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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님 말씀]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

by 바로요거 2007. 8. 30.
道紀135년 양력 7월 29일, 증산 상제님 어천치성
 

 

 [종정님 말씀]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


 참하나님의 강세 소식
 오늘은 96주 어천 치성절! 대우주의 조화주께서 동방의 이 땅에 강세하시어 9년 천지공사의 대업을 완결 짓고 하나님의 보좌로 돌아가신 기유년 도기 39년, 서력 1909년 음력 6월 24일, 어천절의 참뜻을 요약해서 정리해보자.
 
 먼저 증산도 진리의 출발은 참하나님의 강세에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듣고 체험한 지난날 인간 구원의 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류역사가 새 분기점을 맞는 한소식이다. 이 참하나님의 강세 소식에 성성히 깨어 있을 때 상제님 진리의 핵심을 바르게 깨쳐서 상제님이 뜻하시는 일꾼 자리에 똑바로 설 수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증산도란 무엇인가, 증산도의 구원론은 무엇인가?’를 전할 때, 그들로 하여금 ‘증산도를 공부하고 싶다, 증산도에 뭐가 있구나. 내가 그토록 학수고대해 온 진리가 바로 증산도로구나.’ 하고 즉각 관심을 갖고 달려들게 해야 한다. 그렇게 강력한 충격을 주는 핵심이 바로 참하나님의 강세 소식에 있다. “증산도가 뭐야?” “하나님이 왔다 가셨다는 거야!” 하고, 그 한 말씀에서 뭔가 거대한 기운을 받는 체험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도전 1편 1장 9절을 보면 “상제님께서 세상에 내보내신 석가 예수 공자를 비롯한 성자와 철인들이 상제님의 강세를 미리 알렸으니 이러하니라.”고 나와 있다. 하나님이 왔다 가셨다! 이 한 말씀에서 지난날 인간의 전 역사가 정리되고 동서 종교의 역사가 결론지어졌다.
 
 동서고금의 모든 성자들, 나름대로 깨진 자들은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을 얘기했다. 그것이 불교의 결론이고, 기독교 구원관의 결론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잘못된 진리 전달과 신앙이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예수가 재림한다’ 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道典 2:40:5)고 바로잡아 주셨다. 즉 예수가 재림한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체계 세운 바울의 믿음 속에서 나온 그릇된 가르침이다. 예수가 오는 것이 아니요, 예수를 내려 보낸 아버지가 올 것을 말한 것이다.
 
 
  동서양 종교의 결론
 서교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지상의 인간 역사 위에 천상의 천국을 직접 건설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동양 문화의 두 중심축으로 알려진 인도와 중국에 와서 한 생애를 바친 분이 있다. 바로 마테오리치 대성사님이다. 세상에서는 그를 신부님이라 하지만, 우리는 그를 높여서 ‘인간 역사상 가장 공덕이 많았던 위대한 인물이다, 대성사님이다!’라고 존귀한 인물로 떠받든다.
 
 『도전』 2편 30장을 보면 이마두 대성사님에 대한 말씀과 함께 그 결론에 이런 말씀이 있다.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道典 2:30:17)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인데, 상제는 곧 나다!’ 이 말씀이거든.
 이것은 기존에 우리가 늘 진리를 전할 때, 또 상제님 진리의 틀을 잡는 공부를 할 때 하는 일반적인 표현의 역이다. 뒤집어서 하는 얘기란 말이다.
 “상제는 나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외쳐왔다. 신이 있다고 했다. 그럼 이 우주의 참하나님, 조화주 하나님, 조물주 하나님이 누구냐?
 상제님은 지금 아버지 하나님을 절규해온 서양 문화의 전통 속에서 태어나 자라서, 동양에까지 와 뼈를 묻은 한 인물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는 서교 역사상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짖은 모든 성직자, 일반 교역자, 신도들과는 다른 우주관, 신관, 인간론을 갖고 있는 중국 땅에 와서 동서문화의 벽을 허물어 서구인들이 상제님을 만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죽은 후에도 아버지 하나님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천상에 올라가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천상의 온갖 진귀한 문명을 받아 내려 발명케 하였다. 이것이 과학문명의 극적인 전환 과정이요, 근대문명이 폭발적으로 개화된 지난 300년 역사의 배후에 숨어 있는 위대한 한 공덕자의 자취다.
 
