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역사상 가장 열심히 일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인터뷰> 임기 '반환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연합뉴스 | 입력 2009.06.28 09:01 | 수정 2009.06.28 19:10
"지역분쟁 대처 어려워..북한도 여러번 항의"
"결렬 위기 기후변화 로드맵 성사 가장 보람"
(유엔본부=연합뉴스) 김현준 김현재 특파원 = "역대 사무총장 중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있는데…."
63년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은 위기를 한꺼번에 당면한 유엔호(號)를 이끌고 있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27일(현지시간) 맨해튼 유엔본부 건물 38층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임기 반환점'을 맞아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유엔에서는 에너지(Fuel), 식량(Food), 재정ㆍ경제위기(Financial), 그리고 최근 전염병으로 위험도가 격상된 신종 플루(Flu)를 합쳐 이른바 `4F 위기'라고 부른다.
그는 최근 일부 서방언론들의 혹독한 평가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차분히 말하면서, 짚어야 할 것은 조목조목 지적하고, 설명도 했다.
당초 20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중간에 외국 정상급 인사의 예방으로 10여분 끊긴 것을 빼고는 1시간 넘게 진행됐다.
`포린폴리시'가 `금세 잊힐 성명만 내고 명예박사 학위만 수집했다'는 한 네오콘 칼럼니스트의 기고문을 실은 데 대해 그는 "전임자인 코피 아난은 50여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는 고작 4개만 받았을 뿐"이라며 "그것도 한국과 미국, 아시아와 유럽 등 대륙별로 안배한 것이다. 만약 준다는 것을 다 받았다면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명 수위에 대해서도 "지역분쟁은 여러 관련국의 입장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고, 특히 P5(안보리 상임이사국)가 관련되면 유엔의 개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굉장히 강도 높은 성명을 발표해 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미얀마 출신 우탄트 사무총장 이후 35년 만에 첫 아시아 사무총장이 배출됐지만 우탄트는 출신만 미얀마일 뿐 사실 서구에서 모든 교육을 받은 서구인이었다"며 "아시아적 가치를 온전히 가진 첫 사무총장은 내가 처음"이라면서 겸양.중용 등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이해 부족도 최근의 자신에 대한 비판과 무관치 않음을 시사했다.
반 총장은 일부의 비판적 시각이 `연임 저지'를 위한 경쟁자 그룹의 음모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것은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다음은 반 총장과의 일문일답
-- 이달 말이면 임기 반환점을 돌게 된다. 먼저 소회를 말씀해 달라.
▲ 나름대로 2년 반 열심히 해서, 역대 사무총장 중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있는데, 유엔 63년 역사상 전 세계적으로 위기가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닥친 적은 없었다.
기후변화, 식량위기, 에너지위기, 100년 만의 경제위기까지 겹쳤고, 최근 신종플루 보건위기까지 겹쳐서 수십 년간 계속 돼온 질병.가난 위기에 더해 지난 2년 반 사이에 5-6개가 더 생겨 버렸다.
전 지구적 이슈가 생기니까 사람들이 유엔만 쳐다보는 데, 국제사회가 대응하는 속도나 실적이 늦고, 그러니까 자연히 유엔에 대한 평가 또 책임자인 저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전 회원국이 협심해야 할 문제다.
-- 조직 운영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게 나왔는데.
▲ 워낙 방대한 조직이고, 직원들의 구성이 192개국 출신이다. 문화 배경이 모두 달라서 동질성을 유지하는 국가조직과는 다르다. 그래서 유엔이 비효율적이고 투명하지 않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지난 2년 반 동안 그야말로 열정을 갖고 상당히 개혁 드라이브를 많이 걸었다. 그 과정에서 저항이 있을 수 있고, 개혁 진통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고위 공직자들은 업무 성과 계약을 한다. 60년 만에 처음이다. 그걸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사무차장, 차장보 들이 개별적으로 계약하고 이를 공개한다. 재산공개도 시켰다. 전임자 누구도 한 사람이 없는데 제가 한 것이다. 사무차장보 이상 전 고위 공직자가 대상이다.
이런 것이 유엔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의사소통이나 행정소송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사무총장에게 그 소송 결과를 번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이제는 유엔 내 법원에서 결정하면 제게 구속력을 갖게 된다.
회원국들도 조직의 문화를 바꾸겠다는 기치를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 `포린폴리시'에 명예박사 학위만 받으러 다닌다는 지적이 있었다.
▲ 코피 아난이 50여개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저는 서울대를 비롯해서 아시아.미국.유럽.한국 이 정도다. 주겠다는 제의는 엄청나게 많다. 그것을 어렵게 많이 거절한 것이다.
