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괘의 방위에 대하여(艮方攷)
황 선명(명지대 교수)
간(艮)이란 주역(周易;이하 易이라 약칭)팔괘인 건태이진손감간곤(乾兌離震巽坎艮坤)가운데 하나로서 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본고에서는 대순전경의 예시 50장에 나와 있는「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 二十四 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워졌느니라.」라는 성구와 관련해서 증산 상제께서 언표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어떤 뜻을 지니는 것인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위에서 ‘간방’이라는 함은 첫째 문자 그대로 방위의 개념을 지니며, 이는 외연적으로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이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艮이라고 하는 방위의 개념은 공간을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척도로 된다. 지리적인 척도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소강절(邵康節)에 의하여 후천역과 결연이 되면서 공간을 넘어선 시간의 개념까지 확장이 되고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축이 만나는’ 결과로 된다.
그런데 “이 공간과 시간 내에는 무한한 현상적 존재들이 전개 되어 있으나 그중에서 유독 인간만은 공간축과 시간축이 만나는 우주의 중심점에 위치하여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로서..” 라는 유남상교수의 글에서 ‘시간축과 공간축이 만난 우주의 중심’이란 설명은 전혀 실증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추상적이고, 따라서 상상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역에서는 그것이 진실임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 방법에 의거해서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누구나가 그것이 사실을 넘어선 진실, 그러니까 관찰이나 검증으로는 도저히 사실로서 증명할 수가 없지만 우리의 정신 속에서 분명 진실로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후천역(後天易)이다.
그런데 본고에서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이후천역을 극복한 일부의 정역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자면 그것이 물리적인 공간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현실에서 체험하고 있는 우주 안에서의 시간과 공간하고는 또 다른 예지계의 실상에 어느 정도로 접근해야만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자면 신명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도각(道覺)의 체험이 전제 되어야 한다. 어느 모로 본다면 속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현대의 분석적인 사고와 거기에서 가닥을 잡은 추론을 통해서 합리적이면서도 개연성에 그치는 결론을 도출해 내는데 그치고자 한다. 그러자면 우선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계의 환경으로서의 공간이란 존재론적인 개념이 아니다. 하나의 양상의 개념인 것이다. 하나의 양상개념이다. 왜냐하면 공간은 상대적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밝히고 있거니와 절대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공간이 실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실체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인식의 문제인 것이다. 예하면 간방(艮方)이란 현재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우리나라가 속한 동북아시아 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그것은 상대적인 의미밖에는 지니지 못한다. 서양에 대한 대자적인 인식에서 동양이라는 뜻이겠고, 또 지자기적인 위치로 보아서 적도보다 북극에 가까운 북위38도선이 허리를 지나간다는 뜻에서 우리 나라는 동북아의 중심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광대무변의 우주공간 속에서 보면 그것은 한구석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한가운데라고 말할 수도 없는 도저히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지경(地境)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그리하여 신명세계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일부선생이나 증산 상제의 혜안만이 상대적 공간을 초월해서 그런 지경을 투시할 수가 있고 또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대의 영원을 직시할 수가 있다.
1.상징으로서의 공간
宇宙란 말이 처음으로 나오는 동양의 고전은 회남자(淮南子)이다. 회남자의 천문훈(天文訓)에 의하면 무주란 말은 공간을 뜻하는 우(宇)와 시간을 뜻하는 주(宙)의 합성어라는 것이다. 이 우주라고 하는 거대한 틀 안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생멸부침이 이루어진다.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두 가지의 척도의 제약을 받는 다. 이 말은 두 가지의 척도에 의해서 모든 존재자가 규정이 된다는 뜻이 된다. 어떤 존재자도 이 규정에서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공간의 척도라는 것은 거리와 방위를 말한다. 또 시간의 척도라는 것은 분초로 나뉘어져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진행하는 연속성(continuum)을 말한다.
우주 안에 있다(존재한다)라는 사실은 두 가지의 한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 되는 데, 모든 존재자에게는 장소적 규정성과 더불어 시간이라고 하는 규정성을 벗어날 수 없는 때문이다. 어떤 존재자이든 그의 존재는 우주 안에서 반드시 그 위치가 지정이 되어 있게 마련이고, 또 시간적으로 생성과 소멸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존재와 관련이 된 두 가지의 규정성에 제약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은 신적존재일 뿐이다. 왜냐하면 신은 도처에 편재하며, 그 뿐만이 아니라 생멸하지 않는다. 어디서나 존재하며, 태어나지도 않거니와 사망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sui generis)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간과 공간의 척도에 의해서 규정이 되지 않는, 이론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존재를 철학에서는 상정할 수가 없다. 오직 신의 존재를 말하고 時空의 초월하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종교학에서만 이 문제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다루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현상이란 인간의 생각가운데서 상상(imagination)에 바탕을 둔 존재하는 사물의 존재의 양식과 그 작용의 관계를 통 털어서 말하는 것이다.
대체로 모든 문화권의 여러 민족은 우주의 기원과 구성 및 운명에 대해서 각기 그 나름의 생각을 신화나 그 밖의 전승이나 의례로서 보존하고 있다. 이 경우의 우주론(cosmgony)은 현대의 천문학적 우주론하고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서 말하는 우주론은 전적으로 상상의 산물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우주론이 진실성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가공의 허구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상상의 산물이라고 해서 전혀 허구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해이다.
천문학에서 말하는, 혹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우주론은 사실을 말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일 뿐이다. 총체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뉴턴의 고전 역학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양상이다. 따라서 절대 시간과 절대공간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말하고 있다. 지구와 엄청난 거리에 떨어져 있는 저 우주의 저쪽에서는 지금 이 순간이 우리와 똑 같은 이 ‘순간’이 아니라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 한 일이기 조차하다. 뒤집어서 말한다면 외계인 우주 저쪽에서 우리와 똑같이 ‘지금 이 순간’을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우주여행을 하고 또 외계인과 이야기한다. 또 자신 스스로가 상상 속에 침잠하지 않는 다 하더라도 TV나 SF물과 같은 매체들에 몰입해서 그런 세계에 젖어 들어간다.
물론 그것들은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우리에게 감명을 주고 어떤 경우에는 심금을 물린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가공의 허구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거짓이 어떻게 우리에게 감동을 주겠는가.
다른 시각으로 말한다면 우리가 체험을 할 수가 없는 영역에 속하는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상상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블랙홀의 경우가 그 중의 한 예이다. 수억 광년의 저 먼 우주의 저쪽에 있는 천체는 지금 그 수수께끼의 신비가 밝혀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상의 결정체가 모여서 하나의 실체를 만들어낸 데 불과하다. 누구도 블랙홀의 실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상상은 가공을 말하는 게 아니라 총체적인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상상의 내용의 사실성 여부는 문제가 될 수가 없다. 그 대신 실성 여부가 문제가 되어야 한다. 상상의 내용이 구성면에서 결함이 있고 빈약한 것이게 되면 진실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모든 이의 가슴에 와 닿는 공감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어 空想으로 전락하게 된다. 상상은 공상하고는 엄연히 다르다.
이제까지의 상상에 대한 다소의 지루한 설명은 우리의 공간 인식이 전적으로 상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소강절(邵康節)이 말한 것처럼 아주 원초적인 그 때, 그러니까 천지 조판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그저 태허(太虛)뿐이었다지 않은가. 그때나 마찬가지로 순수한 공간이이란 구체적인 실상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추상적인 실체인 것이다. 그러니까 원이라든지 각종의 도형의 모습으로 그 크기를 재고 형샹을 설명할 수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의당 그것은 상상의 세계일뿐이다.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지 실재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공간이란 것도 그것을 파악하는 주체에 따라서 성질을 달리한다. 하등동물에서 사람과 같은 영장류에 이르기 까지 각각 그 나름대로 공간을 파악한 다는 것이다. 가장 높은 단계의 인간은 상상 속에서 상징의 공간을 머릿속에 그린다고 볼 수가 있다.
카시러는 공간을 1)유기적 공간 2)지각적 공간 3)상징적 공간의 세 가지로 나눈다.
유기적 공간이란 주체와 주위의 환경이 밀착해 있는 경우를 말한다. 하등동물의 유충이나 애벌레, 혹은 갓 부화한 병아리와 같이 어린상태의 동물류의 공간인식은 조건반사적이다. 원초적인 본능에 대한 자극의 반응에 따라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지각적 공간은 성장한 조수라든지, 특히 고등동물 등에서 볼 수 공간파악의 경우이다. 이들은 경험적으로 터득한 감각과 시청각 및 촉각 반응에다가 근육으로 느끼는 탄성을 활용해서 공간을 파악하고 거기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신보다 월등히 큰 동물을 습격하는 맹수라든지, 늪 속에 잠복해 있던 악어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서 물가에 있는 먹이를 낚아채는 것 따위의 행동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가 없는 탁월한 공간파악의 능력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이러한 능력이 주어지지 않은 대신 대단히 복잡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상징적 공간을 구성하는 능력이 주어졌다. 상징적 공간 대신에 추상적공간이라고 정의하기로 한다. 추상적 공간이라는 것은 인간은 여타의 동물처럼 공간에 그대로 적응 하지 않고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고의 작용을 통해서 지식을 형성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또한 지식을 형성하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문화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사실을 뜻하게 된다.
인류의 고대 문화에 있어서 이 추상적 혹은 상징적 공간의 발견이야말로 지구에 처음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의 불의 발견에 버금가는 위대한 발견중의 하나이다. 이 상징적 공간의 발견이 있었기에 인류는 일월성신이 운행하는 천체의 법칙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역법(曆法)을 고안해 냈으며 처음에는 점성술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천문학까지 새로운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복잡한 사고의 과정을 거치기 전에 일단 직관으로 파악한 공간이 바로 신화 주술적인 신비한 공간이다. 이와는 달리 이성적인 천착을 통해서 분석적으로 파악한 공간이 바로 기하학적 공간이다. 공간에 대한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 이 신화적-주술적 세계관과 기하학적 세계관사이의 우열의 차이를 논의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후자가 과학적인데 반해서 전자는 비과학적이라는 견해는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전자, 다시 말해서 신화적-주술적인 신비적 요소를 가리켜서 비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원시심성이라고 해서 인류의 지능의 저급한 단계에서 현상에 대한 잘못된 추리와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같은 상징적 공간으로 분류가 되는 신화적-주술적 공간과 기하학적공간의 차이는 오직 직관과 논리, 구성과 해석, 일반성과 개별성의 차이 이상으로 전자를 후자와 비길 때 어떤 질적인 결함이라든가 진실성의 결여와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가 없다.
2.역과 공시성의 원리
이제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역(易)에서는 주로 공간과 시간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역자역야(易者曆也)라고해서 역에서는 시간축이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 논문의 주제가 되는 간방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듯이 공간의 문제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여기서 그렇다면 역에 있어서는 그 논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는 견해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역을 가리켜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심지어 황탄지설(荒誕之說)이라고 까지 비판 하는 이유는 첫째로 인과론이 결여되었다는 때문이다.
또 둘째로는 존재와 당위, 혹은 사실과 가치가 혼동이 되었다는 것 때문이다.
역의 본경(本經)은 본디 복서(卜筮)를 전제로 해서 성립이 된 것이므로 의당 인과론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C.G.융의 제자인 Ira Progoff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가 융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고자 대서양을 건너가서 융과 만난다음 역점(易占)을 쳤을 때의 일을 설명하는 장면인 것이다.(이하 필자가 축소 설명)
그가 동전을 던져서 처음으로 나타난 괘는 역의 64괘 가운데 제 59번 괘인 風水渙이었다. 그런데 내 괘의 세 번째 효인 음효가 변괘(變卦)로 되어 다시 척전(擲錢)을 한 결과 57전째의 괘인 송위풍(巽爲風)괘였다. (다음은 본괘인 풍수환<風水渙>에서 지괘<之卦>인 손위풍<巽爲風>으로 바뀐 모습을 표시한 것임)
이 괘의 단전(彖傳)은 ‘대천(大川)을 건너면 유익할 것’ 이라고 되어있다. 초육(初六)의 효 또한 실력 있는 후원자를 만나서 도움을 받을 것(用拯馬壯)이라고 되었다. 그러나 九二에 가서 자그마한 성공에 도취해서 지나치게 기고만장 하지 말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낮출 때에만 후회하지 않는 다고 되어있다.
