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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고구려국본기-환단고기 태백일사(윤창렬 교수님)

by 바로요거 2007. 10. 11.

환단고기(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강사 : 윤창렬 강사님

135년 3월 증산도대학교 교육

교육문화회관 제 2교육장

135. 3. 6

 

 

강의 서두

아마 이 환단고기 전체 분량이 많으니까 일부분씩 부분씩 띄어 가지고요. 강의를 하고 이것을 인터넷 상에 올려놓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삼한관경본기도 안했고요.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 이것이 지금 남아있는데 11시까지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잡혀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되는 데까지 고구려국본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사 개괄

원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가 이 고구려라는 나라에 대해서 한번 윤곽을 잡고서 원문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 고구려는 5황극에 위치

우리가 도전에 보면 사부님께서 [우리 민족은 환국 - 배달국 - 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뒤에 열국시대를 맞이했다. 열국시대를 맞이해가지고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 역사가 왜곡되어가지고 그 상처가 아주 깊었다. 삼성조시대가 지난 뒤에 열국시대를 맞이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옛날에 이런 말씀을 한번 하신 적이 있어요. 우리 최초의 나라를 환국으로 잡아봅시다. 우리 민족의 실질적인 시작은 배달국이지만 환국 - 배달국 - 고조선 - 북부여가 지나고 고구려가 몇 번째에 해당하느냐면 5번째에 해당합니다.

이 5라는 숫자에서부터는 분열의 시대로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우리 민족의 역사는 우주원리를 담고 있는데 5황극에 위치한다 이거예요. 고구려가 5번째. 그래서 이 고구려에서부터 열국시대가 전개가 되고 고구려에서부터 모든 우리 민족의 방계 민족들이 쭉쭉 갈라져 나가는 거예요. 일본도 그때에서 갈라져 나가고 또 특히 백제는 고구려에서 그냥 갈라져 나가고요. 이렇게 해서 고구려가 5번째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한번 기억할 필요가 있고요.

그래서 원래 이 황극이라는 것은 5를 체로 하고 7을 용으로 하기 때문에 고주몽 성제가 나라를 건국해서 처음 시작할 때 7사람이 시작을 합니다. 동부여에서 고주몽 성제가 자기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니까 엄리대수를 건너가지고 졸본으로 옮기는데요. 그때 처음 출발을 할 때 오이, 마리, 협보라는 세 사람과 모둔곡에 이르러가지고 무골, 묵거, 재사라는 세 사람의 신하를 만나죠. 모두 합치면 고주몽 성제까지 7명이 나라를 건국하게 되는데 이것이 5가 7로서 작용하는 그런 의미가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 봅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열제들이 모두 28명이 있어요. 그것은 7의 4배수가 되죠. 7*4=28. 여기에서도 한번 우리가 7의 의미, 5가 7로서 작용하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2. 북부여를 계승한 고주몽 성제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우리가 처음에는 고주몽 성제에서부터 시작을 하는데 정말 우리 이 환단고기를 공부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나와 있는 책들이 너무너무 엉터리라서 볼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평생을 역사를 연구했다고 그러는데 고두막한과 고주몽 성제도 구별을 하지 못하고 북부여에 대해서는 아예 개념도 없고 말이에요.

우리가 고주몽 성제 B.C 58년에 북부여의 7번째 단군으로 등급을 해가지고 B.C 19년까지 제위를 합니다. 고주몽 성제는 B.C 79년생이죠. 임인생인데 B.C 19년에 돌아가시니까 환갑 때 돌아가시게 됩니다. 고주몽 성제가 호랑이띠에요. 임인생.

 3. 고구려의 천도 과정

그리고 두 번째 유리명제가 대통을 계승하게 되는데 고주몽 성제는 처음에는 졸본에 도읍을 했었어요. 졸본에. 그런데 지금의 졸본이 어디냐 하면 저기 두만강에서 훈춘을 지나가지고 위로 올라가면 유분하시가 있습니다. 유분하시에 거기로 지금 졸본을 잡고 있는데요. 지금 강단사학에서는 전부 요령성 환인현에 있는 오녀산성으로 잡고 있습니다. 천리가 넘습니다. 그 거리가 700리~800리가 더 되는데요. 강단사학에서는 전부 환인현에 있는 오녀산성으로 잡고 있고 그렇지만 졸본의 땅은 정인보 선생은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 고대사 민족사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유분하시로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봐도 유분하시가 옳습니다. 졸본.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홀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B.C 26년에는 그 수도를 장춘으로 옮기게 됩니다. 장춘의 눌견으로 옮기게 되는데요. B.C 26년에는 고주몽 성제 때죠. 눌견. 이 눌견이라는 것은 우리말로 늘봄, 항상 봄이다. 장춘이란 뜻이에요. 장춘. 장춘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여기로 도읍을 옮겼다가 A.D 2년에 유리명제 때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죠. 도읍을 옮겼다가 동천제 때 위에 관구검의 침입을 받아가지고 A.D 247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가 다시 국내성으로 갔다가 427년에 장수열제 때 완전히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광개토열제 그 다음에 장수열제, 문자열제 때에 중국의 그 산동성, 안휘성, 강소성, 절강성 전체를 지배하는 그런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죠. 그 사이에서 강이식 장군이라든가 영양제 때 수나라를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이라든가 연개소문이라든가 이러한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출현을 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종교인 신교를 신봉하고 그것을 수행하고 실천했던 그러한 분들이었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Time 00:07

자, 이 고구려에 대해서 원문으로 들어가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고구려국본기가 제일 깁니다. 굉장히 분량이 많은데요. 빨리 나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오늘은 여러분들하고 같이 호흡을 하면서 설명을 한번 해볼까요? 책이 없는 분들은 그냥 제 얘기만 머릿속에 이미지로 그려주시기 바라고요. 책을 가지신 분들은 한번 해석을 하면서 보겠습니다.

