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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양독(洋毒): 실증주의 역사관

by 바로요거 2006. 10. 23.

 

 

양독은 서양에서 들어온 실증주의 역사학의 해독을 말한다. 이는 “주관적인 판단 없이 역사적 사실을 원래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의 관점을 밑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계열의 역사학자들은, 오직 유적과 유물에 의해 실증된 역사적 사실만을 인정하는 반면, 문헌을 연구하는 사학은 비판한다. 그래서 대표적인 고대사 자료인 『환단고기』 등의 서적을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눈으로 보아야만 믿는다는 식의 고증이 중요하다면서, 왜 그들은 중국과 러시아 땅에 묻혀 있는 고조선의 유적과 유물들은 확인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해방 후 국사학계는 1930∼40년대 초기의 학풍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더욱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납북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다양한 국사연구 학풍이 실증주의 학풍으로 단일화되면서 실증주의 사학자들이 우리 나라 국사학계의 핵심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주류에 역사학자 이병도의 영향력이 자리잡고 있었음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그는 역사학계의 대부로서 해방 후 1955∼1982년까지 ‘국사편찬위워회’ 위원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니 일제시대의 식민주의 역사관이 국사책에 반영되었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역사가 왜 왜곡되었는가? 왜적이 침범해서 역사책을 불태우고, 내란이 일어나서 우리 역사책을 불태워서 왜곡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역사가들에 의해서 왜곡되었다”고 하였다.  

앞서 소개했던 안호상 박사는, 고대 역사서들이 입증하고 있던 사실을 후대에서 중국과 일본의 사가들이 이 사실을 왜곡 변조했으며, 식민사관에 물든 우리의 역사학자들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여기에 기초해 국정교과서들이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지적했었다(1999년 3월 1일자 세계일보).

역사가 단지 흘러가버렸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잊혀지고 마는 것일까?
우리의 민족혼 속에는 서양식의 근대적인 과학주의 역사관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깊은 잠재적 사상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유적과 유물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의식 무의식 속에 살아숨쉬는 민족혼이야말로 역사의 실체를 찾아가는 단초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문화의 정신사 속에는 상제문화와 제사문화, 그리고 풍류신도가 면면히 전승되어 오고 있다. 잃어버린 고대사의 복원을 통해서만 이러한 민족문화의 정수를 되살려 낼 수 있다.

매년 설, 추석만 되면 수천만 명이 모든 일을 제쳐놓고 오직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향을 찾아나선다. 이는 뿌리를 찾아가는 원시반본 문화의 표상이다. 또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 당시 한반도를 붉게 수놓은 인간꽃, 태극 물결을 보라. 이것은 풍류신도의 저력이 아닌가. 이제 한민족이 상제문화를 복원하여, 세계일가문명을 주도할 영광의 그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