다음에는 57번째의 괘인 송위풍(巽爲風)괘의 탁선(託宣)이다. 괘사에 이르기를 ‘작은 일에 잘 풀려갈 것(亨)’이며, 가는 곳에서 이득을 얻게 될 것이고 大人을 만나서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되어있다. 또한 서괘전(序卦傳)에는 손괘(巽卦)와 관련해서 ‘여행을 떠나면 다른 사람의 영접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손(巽)이란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고 할 때 받아들이는 곳에 들어가면 처음으로 기쁨을 얻을 것이다 ’
환괘와 손괘의 2괘의 託宣은 Ira Progoff라고 하는 동일인의 일생에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시기에 비슷한 정황으로 설정이 된 두 개의 시간 축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주인공인 Ira Progoff는 청운에 기대에 부푼 가슴으로 대서양을 건너가서 당대 정신분석의 대가인 C.G.융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만, 당시 그는 이미 저서를 출판한 다음이어서 이로 인 한 작은 성공에 다소 뜰 떠 있는 상태인 데다가 융의 학설이 대학에서는 아직 널리 인정을 받지 못하는(미국에서) 즈음이었던 까닭에 거기에 대한 주저와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인 이라 프로고프는 선탁에서 지시하는 대로 스스로가 ‘올곧게 자기 자신을 추스른 다는 것’과 ‘작으나마 성취를 한다는 것’을 하나의 충고로 받아들여 그후 10년간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위의 사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역괘의 신비적이고 잠언 형식의 선탁이,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씩이나 특정인이 처한 신변상의 처지를 암시했다는 사실은 이성적(과학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이 양자, 그러니까 선탁과 주인공인 이라 프로고프의 신변의 문제라고 하는 두 가지의 사상(事象)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존재할 리가 없다. 거기에는 사태와 사태 사이의 연속성(논리적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큼 주역에 통효한 학자마저 ‘기괴한 논리“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손쉬운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마치 알리바이의 증거에 의해서 범죄가 발생한 시각에 그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입증이 된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의 정황이 된다.
그러므로 설령이 그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치더라도 지나치게 견강부회적인 해석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본경의 64괘 뿐만이 아니라 집단의 운명을 예언하는 것과 같은 계사전(繫辭傳)의 상징적인 서술 등은 20세기 이후 우리가 받아들인 서구적인 과학적 사고를 가지고는 납득하기 어려울뿐더러 전통적인 역사시대의 정통파 주자학의 담론에서 조차 거기에 대한 지나친 견강부회적인 해석은 아주 경계했다.
나아가서 존재와 당위, 혹은 사실과 가치의 혼동의 문제이다. 역이란 64괘의 연변(演變)을 가지고 우주의 생성변화를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하나의 상징체계이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하나의 우주공학이자 사실을 세계를 냉철하게 반영하는 담론의 체계이다. 인식론의 체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덕률은 인간의 행위와 관련이 되며, 구체적으로 인간의 정신활동의 영역가운데 意志의 문제와 전적으로 관계가 된다.
그런데 역에서는 자연율과 도덕률이 혼동이 되어있다. 예컨대 인간의 행위의 규범이나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이 자연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역사시대의 천견설(天譴說)같은 것이 이 경우에 속한다. 군주의 부도덕한 통치행위가 하늘(天)의 노여움을 사서 한발이나 수해 등 일상적인 자연재해는 물론이려니와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천재지변의 재앙을 가져 온다는 믿음인 것이다.
역은 그 성격으로 보아 물적인 자연세계의 질서와 변화를 설명하는 담론의 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도덕률이나 가치판단과 관련이 되는 문제와 구조적으로 얽혀 있어서 바로 이것이 또 하나의 난점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토록 이해하기 어렵게 복잡한 난제들은 모두가 인과론의 결여라고 하는 하나의 문제로 귀결이 된다. 그렇다면 인과론적인 사고의 부재가 정녕 역의 발목을 잡고 가치를 떨어뜨리게 하여 결코 타넘을 수가 없는 아주 높은 장벽인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인과울이란 분석적인 사고의 결과이다. 가령 자기 자신의 조상과 자기 자신이 있게 된 사실의 상관관계를 인과율을 가지고 따져 보기로 한다. 부모 대에서는 다 사람이지만 10대를 올라가면 백만을 넘고 30대까지 소급해 올라가면 10억에 이른 다고 한다.이것은 우리의 생명이나 육체는 무수히 많은 조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든다면 가령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밤거리에 무단횡단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할 때 사고의 원인을 단순히 도로의 ‘무단횡단’이라고 만 규정하는 것은 사고의 수습을 책임진 교통경관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당사자가 무단횡단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하필이면 그 시간에 왜 그 자리에서 차량 통행이 뜸한 그 시각에 바로 그 사고 차량에 부딪쳐야 만 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일 텐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고를 당한 당사자의 습관이나 성격에서부터 이제까지의 살아온 삶의 과정에 대한 총체적인 진술과 곁들여 사고를 저지를 상대방에 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의 진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 뿐이 아니라 관련되는 주변 환경에 관한 인적 물적 조건을 전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결국 복합적으로 사고의 권인이 되었을 터이니 말이다. 이것은 특정의 원인이 특정의 결과를 낳는다는 인과론은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서양철학자인 데이비드 흄은 인과율을 부정했거니와 흄한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칸트는 인과율이란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의 선험적인 형식(사고의)인 것이지 사물 자체에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와 같이 인간존재의 생명의 실상이라든지 무심하게 떠오르는 생각이나 꿈과 같은 것은 그저 인과론적인 입장에서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심오한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을 분석심리학 등에서 밝혀내고 있는 터다. 가령 이런 경우는 어떤가. C.G. 융과 파울리의 공저인 자연 현상과 마음의 구조에 나오는 실례이다.
J.K.단이라는 사람은 보어 전쟁에 종군하던 해인 1902년 봄 어느 날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떤 섬에서 화산이 폭발했는데 그 파괴력이 엄청나서 19세기에 일어났던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 화산의 폭발과 비슷한 규모라고 생각하면서 희생자가 적어도 4천명은 될 것이라고 어리짐작을 하면서 혼잣말로 지껄이는 순간에 꿈을 깼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 며칠 후 그에게 배달된 신문에는 프랑스 령 마르티니끄에서 화산의 폭발로 4천명의 희생자가 났다는 사실이 보도 되었다. 그런데 화산폭발은 그가 꿈을 꾼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실을 가지고 볼 때 어느 누구도 던의 꿈과 실제의 화산폭발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단정하지는 못한다. 이 두 가지의 사상(事象)사이에는 분명 어떤 의미의 관계가 존재한다. 마르티니크의 화산폭발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그에 앞서 단의 꿈에 나타났던 화산 폭발의 영상(影像;image)사이에는 분명 의미연관(Sinnzusammenhang)이 존재한다. 어떠한 의미 연관인 것인가. C.G.Jung은 이것을 가리켜서 공시성(共時性;Synchronizitaet)이라고 했다. 도시하면 아래와 같다. (아래의 도표에서 A는 던에 나타난 꿈의 영상을 말하고, B는 마르티니끄섬의 화산이 폭발한 사태를 말한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인과율에 따라 계기적이고 연속적으로 진행이 되는 일회기적인 하나의 영상이나, 또 같은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 하나의 단선형(單線形)의 사태와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아닌 의미연관(수직의 점선으로 표시)이 있다는 내용이 바로 공시성이다.
역을 가리켜서 철학 과학 종교를 총체적으로 망라한 예지의 書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 핵심은 인과율로부터 자유로운 공시성이라는 것 때문이다. 공시성이란 ‘공간을 배제한 연속성’이라고 말하는 데, 이 지구상에 어떤 예지의 문서도 역만큼 공시성의 원리를 확실히 말해주지는 못한다. 바꾸어 말하면 공시성이란 C.G. 융이 초인과성(超因果性)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개념이 불과한 것 같다. 그러나 인과의 법칙을 초월하는 ‘앎’이란 예지계(睿智界)에서나 가능한 일인 데, 바로 그것이 전지전능을 말하는 것이자 개인의 생사에 관한 운명이라든가 역사를 초월하고 나아가 시간공간을 초월하는 초월자에게나 그러한 능력이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 졌으나, 바로 역이 그 문제와 직충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종교학이나 말로 과학이나 철학이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는 예지계를 들여다보는 학문이기도 하다.
3.역의 방위
방위는 공간을 파악하는 기본적인 인식론의 도구라는 설명은 이미 위에서 설명한바와 같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주체인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상하 전후좌우의 입체의 형태로 파악한다. 말하자면 3차원의 공간인 것이다. 이보다 범위를 넓혀서 본다면 우리는 중심점(기준점)을 기준으로 해서 동서남북을 파악하게 된다. 이는 물론 지구장의 자북(磁北)인 북극점에서 자남(磁南)인 남극점을 연결하는 축을 기준으로 해서 파악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지도상에 나타난 방위는 물론 지자기(地磁氣) 현상의 실측을 전제로 해서 주체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몸에서 먼 쪽을 북으로 정하고 오른쪽을 동으로 하고 반대편은 서쪽으로 조정(措定)하고 있다. 지도를 바라보는 관찰자 주체가 어디를 보든(面하고 있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항상 도북(圖北)은 그대로 있다. 따라서 실제의 자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지도가 하나의 상징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실재하는 자연지리의 현상하고는 일치하지 않는 하나의 모식(模式)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사실과 일치하는 의미연관의 체계이라는 점에서 앞서서 서술한 것처럼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면 현대지도에서의 표상의 내용하고는 위치가 거꾸로 되어있는 역의 선천도(先天圖)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전통적으로 역에서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동서남북의 방위를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시하는 데, 이는 현대의 지도와는 전혀 정반대이지만 그 나름의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역시 先天易을 창시한 고대 중국인의 상징적인 공간 관을 표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같이 동서남북의 방위에 건태이진손감간곤(乾兌離震坤坎艮巽)의 팔괘를 배당시킨 것이 바로 복희역(卜羲易)이자 선천역(先天易)이다.
아래의 그림(先天圖)에서 이(離)괘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離)는 불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불덩어리인 해가 떠오르는 동쪽 표상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아 당연하다. 그러나 달을 상징하는 坎괘를 서쪽에 위치하게 한 것은 그것이 해와 대칭 상을 이루게 하기위한 단순한 배치가 아닌 것이다. 해에 비길 때 달은 물을 상징한다. 달이 차가운 이미지를 갖기 때문이다. 물론 달은 음괘이며 여성을 상징한다. 달이 여러 모로 보아 해에 비해서는 수동적인 이미지를 자지고 있으며, 더욱이나 여성의 월경주기하고 달력(calender=월력)이 합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과의 의미연관은 아주 밀접하다.
달이 지닌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광명과 더불어 역동적인 힘의 원천인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에 대칭시켜서 서쪽에 달을 배치한 것은 고대 중국인의 소박한 자연관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건(乾)을 남쪽에 배당한 것 역시 광명과 상서(祥瑞)로움을 추구하는 원시적이고 소박한 감정에서 우러나왔다고 본다. 중국이나 한국의 당상관은 모두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게 되어있다. 그래서 높은 관직에 올라서 입신양명하는 당사자를 남면(南面)을 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중국이나 또는 이를 본 딴 한국의 궁전이나 관아의 건물이 본전을 정남향으로 배치함으로써 정문 역시 마찬가지로 건물의 남쪽에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관부의 최고 수장 역시 집무실에서 남면을 하고 앉는 전통에서 유래하는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상징적인 남방을 이상향으로 동경하는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또한 건괘(乾卦)와 대칭상을 이루는 것이 원리상으로 볼 때 아주 자연스럽다는 관점에서 보면 곤괘(坤卦)가 북쪽에 배당이 되는 것 역시 타당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동양의 전통 사회에서 북쪽은 암흑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가령 잠자리에서도 북쪽에 머리를 두지 않는 풍습이 있다. 이는 태초부터 민중의 뇌리에 깃들어 온 잠재적인 상징의 형식은 아니다. 훨씬 후대에 역사적으로 형성이 되어 온 관념인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북망산(北邙山)에 간다고 하는 생각은 중국의 한 왕조 이후에 생겨난 전승적인 관념이다. 후한에 들어와서 도읍인 낙양의 북쪽에 있는 북망산에 다가 세력가의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데서부터 북쪽이 죽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지구의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큰 바다가 있다고 하는 고대 중국인의 세계관에 보다 더 적절하게 어울리는 후천도(後天圖)의 방위와 거기에 따른 8괘의 배당이 보다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 이유로서는 장자(莊子)는 역사시대의 인물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초나라에서 활동한 인물로 알려졌기 때문에 신화시대의 기록하고는 달리 보다 당대의 시대정신에 충실할 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희역(先天易)에 나타난 바와 같이 막연한 신화시대를 반영하는 세계관하고는 달리 보다 구체상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복희역(先天易) 에서 반영하고 있는 세계상은 현대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위의 그림(先天圖) 보는 바와 같이 동서와 남북이 각각 대칭 상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남과 북의 위치가 전도되어, 현대의 지도라든지 실제의 자북과 자남이 지니는 구체적인 물리적인 속성하고는 상반이 되는 방식으로 표상이 되어있는 것은 역리를 따라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지 별다른 큰 의미는 없다.
그러면 이제부터 본고의 핵심 쟁점가운데 하나인 우리나라와 위치의 措定과 관련된 문제를 따져보기로 한다.
우선 우리나라를 가리켜서 동방예의지국이니 하는 데 이때의 1) ‘동방’이 역에서는 어떻게 표상이 되고 있는 가의 문제이다. 그 다음에는 2)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가의 문제이다.
