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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JeungSanDo/증산도 커뮤니티

증산도란 무엇인가?

by 바로요거 2009. 12. 4.

증산도란 무엇인가?

 

 

 

이 글은 2002년 증산도 전국순회강연회장에서
 슬라이드 자료와 함께 방송되는
 증산도 소개글을 문답식으로 재구성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증산 상제님의 생애와 증산도의 도맥,
 그리고 증산도의 주요 활동 등을 간추려 소개합니다.
 
 증산도의 도조(道祖), 증산 상제님에 대하여
 
 
 증산도란 무엇입니까?
 지금으로부터 132년 전, 동방의 한국 땅에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증산도는 이 땅에 강세하신 우주의 조화옹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의 대도진리입니다. 
 

 ‘증산’이 어떤 분 이름입니까? 또 ‘상제’란 무슨 뜻입니까?
 


 ‘증산’(甑山)은 증산도의 도조(道祖), 곧 증산도를 창도하신 분인 상제님의 존호입니다.
 그리고 ‘상제’(上帝)란 윗 상(上) 자 하나님 제(帝) 자로, 천상의 지존무상하신 대우주 통치자 하나님의 호칭입니다.
 
 
 이 ‘상제’란 말이 동양문화 속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용되던 술어가 아닙니까?
 

 한민족 문화의 근원에는 면면히 흘러온 상제문화가 있습니다.
 중국에도 4,300여 년 전, 고대 하은주 시대로부터 중국 역대 왕들이 큰 혼란기에 처하여 혁명을 일으킬 때면 반드시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거사에 임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습니다. 또 중국 마지막 황제 부의 역시 황제에 등극하면서 “호천상제지위”, 즉 상제님 신위를 모시고 천제를 봉행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양의 상제문화는 우리 한민족의 신교문화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를 보면, 일찍이 고조선 시대에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서 상제님 전에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조선말 1904년, 조정에서 각 학교에 반포한 애국가 가사에도 “상제는 우리 황상을 도우소서”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처럼 상제문화는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동방문화의 뿌리인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언제 이 땅에 탄강하셨습니까?
 

 상제님은 이 땅에 강세하시기 전, 도솔천 하늘 보좌를 떠나 서양 대법국을 거쳐, 성령으로 금산사 미륵불상에 30년 간 임어해 계셨습니다. 상제님은 미륵불상에 임어해 계시면서, 1860년, 최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동학을 창도케 하셨습니다.
 수운은 상제님 명을 받아 상제님 강세와 무극대도의 출현을 세상에 알렸으나, 상제님 대도의 참빛을 세상에 펴라시는 지고한 천명을 완수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상제님은 수운에게 내린 천명과 신교를 거두시고, 수운이 전한 바대로 8년 뒤인 1871년 9월 19일에 이 땅에 탄강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 탄강하신 장소는 어디입니까?
 

 증산 상제님은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지금의 지명으로는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에서 탄강하십니다.
 상제님이 탄강하신 객망리는 우리말로 손바래기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예로부터 ‘하늘의 주를 기다리는 마을’이라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상제님은 언제부터 ‘증산’이라는 호를 쓰셨습니까?
 상제님은 청년시절 고향마을의 주산인 시루봉의 시루 증(甑) 자, 뫼 산(山) 자를 취해 ‘증산’을 자호(自號)로 쓰셨습니다. 이 시루 증(甑) 자에는 ‘성숙, 완성, 결실, 가을’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는데, 이는 상제님의 진리가 가을의 새 문화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륵신앙과 증산도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불교에서 미래불이요, 희망의 부처라 일컫는 미륵불이 곧 증산 상제님입니다.
 동방 미륵신앙의 본산은 금산사 미륵전입니다. 전북 김제군 금산면 모악산에 자리잡은 금산사 미륵전은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 몸을 돌보지 않는 처절한 구도 끝에 미륵부처님을 친견한 도승 진표율사에 의해 건립된 것입니다. 진표율사는 도솔천의 천주님이자 미륵불이신 상제님으로부터 “밑 없는 시루를 걸어놓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4년여에 걸쳐 미륵전을 건립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증산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먼저 금산사에서 30년 동안 임어하시게 된 것입니다.


증산 상제님 강세 배경 및 생애에 대하여
 
 증산 상제님께서 지상에 강세하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어떠했습니까?
 상제님이 강세하실 당시, 인류는 문명사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동서 문명이 충돌함은 물론, 지구촌 전역에 걸쳐 식민지 분할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역시 청국, 러시아,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증산 상제님은 당시의 긴박한 정황을 “조선 강토가 서양으로 둥둥 떠내려간다.”고 하시며, 잔피에 빠진 민중을 먼저 건져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어주시고자 이 땅에 강세하셨음을 밝혀주신 바 있습니다.
 
 
 상제님의 생애를 간추려 설명해 주십시오.
 