 
 참하나님이 오시기까지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道典 2:40:9~10)’, 리치 대성사는 마침내 동서의 각 성자들과 부처, 보살들, 태고의 원시 신성들까지 거느리고 천국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달려갔다.
 
 상제님은 이렇게 역사를 쭉 정리해주시면서 한 말씀을 해주셨다. 그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이 12절에 있는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도전』을 보면 이보다 더 극적인 말씀이 나온다.
 
 자, 다함께 『도전』 2편 15장 6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보자.
 
 나는 본래 서양 대법국(大法國) 천개탑(天蓋塔)에 내려와 천하를 두루 살피고 동양 조선국 금산사 미륵전에 임하여 30년 동안 머물다가 고부 객망리 강씨 문중에 내려왔나니, 이제 주인을 심방함이니라. (도전 2:15:6~8)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상제님이 바로 동서 2대 종교에서 신앙해 온 조화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더욱 역사적인 안목을 갖고 볼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도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틔울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본래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왔다.’는 말씀이다.
 
 상제님은 본래 유불선 기독교에서 외쳐온 참하나님이다. 예수를 보낸 아버지 하나님이요, 도솔천 호명보살로 있던 석가모니를 내려 보낸 도솔천 천주님이며, 공자에게 천명을 내린 상제님이다. 그 상제님께서 ‘나는 본래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왔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지상에 강세하실 때, ‘내가 서양에 먼저 내려왔었다’고 강조하신 것이다.
 
 이 말씀에서 ‘본래’라는 두 글자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다. 이것은 ‘내가 동방 조선 땅에 내려와 같은 문화권에서 나를 만난 너희들은 나를 실감할 수 있지만, 지구촌의 이방의 문명권에서 살아온 자들은 그것을 체험적으로 못 느낀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조선 땅에 왔다 가셨다고?’
 
 기독교는 2천 년 동안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믿음 훈련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 상제님의 강세 소식을 못 받아들인다. ‘아버지가 어떻게 인간으로 오시냐? 예수가 참하나님이다. 예수가 재림한다!’고, 지금도 10억 인류가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목사를 호되게 야단치신 금산 예배당 사건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되느니라! 길이 한 번 나면 그 길이 힘줄과 같이 천지 밖으로 벌어지나니 올바른 길이 아니면 가르치지 말라. 중생들을 그릇 인도하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잡지 못하느니라!”(道典 5:18:1 5) ‘한 사람이 말 한 마디를 잘못 해 놓으면 진리의 대의를 그르친다, 희망의 역사를 죽음의 역사로 바꿔놓는다’고 꾸짖으신 것이다.
 
 
 왜, 하나님은 서양으로 먼저 오셨을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서양 땅으로 먼저 오신 것일까?
 
 성자 예수 이래 지난 2천 년 동안 서양 사람들이 받들어왔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기도가 하늘과 땅에 사무쳐,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고 하늘과 땅을 관통하여, 상제님이 아버지 하나님으로서 감응해주신 것이다. 상제님은 그들의 믿음과 영성과 서양 문화의 현주소를 다 둘러보고 마침내 동방 땅으로 강세하셨다.
 
 그러면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께서 처음 오신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그곳은 예수 성자의 가르침이 처음 뿌리내린 곳,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제국의 중심지 바티칸, 거기서도 예수의 종통을 이어 받은 초대 교황 베드로가 묻힌 베드로 성당의 천개탑(天蓋塔, canopy)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가르침이 전수될 때, 진리의 종통맥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음의 원형, 마테오리치 대성사
 그 다음 7절을 보자.
 
 동양 조선국 금산사 미륵전에 임하여 30년 동안 머물다가… (道典 2:15:7)
 
 “나는 본래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하시고 상제님은 곧바로 동양을 강조하고 계신다. 왜 그런 것일까? 아버지 하나님, 우주의 참하나님 상제님을 부르짖어온 동서양 구도자들과 만백성의 염원을 만족시켜 주시기 위해 ‘나는 서양 사람의 하나님이자 동시에 동양 사람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시고는 2편 30장의 결론에서 ‘상제는 나다! 서양 사람들이 외쳐온 하나님이 나다! 아버지는 나다! 동양 사람이 외쳐온 아버지의 본래 호칭, 그 상제가 바로 나다!’라고 밝혀주신다.
 
 마테오리치 대성사는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살아서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죽어서는 동양에서 다시 서양으로, 그리고 생사를 오갈 때는 지상에서 천상으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우주의 십자가를 그리면서 우주적인 삶을 살았다.
 