1)에 관해서는 우선 선천도(先天圖)에 조응해서 본다면 한반도는 의당 해가 떠오르는 방향인 이괘(離卦)의 위치에 배당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민족적 정서나 공속의식하고도 어울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배달민족인데 그것은 밝음을 상징하는 것이며,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흰옷을 입는 것도 이와 같이 광명을 재향하는 민족성에 기인한다는 속설이 있어왔다. 하여간 어떤 민족이건 만약에 두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암흑보다는 광명을 택하고 석양보다는 해가 뜨는 아침을 자기네 민족적인 표상과 관련지어보고 싶어 하리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조선왕조의 국호인 조선(朝鮮)이란 명칭도 문자 상으로는 이른 아침의 뜻하며 해가 떠오르는 동방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의당 이괘(離卦)로 표상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실제로 구월남(舊越南)공화국의 국기는 노랑바탕에 빨강색의 이괘(離卦)로 표상하고 있다. 월남의 실제 지정학적 위치는 동남아에 치우쳐 있으므로 그 사실을 그대로 표상하고자 한다면 兌卦여야한다. 하지만 불덩어리처럼 떠오르는 태양과 국운의 의미연관을 표상하려다가 보니까 이괘를 쓰게 되었다는 의도를 능히 간파할 수가 있다. 질제로 우리 나라의 태극기도 이괘(離卦)를 채택하고 그것과 대칭상을 이루게 시리 마주보게 하었다.
물론 태극기에서 채택한 이괘는 가운데의 우주 중심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을 둘러싸고 있는 4괘가운데 하나이므로 구월남공화국의 국기에서 볼 수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나라의 지정학적인 위치와는 무관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자신의 나라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 매김을 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신지비사(神誌秘詞)에 보면 지난 시대에는 우리나라를 가리켜서 진단(震檀)이라고 했고, 또 용비어천가에도 나오는 걸로 보아서 역사 시대에는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이칭으로 진단(震檀)이라고 부르는 데 그 다지 저항감이 없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유로서는 신지비사는 신화적인 내용을 적은 것이며, 그 소종래(所從來)에 대해서 가늠할 길이 없으나 용비어천가에 대해서는 다르다고 말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용비어찬가는 조선 왕조 를 건국한 이성계의 조국(肇國)l의 위업을 기리 보존하겠다는 의도에서 제정이 된 것이니 만큼 당시 중국 문화를 숭상하던 지식인 사대부들의 의식의 면모를 엿볼 수가 있는데다가, 여기에서 일단의 자의식이라고 할까, 하여간 주체에 대한 대자적 인식이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그것이 막연하게 그저 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동방이라는 뜻에서의 전적으로 추상적인 뜻에서의 이괘(離卦)가 아니라 동북방으로 치우친 진괘(震卦)로 표상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역의 괘상(卦象)을 가지고 말한다면 진위뢰(震爲雷)이기 때문에 그것은 상징적으로 태초의 천지조판의 그 시기에 우렁찬 태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역시 매우 동적이고 어떻게 보면 조선(朝鮮)이라는 문자가 지닌 매우 정적이고 은둔적일 성 싶은 그런 이미지하고는 상반되는 우리 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내뿜는 그런 영상을 담고 있다고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진괘(震卦)와 우합(偶合)하는 위치의 문제 이다.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지정학적으로 동쪽보다는 북쪽으로 치우쳐 있는 동북향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문화의 중심인 중국의 지정학적인 위치에 비길 때 우리는 동북방에 위치한 변방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상은 선천역(先天易)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후천역(後天易)에서의 방위의 설정은 다른가. 물론 다르다. 이미 위의 그림<後天圖>에서 본바와 같다. 후천역에서는 동북방에 艮卦가 배당이 되어있다.
우리나라를 가리켜서 간방(艮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했다. 팔괘 가운데 간괘(艮卦)는 산을 상징하며, 착괘(錯卦;본괘를 뒤집은 것=예하면 육효가운데 양효가 음효가되고 반대로 음효가 양효가 된 것)는 兌이다. 태는 못을 상징한다. 간괘의 괘상(卦象)에 대한 해석은 뭉뚱그려서 멈춤을 뜻한다.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자중을 하고 겸손한 미덕을 갖출 것을 권면한다.
논어에 나오는 ‘군자는 그의 직분이상의 생각은 말아야 한다’는 경구(警句)는 바로 역의 간괘(艮卦)의 상전(象傳)에도 똑같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문헌적인 계통관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중국문명의 시원과 더불어 창제 되었다고 하는 역과 유교의 기본경전의 하나라고 하는 논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정신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자 할 뿐이다. 이 두 고전을 관류하는 사상은 매사에 신중하고 겸허함과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정신에 있다고 하겠다. 역에서는 특히 겸괘(謙卦)와 더불어 이 간괘가 전체 64괘 가운데 두드러진다. 이러한 행위의 결단이나 의지와 관련이 되는 문제를 우주론적인 자연의 생성변화의 문제에다가 결부시켰기 때문에 역은 무두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것처럼 그 논리가 기괴하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고 이 대목에서 현안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인 위치하고 간괘의 속성하고는 어떤 의미연관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는 답변이 나올 수가 없다.
간괘가 전통적인 역사시대의 우리민족의 자화상이라고 할 은둔적이며 일사(逸士)풍의 도학자와 같은 처세로 현실 속에서 악착같은 강기(剛氣)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향을 말해준다는 추론이 성립할지 모른다. 설령 그것을 사실이라고 인정한다고 쳐도 역의 괘상(卦象)에 까지 반영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주장은 결코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반대로 선천역의 진괘(震卦)는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표상하므로 무기력한 과거를 청산하고 활기에 찬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므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데 적합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적인 당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사실에 근거한 담론으로 형성이 되지는 못한다.
물론 이 진괘와 관련된 담론은 조선시대를 통해서 주로 士林이 주도권을 쥐고 권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상위지배신분층에 묵식적인 동의가 가능했던 자아인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잘 알려진 대로 유교의 교화주의를 통치의 원리로 전면에 내세운 시기였다. 특히 주자학의 도덕적 합리주의의 세계관이 일체의 이단적 교설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시기였다. 더구나 선천역과 후천역의 차이를 처음으로 주장한 중국 송나라의 소강절(邵康節)의 황극경세가 참위서의 사상과 결부가 되어 정감록과 같은 이씨왕조의 쇠운을 말하는 비결이 나돌면서 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럴수록 선천과 후천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역의 담론은 특히 조선후기에 들어와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가면서, 후천역에 의거 우리나라를 간방으로 이해하는 전승적인 관념이 민간에 그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된다.
그러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까지 사회적 유전으로 沈着이 되어 왔는 가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4.간방(艮方)과 시령(時令)-공간과 시간의 만남
선천 후천도 중 선천도는 진단(陣摶)이 창제한 것이다. 소강절은 여기에다가 후천방위도를 부가해서 이를 널리 퍼뜨려서 오늘날에는 이것이 그의 사상에서 우러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창제한 것이다. 이 선후천 방위도를 포함하는 황극경세서의내용과 그의 사상전체를 가리켜서 당대의 식자들은 공중루각(空中樓閣)이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시대에 있어 한국의 민초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의 원회(元會運世)설이다. 소강절은 주장하기를 천지만물의 변천은 모두가 일정수의 변천다른 핑연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2진(辰)이 一日 30일이 일월 12월이 일년 30년이 1세(世)가 되고, 다시 12세(世)가 1운(運) 30운(運)이 1회(會) 12회(會)가 1원(元;129,600년)이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1원이 1변천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보면 1원의 변천으로부터 1회의 변천을 볼 수가 있고, 다시 1회로부터 운의 변천, 그리고 1운의 변천에서 1세의 변천을 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원회운세설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예언하는 참위설과 결부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정감록의 비결을 낳게 하고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저변농민들의 대소규모의 반란에 있어 불씨에 그름을 붓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 보면 중세적인 정체사회에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담보하는 역사발전의 실마리가 되게 하였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의 한 원초적 형태의 이데올로기로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 현저한 실례가 바로 동학의 창도에서부터 갑오 동학 농민 혁명으로 이어지는 사회 과정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또 한편으로 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아주 불확실한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지상천국이라고 하는 낙원의 이상적 세계에 대한 동경을 말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는 민증에게 구원의 희망을 심어주기에 족했다고 보는 것이다.
소강절의 황극경세서에 담긴 사상, 특히 후천역의 사상을 개시한 그의 사상에 역사시대의 이 땅에 어떻게 전래 되었는 가, 아니면 그토록 어렵고 심오한 사색의 천착을 요하는 사상이 어떻게 전래 되었는가하는 문제에 접해볼 차례이다.
소강절의 사상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대지식인, 특히 이른바 성리학의 6현이라고 칭하는 학자 가운데서 특히 합리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2程형제의 호된 공격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다.
이리하여 송대의 성리학은 주희를 정점으로 하는 도학적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정통파와 소강절을 옹호하는 신비주의적인 경향의 두 흐름으로 나뉘었다. 이러한 특징이 아주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조선시대의 사상계의 동향이라고 하겠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주자학이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관학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면서 체제교학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통주의로 인정을 받게 된다. 주자학이란 바로 2정형제와 주자의 교설에 근거해서 그 밖의 여러 학문적인 탐구를 잡학이나 이단 사도(邪道)로 몰아세웠다. 더구나 신앙의 측면에서도 주자가례에 의거한 신종추원(愼終追遠)의 의례를 빼놓고는 모두 음사(陰祀)라고 해서 철저히 단속했다.
이처럼 단일의 신념체계만을 고집하는 조건 속에서 왕조의 교체의 혁세사상과 관련이 될 수가 있는 참위설은 물론이고 소강절의 원회운세설 내지 후천역에 관해서는 불온사상으로 간주되어 금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상적 분위기 아래에서도 에서 중종(中宗)기 성리학자인 화담(花譚)은 정통적인 방법으로 성리대전과 역리의 탐구에만 몰두한 게 아니라 후천역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는 진작부터 소강절과 장횡거(張橫渠)를 사숙하면서 거기에서 도학적인 달관을 터득하게 된다.
화담이 당시 심학(心學) 일변도의 학풍에서 괘도 이탈을 해서 도학적인 신비주의와 형이상학적인 우주론에 탐닉했다는 사실은 그의 사후 그에 대한 세론의 평가에서도 잘 나타난다. 宣祖8년 5월에 조정에서 화담에 대한 포상의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왕은 ‘그 사람의 저서로 볼 때 기수학(氣數學)에 대한 논의가 전부이고 수신지사(修身之事) 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으니 어찌 이를 학문이라하겠는 가?’라고 하는 실록(實錄)의 기사로 미루어 화담에 대한 당대 사회의 主流의 평가가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분명 화담의 사상이 조선조 성리학의 본류를 벗어났었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화담이 이른바 ‘理와 氣라는 것은 전혀 다르다’(所爲 理與氣 決是二物)라고한 주자의 입장을 따르지 않고 주기설(主氣說)을 편 것만 보아도 소강절의 주장을 그대로 지지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런 만큼 주기설이라고 하는 본체론은 물론, 易理의 해석과 관련이 된 선후천설에 있어서 전적으로 소강절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할 수가 있다.
소강절은 역의 설괘전(說卦傳) 제 2장에 나오는 천지정위 산택통기 뢰풍상박 수화불상사 팔괘상착(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錯)란 구절에 의거 선천역의 방위를 설정했다..(앞의 선천방위도를 볼것)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견강부회의 측면이 없지 아니한바, 다름이 아니라 선천방위라는 것은 이미 존재했었던 것으로서 천지의 자연적 법상(法象)이 그러한 것인 즉 굳이 인위적으로 방위를 조정(措定)해야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주장인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이미 다산 정약용(丁若鏞)도 분명히 밝힌 바가 있으니 그는
“설괘라는 것은 복희씨가 괘를 처음 창제할 때 천체를 관측하고 지리를 관찰하였으며 멀리는 뭇 사물을 취하고 가까이서는 신변 주위의 환경을 면밀히 간파하여 그 상(象)을 창제하되 이는 신명과 의사가 소통한 바이니 공자는 이를 따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괘의 방위에 대해서 말한다면 당우(唐虞:요순시대)의 원초적인 모습에서 달라진 게 없다“
다산 丁若鏞의 이러한 설명은 신비적인 선후천의 방위도를 중심으로 하는 역의 우주론적인 본체론에 관한 설명은 원시유학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주목이 된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보면 다산의 주장은 후천방위도를 가지고 쟁점을 삼은 게 아니라 선천방위도를 문제 삼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선천방위도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설괘전(說卦傳) 제 2장에 나오는 천지정위 산택통기 뢰풍상박 수화불상사 팔괘상착(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錯)라는 구절에 근거해서 동서남북의 방위에 역의 4괘, 측 이감건곤(離坎乾坤)을 각각 ‘작위적’으로 배당한 것이니까 시대적으로도 아주 후대에 이루어 진 것이 확연한 동시에, 그런 뜻에서 신비적인 은유나 상징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산이 언급하지 아니한 후천방위도에 대해서는 다르다. 그것은 설괘전 4장에 구체적으로 방위가 지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산이나 동시대, 혹은 우대의 성리학자가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이 지닌 의미가 훼절되었다거나 값어치가 없는 황탄지설로 묵살이 되어 버렸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여기에 숨어있는 의미는 오히려 후에 파락호 혹은 잔반이라고 하는 불우 지식인들의 인고에 어린 노력의 그 해명의 실마리가 풀려나갔다.