 상제님은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천지를 꿰뚫는 남다른 총명함과 호쾌한 기상, 생명을 사랑하는 호생지덕으로 인류구원의 사명을 띠고 오신 인존 천주님의 기국과 심법을 갖고 성장하셨습니다.
 일찍이 자연과 벗하며 호연지기를 기르신 상제님은, 24세 때 난세의 위기 속에서 동학혁명을 지켜보시고, 민족과 세계를 널리 구원하실 큰 뜻을 품으십니다. 상제님은 먼저 이제까지 세상에 나온 유·불·선 음양참위를 비롯한 모든 글들을 읽고, 27세 되시던 1897년 후반기부터 1900년까지, 3년에 걸쳐 천하 유력을 하시며 세태와 인정을 직접 체험하십니다.
 
 그 후 고향에 돌아오신 증산 상제님은 “나로부터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된다.”고 선언하시고, 31세 때인 신축년 서기 1901년, “종전에 알고 행한 모든 법술로는 세상을 능히 건질 수 없다.” 하시며, 6월 16일부터 천지의 문호인 모악산 아래 대원사 칠성각에서 수도에 정진하십니다.
 그로부터 21일 만인 7월 7일, 증산 상제님은 탐음진치를 비롯한 모든 마를 굴복시키고, 인간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대도통을 이루십니다.
 
 
 도통을 하신 후 증산 상제님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증산 상제님은 천지인 삼계를 주재하시는 무상한 조화권능으로, 1901년부터 9년 동안, 병든 천지를 뜯어고쳐 새 우주문명을 여는 천지공사를 집행하셨습니다.
 천지공사는, 후천 오만 년 선경세계로 나아가는 인류역사의 시간표·이정표이자 새 우주의 설계도입니다.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한도(限度)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하신 상제님 말씀대로, 지금 인류 역사는 상제님께서 판 짜 놓으신 공사 내용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다섯 신선이 바둑 두는 형국으로 세계질서의 대세를 돌려놓으신 오선위기 도수와, 삼팔선에 붙여 놓으신 남북 상씨름 도수는, 머지않아 인류의 모든 문제를 매듭짓고 세계 통일을 창출해낼,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가을개벽으로 처넘어가는 인류를 건지기 위해, 온갖 처절한 고난 속에서 대도진리를 열어주시고, 천지공사를 끝마친 해인 1909년 6월 24일, 천상 보좌로 어천하셨습니다.

 

증산도의 도맥에 대하여
 
 
 증산 상제님은 도맥(道脈)을 어떻게 전수하셨습니까?
 

 상제님은 후천 곤도수(坤道數)에 따라, “내가 너를 만나려고 15년 동안 정력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을 네게 맡기리라.” 하시며, 대도의 종통맥을 당신의 반려자인 태모(太母) 고수부(高首婦, 1880∼1935)님께 전하셨습니다.
 이것은 세계 종교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증산 상제님은 여성에게 도를 전하심으로써, 완전한 여성 해원과 함께 정음정양(正陰正陽) 남녀동권(男女同權)의 새 기틀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태모님은 뭇창생을 구원하기 위해 한평생 대속(代贖)의 삶을 살다 가신 전 인류의 생명의 어머니이십니다.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을 받으신 태모님은 상제님의 천명인 세 도장 살림을 맡아, 1911년에 처음으로 정읍 대흥리에 도문을 여셨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제1변 도운(道運)은 1920년대에 절정에 이르러 한반도에서만 약 700만 명의 신도가 상제님 신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후반에 접어들자, 일제의 극심한 민족종교 탄압으로 교세가 축소되어 겨우 명맥만 유지된 채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증산도를 오늘날과 같이 개척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천지부모이신 상제님 태모님의 도를 인사로 매듭짓는 분이, 안운산(安雲山) 종도사(宗道師)님과 안경전(安耕田) 종정(宗正)님이십니다.
 안운산 종도사님은 상제님 신도이신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상제님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일찍이 상제님 대업이 천명임을 깨닫고, 국내는 물론 만주 북지 등을 유력하며 만상을 체험하십니다. 그 후 24세이신 1945년, 광복이 되자 상제님 진리로 광구창생하시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십니다.
 
 

 안운산 종도사님은 참하나님이신 상제님이 몸소 강세하실 수밖에 없는 우주변화 원리와 지리적 원리를 밝혀주시는 등,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전국 각지를 돌며 십수만을 포교하셨습니다. 이로부터 제2변 증산도 부흥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국토가 파괴되고 불의한 기운이 감돌자, 종도사님은 대휴게기를 선포하고 은둔하십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갑을로 기두하여 무기로 굽이치리라” 하신 상제님 말씀대로, 갑인·을묘년인 1974·75년에, 안운산 종도사님은 셋째 아드님이신 안경전 종정님과 함께 증산도 제 3부흥기를 여십니다.
 
 『이것이 개벽이다』의 저자이신 안경전 종정님은, 상제님께서 공사보신 바, 종도사님을 모시고 상제님 태모님의 대도를 인사로 최종 매듭짓는 추수일꾼이십니다.