-- 그동안 `조용한 외교'를 지향하면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목소리가 좀 작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었다. 금세 잊힐 성명만 낸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 유엔의 특성을 간과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유엔은 국가정부가 아니다. 지역분쟁은 관련 당사국마다 배경과 이해가 다르다. 유엔이 개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반적 기대는 그런 것을 유엔이 할 수 있다고 본다.
유엔이 처음 생겼을 때와 지금 21세기의 유엔은 판이하다. 그런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 정부처럼 확실한 입장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그런 일은 못한다.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에 해당하는 것은 최대한 강하게 얘기하고 있다. 유엔 헌장에 따른 인권 존중, 주권 등의 문제에 대한 것에는 강하게 성명을 내지만, 지역분쟁은 여러 관련국의 입장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또 P5가 관련됐을 때 유엔의 개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를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왜 강하지 못하느냐고 말한다.
스리랑카 사태 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상당히 강한 성명을 22번이나 냈다.
가자 사태 때 몸을 낮췄다고 어떤 언론이 썼던 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다. 잘 알고 있지 않느냐.(당시 연합뉴스는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반 총장을 동행취재 했었다) 그때 내가 이스라엘에 강하게 `일방 휴전'을 선언하라고 했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총성이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가자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 기사가 나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사이클론이 발생했을 때) 미얀마를 방문해서 군부 지도자를 만나 담판을 해서 식량 지원을 받도록 했고, 그래서 50만명 가량의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 유엔 사무총장만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으로부터도 많은 비판과 항의를 받았다.
핵문제 때문에 내가 발언한 것을 가지고, 북한이 비난 성명도 내고 대사가 직접 찾아와 항의하고, 외교 문서로 정식 항의도 하고…. 그러나 국제 안보 질서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 한국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 입장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여러 분쟁에 휘말려 있고, 그에 따른 좌절감에서 나온 것이다. 유엔이 다자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런 비판이 나온 것으로 안다.
-- 일각에서는 서구인들이 아시아적 리더십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또 총장 연임을 저지하기 위한 일부 세력들의 음모론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 두 번째 문제(음모론)는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다만, 제가 아시아 사람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하는 게 두 번째인데, 마지막이 36년 전이다. 36년 전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당시 우탄트 사무총장 때는 아시아의 라이즈(융성), 이런 게 없었다. 또 우탄트가 아시아 사람이지만 아시아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그 사람 자체가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러니까 진정한 아시아적 가치와 문화를 접하는 것은 내가 처음이다. 여기가 서구조직이니까 서구문화가 그 중심으로 돼 있고….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적인 것을 강요한 적은 없다. 다만, 아시아적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갭(차이)이 상당히 있는 것 같다.
-- 연임 문제를 놓고 유엔 내부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주위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연임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다.
▲ 제 입으로 꺼내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어디까지나 회원국이 결정하는 것이라. 정치인이 어디 나가겠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선출직이긴 하지만, 아직은 적절한 때가 아니다.
또 지금까지 내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차기를 생각하고 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현직에 충실하고 거기서 성과를 거두면 다른 직책을 받고 그렇게 해서 유엔 사무총장까지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지난 2년 반 동안 가장 보람됐던 일과 또 좌절스럽거나 힘들었던 때가 있다면.
▲ 발리에서 2007년 12월에 기후변화 회의가 있었다. 협상이 실패하고 결렬되는 상황이라는 얘기를 듣고 현장에 달려가서 호소하고 결국 강대국들 만나서 설득하고 해서 로드맵이 만들어졌다. 그때 제가 회의장에 갔을 때 모든 회원국들이 동시에 박수를 치면서 내게 성원을 보내줬다. 모두가 이제 어려우니까 사무총장이 구해 달라는 박수 소리처럼 들렸다. 그때 그 성원에 힘입어 상당히 강한 어조로 호소를 했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기후변화 문제가 세계의 최고 어젠다가 된 것이다.
좌절스럽다기 보다 분노가 일고 화가 났던 때는 지난 1월에 가자에 가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불타는 유엔 건물 앞에서 전 세계를 향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을 때다.
모든 협상이나 분쟁은 그 과정이 지루하다. 좌절감이 느껴질 만큼 길어지면서 그 사이에 예측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많다.
-- 북한이 로켓발사, 핵실험을 잇달아 감행하고 있고, 조만간 ICBM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핵실험에 대해 강도 높은 결의를 채택했지만 북한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강공 일변도로 나가고 있다. 자칫 `안보리 무용론'이 또다시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 안보리 결의가 채택됐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큰 걱정거리다.