다음은 설괘전 제4의 후천역의 방위도와 관련해서 팔괘의 배치하게 된 배경에 숨어 있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1.제출호(帝出乎<진(震)>) 2.제호(帝乎<손(巽)>) 3.상견호(相見乎<이(離)>) 4.치역호(致役乎<곤(坤)>) 5.설언호(說言乎<태(兌)>) 6.전호(戰乎) 7.건(乾) 8.노호(勞乎<감(坎)> 성언호(成言乎<간(艮)>
위의 팔괘에 대한 각각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여기서 제(帝)라함은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주재신이라기 보다는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조화를 주재하는 어떤 원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다. 바로 그것이 동쪽이며 팔괘 중 震이 배당이 되고 있다. 계절적으로는 봄의 바로 춘분(春分)이 된다.
2.제호손이라고 할 때의 제(齊)는 정제(整齊)의 뜻을 지니며 손괘(巽卦)가 동남방에 배당이 된다. 계절적으로는 입하(立夏)가 되며 이때는 천기가 온화한데다가 만물이 막 성장을 개시한다.
3.상견호리라 함은 만물이 왕성하게 번성해서 각기 그 고유의 형태를 완벽하게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때 이(離)는 남쪽에 자리매김이 되며 계절적으로는 하지가 된다.
4.치역호곤이라 함은 만물이 무르익어가는 국면에 접어드는 즈음이라서 힘써 가꾼다(育)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곤괘(坤卦)는 방위는 서남에 해당하고 계절적으로는 입추에 해당한다.
5열(說)언호태라 함은 만물이 완전히 무르익어서 흔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말한다. 태괘의 방위는 서쪽이며 때는 추분을 말한다.
6.전호건이라 함은 서로 다툰다는 뜻이자 교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건괘(乾卦)의 방위는 서북에 해당하며 시기는 입동이어서 이때 더위가 물러가고 추위가 다가오기 때문에 음양이 서로 맞부딪치는 격이 된다.
7.노호감이란 만물이 피로해서 쉰다는 뜻을 담고 있다. 勞는 피로하다는 뜻이다. 이때 감괘의 방위는 북쪽에 해당하며 계절적으로는 동지가 된다.
8.성언(成言)호간이라 함은 만물이 1년의 생장주기를 마치고 새롭게 싹이 트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성(成)은 물론 이룩한다는 뜻이지만 言은 그저 어조사로서 아무런 뜻이 없다. 艮卦의 방위는 동북을 가리키며 때는 입춘이 된다.
이제까지의 서술이 이제 간방(艮方)이 갖는 총체적인 의미를 규명해야할 시점에 도달했다.
첫째로 간방은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상대적으로 서쪽에 위치한 중국의 문화중심에서 변방에 위치하는 자리매김이라는 점에서 분명 대자적인 자기인식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난 역사시대에 있어서 선천역에서의 진방(震方)과 함께 우리 한국이 중국의 동북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모든 담론을 산출하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초(民草)들의 전승사물(傳承事物)이나 관념 속에는 막연한 자기 정체성을 나타내는 어떤 신비한 상황의 개념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는 진방(辰方)보다는 간방(艮方)이 한층 두드러지는 데, 여기에 대해서는 간방과 관련된 담론이 지닌 보다 형이상학적인 문제의식에 직충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물론 그에 앞서 간방이라고 공간적인 한정을 넘어서 시간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역은 본디 不易이면서 또한 變易이라고 하는 상반이 되고 모순이 되는 원리가 변증법적으로 작용을 하면서 부단히 생멸과 변화를 거듭하는 우주만물의 존재양식을 상징하는 체계이다. 그런데 선천 역에서는 그것이 고정 불변의 모습으로 자리매김이 되어있다. 이미 위에서 여러 차례나 진술한 바와 같이 선천 역을 가리켜서 견강부회라 함은 그것이 우주창성 이전의 혼돈의 상태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하늘과 땅에 다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의 원소(오행사상에서의)인 물과 불을 고려하면서 동서남북의 4방위를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가 창성을 위해서는 이렇게 고정된 상태에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주는 창성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변화해야한다. 그래서 주희(朱熹)는 ‘하늘이 스스로 운전(運轉)하며 방위는 ’운동‘한다고’하는 확고한 인식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운동’한다, 다시 말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변화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생멸과 변화라는 것이 ‘시간 안에 있다‘라는 사실과 다를 바가 없다. 방위가 변화한다함은 곧 그 것이역시 스스로의 한정을 벗어나서 시간과의 조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하간 그와 같은 사태를 상징형식으로 도시한 것이 바로 후천역의 방위도이다.
‘1.제출호(帝出乎<진(震)>)’으로 부터 시작해서 ‘8.성언호(成言乎<간(艮)>’으로 끝나는 순차적인 설명은 바로 시간적인 진행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후천 방위도에서 보면 시계바늘의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며 이것은 오늘날의 시계의 문자판과 원리가 같다고 할 수가 있다.
3.후천 역에서는 시간적인 차원에서는 동북방에 배치된 간괘에서 끝이 난다. 시간적인 의미에서 간괘는 종착점이자 또한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제 곧 새싹이 움틀 채비를 하는 입춘에 해당한다. 끝이자 시작인 셈이다.
후천역에서 시간의 요소와 의미연관을 갖게 되는 후천방위도는 원환적인 모습으로 표상이 되거니와 이는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인 과정을 쉬지 않고 반복하는 영원회귀를 상징한다. 시간의 흐름은 이와 같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진행하는 일회기적인 직선상의 시간이 아니라 똑같은 과정을 자꾸 되풀이하는 영원회귀의 사상인 것이다.
이 중국에서의 영원회기의 사상은 골똘한 관념의 세계에 침잠해서 이끌어낸 심오한 사색의 산물이 아니다. 일상적인 세계에 대한 중국인 특유의 직관적인 관찰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정착의 농경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중국문화는 계절적 변화에 아주 민감할 수밖에 없고 일찍부터 천문관측에 매우 선진적인 업적을 이룩했다. 세계의 주요 문명이 다 천문 관측술에 있어서 그 나름의 유산을 물려준 건 사실이지만, 중국처럼 민중의 일상적 삶의 영역에 깊숙이 스며들게 하지는 못했다.
이리하여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생겨나는 12간지나 24절기는 추연의 음양오행과 더불어 팔괘가 가미함으로서 하나의 시공을 망라하는 상징체계로 된다. 기원전 230여년 경에 편찬이 된 여씨춘추(呂氏春秋)는 그러한 원리를 망라한 백과전서적인 역사서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에서의 시공의 관념은 순수한 사변적인 천착을 통해서 이루어진 순정의 형이상학적인 관조의 세계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중의 총체적인 삶의 궤적이 주름의 무늬를 짓게 한 역사의 형성물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결론; 終 萬物의 始 萬物의 땅
時令이란 계절의 변화에 따른 그때그때 실천과제를 일컫는 말이다. 고대 중국의 농경문화에 있어서 계절의 변화는 농사의 성패를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최하층의 농민에서부터 군주에 이르기까지 계절의 변화는 그들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자각하는 관건이 된다. 군주에게 있어서는 그때그때의 정무를 보살피는 시무(時務)가 그래서 중요하고 농민에게는 무본(務本)이 강조된다.
우주만물의 생멸변화를 관조하는 상징체계인 역도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추상적인 관념이나 사상 역시 시대정신의 산물인 점은 물론이고 그 보다도 역사와의 관계를 단절하고서는 어떠한 사물이나 세계관하고도 아무런 의미연관을 지니지 못한다. 역의 발생이 그러했거니와 중세 때인 송나라에 와서야 역의 사상이 한층 체계화하고 구조적으로 탄탄해 지면서 후천역이 등장하는 것도 역시 역사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역이란 아무리 초월적인 실재를 지향한다하더라도 궁극에 가서는 역사 속에 수렴된 형태이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서 역사란 상대화된 세속의 지정학적 공간속에 수렴된 세속의 역사를 말한다. 한국을 진방(震方)이니 간방(艮方)이니 하는 것은 말하자면 동양사나 세계사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시간과 공간, 다시 말해서 서론에서 말한 시간과 공간의 축이 만나는 초월적인 종교적인 성스러운 시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역을 창시한 일부 김항 선생은 이러한 상대개념을 극복하는 초월의 공간과 시간을 설파했다. 이는 단순한 지적인 탐구에 의한 추론의 성과라기보다는 神明界에 도달한 道覺의 체험으로서 만 가능한 것이었다고 보눈 데, 아주 간결한 명료한 正易圖를 통해서 새로운 변혁의 도래의 실상을 설명했다.
위의 그림에서 제일 왼쪽의 복희괘도(伏羲卦圖)는 하도(河圖)와 일치시킨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건태이진손감간곤(乾兌離震坤坎艮坤)의 팔괘를 동북서북남동남서의 팔방에 배당한 것인 불과하다. 천지조판(天地肇判)이 이루어지기 전의 선천시대의 태허(太虛)의 허공을 상징하는 표지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팔괘를 상징하는 팔수(八數)가 가장 많은 수자가 된다.
그러다가 후천의 시대에 이르면 뇌성벽력의 우렁찬 고동(震卦의 상징)과 함께 천지창조의 서막이 열리면서 간괘(艮卦)에서 완성과 함께 시작을 준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의 문왕괘도(文王卦圖) 가 이를 상징하거니와 여기에는 팔괘의 각각 배당이 되는 一에서부터 八까지의 숫자 가운데 五가 보이지 않는 대신 九가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김일부 선생은 五의 수자는 귀공(歸空)이라 하여 표시가 되지 않았는데 그 위치는 중앙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아래의 왼쪽 그림은 낙서(洛書)이다. 그리고 오른 쪽의 도표는 중앙의 귀공상태(歸空狀態)여서 아무것도 표시하지 아니한 (5)를 제외한 낙서(洛書)에 나타난 각 방면의 알맹이의 개수를 숫자로 표시한 것으로서 위의 도표의 중앙에 있는 문왕괘도에 대응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문왕괘도가 어째서 구수(九數)를 표방하는 지를 그 소종래(所從來)를 밝혀 이해를 돕고자 함이다.)
4 9 2 3 (5) 7 8 1 6
이리하여 문왕괘도(文王卦圖)는 아홉수(九數)를 갖는 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홉수가 0에서부터 9에 이르기까지의 성수(成數;홀수)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는 하나, 완전무결한 완성의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고 막 구체제를 혁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시점에 다다라서 혼란과 모순이 극점에 달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 단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는 완성(Vollkommenheit)의 단계가 바로 일부의 정역괘도가 상징하는 단계가 된다. 여기서는 쟁란(諍亂)에서 화평이 실현되며 모든 것이 원만 구족한 상태인 인륜과 도의가 실현이 되어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의 각정성명(各正性命)이 이루어지는 유리세계(琉璃世界)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역괘도에서 각괘가 천지정위 산택통기(天地正位 山澤通氣)의 대칭상으로 베치되며, 특히 정음정양(正陰正陽)의 평등의 원리가 구현되는 사회질서의 도래를 염원하는 뜻에서 선후천의 역에서 태양과 광명을 표상하는 남방(南方)에 배당이 되었던 건괘(乾卦)를 추위와 어둠을 상징하는 북방에 배치한바 이는 천존지비(天尊地卑)의 선후천역의 사상이 새로운 질서 안에서는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뜻을 표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역은 완성을 뜻하는 수인 十數가 된다.
이제 지금까지의 서술을 정리해서 마무리 지을 단계이다.
1) 한국을 말할 때 간방이라고 하는 것은 그 근거가 역리(易理)에서 나온 것이며 지리적인 방위로는 동북방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지구물리학적인 자북과 자남을 잇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한 자연지리적인 설정은 아닌 것이며 역사적으로 문화의 중심으로 간주하는 중국의 문화권에 대한 인식에서의 변방이라는 시각에서의 대자적인 인식이 깔고 있는 것이다.
2) 한편 소강절이래 하도와 낙서에 각각 대응하는 선후천역의 사상이 대두하면서 후천역에 배당이 된 간방은 만물의 시작과 끝의 반복이라고 영원회귀의 사상과 결부과 되며, 따라서 공간적인 개념과 시간적인 개념이 융합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만물의 시작과 끝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보본반시의 원환적인 영원회귀의 상태로 귀납이 될 수가 없는 것이, 후천역의 구조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데서 보다 발전적인 지양이 모색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점이다. 상징적으로 말한 다면 아홉수에 머물지 않고 완벽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지 앉으면 안 되었다는 뜻도 된다.
3) 정역의 창시자인 김일부선생은 십수의 새로운 팔괘도를 제시함으로서 완벽한 조양율음(調陽律陰)의 유리세계를 표상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증산상제께서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 二十四 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워졌느니라.」라고 예시(豫示)하심으로써 간방과 관련이 되는 논의는 그 논거가 한꺼번에 공중누각으로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일부선생은 도통(道統)의 경지에서 예지계를 투시하는 혜안으로 십수(十數)로 실현이 되는 유리세계의 실상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데 머물렀다면 증산상제는 신통의 경지를 거쳐서 신명계에 머물면서 후천선경의 좌표에 임하는 제생(濟生)의 도를 선포하신 것이라고 보야야 한다.