고구려국본기 제 6이다. 제 6이다. 태백일사는 모두 8부분으로 되어있는데 6번째고 7번째가 대진국본기 8번째가 고려국본기가 되겠습니다.

고구려 국통의 뿌리 - 북부여 해모수

고구려지선   출자해모수      

高句麗之先이 出自解慕漱하시니


해모수지모향   역기지야  

解慕漱之母鄕이 亦其地也라


고구려의 선조가 말이에요. 자, 고구려의 시조는 고주몽인데 그 선조가 어디에서 나왔냐면 해모수로부터 나왔어요. 혈통적으로 해모수의 고손자가 됩니다. 현손자. 고주몽 성제는 해모수의 현손자가 됩니다.

해모수의 고향이 말이에요. 모향은 고향이에요. 해모수의 고향이 또한 그 땅이다. 자, 해모수의 고향이 어디예요? 고구려입니다. 그러니까 고구려의 지명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왔느냐면 해모수의 고향 이름이에요. 해모수의 고향이름이 고구려입니다. 출자해모수는 혈통적으로도 해모수에서 나왔고 국통적으로도 북부여에서 나왔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조대기   왈  해모수   종천이강   

朝代記에 曰 〈解慕漱는 從天而降하사


상거우웅심산       기병어부여고도   

嘗居于熊心山이라가 起兵於夫餘古都하고


위중소추     수입국칭왕       시위부여시조야      

爲衆所推하여 遂立國稱王하시니 是謂夫餘始祖也시니라.


이 조대기라는 것은 발해의 유민들이 고려에 많이 귀하를 했는데 그때 발해의 유민이 가져온 책입니다. 이 조대기라는 것은 세조 때 “전국의 책을 거두어 올려라.”할 때 수상서목 중에도 보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도 이 조대기라는 책이 존재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해모수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셔 가지고 종천이강했다.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건 아니고 이것은 천손이다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되겠죠.

상거우웅심산이라가, 일찍이 일찍이 상자죠. 웅심산에 거했어요. 웅심산은 지금의 서란현입니다. 중국의 길림성을 보면 여기 장춘이 있어요. 여기 장춘이 있고 여기에 길림이 있습니다. 길림시가 있어요. 여기에서 조금 이렇게 올라가면 여기가 서란현입니다. 중국의 지도를 확인하면 알 수가 있어요. 여기가 웅심산이에요. 웅심산에 거하시다가 기병어부여고도하고, 군사를 부여의 옛 도읍지에서 일으켰어요. 그러면 부여의 옛 도읍지라면 지금의 백악산 아사달 농안과 장춘 사이에 있는 백악산 아사달을 얘기합니다. 여기가 장춘이고 여기가 농안현이거든요. 여기.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군사를 일으켜서.

위중소추하여, 무리의 추대를 받아서 한문에서 위수는 뭐뭐하는 바가 되다. 피동을 만들죠. 무리의 추대되는 바가 되어가지고 수입국창왕하시니 드디어 나라를 세워서 왕을 일컬으시니 북부여를 건국하시고 왕을 칭하시니 시위부여시조야시니라. 이 분이 부여 시조라고 이르는 분이니라.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입니다. B.C 239년에부터 B.C 195년까지 한 44년 동안을 제위에 계셨던 분입니다.

착오우관       패용광검       승오룡거     

着烏羽冠하시고 佩龍光劍하시고 乘五龍車하시니


종자 백여인     조즉청사       모즉등천     

從者 百餘人이오 朝則聽事하시고 暮則登天하시니


착오우관하시고, 오우관을 머리에 쓰셨어요. 오우관이라는 것은 중국의 그림에 보면 고구려의 사신들을 보면 말이에요. 모자를 쓰고 검은 색 깃털이 앞으로 쭉 나오게 양쪽에 하나씩 이렇게 된 그림을 보신 적이 있어요. 그것이 오우관이겠죠. 관을 쓰고 검은 색 깃털을 아주 멋지게 위로 쭉 앞으로 양쪽에 하나씩 뽑아낸 것, 오우관. 검은 새의 깃털을 꽂은 그런 관을 쓰시고. 착오우관하시고 패용광검하시고, 용광검을 차셨다 이거예요.

아마 그 칼에 용을 그렸겠죠. 용을 그려 가지고 빛이 번쩍번쩍 나는 그런 용광검을 허리에 차고 승오룡거하시니, 오룡거를 타셨어요. 여기에 용이라면 말을 얘기한다고 봐야 되겠죠. 다섯 마리의 말이 끄는 그런 수레를 타고 다녔습니다. 승오룡거하시니 종자가 백여인이오. 따르는 무리들이 백여인이다. 이것이 북부여기에서는 오백 명으로 나왔었죠. 오백 명. 여기는 백여인으로 돼있는데 백여인요.

조즉청사하고, 아침이면 일을 들어요. 국정을 처리합니다. 그리고 모즉등천하시니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갔다. 등천했다. 이것은 주무시는 곳은 산속에 따로 머무시는 곳이 있었고 정무를 보는 데는 평지에 따로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내려와서 평지에서 정무를 보고 저녁이 되면 산채라고 하면 좀 표현이 비속하지만 산에 머무는 거기에서 머무르셨습니다.