그러나 과거 몇 년을 볼 때 남북관계는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됐고, 개성공단에서 상당히 활발한 경협이 이뤄졌고, 6자회담도 순조롭게 이뤄져서 제가 장관 때 6자회담 성명이 나왔고, 2007년에 다시 6자회담이 재확인됐고, 북한의 냉각탑이 파괴되기도 하는 등 진전이 되다가 갑자기 돌발 변수가 생겨서 요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는 북한이 모든 대화의 문을 차단한 상태에서 유엔으로서도 나름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고, 미북 접촉이나 남북 관계 등이 빨리 회복돼야 하는데 걱정이 많이 된다.
-- 유엔 수장으로서 북한 지도부를 직접 만나 설득할 생각은 없는지.
▲ 염두에 두고 노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돌발변수가 생기는 바람에…. 남북문제는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냉정하게 다뤄야 한다.
-- 한국의 정치 상황이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남북 간 긴장 고조 등으로 국내 여론이 갈라져 있고, 갈등이 심각하다. 한국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국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라며 다소 주저하다가) 그동안 한국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유엔 사무총장인 저에게 백그라운드로 도움이 됐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10대 경제대국, 정치적으로 성숙한 나라로 성장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좀 조화롭게 서로 합의점도 찾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회도 민의의 대변인이니까, 민의를 수렴하고 국민도 신축적으로 조화롭게 동참할 수 있는 자세, 아량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 조국이 발전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고, 그 바탕 위에서 사무총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 조만간 서울에 가실 계획이 있나.
▲ 오는 8월 9일쯤 갈 생각이다. 유엔에서 2년을 근무하면 고향에 보내주는 `홈 리브' 제도가 있다. 나도 이번에 그것을 쓸 생각이다. 그런데 이게 `홈 리브'인지, `홈 워크'인지….(웃음)
공식적인 것만 봐도 10일 전 세계 유엔 협회장이 참석하는 유엔협회총연합회 회의가 열린다. 그다음에는 인천시에 가서 재해 방지와 관련된 유엔 회의와 환경문제 관련된 인천시 주관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그다음에는 여수 엑스포를 방문해 준비 상황도 좀 보고, 유엔이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그리고 13일에는 제주평화연구원이 주최하는 국제회의가 있다. 거기서 기조연설을 하고, 그런 다음에 고향을 방문할 생각이다. 상당히 바쁜 일정이 될 것 같다.
kn020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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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렬 위기 기후변화 로드맵 성사 가장 보람"
(유엔본부=연합뉴스) 김현준 김현재 특파원 = "역대 사무총장 중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있는데…."
63년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은 위기를 한꺼번에 당면한 유엔호(號)를 이끌고 있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27일(현지시간) 맨해튼 유엔본부 건물 38층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임기 반환점'을 맞아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유엔에서는 에너지(Fuel), 식량(Food), 재정ㆍ경제위기(Financial), 그리고 최근 전염병으로 위험도가 격상된 신종 플루(Flu)를 합쳐 이른바 `4F 위기'라고 부른다.
그는 최근 일부 서방언론들의 혹독한 평가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차분히 말하면서, 짚어야 할 것은 조목조목 지적하고, 설명도 했다.
당초 20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중간에 외국 정상급 인사의 예방으로 10여분 끊긴 것을 빼고는 1시간 넘게 진행됐다.
`포린폴리시'가 `금세 잊힐 성명만 내고 명예박사 학위만 수집했다'는 한 네오콘 칼럼니스트의 기고문을 실은 데 대해 그는 "전임자인 코피 아난은 50여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는 고작 4개만 받았을 뿐"이라며 "그것도 한국과 미국, 아시아와 유럽 등 대륙별로 안배한 것이다. 만약 준다는 것을 다 받았다면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명 수위에 대해서도 "지역분쟁은 여러 관련국의 입장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고, 특히 P5(안보리 상임이사국)가 관련되면 유엔의 개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굉장히 강도 높은 성명을 발표해 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미얀마 출신 우탄트 사무총장 이후 35년 만에 첫 아시아 사무총장이 배출됐지만 우탄트는 출신만 미얀마일 뿐 사실 서구에서 모든 교육을 받은 서구인이었다"며 "아시아적 가치를 온전히 가진 첫 사무총장은 내가 처음"이라면서 겸양.중용 등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이해 부족도 최근의 자신에 대한 비판과 무관치 않음을 시사했다.
반 총장은 일부의 비판적 시각이 `연임 저지'를 위한 경쟁자 그룹의 음모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것은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다음은 반 총장과의 일문일답
-- 이달 말이면 임기 반환점을 돌게 된다. 먼저 소회를 말씀해 달라.