황 선명(명지대 교수)
간(艮)이란 주역(周易;이하 易이라 약칭)팔괘인 건태이진손감간곤(乾兌離震巽坎艮坤)가운데 하나로서 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본고에서는 대순전경의 예시 50장에 나와 있는「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 二十四 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워졌느니라.」라는 성구와 관련해서 증산 상제께서 언표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어떤 뜻을 지니는 것인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위에서 ‘간방’이라는 함은 첫째 문자 그대로 방위의 개념을 지니며, 이는 외연적으로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이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艮이라고 하는 방위의 개념은 공간을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척도로 된다. 지리적인 척도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소강절(邵康節)에 의하여 후천역과 결연이 되면서 공간을 넘어선 시간의 개념까지 확장이 되고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축이 만나는’ 결과로 된다.
그런데 “이 공간과 시간 내에는 무한한 현상적 존재들이 전개 되어 있으나 그중에서 유독 인간만은 공간축과 시간축이 만나는 우주의 중심점에 위치하여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로서..” 라는 유남상교수의 글에서 ‘시간축과 공간축이 만난 우주의 중심’이란 설명은 전혀 실증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추상적이고, 따라서 상상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역에서는 그것이 진실임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 방법에 의거해서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누구나가 그것이 사실을 넘어선 진실, 그러니까 관찰이나 검증으로는 도저히 사실로서 증명할 수가 없지만 우리의 정신 속에서 분명 진실로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후천역(後天易)이다.
그런데 본고에서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이후천역을 극복한 일부의 정역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자면 그것이 물리적인 공간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현실에서 체험하고 있는 우주 안에서의 시간과 공간하고는 또 다른 예지계의 실상에 어느 정도로 접근해야만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자면 신명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도각(道覺)의 체험이 전제 되어야 한다. 어느 모로 본다면 속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현대의 분석적인 사고와 거기에서 가닥을 잡은 추론을 통해서 합리적이면서도 개연성에 그치는 결론을 도출해 내는데 그치고자 한다. 그러자면 우선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계의 환경으로서의 공간이란 존재론적인 개념이 아니다. 하나의 양상의 개념인 것이다. 하나의 양상개념이다. 왜냐하면 공간은 상대적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밝히고 있거니와 절대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공간이 실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실체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인식의 문제인 것이다. 예하면 간방(艮方)이란 현재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우리나라가 속한 동북아시아 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그것은 상대적인 의미밖에는 지니지 못한다. 서양에 대한 대자적인 인식에서 동양이라는 뜻이겠고, 또 지자기적인 위치로 보아서 적도보다 북극에 가까운 북위38도선이 허리를 지나간다는 뜻에서 우리 나라는 동북아의 중심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광대무변의 우주공간 속에서 보면 그것은 한구석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한가운데라고 말할 수도 없는 도저히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지경(地境)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그리하여 신명세계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일부선생이나 증산 상제의 혜안만이 상대적 공간을 초월해서 그런 지경을 투시할 수가 있고 또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대의 영원을 직시할 수가 있다.
1.상징으로서의 공간
宇宙란 말이 처음으로 나오는 동양의 고전은 회남자(淮南子)이다. 회남자의 천문훈(天文訓)에 의하면 무주란 말은 공간을 뜻하는 우(宇)와 시간을 뜻하는 주(宙)의 합성어라는 것이다. 이 우주라고 하는 거대한 틀 안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생멸부침이 이루어진다.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두 가지의 척도의 제약을 받는 다. 이 말은 두 가지의 척도에 의해서 모든 존재자가 규정이 된다는 뜻이 된다. 어떤 존재자도 이 규정에서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공간의 척도라는 것은 거리와 방위를 말한다. 또 시간의 척도라는 것은 분초로 나뉘어져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진행하는 연속성(continuum)을 말한다.
우주 안에 있다(존재한다)라는 사실은 두 가지의 한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 되는 데, 모든 존재자에게는 장소적 규정성과 더불어 시간이라고 하는 규정성을 벗어날 수 없는 때문이다. 어떤 존재자이든 그의 존재는 우주 안에서 반드시 그 위치가 지정이 되어 있게 마련이고, 또 시간적으로 생성과 소멸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존재와 관련이 된 두 가지의 규정성에 제약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은 신적존재일 뿐이다. 왜냐하면 신은 도처에 편재하며, 그 뿐만이 아니라 생멸하지 않는다. 어디서나 존재하며, 태어나지도 않거니와 사망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sui generis)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간과 공간의 척도에 의해서 규정이 되지 않는, 이론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존재를 철학에서는 상정할 수가 없다. 오직 신의 존재를 말하고 時空의 초월하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종교학에서만 이 문제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다루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현상이란 인간의 생각가운데서 상상(imagination)에 바탕을 둔 존재하는 사물의 존재의 양식과 그 작용의 관계를 통 털어서 말하는 것이다.
대체로 모든 문화권의 여러 민족은 우주의 기원과 구성 및 운명에 대해서 각기 그 나름의 생각을 신화나 그 밖의 전승이나 의례로서 보존하고 있다. 이 경우의 우주론(cosmgony)은 현대의 천문학적 우주론하고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서 말하는 우주론은 전적으로 상상의 산물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우주론이 진실성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가공의 허구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상상의 산물이라고 해서 전혀 허구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해이다.
천문학에서 말하는, 혹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우주론은 사실을 말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일 뿐이다. 총체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뉴턴의 고전 역학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양상이다. 따라서 절대 시간과 절대공간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말하고 있다. 지구와 엄청난 거리에 떨어져 있는 저 우주의 저쪽에서는 지금 이 순간이 우리와 똑 같은 이 ‘순간’이 아니라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 한 일이기 조차하다. 뒤집어서 말한다면 외계인 우주 저쪽에서 우리와 똑같이 ‘지금 이 순간’을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우주여행을 하고 또 외계인과 이야기한다. 또 자신 스스로가 상상 속에 침잠하지 않는 다 하더라도 TV나 SF물과 같은 매체들에 몰입해서 그런 세계에 젖어 들어간다.
물론 그것들은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우리에게 감명을 주고 어떤 경우에는 심금을 물린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가공의 허구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거짓이 어떻게 우리에게 감동을 주겠는가.
다른 시각으로 말한다면 우리가 체험을 할 수가 없는 영역에 속하는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상상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블랙홀의 경우가 그 중의 한 예이다. 수억 광년의 저 먼 우주의 저쪽에 있는 천체는 지금 그 수수께끼의 신비가 밝혀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상의 결정체가 모여서 하나의 실체를 만들어낸 데 불과하다. 누구도 블랙홀의 실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상상은 가공을 말하는 게 아니라 총체적인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상상의 내용의 사실성 여부는 문제가 될 수가 없다. 그 대신 실성 여부가 문제가 되어야 한다. 상상의 내용이 구성면에서 결함이 있고 빈약한 것이게 되면 진실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모든 이의 가슴에 와 닿는 공감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어 空想으로 전락하게 된다. 상상은 공상하고는 엄연히 다르다.
이제까지의 상상에 대한 다소의 지루한 설명은 우리의 공간 인식이 전적으로 상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소강절(邵康節)이 말한 것처럼 아주 원초적인 그 때, 그러니까 천지 조판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그저 태허(太虛)뿐이었다지 않은가. 그때나 마찬가지로 순수한 공간이이란 구체적인 실상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추상적인 실체인 것이다. 그러니까 원이라든지 각종의 도형의 모습으로 그 크기를 재고 형샹을 설명할 수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의당 그것은 상상의 세계일뿐이다.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지 실재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공간이란 것도 그것을 파악하는 주체에 따라서 성질을 달리한다. 하등동물에서 사람과 같은 영장류에 이르기 까지 각각 그 나름대로 공간을 파악한 다는 것이다. 가장 높은 단계의 인간은 상상 속에서 상징의 공간을 머릿속에 그린다고 볼 수가 있다.
카시러는 공간을 1)유기적 공간 2)지각적 공간 3)상징적 공간의 세 가지로 나눈다.
유기적 공간이란 주체와 주위의 환경이 밀착해 있는 경우를 말한다. 하등동물의 유충이나 애벌레, 혹은 갓 부화한 병아리와 같이 어린상태의 동물류의 공간인식은 조건반사적이다. 원초적인 본능에 대한 자극의 반응에 따라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지각적 공간은 성장한 조수라든지, 특히 고등동물 등에서 볼 수 공간파악의 경우이다. 이들은 경험적으로 터득한 감각과 시청각 및 촉각 반응에다가 근육으로 느끼는 탄성을 활용해서 공간을 파악하고 거기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신보다 월등히 큰 동물을 습격하는 맹수라든지, 늪 속에 잠복해 있던 악어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서 물가에 있는 먹이를 낚아채는 것 따위의 행동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가 없는 탁월한 공간파악의 능력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이러한 능력이 주어지지 않은 대신 대단히 복잡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상징적 공간을 구성하는 능력이 주어졌다. 상징적 공간 대신에 추상적공간이라고 정의하기로 한다. 추상적 공간이라는 것은 인간은 여타의 동물처럼 공간에 그대로 적응 하지 않고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고의 작용을 통해서 지식을 형성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또한 지식을 형성하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문화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사실을 뜻하게 된다.
인류의 고대 문화에 있어서 이 추상적 혹은 상징적 공간의 발견이야말로 지구에 처음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의 불의 발견에 버금가는 위대한 발견중의 하나이다. 이 상징적 공간의 발견이 있었기에 인류는 일월성신이 운행하는 천체의 법칙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역법(曆法)을 고안해 냈으며 처음에는 점성술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천문학까지 새로운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복잡한 사고의 과정을 거치기 전에 일단 직관으로 파악한 공간이 바로 신화 주술적인 신비한 공간이다. 이와는 달리 이성적인 천착을 통해서 분석적으로 파악한 공간이 바로 기하학적 공간이다. 공간에 대한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 이 신화적-주술적 세계관과 기하학적 세계관사이의 우열의 차이를 논의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후자가 과학적인데 반해서 전자는 비과학적이라는 견해는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전자, 다시 말해서 신화적-주술적인 신비적 요소를 가리켜서 비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원시심성이라고 해서 인류의 지능의 저급한 단계에서 현상에 대한 잘못된 추리와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같은 상징적 공간으로 분류가 되는 신화적-주술적 공간과 기하학적공간의 차이는 오직 직관과 논리, 구성과 해석, 일반성과 개별성의 차이 이상으로 전자를 후자와 비길 때 어떤 질적인 결함이라든가 진실성의 결여와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가 없다.
2.역과 공시성의 원리
이제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역(易)에서는 주로 공간과 시간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역자역야(易者曆也)라고해서 역에서는 시간축이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 논문의 주제가 되는 간방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듯이 공간의 문제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여기서 그렇다면 역에 있어서는 그 논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는 견해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역을 가리켜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심지어 황탄지설(荒誕之說)이라고 까지 비판 하는 이유는 첫째로 인과론이 결여되었다는 때문이다.
또 둘째로는 존재와 당위, 혹은 사실과 가치가 혼동이 되었다는 것 때문이다.
역의 본경(本經)은 본디 복서(卜筮)를 전제로 해서 성립이 된 것이므로 의당 인과론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C.G.융의 제자인 Ira Progoff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가 융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고자 대서양을 건너가서 융과 만난다음 역점(易占)을 쳤을 때의 일을 설명하는 장면인 것이다.(이하 필자가 축소 설명)
그가 동전을 던져서 처음으로 나타난 괘는 역의 64괘 가운데 제 59번 괘인 風水渙이었다. 그런데 내 괘의 세 번째 효인 음효가 변괘(變卦)로 되어 다시 척전(擲錢)을 한 결과 57전째의 괘인 송위풍(巽爲風)괘였다. (다음은 본괘인 풍수환<風水渙>에서 지괘<之卦>인 손위풍<巽爲風>으로 바뀐 모습을 표시한 것임)
이 괘의 단전(彖傳)은 ‘대천(大川)을 건너면 유익할 것’ 이라고 되어있다. 초육(初六)의 효 또한 실력 있는 후원자를 만나서 도움을 받을 것(用拯馬壯)이라고 되었다. 그러나 九二에 가서 자그마한 성공에 도취해서 지나치게 기고만장 하지 말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낮출 때에만 후회하지 않는 다고 되어있다.
