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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환단고기*韓의뿌리

환단고기의 진실67-하남 위지성 풍납토성과 환단고기

by 바로요거 2012. 9. 28.

환단고기의 진실67-하남 위지성 풍납토성과 환단고기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깬 풍납토성의 발견

 

풍납토성을 발견한 이형구 교수의 수난과 대한민국의 자화상

 

                                                                                    

금강산한의원 원장 최병갑 글

 

한성백제 500년의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이 어디냐를 두고 광주다 하남이다 직산이다 의견이 분분하던 때가 있었다. 일제의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하며 친일을 하던 사학계의 대부 이병도는 일제 시대부터 풍납토성을 백제의 (사성)이라 주장하여 그것이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1967년 고고학의 대부 김원룡은 풍납토성의 소규모 발굴 결과 이곳이 1세기부터 5세기까지 공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사용된 중요한 성이라고 발표하였으나, 당시 고대 사학계의 반응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철저하게 무시를 하였다.

이병도의 실증사학은 삼국사기의 초기기록들을 불신하며 삼국의 고대국가 성립을 훨씬 후대로 끌어내리고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뒷바침하는 행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백제의 고대국가 성립도 3세기 후반으로 주장하고 있었는데 김원룡의 표현대로 거대한 풍납토성이 1세기에 만들어졌다면 백제의 고대국가 성립의 시기도 그만큼 위로 올라가야 하므로 김원룡의 주장을 무시했던 것이다.

전국 대학의 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던 이병도와 그 제자들의 파워에 굴복한 김원룡은 결국 (성의 규모나 위치로 보아 중요한 성이나 삼국사기에 나오는 사성으로 추측된다)라고 주장을 번복하게 된다.

이병도와 김원룡의 싸움에서 이병도가 승리한 것이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국립 대만대 고고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1981년부터 풍납토성과 인근의 백제유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유적의 보호를 강조하였으나 주류학계는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라는 식의 집단 따돌림을 하였다.

미대출신에 유명대학의 사학과를 나오지 않은 (한마디로 이병도 계열이 아닌) 그의 주장을 주류 사학계는 검증해 볼 생각도 해보지 않고 그냥 무시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형구 교수는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투쟁하여 석촌동 보호 유적의 확대, 풍납토성을 관통하는 도로계획의 철회, 중앙병원 설립시 지하주차장을 지상에 설치하도록 하는 등의 성과를 거둔다.

 

드디어 운명의 1997년, 토성의 최소높이를 확인하려고 풍납토성을 찾은 이형구 교수는 현대아파트 공사현장을 발견하고 만류하는 현대건설 직원들을 뚫고 현장으로 들어가 백제시대의 기와들과 유적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언론을 타고 특종이 되어 유적의 보존과 대규모 발굴로 이어져 현재는 풍납토성이 하남위례성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형구 교수가 주류사학계에서 받은 무시와 냉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판 품페이의 발견)이라는 풍납토성의 최대 발굴자인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의 관심있는 인사들 뿐이다.

2006년인 현재도 국내의 사학자나 고고학자 들에게 이형구 교수를 말하면 (이형구가 누구요)하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그말은 따돌림의 상징인 것이다. 아무리 옳은 주장을 펴도 학맥 인맥 금맥이 없다면 기존의 학계는 개무시하고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릴 기회가 없게된다.

어떤 교수가 풍납토성을 발굴할 때 했다는 말이다. (유물이 나온다 해도) 개인의 재산권이 중요하므로 보존은 불가능하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며 비민주적인 발상이다. 현재는 그 교수가 (풍납동 같은 중요한 유적에서 ---) 라고 한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여전히 기존학계는 이형구를 한낱 싸움꾼으로 폄훼하려는 기운이 역력하다.

과연 자기만의 틀에 갇혀 자기만의 학문에 도취된 언필칭 학자들은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얻어낸 풍납토성의 발굴 성과를 두고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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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발굴된 풍납토성안 주거지에서 발굴된 유적의 방사선탄소연대측정 결과 기원전으로 나온 점을 미뤄볼 때 이날 공개된 풍납토성도 적어도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축조에 들어간 것만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와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 일본학자들과 이병도에서 비롯된 대부분의 한국고대사학자들이 그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기록이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더없이 좋은 증거가 된다.

 

지금까지 한국고대사학자 대부분은 건국이 기원전 18년이며 이미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강력한 절대왕권을 갖춘 것으로 기록한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기록을 허구라고 비판하면서 이병도를 따라 대체로 3세기 중반 고이왕 이후부터 역사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모습을 드러낸 풍납토성은 그 축조시기가 「삼국사기」가 백제 건국연대로 기록한 기원전 18년을 즈음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만 아니라 늦어도 기원후 20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축조가 완료된 것으로 밝혀졌다.


위지성은 풍납토성

 

위지성의 위치는 고대사에서 오랫동안 풀지못한 수수께끼였다. 1500년동안 잊혀졌던 위지성은 최근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서울 송파구의 풍납토성으로 밝혀졌다.
 

온조가 신하 열명의 의견을 쫓아 드디어 하남 위지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백제라 하였다.

백 사람이 건너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뒤에 비류가 세상을 떠나자 그 신하와 배겅이 그 땅을 바치며 복종했다. -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1143

온조는 10명의 신하들을 데리고 나라를 세웠다해서 십제라 했다. 온조는 동명왕을 시조로 제사지냈다.[삼국사기]

[삼국사기-백제본기]위례성의 위치에 대하여 신하들이 온조에게 말하는 내용이다.

 "이 곳 하남땅만이 북쪽으로는 한수(漢水)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로 막혀 있읍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온조왕 13년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다 그들이 변경을 침공하니 편안할 날이 없다" 라고 했다 .

 

[환단고기-고구려본기]기록이다.

"태자 비류가 즉위하였는데 모두가 그를 따르지 않았다, 이에 마려 등은 온조에게 말하기를 "신등이 듣기로는 마한의 쇠퇴가 이미 드러난 일이요, 가서 도읍을 세워야 될 때입니다"라고 했다, 온조가 "좋다"고 승락하니 곧 배를 짜서 바다를 건너 처음 마한의 미추골에 이르렀다.

앞으로 나가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텅 비어서 사람 사는 곳이 없었다.

한참만에 한산에 이르러 북악산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살펴 보고는 마려.오간 등 열명의 신하들이 말했다,...온조는 열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 마침내 하남의 위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뒤에 비류가 죽으니 그 신하와 백성들이 그의 땅을 가지고 귀순해 왔다...백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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