▲ 나름대로 2년 반 열심히 해서, 역대 사무총장 중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있는데, 유엔 63년 역사상 전 세계적으로 위기가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닥친 적은 없었다.
기후변화, 식량위기, 에너지위기, 100년 만의 경제위기까지 겹쳤고, 최근 신종플루 보건위기까지 겹쳐서 수십 년간 계속 돼온 질병.가난 위기에 더해 지난 2년 반 사이에 5-6개가 더 생겨 버렸다.
전 지구적 이슈가 생기니까 사람들이 유엔만 쳐다보는 데, 국제사회가 대응하는 속도나 실적이 늦고, 그러니까 자연히 유엔에 대한 평가 또 책임자인 저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전 회원국이 협심해야 할 문제다.
-- 조직 운영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게 나왔는데.
▲ 워낙 방대한 조직이고, 직원들의 구성이 192개국 출신이다. 문화 배경이 모두 달라서 동질성을 유지하는 국가조직과는 다르다. 그래서 유엔이 비효율적이고 투명하지 않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지난 2년 반 동안 그야말로 열정을 갖고 상당히 개혁 드라이브를 많이 걸었다. 그 과정에서 저항이 있을 수 있고, 개혁 진통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고위 공직자들은 업무 성과 계약을 한다. 60년 만에 처음이다. 그걸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사무차장, 차장보 들이 개별적으로 계약하고 이를 공개한다. 재산공개도 시켰다. 전임자 누구도 한 사람이 없는데 제가 한 것이다. 사무차장보 이상 전 고위 공직자가 대상이다.
이런 것이 유엔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의사소통이나 행정소송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사무총장에게 그 소송 결과를 번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이제는 유엔 내 법원에서 결정하면 제게 구속력을 갖게 된다.
회원국들도 조직의 문화를 바꾸겠다는 기치를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 `포린폴리시'에 명예박사 학위만 받으러 다닌다는 지적이 있었다.
▲ 코피 아난이 50여개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저는 서울대를 비롯해서 아시아.미국.유럽.한국 이 정도다. 주겠다는 제의는 엄청나게 많다. 그것을 어렵게 많이 거절한 것이다.
-- 그동안 `조용한 외교'를 지향하면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목소리가 좀 작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었다. 금세 잊힐 성명만 낸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 유엔의 특성을 간과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유엔은 국가정부가 아니다. 지역분쟁은 관련 당사국마다 배경과 이해가 다르다. 유엔이 개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반적 기대는 그런 것을 유엔이 할 수 있다고 본다.
유엔이 처음 생겼을 때와 지금 21세기의 유엔은 판이하다. 그런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 정부처럼 확실한 입장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그런 일은 못한다.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에 해당하는 것은 최대한 강하게 얘기하고 있다. 유엔 헌장에 따른 인권 존중, 주권 등의 문제에 대한 것에는 강하게 성명을 내지만, 지역분쟁은 여러 관련국의 입장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또 P5가 관련됐을 때 유엔의 개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를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왜 강하지 못하느냐고 말한다.
스리랑카 사태 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상당히 강한 성명을 22번이나 냈다.
가자 사태 때 몸을 낮췄다고 어떤 언론이 썼던 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다. 잘 알고 있지 않느냐.(당시 연합뉴스는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반 총장을 동행취재 했었다) 그때 내가 이스라엘에 강하게 `일방 휴전'을 선언하라고 했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총성이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가자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 기사가 나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사이클론이 발생했을 때) 미얀마를 방문해서 군부 지도자를 만나 담판을 해서 식량 지원을 받도록 했고, 그래서 50만명 가량의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 유엔 사무총장만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으로부터도 많은 비판과 항의를 받았다.
핵문제 때문에 내가 발언한 것을 가지고, 북한이 비난 성명도 내고 대사가 직접 찾아와 항의하고, 외교 문서로 정식 항의도 하고…. 그러나 국제 안보 질서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 한국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 입장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여러 분쟁에 휘말려 있고, 그에 따른 좌절감에서 나온 것이다. 유엔이 다자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런 비판이 나온 것으로 안다.
-- 일각에서는 서구인들이 아시아적 리더십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또 총장 연임을 저지하기 위한 일부 세력들의 음모론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 두 번째 문제(음모론)는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다만, 제가 아시아 사람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하는 게 두 번째인데, 마지막이 36년 전이다. 36년 전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당시 우탄트 사무총장 때는 아시아의 라이즈(융성), 이런 게 없었다. 또 우탄트가 아시아 사람이지만 아시아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그 사람 자체가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러니까 진정한 아시아적 가치와 문화를 접하는 것은 내가 처음이다. 여기가 서구조직이니까 서구문화가 그 중심으로 돼 있고….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적인 것을 강요한 적은 없다. 다만, 아시아적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갭(차이)이 상당히 있는 것 같다.