무소령이관경   자화   

無所令而管境이 自化하고


산무도적     화곡만야     국무사이민역무사  

山無盜賊하고 禾穀滿野하니 國無事而民亦無事라


모즉등천하시니 무소령이관경이 자화하고, 명령하는 바가 없지만 관경이 그 관리하는 국토가 스스로 교화가 되고 산무도적하고 산에는 도적이 없고 화곡만야하니 이 벼라든가 또는 오곡이라든가 이런 것이 들에 가득하니 국무사이민역무사라. 나라도 일이 없고 백성도 또한 특별한 일이 없고요.

Time 00:14

단군 해모수지초강   재어임술 사월 초팔일   

檀君 解慕漱之初降이 在於壬戌 四月 初八日하니


내진왕 정 팔년야   

乃秦王 政 八年也라〉


단군 해모수지초강이, 단군 해모수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강림했다. 즉 단군 해모수가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 처음 출현한 때가 임술년 B.C 239년 사월 초팔일하니 내진왕 정 팔년야라. 진시황이 왕위에 오른지 8년이 되는 때다. 이런 뜻입니다. 진시황은 B.C 247년에 왕위에 오르거든요. 그래서 진왕 정 팔년이 B.C 239년이 되고요.

사월 초파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좀 기억을 해야 되는데요. 사실 불교하고 사월 초파일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사월 초파일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완전히 해모수가 초강한 4월 초파일의 그 성스러운 날짜를 빌려다가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불교도 대회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5월 15일 날인가 잡고 있어요. 국제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4월 초파일로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은 해모수 단군께서 오신 날을 우리 역사 속에서 성스러운 날로 내려오니까 거기에다가 꿰맞춰가지고 부처님 오신 날로 지금 기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자, 여기까지는 고구려 국통의 뿌리가 북부여의 해모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얘기하고 있어요. 북한 사람들도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건국이 B.C 37년으로 돼있으니까요. 고구려가 이렇게 늦지 않다 해서 자기들 멋대로 250년을 플러스해서 계산하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그건 좀 올려 잡았죠. B.C 239년인데. 북한은 실제로 그렇게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250년인가를 37에다가 플러스해가지고 그러면 287이 되나요? 그때가 고구려가 건국됐다. 그런데 그건 근거가 없어요. 그냥. 좀 올려 잡는 것은 과하지만 무조건 250을 더한다는 것은 역사하는 사람들로서는 좀 지나친 거죠. 어쨌든 조금 올려 잡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고주몽의 혈통과 북부여의 국통 계승

자, 2번째 단락으로 들어가 볼까요?

고리군왕 고진   해모수지이자야

槀離郡王 高辰은 解慕漱之二子也오


옥저후 불리지   고진지손야  

沃沮侯 弗離支는 高辰之孫也니


개이토적만공     득봉야 

皆以討賊滿功으로 得封也라


고리군왕 고진은 해모수지이자야오. 해모수의 고향이 고구려라 그랬어요. 해모수의 고향 이름이 고구려 그래서 국호가 거기서 나왔는데 거기가 고리땅입니다. 고리.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고구려, 고구려 하지만 실제로 이 글자는 말이에요. 정확하게 리라고 발음을 해야 합니다. 고구리가 정확한 발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초창기에 역사학자들이 무식해가지고 고구려하니까 입에 익어버렸어요.

중국의 역사책인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에도요. 고구려라고 적어놓고 려자는 음은 리다. 이렇게 중국 사람들도 분명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호삼성이라는 사람이 주석을 달 때 이 글자는 리로 읽어야 된다. 그런데 지금 분명히 우리는 고리라고 나오잖아요. 고리. 그래서 사실 이건 다 바로잡아야 되는데요. 고구리가 맞습니다. 고구리.

 - 해모수의 4대 직계 왕손

고리군왕 고진은 해모수지이자야오. 해모수의 맏아들은 당연히 모수리 단군으로서 북부여의 2대 임금이 되셨고 해모수 단군의 둘째 아드님이 있었어요. 그 분이 고진인데 그 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인데 자기 아버지의 고향인 고리 땅에 군왕이 되셨습니다. 이 고리는 어디냐면 요하가 동요하와 서요하가 흘러나오는데요. 서요하 지역입니다. 서요하 지역. 서요하가 흘러내려오는데.

옥저후 불리지는 고진지손야라. 옥저후 불리지는 고진의 손자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고주몽 성제를 분명히 알 수 있죠. 해모수라는 분의 첫째 아들은 모수리 단군이시고 둘째 아들은 고진이라는 분이시고요. 고진의 손자가 누구냐면 불리지라는 분이에요. 이 불리지라는 분과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누구냐 하면 고주몽 성제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가 되죠. 해모수의 직계혈통이에요. 나라도 북부여를 계승하고 혈통도 북부여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 위만조선의 왜곡

고진지손야니 개이토적만공으로, 모두. 모두는 고진이라는 분과 불리지라는 분이 모두 도적인 위만을 친 공으로서 그때 위만이라는 도적놈 하나가 우리나라 번조선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번조선의 일부분. 기준을 내쫓고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역사책 보면 전부 그것이 전부 고조선의 종통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아주 그건 잘못된 거죠. 우리 고조선의 정통은 북부여가 계승해서 잇고 그쪽에는 번조선 우리 고조선의 제후국이 있었는데 그것을 내쫓고 위만이 차지했는데 그걸 정통으로 갖다놓고 있는 아주 잘못된 것. 지금 역사책 보면 전부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득봉야라. 그러니까 이 고진이라는 분, 옥저후 불리지라는 분이 왕족이기 때문에 그런 고리 군왕에 봉해지고 옥저후에 봉해진 것이 아니라 도적인 위만을 쳐가지고 큰 공로를 세웠기 때문에 봉함을 받았어요. 옥저라는 것은 말이에요. 4개의 옥저가 있는데 우리가 동옥저라고 하면 함경도 지방을 얘기합니다. 서옥저라면 저 만리장성 부근을 얘기합니다. 남옥저라면 요동반도를 얘기합니다. 북옥저라면 장춘지방을 얘기합니다. 지금은 옥저하면 전부 함경도라고만 얘기하는데 아주 이건 잘못된 겁니다.