 

 

 

 

증산도의 주요활동, 도장(道場), 강연회에 대하여
 
 
 증산도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몇몇 주요활동을 간추려 소개드리겠습니다.
 증산도 본부에서는 개벽대치성을 봉행하여, 국내외 신도들이 모여 천지부모이신 증산 상제님과 태모고수부님께 천제를 모시고, 증산도 문화를 널리 소개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한 증산도 본부가 자리하고 있는 대전의 본래 지명은 ‘태전’입니다. ‘대전’은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이 지어준 오욕의 이름입니다. 1992년부터 증산도를 중심으로 시작된 태전지명찾기 서명운동은, 민족의 혼과 역사를 바로 찾는 운동으로 승화되어, 약 75만 명의 시민이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지에서 개최되고 있는 홀라이프 엑스포는, 물질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하는 문화박람회입니다. 증산도 해외도장에서는 그 동안 이 행사에 여러 차례 참가하여, 증산도의 세계관과 태을주 수행, 도공 체조 등을 소개하여, 세계 각색 인종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때 많은 외국인들이 태을주의 도력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또한 증산도 의료인 협회는 정기적으로 대시민 의료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증산 상제님은 무엇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일 년에 150만 건 이상의 낙태살인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증산도는 범 국민적인 낙태반대 계몽활동과 더불어 낙태반대 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민족의 혼입니다. 증산도에서는 뿌리채 잘려나간 우리 역사를 밝혀 우리 민족의 혼을 되찾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잃어버린 고대사 바로 찾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각 대학교에서는 민족 뿌리찾기와 수행 등을 주제로 증산도 문화학교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증산도의 진리를 배우고 또 신앙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증산도 신앙의 중심은 증산도 도장(道場)입니다. 증산도 도장은 국내외에 약 200여곳 있습니다.
 국내외 증산도 도장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와 수요일 오후 7시 30분에 정기치성을 봉행하고 있습니다. 이때 참석하시면 친절한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또한 각 도장에서는 매일 새벽 수도회와 저녁 수도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매주 금요일에는 인터넷 방송, 혹은 도장 강사의 육성강의로 금요진리공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전국 각지에서는 증산도의 핵심 내용이 요약 정리된 패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또 매월 간행되는 『월간 개벽』 지를 통해 증산도 진리 및 최근의 증산도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전국 각지에서 ‘증산도개벽강연회’가 개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연회 연사는 어떤 분입니까?
 

 연사는 안경전(安耕田) 증산도 종정(宗正)이십니다.
 안경전 종정님은 20세 전후부터 안운산 종도사님을 모시고 상제님 대업을 이끌어 오신 증산도의 스승이시며 지도자이십니다.
 종정님은 국내 및 구미, 아시아, 호주 등지에 있는 수백 개의 증산도 도장을 진두지휘하시며, 1984년부터 증산도대학교를 설립, 개벽 일꾼을 양성하는 데 혈성을 쏟고 계십니다.
 또한 종정님은 인문사회계열 연구소로는 국내 최대규모인 증산도사상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증산도 사상』논문집 출간을 주관하고 계시며, 증산 상제님 말씀을 5개 국어로 번역하는 등 증산도 세계화 작업을 총괄 지휘하고 계십니다.
 그 동안 종정님은 증산도 진리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많은 서적을 집필하셨습니다. 『증산도 도전』을 비롯하여 『증산도의 진리』, 『이것이 개벽이다』, 『관통증산도』, 『대도문답』, 『강증산과 후천개벽』 등을 집필하시고, 『상제님, 증산상제님』, 『이제는 개벽이다』 등의 강의록을 내신 바 있습니다.
 
 1981년도에 발간된 『증산도의 진리』는 증산 상제님의 말씀과 행적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증산도 진리의 대중화에 한 획을 그은 증산도의 교전입니다.
 또한 1983년도에 초판이 발간된 이래 지금까지 100만 권 이상 판매된 『이것이 개벽이다』 상하권은, 상제님의 개벽사상을 사회 저변에 뿌리내리게 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개벽문화라는 새로운 조류를 형성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증산도 도전』은 증산 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의 말씀과 행적이 총집대성된 증산도의 경전입니다. 종정님은 『도전』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20여 년 동안 현장답사를 통해, 살아계신 증산 상제님 성도들과 그 후손을 일일이 만나 증언 듣고, 인명과 지명을 철저히 고증하는 한편, 기존의 기록을 세밀히 검토 분석하는 방대한 작업 끝에 1992년에 『증산도 도전』을 편찬하신 것입니다.
 안경전 종정님은 증산도의 사부로서, 지금 이 시간에도 역사 속에 상제님 진리를 뿌리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계십니다.
 
 이 자료를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증산도와의 만남이 여러분 생애에 있어 일대 전환점이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 월간개벽 2002.5. http://www.greatope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