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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금나라, 청나라의 시조는 신라인이다!

by 바로요거 2007. 11. 9.



[ 청태조 천명제 누루하치 ]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비밀 - 금(金), 청(淸)나라 시조는 신라인

| 역사의발견

우리가 그 동안 받아왔던 역사 교육과 기존에 출판되어 있는 많은 역사 서적을 보면 만주에서 발흥해 중원을 장악했던 강력한 두 나라인 '금나라' 와 '청나라' 는 강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초창기에는 우리에게 복속에 의한 속국으로의 굴종이 아닌 단지 '형제의 예'를 취하라는 요구만을 해 왔다. 그 내용은 자신의 나라를 장자적 개념인 형으로, 고려나 조선을 아우의 개념으로 삼아, 아우가 형님에게 예의를 다 하듯 '형과 아우'의 관계처럼 각 나라 간의 관계상을 정립하자는 이야기였다. 물론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 역시 그러한 관계 정립을 요구해 왔지만,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만주에서 발흥했던 두 나라와의 관계 이기에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처럼 '금나라'와 '청나라'는 한족이 아닌 이민족으로, 중원을 장악했던 강대한 정복왕조였다. 특히 '청나라'는 오늘날의 중국 지도를 완성시킨 장본인으로 강력한 국가를 건설했던 왕조였다. 그런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작고 힘이 약해 보이던 우리에게 군신간의 관계가 아닌 '형제의 예'를 요구한 것은 필연적인 곡절이 있어 보인다. 그들이 초창기 한족들에게 행했던 통치방식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이기에 몇몇 참고 자료들을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 청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 >





조용한 재판장 안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젊은이를 주목하고 있다. 판사가 젊은이에게 묻는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젊은이는 대답한다. "아이신지료 푸이(愛新覺羅 傅儀)." 판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참 이상한 성이구나."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중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모택동에게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아이신지료, 아이신지료... 한족(漢族)인 판사가 듣기에는 이상하기만 했던 청나라 황제의 성인 '애신각라(愛新覺羅)'. 만약 '애신각라'에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면...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세를 떨쳤던 나라를 묻는 질문에 4위를 차지한 국가가 ‘청나라’이다. 그 대단했던 청나라-엄격히 말하면 ‘후금(後金)’(후금은 ‘청나라’의 전신이다)-를 세운 사람은 누루하치. 그런데 그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이 신기한 조합의 한자를 분석해보기로 하자.



애신각라(愛新覺羅)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의 '근원'을 살펴 보면 신라와 관련된 성이라는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을 가진다.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지료'인데,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신라 왕실의 성인) 김씨의 겨레' 혹은 '금, 밝음을 숭상하는 겨레'라는 말이다. 청나라라면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오랑캐의 나라로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나라이다. 그런데 왜 청나라 왕조의 성에 '신라'와, 신라 왕족의 성 인 '금(金)'이 포함되어있는 것일까?



"청나라는 우리나라를 어버이의 나라로 섬겼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청 태조 ‘누르하치’가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었지요. 또 유명한 '삼전도 항복' 때는 ‘친명배금(親明排金)’을 외치는 조선에 와서 '원래 우리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다'는 취지로 '그대는 왜 동족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돕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청은 조선에 번번이 형제의 도리를 강조했습니다. 조선은 명분론에 매여 끝까지 청을 형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역사연구단체 ‘한배달’의 오정윤 연구원은 먼저 청나라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긴 예를 들었다. 그는 누르하치가 백두산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지적하며, 당시 백두산 지역에는 만주계 조선인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고려인 또는 조선인으로 귀화했다고 설명했다. 한때, 누르하치도 평안도 지방관현에 벼슬을 수차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왜 청나라가 끝까지 조선에 호의적이었을까요? 바로 청나라가 ‘금나라’로부터 나왔고 금나라는 ‘신라’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이덕일 씨도 오 연구원과 의견을 같이 했다.



"중원을 복속하고 한족을 지배했던 곳이 청나라입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때 조선은 몹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청은 충분히 조선을 복속하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우리 시조는 신라인"



역사학자들의 말처럼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는 금나라를 기리며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 지었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금나라 태조와 정확히 어떤 혈연관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르하치가 계승한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가 신라인이라는 문헌들은 많이 존재한다. 먼저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金之始祖諱函普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금나라의 시조인 함보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고려에서 왔는데, 그의 형제는 고려에 남고 혼자만 금나라로 왔다는 이야기다.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도 금나라의 태조에 대해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 때의 역사서 [송막기문(松漠紀聞)]은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이었다"고 전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비단 중국의 사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부안 김씨’들은 그들의 '족보'를 내세워 [금사],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등의 내용을 이렇게 뒷받침한다.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 (혹은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금나라의 역사서 [금사]와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주장이다. 다만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김준의 직계 아들인지 몇 대를 거친 손자인지는 의견이 다양하다. 어느 것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인데,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유민이라는 점만은 어느 이야기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를 더 보자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안정복 역시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김준은 삼형제인데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고 밝히고 있어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 김함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왕족'이라는 주장을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 청(淸)나라 황성 애신각라(愛新覺羅) 가문이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라는 억지 해석이었으나 사실 그 성은 금(金)나라 황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금나라 왕족의 본래 성이 완안(完顔)씨로 이 완안씨들의 선조가 신라 김(金)씨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시조가 고려인 김함보(金函普)임을 지금도 역사서에서 증명해주고 있으며 김함보는 신라 왕족임을 암시한다. 이 신라 왕족은 자신의 나라가 망한 뒤, 만주(滿洲)로 망명하여 그곳에 뿌리를 내려 여진(女眞)족들의 시조가 되었다. 그 시조의 후손인 완안민(完顔旻)이 1115년에 금나라를 세운 것이고 이 완안씨들의 나라가 1234년에 원(元)나라에게 멸망당한 뒤, 그들은 동(童)씨로 개명한 것이다.