 - 고주몽 성제의 탄생

불리지   상과서압록       우하백녀 유화   

弗離支가 嘗過西鴨綠이라가 遇河伯女 柳花하여


열이취지     생고주몽       

悅而娶之하고 生高朱蒙하시니


시즉임인 오월오일야 

時則壬寅 五月五日也오


내한주 불릉 원봉 이년야  

乃漢主 弗陵 元鳳 二年也라.


불리지가 상과서압록이라가, 일찍이 서압록을 지났어요. 동압록은 압록강이에요. 우리가 지금 말하는 중국과 북한의 경계로 되어 있는 것이고요. 서압록이라면 이것이 서요하입니다. 요하 중에서도 서요하 임황을 지나가지고 이렇게 흘러나오는 상과서압록이라가 우하백녀 유화하여, 하백의 따님인 유화부인을 만났어요. 만나서 아마 첫눈에 반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열이취지하고 기뻐해가지고 아내로 삼았어요. 그러니까 중매를 거치지 않고 이게 아마 연애결혼이 되겠죠.

Time 00:22

그래서 생고주몽하시니 이렇게 해서 고주몽 성제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으니 시즉임인년 오월오일야오, 이때가 임인년 5월 5일입니다. B.C 79년 음력 5월 5일 우리가 광개절이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3월 16일은 삼신상제님을 맞이해서 제사를 지내는 대영절 큰 대자 맞이할 영자 대영절이라고 하고 5월 5일은 광개절이라고 얘기를 해요. 광개절. 5월 5일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단오날인데 김형렬 성도의 생일날도 5월 5일, 고주몽 성제도 5월 5일 운초 계연수 선생이 이 환단고기 서문을 쓴 날도 5월 5일날 쓰고 있거든요. 광개절에 이걸 쓴다. 서문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죠. 5월 5일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내한주 불릉 원봉 이년야  

乃漢主 弗陵 元鳳 二年也라.


내한주 불릉 원봉 이년야라. 한주 한 나라 임금님 불릉이라는 사람 유불릉인데요. 한 무제의 막내아들이에요. 한 무제의 막내아들 소제가 되죠. B.C 87년부터 B.C 74년까지 제위에 있었는데요. 한주 불릉 원봉 이년, 즉 B.C 79년이다. 이걸 얘기하는 겁니다.

 - 고주몽 성제의 성장과정

불리지   훙   

弗離支가 薨하고


유화 솔자 주몽     귀우웅심산     금서란야  

柳花 率子 朱蒙하여 歸于熊心山하니 今舒蘭也라


기장   주유사방     택가섭원이거지   

旣長에 周遊四方할새 擇迦葉原而居之러니


선어관가     위목마  

選於官家하여 爲牧馬라


불리지가 졸하고 이건 제후기 때문에 졸보다는 옆에 훙으로 고쳐야 된다. 제후가 돌아가시는 걸 훙이라고 얘기합니다. 불리지가 훙하시고. 유화 솔자 주몽하여, 유화가 아들인 주몽을 데리고서 말이에요. 귀우웅심산하니, 웅심산으로 갔어요. 여기가 너희 고조할아버지가 처음 머무시던 곳이다. 아마 이런 의미가 있겠죠. 웅심산에 있었으니 지금의 서란이다. 지금도 서란현이라고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기장에 이미 장성을 했어요. 고주몽 성제가 나이가 먹어서 장성하매 주유사방할새 사방을 두루두루 돌아다니죠. 사람이 한군데서만 살 수 없잖아요. 주유사방할새 택가섭원이거지러니, 가섭원을 택해서 머물렀다. 가섭원 우리는 북부여기에서 배웠습니다. 가섭원부여라고 얘기하죠. 중국의 한 무제가 쳐들어왔을 대 북부여의 네 번째 임금이 해우루 단군이 큰 역할을 못했어요. 그런데 의병을 일으킨 고두막한이 한나라 군대를 다 물리쳤어요. 물리치고는 북부여의 4대 임금한테 가서 “임금의 자리를 내 놓아라.”하니까 힘이 없으니까 임금의 자리를 내어놓죠. 그래서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5대 단군이 되고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하니까 그러면 “너는 나의 제부가 되라.”해서 해우루의 동생인 그 해부루께서 저 가섭원으로 가서 제후가 되죠. 북부여의 제후가. 지금의 흑룡강성 통화연입니다. 하얼빈에서 동쪽으로 한참 가면 있는데요. 거기 가서 제후로써 내려가요. 그게 우리가 동부여다. 또는 가섭원부여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죠.

어떻게 거기까지 흘러가셨어요. 거기 가서 이제 사는데 그래서 가서 보니 선어관가하여 관가에 선발이 되었습니다. 동부여 관가에 선발이 되어서 위목마라. 막을 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목동이 되셨네요. 목동이. 말을 치는 그런 역할을 하셨습니다.

미기   위관가소기   

未幾에 爲官家所忌하여


여오이 마리 협보   도지졸본      

與烏伊 摩離 陝父로 逃至卒本하시니


미기에 몇 기자죠. 이것은. 얼마 안돼서 위관가소기하여 이 관가에 시기하는 바가 되어서 너무 고주몽 성제가 똑똑하고 영민하니까 그때의 여러 왕자들이 시기를 했다 그러죠. 시기를 해서 죽이려고 그러니까 이제 도망을 갑니다.