다음에는 57번째의 괘인 송위풍(巽爲風)괘의 탁선(託宣)이다. 괘사에 이르기를 ‘작은 일에 잘 풀려갈 것(亨)’이며, 가는 곳에서 이득을 얻게 될 것이고 大人을 만나서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되어있다. 또한 서괘전(序卦傳)에는 손괘(巽卦)와 관련해서 ‘여행을 떠나면 다른 사람의 영접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손(巽)이란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고 할 때 받아들이는 곳에 들어가면 처음으로 기쁨을 얻을 것이다 ’
환괘와 손괘의 2괘의 託宣은 Ira Progoff라고 하는 동일인의 일생에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시기에 비슷한 정황으로 설정이 된 두 개의 시간 축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주인공인 Ira Progoff는 청운에 기대에 부푼 가슴으로 대서양을 건너가서 당대 정신분석의 대가인 C.G.융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만, 당시 그는 이미 저서를 출판한 다음이어서 이로 인 한 작은 성공에 다소 뜰 떠 있는 상태인 데다가 융의 학설이 대학에서는 아직 널리 인정을 받지 못하는(미국에서) 즈음이었던 까닭에 거기에 대한 주저와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인 이라 프로고프는 선탁에서 지시하는 대로 스스로가 ‘올곧게 자기 자신을 추스른 다는 것’과 ‘작으나마 성취를 한다는 것’을 하나의 충고로 받아들여 그후 10년간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위의 사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역괘의 신비적이고 잠언 형식의 선탁이,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씩이나 특정인이 처한 신변상의 처지를 암시했다는 사실은 이성적(과학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이 양자, 그러니까 선탁과 주인공인 이라 프로고프의 신변의 문제라고 하는 두 가지의 사상(事象)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존재할 리가 없다. 거기에는 사태와 사태 사이의 연속성(논리적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큼 주역에 통효한 학자마저 ‘기괴한 논리“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손쉬운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마치 알리바이의 증거에 의해서 범죄가 발생한 시각에 그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입증이 된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의 정황이 된다.
그러므로 설령이 그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치더라도 지나치게 견강부회적인 해석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본경의 64괘 뿐만이 아니라 집단의 운명을 예언하는 것과 같은 계사전(繫辭傳)의 상징적인 서술 등은 20세기 이후 우리가 받아들인 서구적인 과학적 사고를 가지고는 납득하기 어려울뿐더러 전통적인 역사시대의 정통파 주자학의 담론에서 조차 거기에 대한 지나친 견강부회적인 해석은 아주 경계했다.
나아가서 존재와 당위, 혹은 사실과 가치의 혼동의 문제이다. 역이란 64괘의 연변(演變)을 가지고 우주의 생성변화를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하나의 상징체계이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하나의 우주공학이자 사실을 세계를 냉철하게 반영하는 담론의 체계이다. 인식론의 체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덕률은 인간의 행위와 관련이 되며, 구체적으로 인간의 정신활동의 영역가운데 意志의 문제와 전적으로 관계가 된다.
그런데 역에서는 자연율과 도덕률이 혼동이 되어있다. 예컨대 인간의 행위의 규범이나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이 자연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역사시대의 천견설(天譴說)같은 것이 이 경우에 속한다. 군주의 부도덕한 통치행위가 하늘(天)의 노여움을 사서 한발이나 수해 등 일상적인 자연재해는 물론이려니와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천재지변의 재앙을 가져 온다는 믿음인 것이다.
역은 그 성격으로 보아 물적인 자연세계의 질서와 변화를 설명하는 담론의 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도덕률이나 가치판단과 관련이 되는 문제와 구조적으로 얽혀 있어서 바로 이것이 또 하나의 난점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토록 이해하기 어렵게 복잡한 난제들은 모두가 인과론의 결여라고 하는 하나의 문제로 귀결이 된다. 그렇다면 인과론적인 사고의 부재가 정녕 역의 발목을 잡고 가치를 떨어뜨리게 하여 결코 타넘을 수가 없는 아주 높은 장벽인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인과울이란 분석적인 사고의 결과이다. 가령 자기 자신의 조상과 자기 자신이 있게 된 사실의 상관관계를 인과율을 가지고 따져 보기로 한다. 부모 대에서는 다 사람이지만 10대를 올라가면 백만을 넘고 30대까지 소급해 올라가면 10억에 이른 다고 한다.이것은 우리의 생명이나 육체는 무수히 많은 조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든다면 가령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밤거리에 무단횡단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할 때 사고의 원인을 단순히 도로의 ‘무단횡단’이라고 만 규정하는 것은 사고의 수습을 책임진 교통경관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당사자가 무단횡단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하필이면 그 시간에 왜 그 자리에서 차량 통행이 뜸한 그 시각에 바로 그 사고 차량에 부딪쳐야 만 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일 텐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고를 당한 당사자의 습관이나 성격에서부터 이제까지의 살아온 삶의 과정에 대한 총체적인 진술과 곁들여 사고를 저지를 상대방에 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의 진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 뿐이 아니라 관련되는 주변 환경에 관한 인적 물적 조건을 전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결국 복합적으로 사고의 권인이 되었을 터이니 말이다. 이것은 특정의 원인이 특정의 결과를 낳는다는 인과론은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서양철학자인 데이비드 흄은 인과율을 부정했거니와 흄한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칸트는 인과율이란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의 선험적인 형식(사고의)인 것이지 사물 자체에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와 같이 인간존재의 생명의 실상이라든지 무심하게 떠오르는 생각이나 꿈과 같은 것은 그저 인과론적인 입장에서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심오한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을 분석심리학 등에서 밝혀내고 있는 터다. 가령 이런 경우는 어떤가. C.G. 융과 파울리의 공저인 자연 현상과 마음의 구조에 나오는 실례이다.
J.K.단이라는 사람은 보어 전쟁에 종군하던 해인 1902년 봄 어느 날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떤 섬에서 화산이 폭발했는데 그 파괴력이 엄청나서 19세기에 일어났던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 화산의 폭발과 비슷한 규모라고 생각하면서 희생자가 적어도 4천명은 될 것이라고 어리짐작을 하면서 혼잣말로 지껄이는 순간에 꿈을 깼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 며칠 후 그에게 배달된 신문에는 프랑스 령 마르티니끄에서 화산의 폭발로 4천명의 희생자가 났다는 사실이 보도 되었다. 그런데 화산폭발은 그가 꿈을 꾼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실을 가지고 볼 때 어느 누구도 던의 꿈과 실제의 화산폭발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단정하지는 못한다. 이 두 가지의 사상(事象)사이에는 분명 어떤 의미의 관계가 존재한다. 마르티니크의 화산폭발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그에 앞서 단의 꿈에 나타났던 화산 폭발의 영상(影像;image)사이에는 분명 의미연관(Sinnzusammenhang)이 존재한다. 어떠한 의미 연관인 것인가. C.G.Jung은 이것을 가리켜서 공시성(共時性;Synchronizitaet)이라고 했다. 도시하면 아래와 같다. (아래의 도표에서 A는 던에 나타난 꿈의 영상을 말하고, B는 마르티니끄섬의 화산이 폭발한 사태를 말한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인과율에 따라 계기적이고 연속적으로 진행이 되는 일회기적인 하나의 영상이나, 또 같은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 하나의 단선형(單線形)의 사태와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아닌 의미연관(수직의 점선으로 표시)이 있다는 내용이 바로 공시성이다.
역을 가리켜서 철학 과학 종교를 총체적으로 망라한 예지의 書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 핵심은 인과율로부터 자유로운 공시성이라는 것 때문이다. 공시성이란 ‘공간을 배제한 연속성’이라고 말하는 데, 이 지구상에 어떤 예지의 문서도 역만큼 공시성의 원리를 확실히 말해주지는 못한다. 바꾸어 말하면 공시성이란 C.G. 융이 초인과성(超因果性)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개념이 불과한 것 같다. 그러나 인과의 법칙을 초월하는 ‘앎’이란 예지계(睿智界)에서나 가능한 일인 데, 바로 그것이 전지전능을 말하는 것이자 개인의 생사에 관한 운명이라든가 역사를 초월하고 나아가 시간공간을 초월하는 초월자에게나 그러한 능력이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 졌으나, 바로 역이 그 문제와 직충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종교학이나 말로 과학이나 철학이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는 예지계를 들여다보는 학문이기도 하다.
3.역의 방위
방위는 공간을 파악하는 기본적인 인식론의 도구라는 설명은 이미 위에서 설명한바와 같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주체인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상하 전후좌우의 입체의 형태로 파악한다. 말하자면 3차원의 공간인 것이다. 이보다 범위를 넓혀서 본다면 우리는 중심점(기준점)을 기준으로 해서 동서남북을 파악하게 된다. 이는 물론 지구장의 자북(磁北)인 북극점에서 자남(磁南)인 남극점을 연결하는 축을 기준으로 해서 파악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지도상에 나타난 방위는 물론 지자기(地磁氣) 현상의 실측을 전제로 해서 주체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몸에서 먼 쪽을 북으로 정하고 오른쪽을 동으로 하고 반대편은 서쪽으로 조정(措定)하고 있다. 지도를 바라보는 관찰자 주체가 어디를 보든(面하고 있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항상 도북(圖北)은 그대로 있다. 따라서 실제의 자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지도가 하나의 상징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실재하는 자연지리의 현상하고는 일치하지 않는 하나의 모식(模式)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사실과 일치하는 의미연관의 체계이라는 점에서 앞서서 서술한 것처럼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면 현대지도에서의 표상의 내용하고는 위치가 거꾸로 되어있는 역의 선천도(先天圖)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전통적으로 역에서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동서남북의 방위를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시하는 데, 이는 현대의 지도와는 전혀 정반대이지만 그 나름의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역시 先天易을 창시한 고대 중국인의 상징적인 공간 관을 표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같이 동서남북의 방위에 건태이진손감간곤(乾兌離震坤坎艮巽)의 팔괘를 배당시킨 것이 바로 복희역(卜羲易)이자 선천역(先天易)이다.
아래의 그림(先天圖)에서 이(離)괘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離)는 불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불덩어리인 해가 떠오르는 동쪽 표상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아 당연하다. 그러나 달을 상징하는 坎괘를 서쪽에 위치하게 한 것은 그것이 해와 대칭 상을 이루게 하기위한 단순한 배치가 아닌 것이다. 해에 비길 때 달은 물을 상징한다. 달이 차가운 이미지를 갖기 때문이다. 물론 달은 음괘이며 여성을 상징한다. 달이 여러 모로 보아 해에 비해서는 수동적인 이미지를 자지고 있으며, 더욱이나 여성의 월경주기하고 달력(calender=월력)이 합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과의 의미연관은 아주 밀접하다.
달이 지닌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광명과 더불어 역동적인 힘의 원천인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에 대칭시켜서 서쪽에 달을 배치한 것은 고대 중국인의 소박한 자연관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건(乾)을 남쪽에 배당한 것 역시 광명과 상서(祥瑞)로움을 추구하는 원시적이고 소박한 감정에서 우러나왔다고 본다. 중국이나 한국의 당상관은 모두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게 되어있다. 그래서 높은 관직에 올라서 입신양명하는 당사자를 남면(南面)을 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중국이나 또는 이를 본 딴 한국의 궁전이나 관아의 건물이 본전을 정남향으로 배치함으로써 정문 역시 마찬가지로 건물의 남쪽에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관부의 최고 수장 역시 집무실에서 남면을 하고 앉는 전통에서 유래하는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상징적인 남방을 이상향으로 동경하는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또한 건괘(乾卦)와 대칭상을 이루는 것이 원리상으로 볼 때 아주 자연스럽다는 관점에서 보면 곤괘(坤卦)가 북쪽에 배당이 되는 것 역시 타당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동양의 전통 사회에서 북쪽은 암흑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가령 잠자리에서도 북쪽에 머리를 두지 않는 풍습이 있다. 이는 태초부터 민중의 뇌리에 깃들어 온 잠재적인 상징의 형식은 아니다. 훨씬 후대에 역사적으로 형성이 되어 온 관념인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북망산(北邙山)에 간다고 하는 생각은 중국의 한 왕조 이후에 생겨난 전승적인 관념이다. 후한에 들어와서 도읍인 낙양의 북쪽에 있는 북망산에 다가 세력가의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데서부터 북쪽이 죽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지구의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큰 바다가 있다고 하는 고대 중국인의 세계관에 보다 더 적절하게 어울리는 후천도(後天圖)의 방위와 거기에 따른 8괘의 배당이 보다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 이유로서는 장자(莊子)는 역사시대의 인물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초나라에서 활동한 인물로 알려졌기 때문에 신화시대의 기록하고는 달리 보다 당대의 시대정신에 충실할 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희역(先天易)에 나타난 바와 같이 막연한 신화시대를 반영하는 세계관하고는 달리 보다 구체상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복희역(先天易) 에서 반영하고 있는 세계상은 현대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위의 그림(先天圖) 보는 바와 같이 동서와 남북이 각각 대칭 상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남과 북의 위치가 전도되어, 현대의 지도라든지 실제의 자북과 자남이 지니는 구체적인 물리적인 속성하고는 상반이 되는 방식으로 표상이 되어있는 것은 역리를 따라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지 별다른 큰 의미는 없다.
그러면 이제부터 본고의 핵심 쟁점가운데 하나인 우리나라와 위치의 措定과 관련된 문제를 따져보기로 한다.
우선 우리나라를 가리켜서 동방예의지국이니 하는 데 이때의 1) ‘동방’이 역에서는 어떻게 표상이 되고 있는 가의 문제이다. 그 다음에는 2)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가의 문제이다.
