위기 (0) | 2008.03.04 |
이시각 지구촌-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0) | 2008.03.04 |
미국발 경제위기와 폭설피해 이후 중국경제 (0) | 2008.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