 - 북부여를 계승받은 고주몽 성제

여오이 마리 협보로 이 세 사람의 아주 절친한 친구들과 더불어 도지졸본하시니 도망을 해서 졸본에 이르시니 졸본. 광개토대왕 비문엔 홀본이라고 돼있어요. 홀본. 졸본. 홀이라는 것은 우리말로 무슨 골, 무슨 골 할 때 골의 뜻인데요. 바로 이 졸본이 고구려가 건국된 곳인데요. 이것은 두만강 위에 있는 유분하시 서성산으로 잡아야지 절대로 길림성 환인현 오녀산성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지금 뭐 100% 다 그렇게 잡고 있어요. 강단사학에서는.

적   부여왕   무사  

適에 夫餘王이 無嗣라


주몽   수이왕서   입승대통      

朱蒙이 遂以王婿로 入承大統하시니


시위고구려 시조야      

是謂高句麗 始祖也시니라.


적 부여왕이 무사라. 마침 부여의 왕이 아들이 없었어요. 바로 고무서 단군이죠. 고두막한의 아드님인 북부여의 여섯 번째 단군 B.C 60년에 임금의 자리에 올라가지고 B.C 58년에 2년밖에 살지를 못했어요. 아들이 없었어요. 주몽이 수이왕서로, 주몽께서 드디어 왕의 사위로서 이 고무서 단군은 딸이 세 분이 있었다고 그러는데요. 두 번째 딸이 소서노고 그 소서노와 고주몽 성제가 결혼을 하죠. 결혼을 해서 북부여의 고무서 단군의 사위가 됩니다. 둘째 사위가. 이렇게 들어가셔 가지고 왕서로서 드디어 왕서는 사위로서 아들이 없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입승대통하시니 들어가셔 가지고 대통을 계승하셨어요. 그러니까 북부여의 일곱 번째 단군이 이렇게 되시는 거죠. 시위고구려 시조야시니라. 이 분이 고구려의 시조인 것이니라.

그래서 이 고구려의 건국은 B.C 58년으로 잡아야 되고 더 소급해가면 B.C 239년 해모수의 건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삼국사기에는 B.C 37년이라고 돼있는 것은 그것은 고주몽 성제가 B.C 58년에 다물이라는 연호를 쓰고 37년에 평락이라는 연호를 쓰는데 아마 그 평락이라는 연호를 쓴 때부터 기록을 한 것 같아요. 김부식이가 “어떻게 신라보다 더 앞설 수 있느냐”해서 신라가 57년에 건국되고 고구려는 B.C 37년에 건국되는 것처럼 고구려를 좀 의도적으로 내려 깎으려는 뜻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고주몽 성제 때의 통치영역과 대도의 말씀(道言)

 - 고구려의 천도 과정

삼십이년 갑오 십월   벌북옥저     멸지    

三十二年 甲午 十月에 伐北沃沮하여 滅之하고


명년 을미   자졸본     이도눌견   

明年 乙未에 自卒本으로 移都訥見하니


눌견   금상춘 주가성자야  

訥見은 今常春 朱家城子也라


삼십이년 갑오 십월에, 58년부터 32년째 되는 때를 따지면 갑오년이 나오는데요. B.C 27년입니다. B.C 27년 십월 달에 벌북옥저하여 멸지하고 북옥저 이곳이 장춘지방이에요. 북옥저를 정벌해서 멸하고 명년 을미에 명년이면 B.C 26년이 됩니다. 을미에 자졸본으로 졸본으로부터 이도눌견하니 졸본은 저 유분하시에서부터 도읍을 눌견으로 옮겼다. 눌견은 우리말로 늘봄이예요. 늘봄. 항상 봄이다. 이런 뜻으로서 지금의 상춘 주가성자야라. 상춘. 상춘이라는 게 늘봄 아닙니까? 항상 봄이다. 지금은 장춘이라고 쓰죠. 그러니까 장춘의 어원이 거기에서 나온 거예요. 주가성자야라.

유리명제 십구년   우자눌견   

琉璃明帝 十九年에 又自訥見으로


이도우국내성     역왈황성    

移都于國內城하니 亦曰皇城이오


내유환도산     산상축성     유사즉거지  

內有丸都山하여 山上築城하니 有事則居之라.


유리명제 십구년에 돼있는데요. 이것은 다른 책에 전부 이십일년으로 다 바꾸어져 있습니다. 유리명제 이십일년으로 해야 되는데요. 그러면 A.D 2년이 됩니다. 19년에 우자눌견으로 이도우국내성하니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겼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집안현 통구죠. 지금은 집안시가 됐죠. 그 집안도 말이에요. 집밖이 아니라 집안이다. 그런 뜻에서 왔다고 그럽니다. 바로 고구려의 A.D 2년부터 거의 427년까지 425년 동안의 그 수도가 국내성이죠. 이게. 국내성.

국내성하니 역왈황성이요. 또한 황성이라고 이르렀고 내유환도산하여 안에 환도산이 있어가지고 산상축성하니 산 위에다가 성을 쌓으니 유사즉거지라. 일이 있으면 거했다. 이건 고구려의 굉장히 특징적인 거예요.