1)에 관해서는 우선 선천도(先天圖)에 조응해서 본다면 한반도는 의당 해가 떠오르는 방향인 이괘(離卦)의 위치에 배당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민족적 정서나 공속의식하고도 어울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배달민족인데 그것은 밝음을 상징하는 것이며,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흰옷을 입는 것도 이와 같이 광명을 재향하는 민족성에 기인한다는 속설이 있어왔다. 하여간 어떤 민족이건 만약에 두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암흑보다는 광명을 택하고 석양보다는 해가 뜨는 아침을 자기네 민족적인 표상과 관련지어보고 싶어 하리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조선왕조의 국호인 조선(朝鮮)이란 명칭도 문자 상으로는 이른 아침의 뜻하며 해가 떠오르는 동방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의당 이괘(離卦)로 표상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실제로 구월남(舊越南)공화국의 국기는 노랑바탕에 빨강색의 이괘(離卦)로 표상하고 있다. 월남의 실제 지정학적 위치는 동남아에 치우쳐 있으므로 그 사실을 그대로 표상하고자 한다면 兌卦여야한다. 하지만 불덩어리처럼 떠오르는 태양과 국운의 의미연관을 표상하려다가 보니까 이괘를 쓰게 되었다는 의도를 능히 간파할 수가 있다. 질제로 우리 나라의 태극기도 이괘(離卦)를 채택하고 그것과 대칭상을 이루게 시리 마주보게 하었다.
물론 태극기에서 채택한 이괘는 가운데의 우주 중심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을 둘러싸고 있는 4괘가운데 하나이므로 구월남공화국의 국기에서 볼 수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나라의 지정학적인 위치와는 무관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자신의 나라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 매김을 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신지비사(神誌秘詞)에 보면 지난 시대에는 우리나라를 가리켜서 진단(震檀)이라고 했고, 또 용비어천가에도 나오는 걸로 보아서 역사 시대에는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이칭으로 진단(震檀)이라고 부르는 데 그 다지 저항감이 없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유로서는 신지비사는 신화적인 내용을 적은 것이며, 그 소종래(所從來)에 대해서 가늠할 길이 없으나 용비어천가에 대해서는 다르다고 말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용비어찬가는 조선 왕조 를 건국한 이성계의 조국(肇國)l의 위업을 기리 보존하겠다는 의도에서 제정이 된 것이니 만큼 당시 중국 문화를 숭상하던 지식인 사대부들의 의식의 면모를 엿볼 수가 있는데다가, 여기에서 일단의 자의식이라고 할까, 하여간 주체에 대한 대자적 인식이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그것이 막연하게 그저 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동방이라는 뜻에서의 전적으로 추상적인 뜻에서의 이괘(離卦)가 아니라 동북방으로 치우친 진괘(震卦)로 표상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역의 괘상(卦象)을 가지고 말한다면 진위뢰(震爲雷)이기 때문에 그것은 상징적으로 태초의 천지조판의 그 시기에 우렁찬 태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역시 매우 동적이고 어떻게 보면 조선(朝鮮)이라는 문자가 지닌 매우 정적이고 은둔적일 성 싶은 그런 이미지하고는 상반되는 우리 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내뿜는 그런 영상을 담고 있다고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진괘(震卦)와 우합(偶合)하는 위치의 문제 이다.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지정학적으로 동쪽보다는 북쪽으로 치우쳐 있는 동북향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문화의 중심인 중국의 지정학적인 위치에 비길 때 우리는 동북방에 위치한 변방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상은 선천역(先天易)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후천역(後天易)에서의 방위의 설정은 다른가. 물론 다르다. 이미 위의 그림<後天圖>에서 본바와 같다. 후천역에서는 동북방에 艮卦가 배당이 되어있다.
우리나라를 가리켜서 간방(艮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했다. 팔괘 가운데 간괘(艮卦)는 산을 상징하며, 착괘(錯卦;본괘를 뒤집은 것=예하면 육효가운데 양효가 음효가되고 반대로 음효가 양효가 된 것)는 兌이다. 태는 못을 상징한다. 간괘의 괘상(卦象)에 대한 해석은 뭉뚱그려서 멈춤을 뜻한다.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자중을 하고 겸손한 미덕을 갖출 것을 권면한다.
논어에 나오는 ‘군자는 그의 직분이상의 생각은 말아야 한다’는 경구(警句)는 바로 역의 간괘(艮卦)의 상전(象傳)에도 똑같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문헌적인 계통관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중국문명의 시원과 더불어 창제 되었다고 하는 역과 유교의 기본경전의 하나라고 하는 논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정신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자 할 뿐이다. 이 두 고전을 관류하는 사상은 매사에 신중하고 겸허함과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정신에 있다고 하겠다. 역에서는 특히 겸괘(謙卦)와 더불어 이 간괘가 전체 64괘 가운데 두드러진다. 이러한 행위의 결단이나 의지와 관련이 되는 문제를 우주론적인 자연의 생성변화의 문제에다가 결부시켰기 때문에 역은 무두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것처럼 그 논리가 기괴하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고 이 대목에서 현안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인 위치하고 간괘의 속성하고는 어떤 의미연관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는 답변이 나올 수가 없다.
간괘가 전통적인 역사시대의 우리민족의 자화상이라고 할 은둔적이며 일사(逸士)풍의 도학자와 같은 처세로 현실 속에서 악착같은 강기(剛氣)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향을 말해준다는 추론이 성립할지 모른다. 설령 그것을 사실이라고 인정한다고 쳐도 역의 괘상(卦象)에 까지 반영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주장은 결코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반대로 선천역의 진괘(震卦)는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표상하므로 무기력한 과거를 청산하고 활기에 찬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므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데 적합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적인 당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사실에 근거한 담론으로 형성이 되지는 못한다.
물론 이 진괘와 관련된 담론은 조선시대를 통해서 주로 士林이 주도권을 쥐고 권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상위지배신분층에 묵식적인 동의가 가능했던 자아인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잘 알려진 대로 유교의 교화주의를 통치의 원리로 전면에 내세운 시기였다. 특히 주자학의 도덕적 합리주의의 세계관이 일체의 이단적 교설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시기였다. 더구나 선천역과 후천역의 차이를 처음으로 주장한 중국 송나라의 소강절(邵康節)의 황극경세가 참위서의 사상과 결부가 되어 정감록과 같은 이씨왕조의 쇠운을 말하는 비결이 나돌면서 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럴수록 선천과 후천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역의 담론은 특히 조선후기에 들어와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가면서, 후천역에 의거 우리나라를 간방으로 이해하는 전승적인 관념이 민간에 그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된다.
그러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까지 사회적 유전으로 沈着이 되어 왔는 가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4.간방(艮方)과 시령(時令)-공간과 시간의 만남
선천 후천도 중 선천도는 진단(陣摶)이 창제한 것이다. 소강절은 여기에다가 후천방위도를 부가해서 이를 널리 퍼뜨려서 오늘날에는 이것이 그의 사상에서 우러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창제한 것이다. 이 선후천 방위도를 포함하는 황극경세서의내용과 그의 사상전체를 가리켜서 당대의 식자들은 공중루각(空中樓閣)이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시대에 있어 한국의 민초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의 원회(元會運世)설이다. 소강절은 주장하기를 천지만물의 변천은 모두가 일정수의 변천다른 핑연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2진(辰)이 一日 30일이 일월 12월이 일년 30년이 1세(世)가 되고, 다시 12세(世)가 1운(運) 30운(運)이 1회(會) 12회(會)가 1원(元;129,600년)이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1원이 1변천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보면 1원의 변천으로부터 1회의 변천을 볼 수가 있고, 다시 1회로부터 운의 변천, 그리고 1운의 변천에서 1세의 변천을 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원회운세설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예언하는 참위설과 결부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정감록의 비결을 낳게 하고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저변농민들의 대소규모의 반란에 있어 불씨에 그름을 붓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 보면 중세적인 정체사회에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담보하는 역사발전의 실마리가 되게 하였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의 한 원초적 형태의 이데올로기로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 현저한 실례가 바로 동학의 창도에서부터 갑오 동학 농민 혁명으로 이어지는 사회 과정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또 한편으로 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아주 불확실한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지상천국이라고 하는 낙원의 이상적 세계에 대한 동경을 말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는 민증에게 구원의 희망을 심어주기에 족했다고 보는 것이다.
소강절의 황극경세서에 담긴 사상, 특히 후천역의 사상을 개시한 그의 사상에 역사시대의 이 땅에 어떻게 전래 되었는 가, 아니면 그토록 어렵고 심오한 사색의 천착을 요하는 사상이 어떻게 전래 되었는가하는 문제에 접해볼 차례이다.
소강절의 사상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대지식인, 특히 이른바 성리학의 6현이라고 칭하는 학자 가운데서 특히 합리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2程형제의 호된 공격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다.
이리하여 송대의 성리학은 주희를 정점으로 하는 도학적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정통파와 소강절을 옹호하는 신비주의적인 경향의 두 흐름으로 나뉘었다. 이러한 특징이 아주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조선시대의 사상계의 동향이라고 하겠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주자학이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관학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면서 체제교학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통주의로 인정을 받게 된다. 주자학이란 바로 2정형제와 주자의 교설에 근거해서 그 밖의 여러 학문적인 탐구를 잡학이나 이단 사도(邪道)로 몰아세웠다. 더구나 신앙의 측면에서도 주자가례에 의거한 신종추원(愼終追遠)의 의례를 빼놓고는 모두 음사(陰祀)라고 해서 철저히 단속했다.
이처럼 단일의 신념체계만을 고집하는 조건 속에서 왕조의 교체의 혁세사상과 관련이 될 수가 있는 참위설은 물론이고 소강절의 원회운세설 내지 후천역에 관해서는 불온사상으로 간주되어 금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상적 분위기 아래에서도 에서 중종(中宗)기 성리학자인 화담(花譚)은 정통적인 방법으로 성리대전과 역리의 탐구에만 몰두한 게 아니라 후천역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는 진작부터 소강절과 장횡거(張橫渠)를 사숙하면서 거기에서 도학적인 달관을 터득하게 된다.
화담이 당시 심학(心學) 일변도의 학풍에서 괘도 이탈을 해서 도학적인 신비주의와 형이상학적인 우주론에 탐닉했다는 사실은 그의 사후 그에 대한 세론의 평가에서도 잘 나타난다. 宣祖8년 5월에 조정에서 화담에 대한 포상의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왕은 ‘그 사람의 저서로 볼 때 기수학(氣數學)에 대한 논의가 전부이고 수신지사(修身之事) 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으니 어찌 이를 학문이라하겠는 가?’라고 하는 실록(實錄)의 기사로 미루어 화담에 대한 당대 사회의 主流의 평가가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분명 화담의 사상이 조선조 성리학의 본류를 벗어났었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화담이 이른바 ‘理와 氣라는 것은 전혀 다르다’(所爲 理與氣 決是二物)라고한 주자의 입장을 따르지 않고 주기설(主氣說)을 편 것만 보아도 소강절의 주장을 그대로 지지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런 만큼 주기설이라고 하는 본체론은 물론, 易理의 해석과 관련이 된 선후천설에 있어서 전적으로 소강절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할 수가 있다.
소강절은 역의 설괘전(說卦傳) 제 2장에 나오는 천지정위 산택통기 뢰풍상박 수화불상사 팔괘상착(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錯)란 구절에 의거 선천역의 방위를 설정했다..(앞의 선천방위도를 볼것)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견강부회의 측면이 없지 아니한바, 다름이 아니라 선천방위라는 것은 이미 존재했었던 것으로서 천지의 자연적 법상(法象)이 그러한 것인 즉 굳이 인위적으로 방위를 조정(措定)해야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주장인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이미 다산 정약용(丁若鏞)도 분명히 밝힌 바가 있으니 그는
“설괘라는 것은 복희씨가 괘를 처음 창제할 때 천체를 관측하고 지리를 관찰하였으며 멀리는 뭇 사물을 취하고 가까이서는 신변 주위의 환경을 면밀히 간파하여 그 상(象)을 창제하되 이는 신명과 의사가 소통한 바이니 공자는 이를 따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괘의 방위에 대해서 말한다면 당우(唐虞:요순시대)의 원초적인 모습에서 달라진 게 없다“
다산 丁若鏞의 이러한 설명은 신비적인 선후천의 방위도를 중심으로 하는 역의 우주론적인 본체론에 관한 설명은 원시유학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주목이 된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보면 다산의 주장은 후천방위도를 가지고 쟁점을 삼은 게 아니라 선천방위도를 문제 삼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선천방위도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설괘전(說卦傳) 제 2장에 나오는 천지정위 산택통기 뢰풍상박 수화불상사 팔괘상착(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錯)라는 구절에 근거해서 동서남북의 방위에 역의 4괘, 측 이감건곤(離坎乾坤)을 각각 ‘작위적’으로 배당한 것이니까 시대적으로도 아주 후대에 이루어 진 것이 확연한 동시에, 그런 뜻에서 신비적인 은유나 상징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산이 언급하지 아니한 후천방위도에 대해서는 다르다. 그것은 설괘전 4장에 구체적으로 방위가 지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산이나 동시대, 혹은 우대의 성리학자가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이 지닌 의미가 훼절되었다거나 값어치가 없는 황탄지설로 묵살이 되어 버렸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여기에 숨어있는 의미는 오히려 후에 파락호 혹은 잔반이라고 하는 불우 지식인들의 인고에 어린 노력의 그 해명의 실마리가 풀려나갔다.
