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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환단고기*韓의뿌리

환단고기의 진실42-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비밀을 풀어주는 환단고기

by 바로요거 2012. 9. 14.

환단고기의 진실42-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비밀을 풀어주는 환단고기

 

환단고기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설화의 비밀을 풀어준다

 

대무신 열제 20년(단기 2370,37) 열제께서 낙랑국을 기습하여 멸하셨다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설화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호동(好童)은 유리왕의 셋째 아들인 대무신왕의 차비(次妃)에게서 난 소생이다. 왕은 그를 심히 사랑하여 호동(好童)이라 이름하였다.  대무신왕 15년 4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沃沮)를 유람하였는데, 낙랑의 왕 최리(崔理)가 여기 나왔다가 호동을 보고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다. 그대야말로 북국신왕(北國神王)의 아들인가?"며 호동을 데리고 함께 돌아가 사위를 삼았다.  (삼국사기) A.D 32년 그 뒤, 호동이 고구려에 돌아와 낙랑(樂浪)에 있는 아내 최씨녀(崔氏女)에게 사람을 보내어 전하기를 "그대의 나라 무고(武庫)에 들어가 고각(鼓角-북과 나팔)을 몰래 찢어버린다면 내가 그대를 아내로서 맞아들이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부부가 될 수 없으리라." 하였다. 

 

이유는 낙랑에는 옛날부터 신기한 고각이 있어 적이 침입하면 스스로 울리는지라, 그로써 침략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과연 최리의 딸(낙랑공주)은 몰래 무고에 들어가 예리한 칼로 그 고각을 찢어 버리고 호동이게 그 사실을 알렸다. 호동이 그 말을 듣고 왕에게 고하여 낙랑을 공격했다.

최리는 고각이 울리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있다가 고구려군이 성 밑에 이르러서야 깜짝 놀라 무고에 가보니 벌써 고각은 부서져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최리는 마침내 딸을 죽이고 항복하고 말았다.

 

평양 일대에 있다는 낙랑유적은 무엇이며,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전설에 나오는 낙랑국은 무엇인가?. 평양일대에 남아 있는 ‘낙랑’이라는 이름 때문에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 당연합니다.

과거 국극단이나 학예회에서 공연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호동왕자의 나라인 고구려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낙랑공주의 나라인 낙랑국(樂浪國)에 대해서는 시원스런 해명을 듣지 못한 채 역사를 배워왔습니다.

 

낙랑국은 서기 32년을 전후해서 지금의 평양자리에 실존했었습니다. 왕의 이름은 최리(崔理)였습니다. 이 시기는 낙랑군(樂浪郡)이, 지금의 평양지역에 존속되던 때로 배웠습니다. 이렇게 되면 평양에는 ‘낙랑국’이라는 독립국과 ‘낙랑군’이라는 식민지가 동시에 있었던 것이 됩니다. 4군현이 BC 108년에 설치되어 고구려에 의해 축출되는 AD 313년까지 장장 421년간이나 우리나라 북부에 버티고 있었다면, 낙랑국이라는 독립국이 가능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사학계에서는 최리의 낙랑국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못하고 하나의 전설 정도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허위를 정당화 하다보니 내용이 사리(事理)에 맞지 않을 수밖에 없지요. 최리의 낙랑국은 AD 37년에 고구려로 통합됩니다만, 이 최리의 낙랑국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BC 169년에 번조선의 유민 최숭(崔崇)이  북부여(北夫餘) 왕실(海城:요동반도 북부)에 곡식 300가마를 바친 기록이 나오고, 또 BC 195년에는 진귀한 보물을 산처럼 가득 싣고 바다를 건너 마한의 땅으로 옮긴 기록이 환단고기 북부여기에 나옵니다.

 

 

이때가 위만이 기준을 축출하여(BC 194) 기준이 바다를 건너 마한(馬韓)으로 도망갈 때이며, 우리 고조선의 말기, 북부여 때입니다. 시대상으로 볼 때 북중국의 낙랑지역이나 기준의 번조선지역에 살던 최씨 일족이 위만의 학정을 피하여 바다 건너 현재의 평양지역으로 옮겨와서 낙랑국의 유래가 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소위 한군현이 설치되기 87년 전입니다. 기준이 BC 194년에 쫓겨났는데, 최숭은 그보다 1년 전에 보물을 싣고 마한으로 갔다면 기준의 도피행각과도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낙랑이라는 고향의 이름을 따와서 살게 된 것이며, 그때 마한지역은 고조선 말기, 고구려의 태동기로서 통치력이 미약하던 시대적 상황이었던 만큼 평양지역에 낙랑(국)이라는 최씨들의 영지(領地)를 갖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번조선의 낙랑, 최숭의 낙랑국

 

낙랑은 위만이 번조선을 찬탈해 다스렸던 왕험성王儉城(번조선 말기의 수도로 지금의 하북성 창려昌黎) 지역이다. 본래 평양 일대에 있었던 낙랑은 고조선 삼한 중 번한番韓의 유민 최숭이 세운 ‘최씨 낙랑국’이며 낙랑군이 아니다. 현재의 평양지역을 낙랑군으로 보는 인식은 당나라 이후에 생겼으며, 그 전에는 요동에 있었다는 기록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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