고구려는 말이예요. 평양성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구요. 국내성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국내성이 있어요. 있고 산에다가 산성을 쌓아놓습니다. 지금은 환도산에다가 환도산성을 쌓아놓고 전쟁이 벌어지면은 산성에 거합니다. 그게 고구려의 특징이예요. 지혜로운 거죠. 평지에 황성을 쌓아 놓고 전쟁이 터지면 산성으로 옮겨가는건데 고구려의 아주 특징적인 거예요. 有事則居之 전쟁이 있으면 가서 거했어요. 근대 국내성에는 환도산이 있었고, 환도산에 환도산성을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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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무신열제 이십년   제 습낙랑국   

大武神烈帝 二十年에 帝 襲樂浪國하여


멸지     동압록이남   속아   

滅之하니 東鴨綠以南이 屬我하고


독해성이남 근해제성   미하  

獨海城以南 近海諸城이 未下라


산상제 원년   견제기수    

山上帝 元年에 遣弟罽須하여


공파공손도     벌현도낙랑     멸지   

攻破公孫度하고 伐玄菟樂浪하여 滅之하니


 요동   실평    

 遼東이 悉平하다.


大武神烈帝 二十年에 대무신열제는 고구려의 3대 임금 아닙니까. AD18~44년까지 제위해 있었던 분인데요. 자, 우리는 여기서 고주몽성제, 유리명제, 대무신열제. 그런데 지금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보면 뭐, 동명성왕, 유리왕, 대무신왕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겁니다. 고구려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고주몽성제가 다물라는 연호를 쓰고 평락이라는 연호를 쓰고, 이렇게 “천하의 중심이 고구려다.” 남의 속국의 역할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황제라는 帝 칭호를 놔뒀는데, 중국의 사서를 봐도 고구려의 帝자가 나오거든요.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왕으로 되어 있어요. 이것도 모화사대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나라 역사를 의도적으로 폄하한, 그러니까 삼국사기의 공과 과가 있는데 삼국사기가 없었으면 그나마 우리나라 역사가 없어졌다라는 중요성이 있지만 이렇게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정을 다 깎아버렸어요. 그러니 우리민족의 역사 왜곡은 이게 김부식의 삼국사기부터 그전부터 내려왔으니까 이게 하루아침에 안 잡힙니다. 개벽되기 전까지는 잡을 수가 없어요. 10년, 20년, 30년 왜곡된 것이 아니라 1000년, 2000년 왜곡이 되어 왔으니까 어떻게 그걸 바로잡습니까? 전부 烈帝로 되어있죠. 정말 위대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AD37년이거든요.


帝 襲樂浪國하여 滅之하니 대무신열제가 낙랑국을 습격해서 멸해버렸습니다. 그러면 낙랑군과 낙랑국은 절대로 혼동되어서는 안되요. 낙랑군이라는 것은 하북성 상려현 근처에 있던 지명이구요. 낙랑국이라는 것은 우리 북부여기에서 배웠죠. 잠깐 살펴볼까요?

79페이지를 보십시오.  三世檀君高奚斯 在位四十九年이라 이게 169년인데 정월에 낙랑왕 최숭이 말이예요. 納穀三百石于海城하다. 곡식 삼백석을 해성에다가 들였다. 해성은 신양 밑에 영구시하고 신양시하고 영구 쪽으로 치우친데 요동 반도죠. 해성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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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옥저죠. 이보다 앞서서 169년보다 앞서서 최숭이 낙랑산으로 낙랑산이 하북성 창여지역에 있던 산이예요. 낙랑군은 그 근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自樂浪山으로 載積珍寶而渡海하여 진귀한 보물을 쌓아 싣고 도해하야 발해만을 건넙니다. 바다를 건너서 지마한 이때 마한은 말이예요. 익산에 있는 마한이냐, 아니면 평양이냐? 평양입니다. 우리가 익산의 마한은 중마한이라 하는 거구요. 고조선시대 때는 진한은 하얼빈, 번한은 당산시, 마한은 평양에 있었어요. 처음 봉해진 그래서 都王儉城하니 그래서 왕검성에 도읍했어요. 평양에 성을 쌓고 그 성을 왕검성이라 이름을 붙힌겁니다.

是檀君解慕漱丙午冬也라. 그러니까 해모수 병오동은 BC195년이예요. BC195년부터 AD37년까지 그러면 이게 얼마입니까? 232년이죠. 232년동안 평양을 중심으로 해서 낙랑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최씨낙랑국!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호동 왕자가 낙랑 공주하고 사랑을 해서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어서 고구려가 낙랑왕. 그때 최리죠? 최리를 멸망시키고 낙랑국이 망했다 했던 그 낙랑국이 여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낙랑군과 낙랑국을 많이 혼동하고 있어요.이건 별도, 별개의 얘기입니다. 낙랑국 BC 195년부터 AD37년까지 232년 동안 평양을 중심으로 저 번한의 부자였던 최숭이라는 사람이 세웠던 나라입니다.

滅之하니 東鴨綠以南이 屬我하고. 자! 동압록이라 나오잖아요. 동압록은 지금의 압록강, 서압록은 서요하. 동압록 이남이 屬我 우리에게 다 속하고 屬我하고,

獨海城以南 近海諸城이 未下라. 오직 해성 이남의 근해 저 바다 가까이에 있는 여러 성이 항복하지 않았다. 이것은 거기까지 최숭의 낙랑국의 세력이 미쳤는데요. 수도는 망했지만 변경에 있던 사람들이 항복하지 않았던 겁니다. 최숭의 낙랑국 사람들이 이건 대련근처입니다. 해성 이남이면 완전히 요동반도죠.


山上帝 元年에 산상제라는 것은 고구려의 10번째 임금인데요. 197~227년까지 30년동안 있었던 분인데, 산상제 원년이면 197년이 되겠습니다. AD197년에 遣弟罽須하여 동생인 개수장군을 보냈어요.