다음은 설괘전 제4의 후천역의 방위도와 관련해서 팔괘의 배치하게 된 배경에 숨어 있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1.제출호(帝出乎<진(震)>) 2.제호(帝乎<손(巽)>) 3.상견호(相見乎<이(離)>) 4.치역호(致役乎<곤(坤)>) 5.설언호(說言乎<태(兌)>) 6.전호(戰乎) 7.건(乾) 8.노호(勞乎<감(坎)> 성언호(成言乎<간(艮)>
위의 팔괘에 대한 각각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여기서 제(帝)라함은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주재신이라기 보다는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조화를 주재하는 어떤 원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다. 바로 그것이 동쪽이며 팔괘 중 震이 배당이 되고 있다. 계절적으로는 봄의 바로 춘분(春分)이 된다.
2.제호손이라고 할 때의 제(齊)는 정제(整齊)의 뜻을 지니며 손괘(巽卦)가 동남방에 배당이 된다. 계절적으로는 입하(立夏)가 되며 이때는 천기가 온화한데다가 만물이 막 성장을 개시한다.
3.상견호리라 함은 만물이 왕성하게 번성해서 각기 그 고유의 형태를 완벽하게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때 이(離)는 남쪽에 자리매김이 되며 계절적으로는 하지가 된다.
4.치역호곤이라 함은 만물이 무르익어가는 국면에 접어드는 즈음이라서 힘써 가꾼다(育)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곤괘(坤卦)는 방위는 서남에 해당하고 계절적으로는 입추에 해당한다.
5열(說)언호태라 함은 만물이 완전히 무르익어서 흔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말한다. 태괘의 방위는 서쪽이며 때는 추분을 말한다.
6.전호건이라 함은 서로 다툰다는 뜻이자 교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건괘(乾卦)의 방위는 서북에 해당하며 시기는 입동이어서 이때 더위가 물러가고 추위가 다가오기 때문에 음양이 서로 맞부딪치는 격이 된다.
7.노호감이란 만물이 피로해서 쉰다는 뜻을 담고 있다. 勞는 피로하다는 뜻이다. 이때 감괘의 방위는 북쪽에 해당하며 계절적으로는 동지가 된다.
8.성언(成言)호간이라 함은 만물이 1년의 생장주기를 마치고 새롭게 싹이 트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성(成)은 물론 이룩한다는 뜻이지만 言은 그저 어조사로서 아무런 뜻이 없다. 艮卦의 방위는 동북을 가리키며 때는 입춘이 된다.
이제까지의 서술이 이제 간방(艮方)이 갖는 총체적인 의미를 규명해야할 시점에 도달했다.
첫째로 간방은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상대적으로 서쪽에 위치한 중국의 문화중심에서 변방에 위치하는 자리매김이라는 점에서 분명 대자적인 자기인식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난 역사시대에 있어서 선천역에서의 진방(震方)과 함께 우리 한국이 중국의 동북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모든 담론을 산출하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초(民草)들의 전승사물(傳承事物)이나 관념 속에는 막연한 자기 정체성을 나타내는 어떤 신비한 상황의 개념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는 진방(辰方)보다는 간방(艮方)이 한층 두드러지는 데, 여기에 대해서는 간방과 관련된 담론이 지닌 보다 형이상학적인 문제의식에 직충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물론 그에 앞서 간방이라고 공간적인 한정을 넘어서 시간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역은 본디 不易이면서 또한 變易이라고 하는 상반이 되고 모순이 되는 원리가 변증법적으로 작용을 하면서 부단히 생멸과 변화를 거듭하는 우주만물의 존재양식을 상징하는 체계이다. 그런데 선천 역에서는 그것이 고정 불변의 모습으로 자리매김이 되어있다. 이미 위에서 여러 차례나 진술한 바와 같이 선천 역을 가리켜서 견강부회라 함은 그것이 우주창성 이전의 혼돈의 상태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하늘과 땅에 다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의 원소(오행사상에서의)인 물과 불을 고려하면서 동서남북의 4방위를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가 창성을 위해서는 이렇게 고정된 상태에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주는 창성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변화해야한다. 그래서 주희(朱熹)는 ‘하늘이 스스로 운전(運轉)하며 방위는 ’운동‘한다고’하는 확고한 인식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운동’한다, 다시 말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변화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생멸과 변화라는 것이 ‘시간 안에 있다‘라는 사실과 다를 바가 없다. 방위가 변화한다함은 곧 그 것이역시 스스로의 한정을 벗어나서 시간과의 조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하간 그와 같은 사태를 상징형식으로 도시한 것이 바로 후천역의 방위도이다.
‘1.제출호(帝出乎<진(震)>)’으로 부터 시작해서 ‘8.성언호(成言乎<간(艮)>’으로 끝나는 순차적인 설명은 바로 시간적인 진행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후천 방위도에서 보면 시계바늘의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며 이것은 오늘날의 시계의 문자판과 원리가 같다고 할 수가 있다.
3.후천 역에서는 시간적인 차원에서는 동북방에 배치된 간괘에서 끝이 난다. 시간적인 의미에서 간괘는 종착점이자 또한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제 곧 새싹이 움틀 채비를 하는 입춘에 해당한다. 끝이자 시작인 셈이다.
후천역에서 시간의 요소와 의미연관을 갖게 되는 후천방위도는 원환적인 모습으로 표상이 되거니와 이는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인 과정을 쉬지 않고 반복하는 영원회귀를 상징한다. 시간의 흐름은 이와 같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진행하는 일회기적인 직선상의 시간이 아니라 똑같은 과정을 자꾸 되풀이하는 영원회귀의 사상인 것이다.
이 중국에서의 영원회기의 사상은 골똘한 관념의 세계에 침잠해서 이끌어낸 심오한 사색의 산물이 아니다. 일상적인 세계에 대한 중국인 특유의 직관적인 관찰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정착의 농경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중국문화는 계절적 변화에 아주 민감할 수밖에 없고 일찍부터 천문관측에 매우 선진적인 업적을 이룩했다. 세계의 주요 문명이 다 천문 관측술에 있어서 그 나름의 유산을 물려준 건 사실이지만, 중국처럼 민중의 일상적 삶의 영역에 깊숙이 스며들게 하지는 못했다.
이리하여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생겨나는 12간지나 24절기는 추연의 음양오행과 더불어 팔괘가 가미함으로서 하나의 시공을 망라하는 상징체계로 된다. 기원전 230여년 경에 편찬이 된 여씨춘추(呂氏春秋)는 그러한 원리를 망라한 백과전서적인 역사서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에서의 시공의 관념은 순수한 사변적인 천착을 통해서 이루어진 순정의 형이상학적인 관조의 세계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중의 총체적인 삶의 궤적이 주름의 무늬를 짓게 한 역사의 형성물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결론; 終 萬物의 始 萬物의 땅
時令이란 계절의 변화에 따른 그때그때 실천과제를 일컫는 말이다. 고대 중국의 농경문화에 있어서 계절의 변화는 농사의 성패를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최하층의 농민에서부터 군주에 이르기까지 계절의 변화는 그들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자각하는 관건이 된다. 군주에게 있어서는 그때그때의 정무를 보살피는 시무(時務)가 그래서 중요하고 농민에게는 무본(務本)이 강조된다.
우주만물의 생멸변화를 관조하는 상징체계인 역도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추상적인 관념이나 사상 역시 시대정신의 산물인 점은 물론이고 그 보다도 역사와의 관계를 단절하고서는 어떠한 사물이나 세계관하고도 아무런 의미연관을 지니지 못한다. 역의 발생이 그러했거니와 중세 때인 송나라에 와서야 역의 사상이 한층 체계화하고 구조적으로 탄탄해 지면서 후천역이 등장하는 것도 역시 역사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역이란 아무리 초월적인 실재를 지향한다하더라도 궁극에 가서는 역사 속에 수렴된 형태이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서 역사란 상대화된 세속의 지정학적 공간속에 수렴된 세속의 역사를 말한다. 한국을 진방(震方)이니 간방(艮方)이니 하는 것은 말하자면 동양사나 세계사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시간과 공간, 다시 말해서 서론에서 말한 시간과 공간의 축이 만나는 초월적인 종교적인 성스러운 시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역을 창시한 일부 김항 선생은 이러한 상대개념을 극복하는 초월의 공간과 시간을 설파했다. 이는 단순한 지적인 탐구에 의한 추론의 성과라기보다는 神明界에 도달한 道覺의 체험으로서 만 가능한 것이었다고 보눈 데, 아주 간결한 명료한 正易圖를 통해서 새로운 변혁의 도래의 실상을 설명했다.
위의 그림에서 제일 왼쪽의 복희괘도(伏羲卦圖)는 하도(河圖)와 일치시킨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건태이진손감간곤(乾兌離震坤坎艮坤)의 팔괘를 동북서북남동남서의 팔방에 배당한 것인 불과하다. 천지조판(天地肇判)이 이루어지기 전의 선천시대의 태허(太虛)의 허공을 상징하는 표지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팔괘를 상징하는 팔수(八數)가 가장 많은 수자가 된다.
그러다가 후천의 시대에 이르면 뇌성벽력의 우렁찬 고동(震卦의 상징)과 함께 천지창조의 서막이 열리면서 간괘(艮卦)에서 완성과 함께 시작을 준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의 문왕괘도(文王卦圖) 가 이를 상징하거니와 여기에는 팔괘의 각각 배당이 되는 一에서부터 八까지의 숫자 가운데 五가 보이지 않는 대신 九가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김일부 선생은 五의 수자는 귀공(歸空)이라 하여 표시가 되지 않았는데 그 위치는 중앙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아래의 왼쪽 그림은 낙서(洛書)이다. 그리고 오른 쪽의 도표는 중앙의 귀공상태(歸空狀態)여서 아무것도 표시하지 아니한 (5)를 제외한 낙서(洛書)에 나타난 각 방면의 알맹이의 개수를 숫자로 표시한 것으로서 위의 도표의 중앙에 있는 문왕괘도에 대응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문왕괘도가 어째서 구수(九數)를 표방하는 지를 그 소종래(所從來)를 밝혀 이해를 돕고자 함이다.)
4 9 2 3 (5) 7 8 1 6
이리하여 문왕괘도(文王卦圖)는 아홉수(九數)를 갖는 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홉수가 0에서부터 9에 이르기까지의 성수(成數;홀수)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는 하나, 완전무결한 완성의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고 막 구체제를 혁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시점에 다다라서 혼란과 모순이 극점에 달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 단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는 완성(Vollkommenheit)의 단계가 바로 일부의 정역괘도가 상징하는 단계가 된다. 여기서는 쟁란(諍亂)에서 화평이 실현되며 모든 것이 원만 구족한 상태인 인륜과 도의가 실현이 되어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의 각정성명(各正性命)이 이루어지는 유리세계(琉璃世界)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역괘도에서 각괘가 천지정위 산택통기(天地正位 山澤通氣)의 대칭상으로 베치되며, 특히 정음정양(正陰正陽)의 평등의 원리가 구현되는 사회질서의 도래를 염원하는 뜻에서 선후천의 역에서 태양과 광명을 표상하는 남방(南方)에 배당이 되었던 건괘(乾卦)를 추위와 어둠을 상징하는 북방에 배치한바 이는 천존지비(天尊地卑)의 선후천역의 사상이 새로운 질서 안에서는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뜻을 표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역은 완성을 뜻하는 수인 十數가 된다.
이제 지금까지의 서술을 정리해서 마무리 지을 단계이다.
1) 한국을 말할 때 간방이라고 하는 것은 그 근거가 역리(易理)에서 나온 것이며 지리적인 방위로는 동북방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지구물리학적인 자북과 자남을 잇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한 자연지리적인 설정은 아닌 것이며 역사적으로 문화의 중심으로 간주하는 중국의 문화권에 대한 인식에서의 변방이라는 시각에서의 대자적인 인식이 깔고 있는 것이다.
2) 한편 소강절이래 하도와 낙서에 각각 대응하는 선후천역의 사상이 대두하면서 후천역에 배당이 된 간방은 만물의 시작과 끝의 반복이라고 영원회귀의 사상과 결부과 되며, 따라서 공간적인 개념과 시간적인 개념이 융합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만물의 시작과 끝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보본반시의 원환적인 영원회귀의 상태로 귀납이 될 수가 없는 것이, 후천역의 구조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데서 보다 발전적인 지양이 모색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점이다. 상징적으로 말한 다면 아홉수에 머물지 않고 완벽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지 앉으면 안 되었다는 뜻도 된다.
3) 정역의 창시자인 김일부선생은 십수의 새로운 팔괘도를 제시함으로서 완벽한 조양율음(調陽律陰)의 유리세계를 표상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증산상제께서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 二十四 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워졌느니라.」라고 예시(豫示)하심으로써 간방과 관련이 되는 논의는 그 논거가 한꺼번에 공중누각으로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일부선생은 도통(道統)의 경지에서 예지계를 투시하는 혜안으로 십수(十數)로 실현이 되는 유리세계의 실상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데 머물렀다면 증산상제는 신통의 경지를 거쳐서 신명계에 머물면서 후천선경의 좌표에 임하는 제생(濟生)의 도를 선포하신 것이라고 보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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