 마테오리치 대성사의 삶은 우리 구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가장 이상적인 원형, 모델이다. 신앙은 리치 대성사님처럼 해야 한다, 최소한 그 삶을 흉내라도 내보려고 해야 한다. 그런 종신 신앙, 죽음을 넘어선 일관된 한마음 신앙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진리의식으로 말씀을 전하라
 상제님께서 9년 천지공사를 마치고 어천하신 그날을 되돌아보면서 상제님 진리의 전체 틀을 다시 한 번 간단히 정리해 보도록 하자.
 
 우리가 동서 어떤 문화 속에서, 상제님 진리를 전하는 일꾼의 삶을 살든 글을 쓰든 번역을 하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알기 쉽게 증산도 구원관의 틀을 잡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상제님 진리의 맥을, 이론이 아니라 체험 속에서 간절히 느낀 바를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구 암송 자체도 중요하며, 또 암송을 할 때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느껴야 된다. 진리는 영혼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 생명을 체험해야 한다. 진리 의식으로 말씀을 전해야 한다.
 
 상제님께서는 기유년 초부터 “내가 장차 세상을 떠나리라.” “내가 이제 죽으려 하노라.”고 하시며 당신님께서 장차 어천하시리라는 것을 암시해 주셨다.
 
 그리고 기유년 3월에 구릿골에서 김자현 성도에게 “내가 장차 죽으리라”(道典 10:16)고 아주 노골적으로 말씀하시고는 혼잣말로 “이 살이 어서 썩어야 할 텐데….” 하신다.
 
 이 말씀에서 뭘 느끼는가?
 
 상제님은 비록 인간의 육신을 쓰고 계시지만, 상제님의 의식과 마음의 경계는 생사를 초탈해 계신다. 영적으로 사시는 것이다. 그걸 법신(法身)이라고 하거든. 진리의 몸, 대우주의 생명의 몸으로 살아가신다는 말이다.
 
 상제님의 이 말씀처럼 성숙이 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죽음을 초탈한 신앙관을 득해야 한다.
 
 
 판밖 공부라야 알리라
 그러시고서 상제님은 “내 몸을 묶지 말라. 그것은 선천의 악법이다.”(道典 10:16:6) 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선천의 장례법에 대해 하신 말씀이지만 사실은 선천 문화의 악법적인 요소를 총괄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기성 종교인들이 진리를 전하는 것을 보면, 그들 구원관에는 악법적인 요소가 있다. 하늘은 높이고 땅은 낮추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의 가르침으로 인간의 문제를 제기한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에서 나왔다’고 하는 가르침, 그것이 곧 선천 상극(相剋) 도수에서 나온 선천 진리의 한계이다.
 
 또 상제님은 “선천의 판안 공부로는 알 수 없을 것이요, 나의 판밖 공부라야 알게 되느니라.”(道典 10:35:11)고 하셨다. 상제님의 안목에서 볼 때, 선천 성자들의 성숙되지 않은 도격(道格)에서 나온 가르침으로는 인간 구원 문제를 비롯한 인간의 총체적인 문제의 귀결을 알 수 없다는 말씀이다. 하늘과 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하늘과 땅이 어디에 와 있는지, 이것을 안 성자가 없었다.
 
 상제님께서 밝혀주신 ‘선천과 후천’, ‘선천개벽과 후천개벽’ 말씀에서 인간의 역사, 기성 종교의 구원관의 결론이 내려진다. 지금까지는 전부 선천 판안의 소식이었다.
 
 
 우주 1년 사계절의 창조 법칙
 선후천이란 무엇인가?
 
 먼저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이 대우주를 살아있게 하는 법칙이 있다. 그 창조의 법칙을 상제님은 생장염장(生長斂藏) 네 글자로 말씀하셨다. 생장염장, 낳아서 길러서 거두고 휴식한다. 그런데 세 번째의 ‘거둔다!’고 하는 염(斂), 여기서 모든 종교와 인간 역사의 총 결론이 나온다.
 
 이 우주에서 인간의 삶을, 인간의 생명을, 인간의 역사를 거둔다! 이것이 우주의 가을 소식, 후천개벽 소식이다.
 