공파공손도하고 공격해서 공선도를 격파합니다. 자 여기에 사연이 많죠. 고국천황이 있고 그 동생이 발기고, 그 밑에 동생 연우, 그 밑에 동생 계수 사형제가 있었는데, 고국천황이 돌아 가셨어요. 그 부인 우씨가 먼저 발기를 찾아갑니다. 이렇게 임금이 돌아가시고 “당신이 왕이 되는게 어떠냐?” 하니까 “아녀자의 몸으로 어떻게 국사를 논할 수 있느냐!”하고  화를 내고서 내 쫓아버렸어요. 그러자 그 밑에 동생인 연우장군한테 얘기를 하니까 그걸 흔쾌히 받아 들입니다. 그 당시에는 형님이 돌아가면 형님의 동생이 아내를 취하는 그러한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씨가 고국천황의 황우인데 산상제인 연우장군하고 결혼을 하구요. 임금에 올랐어요. 10번째 산상제거든요. 그러니까 산상제 형님인 발기가 “아니, 내가 형인데 어떻게 네가 왕이 되냐?”해서 고구려의 반란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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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요동의 유력한 세력자였던 공손도에게 가서 의탁해서 군사를 빌려가지고 고구려를 쳐들어 와요. 그래서 환단고기 단군세기 서문에도 남생발기짐 逆心하여 발기라는 분이 그분인데, 그렇게 해서 쳐들어 오니가 상산제가 이름이 연우죠. 자기 동생 계수에게 “가서 쳐라!” 그러니까 싸워요. 그러니까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졌어요. 발기가 대패를 합니다. 형님을 살려주고 계수장군이, 그리고 발기는 자살을 하고. 그게 197년 사건이죠. 그래서 원년에 견제기수 동생 계수를 보내서 공파공손도 공손도를 공격해서 격파했습니다.

그리고  伐玄萄樂浪 滅之하니 현도낙랑을 정벌해서 멸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나라가 아니라 그 당시의 어떤 제후였었죠. 쭉 내려오던!

여기에서 낙랑이 우리는 한사군이라는 것은 역사에 없었습니다. 한사군은 없었구요.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에 고구려의 장군들을 명해서 자치사국를 만들거든요. 한나라의 식민지가 아닌 우리 민족의 자치사국  중에 낙랑국이 있었던 거죠. 낙랑국이 이때 망하게 됩니다.

낙랑국이 197년에 遙東이 悉平하다. 요동이 다 평정되었다.

대인의 길을 가르침

대변경   왈  고주몽성제   조왈천신  

大辯經에 曰 〈高朱蒙聖帝가 詔曰天神이


조만인일상     균부삼진      

造萬人一像하사 均賦三眞하시니


어시   인기대천 이능립어세야  

於是에 人其代天 而能立於世也라


황아국지선   출자북부여     위천제지자호  

況我國之先이 出自北夫餘하여 爲天帝之子乎아.


철인   허정계율     영절사기     

哲人은 虛靜戒律하여 永絶邪氣하나니


기심안태     자여중인     사사득의  

其心安泰하면 自與衆人으로 事事得宜라.


大辯經에 曰 대변경도 조선세조3년에 거두어 들여라 수상 서목중에 하나입니다. 말 그대로 큰 대자에다가 변론할 변론 우주의 이치를 크게 변론하는 그러한 경정입니다.

 우리가 두 번째 단락이 끝났내요. 두 번째 단락은 고주몽 성제의 혈통과 초기 영토의 확장이죠.

세 번째는 고주몽 성제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고주몽 성제의 가르침 속에서 고주몽 성제는 단순한 활만 잘쏘고 고구려의 건국자가 아니라 철학적으로 우리 민족의  신교의 근본사상을 계승했던 그런 핵랑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大辯經에 曰 高朱蒙聖帝가 詔曰天神 고주몽성제가 임금의 명령을 조칙이라 그러죠. 조칙을 내려서 이르기를 천신이

삼신상제님께서 만인을 한모습으로 지으셨어요. 똑같은 모습으로 지었어요. 均賦三眞하시니 고르게 삼진을 부여하시니, 삼진은 성명정입니다. 성명정을 고르게 부여를 해주시니 어시에 이에

人其代天 而能立於世也야.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능히 하나님을 대신하서 능히 세상에 설 수가 있는 것이죠. 인간은 삼신상제님의 신성을 그대로 부여받았기 때문에 작은 신이 되어서 하늘을 대행해고 상제님을 대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況我國之先이 하물며 우리나라 선조가 고주몽의 선조 해모수입니다. 出自北夫餘하여 북부여로부터 나오셔서  爲天帝之子乎아. 하느님의 아들이 되려 있어서 우리나라는 천자사상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천자사상! 중국에서 천자라 하잖아요. 중국의 사상이 아닙니다. 최옹이라는 사람이 쓴 독단이라는 책을 보면 <천이 사상은 동이에서 유래했다. 동방에서 유래했다.>는 분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哲人(철인)은 여기서부터 철학적인 내용인데요.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철인은  虛靜戒律하여 아주 밝은 사람이죠. 밝은 철자니까 지혜롭고 밝은 사람은 허정계율하여 계율이 있는데 마음을 비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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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게 갖는 거예요. 허정이 계율이예요. 마음을 비우고 우리 태사부님께서도  虛心合道다 心虛則受道하고 마음이 비우면 도를 받을 수 있고 器虛則受物이다 그릇이 비우면 물건을 받을 수 있다.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사욕을 버리고 고요한 그런 것으로 계율을 삼아 永絶邪氣 하나니 영원히 사기를 끊어버린다. 영절사기하나니

其心安泰하면 그렇게 되면 그 사람 마음이 편안하고 태평해서 自與衆人으로 스스로 뭇사람과 더불어 事事得宜라. 일마다 마땅함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뭐 고요하게 앉아서 수행하란 겁니다.