그로부터 382년 후인 1616년, 금나라 왕족의 후손이자 건주여진(建州女眞)의 수장인 동대랑(童大郞)은 자신이 금나라 왕족임을 크게 깨닫고 성을 애신각라, 이름을 누르하치(努爾哈赤)으로 개명하고 명(明)나라를 칠 것을 결심하여 후금(後金)이란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사망한 뒤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뒤를 이어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朝鮮)을 정벌했다. 그리고 청태종(淸太宗) 홍타이지의 뒤를 이은 복림(福臨)이 마침내 명나라를 멸망시켜 그 숙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뒤, 순치제(順治帝) 복림의 뒤를 이은 강희제(康熙帝) 현엽(玄燁)이 청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건륭제(乾隆帝) 홍력(弘曆)때까지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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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는 여러 구석에서 잘못 기록 되어 있거나

원래와는 다르게 왜소화 되어 있거나 축소 되어있는 부분들이 많으며,

사대주의,왜색문화와 같은 열등의식에서 비롯되는 역사인식이 많은 역사서술에서

나타 납니다.

길리도밍고는 이른바" 재야사학" 이라는 것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물론 재야 사학의 주장들이 모두가 다 진실되고 받아들여지는 부분들의 일색이라고

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철저한 역사적인 고증과 문헌과 자료들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며,

두루두루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 낼수있는 뚜렷한 역사적인 사실로서

확실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른바 "재야사학"의 주장이나 근거론들을 보면 황당 하거나

전혀 고증이나 자료등의 면모가 부실 하거나 명분이 없거나 하는 것들은 별반 없습니다.

재야 사학의 주장들은 충분한 고증과 뒷받침이 되어 줄수 있는 역사적인 근거와

자료들이 무게를 비중있게 갖고 있을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장만이 아닌 타민족이 쓴 여러 역사서나 고증 자료에서 오히려 더 근거를 댈수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내용도 장구한 우리의 역사적인 내력의 진면목 한부분에 불과 하지만

우리의 역사저변을 뒤적이다 보면 위와같은 아주 괄목할 부분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엄청난 사실들이 왜곡 되거나 은폐되거나 뒷전으로 밀려 있거나

하면서 외면 되어져 있다는 것에 개탄을 금치 못합니다.

우리민족은 재야사학의 시각차원에서 보면 실로 엄청나고 대단한 민족 이었습니다.

이었다는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재형의 민족 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세계 그 어느민족도 우리민족처럼 화려하진 않았 습니다.

우리민족의 파장은 지금의 한반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 입니다.

다만 지금의 한반도는 이를테면 원대한 우리민족의 심장부 ~"본토"쯤으로 볼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민족을 지나치게 비약 시킨다고 생각 될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치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역사적인 고증자료나 문헌,유적,동양주변의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례들을

이리저리 분석하고 관심있게 조금만 "쫑긋"하면 어렵지 않게 누구나가 실감할수 있는

것들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우린 반드시 역사적인 인식의 대전환을 해야하며 자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전면적으로 다시 고쳐 써야 합니다.

사대주의와 일제의 압제에 찌든 자체적인 무언의 열등의식의 뿌리는 의외로 깊고 컸습니다.

우리를 스스로가 축소 시켜 왔습니다.

침 튀기는 온전한 역사는 사실 아직도 뒷전에서 찬밥신세로 큰소리를 못치는 개탄이 있습니다.

그건 지금 이 시대에서 우리의 책임 입니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들의 역사로 주장하는 것은 어쩜 우리 스스로가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역사 ~~~정말 다시 써야만 되며,역사적인 인식도 모두 다시 바뀌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수천년이 아니라 일만년을 따져야 하며 한반도가 아니라 이 지구상의 태반을 아우르는 엄청난 역사적 자긍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소견의 그릇된 주장일색 일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그건 넉넉하고 풍부한 각종 문헌,고증,자료 등등의 것들이 받쳐주고 있는 역사입니다.



청나라를 세운 후손은 고려인 = 신라자손임에 분명합니다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왜 학교에선 안가르칠까요?..
단군을 신화속의 인물로..고조선이라는 나라 또한 유령같은 나라로 만들고..
고작 우리교과서에 단군..고조선..어쩌구저쩌구 몇줄배운게 고작이었습니다
우린 우리 스스로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연구하고 실체를 알려고 노력했는가?..
고구려를 자기 역사에 편입시키려는중국..
일본서기에 발해가 일본에 조공을 받쳤다는 기록만으로 발해사를 일본사에 편입시키자는
일본학자도 있는데..왜 우린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낮춰볼까요?
동방예의지국이라 그런가요?..
지금의 혹은 예전에 배웠던 역사교과서는 대부분
일제때 일본인들의 해석에 의해 씌여진채 아직까지...그 틀을 깨고 나오질 못함에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나 유물 유적...고증에 의한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