 그런데 이걸 안 사람이 없었다. 우주 1년 선후천 소식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것은 선천 판안의 소식으로는 전혀 알 수 없다. 선천 봄여름의 기운을 받아서 나온 성자와 철인들, 그들의 가르침으로는 무엇도 알 수가 없었다. 선천 종교인들이 이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천 가을 문화의 한소식을 들어보면 진리의 전체 틀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즉 우주는 봄여름을 넘어 가을이 있고 겨울이 있다. 이것이 우주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소식이요, 우주 1년 선후천 소식이다. 또한 이것이 소위 인간 농사짓는 우주 1년 소식이다.
 
 이 우주는 인간을 낳아 길러서 가을에 성숙시킴으로써 우주의 이상을 실현한다. 즉 우주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손을 빌어 천지의 꿈과 이상을 건설한다. 이것이 우주의 존재 목적이다.
 
 이 선후천 우주 1년을 오늘날 과학 용어로 말하면 ‘시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주의 일년 12만9천6백년을 한 주기로 볼 때, 봄여름 선천 오만 년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가을이 온다.
 
 태사부님께서 “우주 1년은 필연적인 우주의 법칙이다.”라고 하셨다. 필연이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꼭 그렇게 되는 이법, 우주의 법칙이다. 하루, 지구 1년, 우주 1년 사계절의 창조 법칙, 그것이 바로 생장염장의 이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름과 가을이 바뀔 때는 참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이 우주가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갈 때, 가을 우주가 열릴 때는 석가 공자 예수가 외친 구원론의 결론, 그들 진리의 총 결론으로서 아버지 하나님, 미래의 부처 미륵님, 상제님이 오시는 것이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삼신 상제님
 가을에 오시는 아버지 하나님, 참하나님을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언어가 있다. 바로 ‘조화주(造化主) 하나님’이다.<$t-18> 천지의 인간과 만물의 변화를 끝매듭 지으시는 분, 그 변화의 목적과 꿈을 이뤄주시는 하나님을 조화주 하나님이라고 한다.
 
 조화는 ‘변화(變化)의 목적을 이룬다’는 뜻을 담고 있다. 변화의 상위 개념인 것이다.
 
 선천 종교에서는 성령을 받아 내린다고 했다. 그런데 가을 문화에서 말하는 성령은 선천 봄여름, 닫힌 우주의 성령이 아니다. 인간의 삶과 역사와 우주 자연의 문제까지 총체적으로 바로잡아주는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영적 문화로 들어가고 있다. 가을 우주로 들어갈 때는 영적 차원이 선천과는 판이 전혀 다르다.
 
 이 조화성신의 출원이 어디인가? 동방 삼신(三神) 문화다. 삼신이란 뭐냐? 『도전』 1편 1장 3절에 있는, “삼신께서 천지 만물을 낳으시니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삼신은 바로 조물주 하나님이다.
 
 그럼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하나님을 서양에서는 한 하나님, 유일신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왜 동양에서는 하나님 앞에 석 삼(三) 자를 붙였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마치 세 분인 것처럼 착각이 들지 않아요? 헷갈리는데요.”
 
 이 삼신 하나님 속에 진리의 뿌리를 찾는, 진리의 근본 틀을 보는 모든 문제가 들어 있다. 그만큼 삼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 속에 셋이 있기 때문에, 즉 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창조 작용을 할 때는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의 세 가지 덕성, 세 가지의 신성을 그 본성으로 드러내시기 때문에 삼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조화로써 만물을 빚어내 생명을 주시고[造化神], 그 생명에 대해 깨닫게 하신다. 그리하여 이 우주 만유가 생명 자체가 되어 영원히 살게 하신다. 그것이 교화신(敎化神)의 작용이다. 그리고 치화신(治化神)으로 다스림을 주장한다. 다스린다는 건 바로잡는 것이다.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바로잡아 주신다.
 
 이 삼신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세 가지 참된 것[三眞], 즉 성명정(性命精)이 된다. 즉 우주를 빚어낸 삼신 하나님이 내 몸에 들어올 때, 조화신(造化神)은 내 생명의 근원, 내 마음의 뿌리 자리, 성(性)이 되어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생명을 열어 주는, 생명의 비밀을 깨닫고 나를 양육하는 깨달음의 신, 교화신(敎化神)은 나의 명(命)이 된다. 순수한 우리말로 목숨이 열리는 것이다. 그다음에 생명 질서를 바로잡아 나의 몸을 삼신 하나님과 같게 해주는 동력원 치화신(治化神)이 들어와 정(精)이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조물주 삼신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 조화신은 성(性)이 되고, 교화신은 명(命)이 되고, 치화신은 정(精)이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곧 우주의 조물주 하나님, 삼신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 영원히 살 수 있는 축복을 받는다.
 