-- 연임 문제를 놓고 유엔 내부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주위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연임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다.
▲ 제 입으로 꺼내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어디까지나 회원국이 결정하는 것이라. 정치인이 어디 나가겠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선출직이긴 하지만, 아직은 적절한 때가 아니다.
또 지금까지 내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차기를 생각하고 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현직에 충실하고 거기서 성과를 거두면 다른 직책을 받고 그렇게 해서 유엔 사무총장까지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지난 2년 반 동안 가장 보람됐던 일과 또 좌절스럽거나 힘들었던 때가 있다면.
▲ 발리에서 2007년 12월에 기후변화 회의가 있었다. 협상이 실패하고 결렬되는 상황이라는 얘기를 듣고 현장에 달려가서 호소하고 결국 강대국들 만나서 설득하고 해서 로드맵이 만들어졌다. 그때 제가 회의장에 갔을 때 모든 회원국들이 동시에 박수를 치면서 내게 성원을 보내줬다. 모두가 이제 어려우니까 사무총장이 구해 달라는 박수 소리처럼 들렸다. 그때 그 성원에 힘입어 상당히 강한 어조로 호소를 했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기후변화 문제가 세계의 최고 어젠다가 된 것이다.
좌절스럽다기 보다 분노가 일고 화가 났던 때는 지난 1월에 가자에 가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불타는 유엔 건물 앞에서 전 세계를 향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을 때다.
모든 협상이나 분쟁은 그 과정이 지루하다. 좌절감이 느껴질 만큼 길어지면서 그 사이에 예측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많다.
-- 북한이 로켓발사, 핵실험을 잇달아 감행하고 있고, 조만간 ICBM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핵실험에 대해 강도 높은 결의를 채택했지만 북한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강공 일변도로 나가고 있다. 자칫 `안보리 무용론'이 또다시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 안보리 결의가 채택됐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큰 걱정거리다.
그러나 과거 몇 년을 볼 때 남북관계는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됐고, 개성공단에서 상당히 활발한 경협이 이뤄졌고, 6자회담도 순조롭게 이뤄져서 제가 장관 때 6자회담 성명이 나왔고, 2007년에 다시 6자회담이 재확인됐고, 북한의 냉각탑이 파괴되기도 하는 등 진전이 되다가 갑자기 돌발 변수가 생겨서 요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는 북한이 모든 대화의 문을 차단한 상태에서 유엔으로서도 나름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고, 미북 접촉이나 남북 관계 등이 빨리 회복돼야 하는데 걱정이 많이 된다.
-- 유엔 수장으로서 북한 지도부를 직접 만나 설득할 생각은 없는지.
▲ 염두에 두고 노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돌발변수가 생기는 바람에…. 남북문제는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냉정하게 다뤄야 한다.
-- 한국의 정치 상황이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남북 간 긴장 고조 등으로 국내 여론이 갈라져 있고, 갈등이 심각하다. 한국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국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라며 다소 주저하다가) 그동안 한국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유엔 사무총장인 저에게 백그라운드로 도움이 됐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10대 경제대국, 정치적으로 성숙한 나라로 성장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좀 조화롭게 서로 합의점도 찾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회도 민의의 대변인이니까, 민의를 수렴하고 국민도 신축적으로 조화롭게 동참할 수 있는 자세, 아량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 조국이 발전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고, 그 바탕 위에서 사무총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 조만간 서울에 가실 계획이 있나.
▲ 오는 8월 9일쯤 갈 생각이다. 유엔에서 2년을 근무하면 고향에 보내주는 `홈 리브' 제도가 있다. 나도 이번에 그것을 쓸 생각이다. 그런데 이게 `홈 리브'인지, `홈 워크'인지….(웃음)
공식적인 것만 봐도 10일 전 세계 유엔 협회장이 참석하는 유엔협회총연합회 회의가 열린다. 그다음에는 인천시에 가서 재해 방지와 관련된 유엔 회의와 환경문제 관련된 인천시 주관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그다음에는 여수 엑스포를 방문해 준비 상황도 좀 보고, 유엔이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그리고 13일에는 제주평화연구원이 주최하는 국제회의가 있다. 거기서 기조연설을 하고, 그런 다음에 고향을 방문할 생각이다. 상당히 바쁜 일정이 될 것 같다.
kn020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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