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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사 바로알기

한-일 역사공동위원회는 도대체 뭘 하는 곳이여?

by 바로요거 2013. 1. 11.

한-일 역사공동위원회는 도대체 뭘 하는 곳이여?

 

동북아역사재단이나 한일역사공동위원회나, 그 나물에 그 밥이네.ㅠㅠ

 

식민사관 뺨치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란 조직이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되자 두 나라 역사의 공통성 확장을 위해 한ㆍ일 두 나라 정상의 합의로 2002년 발족하여 2005년 3년간 활동한 단체다. 물론 이 단체는 양국 국민들의 국고로 운영되었다.

위원회 중 제1분과가 고대사, 제2분과가 중세사, 제3분과가 근ㆍ현대사를 다루었다. 그간 이 연구에 참여한 한국 학자들은 기자들에게 여러 차례 일본 학자들과 많은 이견이 있었던 것처럼 말해왔고, 그런 식으로 보도되어왔다. 그래서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한국 위원들이 일본 위원들과 치열하게 논쟁하며 한국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 한국 학자들이 국민세금으로 연구한 결과물인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중 제1권(제1분과, 고대사평) 중 '4세기 동아시아 정세와 한일관계'란 항목을 보자. 여기에는 고구려가 언제 건국했는지를 말해주는 구절이 있다.

 

백제의 왕성인 서울 풍납토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서기전 2세기 무렵부터 축조되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한국 쪽 학자들은 서기 3세기 후반에야 축조되었다고 주장했다.

 

중국 동북부 및 한반도 지역에서는 무질서하던 열국列國이 상호 통합되어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4국이 정립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던 고구려는 3세기 후반 서천왕 때에 이르러 각 지역에 온존하던 고유명부固有名部를 일소함으로써 연방제적인 초기 고대국가를 벗어나 왕과 중앙 귀족에 의한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완비하였다.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58쪽

 

고구려가 제13대 서천왕(270~292년) 때 사실상 건국되었다고 기술한 것이다. 종래의 정설이던 태조대왕(53~146년) 때보다도 150년 이상 후퇴했다.

거듭되는 외환 속에 고구려는 주변 국가에 대한 거시적 외교와 안정된 지배질서 창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하여 제17대 소수림왕은 전진 왕 부견과 교류하여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우고 373년에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성숙한 고대 국가 체제를 완성하였다.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58쪽

 

한술 더 떠 고구려가 고대 국가 체제를 완성한 것은 17대 소수림왕(371~384년) 때라는 주장이다. 한국 학자가 쓴 이 글대로라면 고구려는 4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고대 국가가 된다. 만약 쓰다 소우키치가 봤다면 무릎을 치며 “나는 왜 이렇게까지 주장 못했을까?”라며 한탄할 내용이다. 고구려가 한나라와 전개했던 그 수많은 전쟁 기록은 완전히 묵살되었다.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아니라 일개 부락이 한나라 변방을 상대로 한 소요에 불과했다는 식이다.


백제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백제의 정세편’을 보자.

한강 유역 백제의 정세는 어떠하였을까?『삼국사기』백제본기에 의하면 고이왕 27년(260)조에 6좌평 및 16관등제 등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완비했다고 나오나, 이는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유적 분포를 살펴보면 3세기 후반에 백제의 왕성인 서울 강동구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축조되었으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59쪽

 

 

원삼국 시기의 철제 무기.

철제 무기의 출현은 고대 국가 성립의 지표로 해석하는 것이 세계 고고학계의 통설이지만 한국에서는 서기전 1세기부터 서기3세기까지 신라와 백제는 부락 수준에 불과했다면서 굳이 원삼국이란 틀에 가두어 설명하고 있다.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검과 검집.

한강와 낙동강 유역에는 서기전 1세기를 전후해 철제 무기류가 다수 출토되어 이들 지역에 강력한 고대 정치체가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진짜 한국학자가, 그것도 국민세금을 지원받아 쓴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이다. 이병도는 『삼국사기』「백제본기」‘고이왕 27년조’의 주석에서 백제가 이때 6좌평과 16관등제 등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완비한 것을 고대 국가 성립의 근거로 들었다. 물론 고이왕 때 백제가 건국되었다는 이병도의 주장은 ‘『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의 아류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런데『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는 서기 3세기 후반, 곧 고이왕 27년에 백제가 건국되었다는「백제본기」의 기사 자체가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하여 조작되었다’는 것이다.「백제본기」‘고이왕 27년조’의 기사 자체가 조작되었으니 이를 토대로 고이왕 때 백제가 건국되었다고 본 이병도의 학설도 틀렸으며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추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식민사학자라고 비판받아온 이병도가 민족사학자로 격상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은 우리 시대 대표적 역사학자 이덕일이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근본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점을 살펴보고, 한국사 인식체계에 대한 종합적 검토와 비판을 통해 참된 우리 역사와 올바른 역사관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 고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식민통치기구 한사군이 과연 한반도 내에 있었는지 살펴보았고, 서기 3~4세기까지의『삼국사기』초기기록이 김부식이 조작해낸 가짜라는 역사학계의 정설이 옳은가를 검증했다. 또한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조작해내고, 효종의 북벌에 시종일관 발목을 잡은 우암 송시열이 북벌의 화신인 것처럼 서술하고, 실학의 이용후생학파, 곧 중상학파를 노론이 주도한 것처럼 서술하고, 세도정치를 정조의 책임으로 돌린 노론사관의 실체를 밝혀냈다. 마지막으로는 일제강점기 때 과연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은 존재하지 않았는지, 존재했다면 왜 말살되었는지 조목조목 짚어낸 후 바로잡았다.  

 

- 역사의 아침 역사의아침 2009.09.04 이덕일 저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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