 내 몸 속에 우주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 이것이 삼신 문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한소식이다.
 
 그것을 되찾고, 다스리고, 나아가 현실 인간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열쇠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내 몸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마음, 우주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열쇠가 바로 태을주의 도다. 태을주를 읽어야 내 몸속에 있는 삼진이 열린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은 다음 기회에 다시 하기로 한다.
 
 이 삼신 하나님을 넘어 온 우주를 실제로 다스리시는 참하나님을 상제님이라고 한다.
 
 다 함께 『도전』 1편 1장을 보자.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예로부터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삼신 상제, 삼신 하나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나니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나님’이니라.”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참하나님이 삼신 상제님이다. 상제님의 도를 만나야 삼신 세계를 알고 나아가 삼신을 받을 수 있다.
 
 
 상제님 진리 틀을 바르게 깨우쳐줘야
 우리가 우주 1년 틀을 가지고 상제님 진리를 전할 때는 ‘왜,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수밖에 없냐, 하나님이 꼭 인간으로 오심으로써만 선천 닫힌 우주에서 열린 우주로 넘어갈 수 있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매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道典 2:17:1 7) 이런 한 말씀을 혼백을 넣어가지고 또박또박 읽어줘야 한다.
 
 ‘가을에는 참하나님이 오신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인간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초장부터 진리의 틀을 깔아놓는다.
 
 그렇게 해서 ‘실질적인 구원의 주제는 선천 닫힌 우주에서 후천 열린 우주로, 상극에서 상생으로, 억음존양의 낡은 우주에서 정음정양, 남녀동권의 조화로운 후천 새 우주의 삶으로 가는 과정이다. 상극이 사배한 고통의 역사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왜 이 때에 상제님의 해원 상생 문화가 나왔는가? 왜 가을이 되면 진리의 근본을 제대로 보고, 진리 뿌리를 찾아야 하느냐?
 
 모든 인간은 나의 생명의 뿌리, 조상을 만나야 산다. 이 세상을 살다 간 모든 인간들, 즉 조상 선령신들의 구원은 어디에 있느냐? 뿌리와 열매는 한 몸이기 때문에 자손을 살려내야만 조상들도 구원을 받는다. 열매를 못 맺은 뿌리라는 것은 시간이 가면 생명이 해체되고 만다. 반대로 뿌리가 연약하면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래서 상제님도 “선영신이 짱짱해야 나를 따르게 된다!” 고 하신 것이다.’
 
 누구를 만나든 이렇게 상제님 진리 틀을 상제님 중심으로 제대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시어 어떤 세상을 열어주셨냐,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오느냐.’ 이에 대해 오만 년 비전을 제시해 주면서, 인간의 위대한 역할이 무엇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우쳐줘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전한 말씀의 결론이다.
 
 그럼 앞으로 대세몰이로 가기 위해 우리 일꾼들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간단히 정리를 해보자.
 
 
 대세몰이를 위한 일꾼의 선결 과제
 1. 선지후각(先知後覺)하라
 우선 상제님 진리를 바르게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상제님 진리를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때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명(遺命)이 있다.
 
 다함께 『도전』 10편 62장 1절에서 2절까지 읽어보자.
 
 “너희들이 큰 복을 구하거든 일심(一心)으로 나를 믿고 마음을 잘 닦아 도를 펴는 데 공을 세우고 오직 의로운 마음으로 두 마음을 두지 말고 덕 닦기에 힘써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도전 10:62:1~2)
 
 지금 우리 일꾼들의 신앙의 현주소에서 보면 모든 문제가 여기서 걸린다. 우리들 신앙의 품격이 전부 여기서 1차 정비를 요구한다는 말이다.
 상제님은 ‘일심으로 나를 믿으라’고 하신다. 믿음을 강조하고 계신다.
 
 그럼 상제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바로 앞에서 상제님은 일심을 강조하고 계신다. 일심으로 믿으라는 말씀이다. 그럼 일심이란 또 뭐냐? 한마음이란 뭐냐 말이다. 상제님 진리 공부에 늘 관심을 갖고, 도장 중심으로 생활하고, 가정에서 또는 직장에서, 학교에서 늘 상제님 일꾼이라는 한마음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 한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세상 사람들에게 도를 전할 때도 그 마음으로 꽉 차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상제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심이다.
 
 - 선지후각의 두 가지 뜻
 그 다음을 보면, “마음을 잘 닦아 도를 펴는데 공을 세우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추살의 인(人)개벽기에 세상 사람들에게 상제님 도를 전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내야 한다. 그것이 제3변 추수도운 일꾼들의 사명이다.
 
 그런데 진리를 전하는 것이 단순히 일시적 충동만으로 되던가? 상제님의 말씀처럼 마음을 잘 닦아야 된다. 내 마음을 바로 세워야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
 
 그것은 신앙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지금은 우주의 틀이 바뀌는 때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분열에서 통일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우주의 질서가 바뀌는 대개벽기다. 때문에 먼저 제대로 알고 신앙을 해야 한다. 참신앙, 진리 신앙, 사상 신앙은 전부 선지후각에서 온다.
 
 선지후각(先知後覺)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문자 그대로 ‘먼저 알고 뒤에 깨어진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먼저 알아야 이어서 깨어진다’는 뜻이다. 아는 게 중요하다. 알아야 깨진다. 깨달음이 어디 그냥 앉아서 주문만 읽는다고 얻어지던가? 먼저 바르게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구에게 선후천 우주 1년에 대해 전하고자 한다면 왜 선천은 하나님이 내려 보내신 성자들의 시대이고, 가을은 하나님이 직접 오시는 아버지 시대인지 그 이치를 알아야 한다.
 
 상제님께서는 “이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으려면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한다. 나는 모든 법을 합하여 쓴다.” (道典 2:21:5)고 하셨다.
 
 아버지 시대에는 선천 문화의 진액을 거두어 열매를 맺는다. 태사부님께서 늘 강조하신 ‘하나인 문화, 열매기 문화, 알캥이 문화, 성숙한 대 통일의 문화’가 나온다.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그 하나인 문화를 내시기 위해 모든 법을 합해 쓰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편벽되게 알면 안 된다. 모든 선천 문화의 진액을 뽑을 수 있는 대인의 안목을 가져야 한다. 선천 문화의 잘못된 것을 바르게 비판할 줄도 알아야 하고, 또 그들의 바르고 잘된 것은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둘째, 선지후각에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알았으면 반드시 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알기만 하고 강력하게 깨어지지 않으면 그건 전부 이론일 뿐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인가? 역사적인 영적 거장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것이 지식신앙이다. 지식적으로 뭘 알려고만 하는 신앙, 이것이 가장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크게 깨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도 제대로 못 살린다.
 
 선지후각! 알았으면 반드시 큰 각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를 알았으면 그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선지후각의 두 번째 뜻이다.
 
 성사재인을 바르게 인식하라
 - 성사재인에 대한 그릇된 이해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시어 새 우주의 틀을 짜놓으셨다. 그것을 실제 이 세상 역사 위에 완성하는 것이 우리 일꾼들이 해야 할 일이다.
 
 모사재천(謀事在天)은 내가 하리니 성사재인(成事在人)은 너희들이 하라. (道典 8:1:6)
 
 이 말씀에 대해 잘못 이해를 하면, ‘아~ 상제님은 판을 다 짜놓으셨다. 상제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에서 천상의 조화정부를 주관하고 계신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일을 이루는 것은 우리만의 몫이다.’이렇게 이원적인 역할 분담으로 생각하기 쉽다. 또 조금 착한 신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일심으로 하면 상제님이 꼭 도와주실 거야.’ 이렇게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부 잘못된 진리 해석이다. 그릇된 신앙관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성사재인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 김경학 성도를 통해 본 성사재인의 뜻
 『도전』 10편 <어천편>을 보면, 기유(己酉 : 도기 39, 1909)년 6월 24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고 나자 성도들은 너무도 큰 충격에 휩싸여 방황을 한다.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8월 1일, 수석 성도인 김형렬 성도를 비롯한 여러 성도들이 금산사 미륵전을 찾아가 ‘옥황상제지위(玉皇上帝之位)’라고 써서 미륵불상 몸에 붙이고 천제를 올린다.
 
 당시 성도들은 ‘미륵님이 상제님이요, 상제님은 미륵님’이라는 생각을 다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선생님이 상제님이다. 상제님이 하나님이요, 아버지요, 아버지가 천주님이요, 천주님이 옥황상제님이다. 선천 각 종교문화권에서 외쳐온 우주의 지존자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오직 한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 분이 바로 우리들이 모셨던 강증산 상제님이다.’이러한 절대신앙 의식이 있었다. 그것을 역사에 고백한 것이 8월 1일의 금산사 미륵전 사건이다.
 
 그러나 이 날 치성을 올렸음에도 상제님께서 영험을 안 주시자 참석했던 성도들은 크게 실망을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 때 김경학 성도가 뭐라고 한 마디를 한다. “이제 집에 가면 죽어 버릴랍니다!” 상제님을 못 뵐 바에야 차라리 죽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문득 상제님께서 나타나시더니 “못 죽는다.” 고 하신다.
 
 김경학 성도는 정말로 뜨거운 신앙, 아주 사무치는 신앙을 했다. 그 정성에 상제님께서 법신을 드러내주신 것이다. 김경학 성도는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청수올리고 기도와 수행에 일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심기가 상통하던 개벽대장 박공우 성도를 만나 “나는 소원 성취했네.” 하면서 상제님의 성령을 체험했던 일을 고백한다.
 
 박공우 성도가 또 어떤 인물인가! 신앙의 열정이 활화산 같은 분이다. 그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분이 아니다. 순수 신앙의 뜨거운 열정이 경쟁적으로 솟구쳐 자기에게도 기운을 크게 내려 주시길 기원하면서 청수 떠놓고 기도에 정진했다.
 
 그런데 그토록 열정적이던 김경학 성도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방황을 한다. 새로운 스승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그가 해가 바뀌어 경술(庚戌 : 도기 40, 1910)년 음력 2월에 집으로 돌아오니 노모가 급병으로 돌아가셨다.
 
 순간, 자신의 한심스런 신앙이 너무도 부끄럽고 지난날의 삶이 처량하여 노모의 시신 앞에서 통곡을 한다. 그때 상제님의 성령에 취해 “태을주로 사람을 많이 살리리라.”하신 말씀이 문득 깨달아졌다. 그는 즉시 마음을 돌리고는 상제님께 청수 올리고 간절히 참회의 기도를 드린 후, 지성으로 태을주(太乙呪)를 읽었다. 그러자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돌아가셨던 노모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여기에서 김경학 성도는 강력한 회심을 하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태을주로 살려낸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정신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신앙이 천지개벽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장티푸스에 걸린 류의경을 태을주로 살려주고, 상제님의 신성하심과 상제님께서 천지를 개벽하시는 조화주이심을 전하여 그를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그길로 함께 금산사 미륵전을 참배하고 구릿골 약방을 찾아간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명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방에 머물던 어느 날, 문득 약방 아랫목 벽을 보니 칼끝으로 그은 십자형(十字形) 자국이 눈에 띄었다. 이상히 여겨 떼어 내자 한 자 길이나 되는 큰 날 일(日) 자가 씌어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또 며칠 후에는 ‘십봉명개훈(十奉命開訓)’이라 써있는 것을 발견한다.
 
 날 일 자는 태양을 상징한다. 『도전』 1편 1장 2절에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우주의 대광명을 여는 태을주 공부를 상징한다. ‘조화성신을 받는 태을주 공부! 이것이 네가 맡은 대학교 도수의 사명이다.’라는 큰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류의경이 집에 돌아와 청수를 올리고 태을주를 외우자 문득 신안이 열리고 무수한 기적이 나타났다. 마침내 ‘태을주를 읽으면 성신의 감화가 내린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성도들도 태을주를 읽는 것으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상제님께서 김경학 성도에게 붙이신 대학교 도수가 역사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 성사재인의 참 뜻
 상제님 진리에서 볼 때 ‘성사재인’이란 상제님의 새 역사 이정표인 천지도수를 역사 속에 뿌리내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힘만으로 되는 게 결코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제님께서 어천 이후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리며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한 번 정도는 봐야 한다. 그것을 보면 ‘상제님은 늘 우리들 속에 계시는구나, 모든 일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제님은 우리가 도운의 역사를 전개하고 있는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접 보고받으시며 그것을 일일이 판정하신다. 잘못된 것은 경책하시고, 일심으로 간절히 신앙하는 일꾼에게는 기운을 내려주신다. 상제님은 한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신 적이 없다.
 
 결론적으로 “모사(謀事)는 내가 하리니 성사(成事)는 너희들이 하라.”는 말씀은 ‘기유년 8월 1일 환궁을 한 후로, 이제부터는 내가 항상 너희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상제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상제님과 함께 천지사업을 이룬다! 이것이 성사재인의 참 뜻이다.
 
 3. 태을주 도공 문화를 열어라
 앞으로 우리는 태을주 도공 문화를 열어야 한다. 여기에 대세몰이의 성패가 달려 있다.
 
 김경학 성도가 돌아가신 어머니 시신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태을주 읽던 마음을 생각해 보라. 우리 일꾼들 모두가 그 마음으로 돌아가 태을주 도공으로 조화성신을 체험하고, 그리하여 판몰이 도수를 열어야 한다.
 
 상제님께서 우리들에게 내려주신 유명을 보면 “너희들이 큰 복을 구하려거든 일심으로 나를 믿고 마음을 잘 닦아 도를 펴는데 큰 공을 세우라.”고 하셨다. 상제님이 말씀하시는 큰 공은 무엇일까?
 
 일찍이 상제님은 “공은 포덕보다 더 큰 공이 없다.”고 하셨다. 이 세상 수많은 공덕 중에 포덕이 가장 큰 공덕이라는 말씀이다. 왜 그런 것일까? 왜 포덕이 가장 큰 공덕일까? 포덕은 천지의 인간 농사짓는 일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주대신 추수를 하여 사람을 많이 살렸기 때문에, 그 공덕을 온 우주가 제1의 공력으로 인정해준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지만, 판몰이 도수를 제대로 열기 위해서는 태을주 조화성신을 받아야 한다. 숙구지 도수, 새울 도수의 흰 봉서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로 판몰이 도수를 열어가는 과정에서 태을주 천지 조화성령의 불기둥이 내려온다. 그것을 받아 내리는 수행법이 태을주 도공이다.
 
 인간 역사에서 수행 세계를 보면 정공(靜功)과 동공(動功) 수행법이 있다. 흔히 수행이라 하면 가만히 앉아서 하는 정공만을 생각하겠지만, 수행법에는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동공도 있다.
 
 동공은 말 그대로 잘 움직여야 한다. 자연스럽게, 아주 신명나게, 일심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도공이 잘 내린다. 체면이나 위선, 거짓으로는 도공을 절대 받을 수 없다. 10년, 20년을 신앙한 사람이 조화성신을 제대로 못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잘 생각해 볼 일이다.
 
 
 신앙문화를 대혁신하자
 이제 마무리를 하면서 오늘 전한 말씀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
 
 첫째 선지후각이다. 먼저 알아야 하고, 또한 진리를 알면 반드시 크게 깨어져야 한다.
 
 상제님 진리사업은 도수놀음이다. 모든 문제는 상제님 도수로 끌러야 한다. 그 도수의 열쇠가 어디에 있는가? 태을주 조화성신을 받아 내리는 데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주문만 읽어서 되는 게 아니다. 선지후각이다. 반드시 진리를 깨쳐야 한다. 그래서 내가 동서양 삼위신의 성신관에 대해 크게 깨어지는 진리 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틀을 짜놓으시고 “모사재천은 내가 하리니 성사재인은 너희들이 하라.”하신 말씀의 뜻을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성사재인의 인사의 도리를 바르게 깨쳐서 모든 일을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루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셋째, 이번 선천 우주의 해떨어지는 시간 과정을 거치면서 상제님의 판몰이 도수, 상씨름 마무리 도수로 들어간다. 이를 위해서는 신앙문화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앞으로 태을주 조화성신을 받는 동공문화, 역동적인 신앙문화로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기도는 경건한 기도를 바탕으로 해야 하지만, 인류 구원의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포교 대상자나 가족을 위해, 자신의 묵은 타성을 깨는 문제에 대해서는 소리 내어 사무치게 기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기도문화는 너무도 중요하다. 태을주 수행을 할 때도 반드시 기도를 바탕으로 해서 주문을 읽어야 한다.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도하는 만큼 태을주도 잘 읽게 된다. 기도의식이 깊어지는 만큼 주문의식도 도의 경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가 주문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 기도문화가 잘 정착되어야 한다. 정말로 자연스럽게, 언제 어디서, 누구 앞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 우리가 상제님께서 유명으로 남기신 그 심법 경계에 들어설 때 비로소 대세몰이의 운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끝내면서 다 함께 태을주를 세 번 읽도록 하자.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우리 일꾼들 모두가 염념불망 태을주, 염념불망 육임군 분가, 염념불망 육임군 수장을 길러낸다는 일심으로 무장하라. 그리하여 ‘1만2천 금강대역사의 자리에 가는 천지의 강력한 진리 군사를 길러낸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이상.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5.0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