용병   소이완침벌   

用兵은 所以緩侵伐이며


행형   소이기무죄악      

行刑은 所以期無罪惡이니라.


고   허극정생     정극지만     지극덕융야 

故로 虛極靜生하고 靜極知滿하고 知極德隆也라


고   허이청교     정이혈구    

故로 虛以聽敎하고 靜以絜矩하고


지이리물     덕이제인     

知以理物하고 德以濟人하나니


차내신시지개물교화   

此乃神市之開物敎化하여


위천신 통성     위중생 입법     위선왕 완공   

爲天神 通性하며 爲衆生 立法하며 爲先王 完功하며


위천하만세     성지생쌍수지화야      

爲天下萬世하여 成智生雙修之化也시니라〉


用兵은 所以緩侵伐이며 군사를 쓰는 것은 내가 욕심을 내서 땅을 넓히는게 아니라 緩侵伐 상대방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침벌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늦추기 위한 것이고

行刑 사람들이 뭘 잘못하면 형벌을 가하는 것은 所以期無罪惡 가히 짐죄악이니라. 그 사람 미워서 벌 주려는게 목적이 아니라 어떤 죄악을 없게 하길 기약한다. 즉, 죄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형벌을 가하는 것이니라. 

故로 虛極靜生하고 그러므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말이예요. 극도의 경지에 이르면 거기서서 고요함이 생겨나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극도의 경지에 가면 거기에서 고요함이 생기구요. 그다음에 靜極知滿하고 고요함이 지극한 경지에 들어가면 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여기는 知를 썼지만 知와 智는 다 통하는 겁니다. 여기는 知로 썼지만은 이것은 이 글자와 같은 거예요. 智와. 그러니까 고요함이 지극해지면 지혜가 충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수행을 하면 수행을 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거기에서 수많은 체험을 통해서 샘솟는 지혜가 나오는데 진짜 지혜죠. 그런 것이 어떤 책을 봐서 이런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마음을 고요히 해서 체험하는 것은 정말 진정한 지혜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참선하는 사람들이 계정에 삼악을 얘기하는데 공부해서 아는 지혜는 번혜라고 그래요. 마른 지혜. 진짜 삼해에 들어가서 얻은 지혜 진정한 지혜라고 합니다. 정극지만 지혜가 아주 충만하고 知極德隆也라. 지혜가 극도의 경지에 가면 덕이 무르익게 되는거죠. 隆은 융성해 진다. 덕이 넘쳐 흐르고,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궁극적으로는 덕을 갔다 놨는데 인간의 완성은 덕에 있는 겁니다. 인간의 완성은.

故로 虛以聽敎하고. 그러기 때문에 항상 허심으로 마음을 비워가지고 가르침을 들어야 됩니다. 내 생각을 깔고서 들어선 안되고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 들어야 하고, 靜以絜矩 고요하게 絜은 잴 혈자고, 矩라는 곡척구자예요. 자입니다. 자로써 잰다. 자로써 잰다는 것은 판단한다는 건데 사리를 판단하는 겁니다. 고요함으로 사리를 판단하고.

知以理物하고 지혜로써 만물을 다스려야 되요. 知以理物하고 德以濟人하나니 덕으로써 사람을 구제해야 되요. 사람이 덕이 충만해야지 믿어줍니다. 상대방에게 신뢰성을 주게 되요. 德以濟人하나니

此乃神市之開物敎化하여. 이것이 바로 神市之開物敎化예요. 어떤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가지고 이 물은 사람으로 봐도 됩니다. 사람의 지혜를 열어가지고 교화 하는 것으로

爲天神 通性하며 천신을 위해서 성품을 통하며 爲衆生 立法하며 중생을 위해서는 법을 세우며, 爲先王 完功하며 천황을 위해서는 공을 완수하며,

爲天下萬世하여 천하후세를 위해서는  成智生雙修之化也시니라 智生雙修의 교화를 이루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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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爲天下萬世이라 그랬어요. 천신을 위해서 성품을 통한다. 성품을 통하는 것은 도통하는 건데요. 우리 도전에도 도통천지보은이니라. 이런 말이 있잖아요. 도통천지보은이니라 사람이 도통을 해야 만이 이것이 비로소 천지에 보은하는 길이니라. 천지에서 사람을 길러줬는데 짐승처럼 살다 죽으면 그건 천지에 대한 배신이라는 거죠. 도통을 해서 천지에 대한 은혜와 천지에 대한 공을 깨달아서 그것이 천지에 대한 보은이라는 겁니다. 도통이 보은이라는 거예요. 爲天神 通性하며 천신이 우리에게 성·명·정을 내려주셨는데 성을 통하는 것이 천신에게 보답하고 보은하는 길입니다.

爲天神 通性하며 爲衆生 立法하며 중생들은 법이 있어야죠. 법이 없으면 문란해 집니다. 先王 完功이라는 것은 선왕들은 목표가 있었어요. 선왕들은 어떤 고주몽성제는 우리의 정신과 고대의 정신과 고대의 영호를 회복하자. 후세에 광개토열제께서 우리 시조할아버지께서 했던 것을 완수하자. 先王 完功이죠.

天下萬世를 위해서는  成智生雙修우리 민족의 수행법은 智生雙修라고 합니다. 智生雙修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혜와 생명을 함께 닦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혜는 마음이죠. 生이라는 것은 몸이예요. 마음 공부와 몸 공부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거예요. 불교의 참선은 마음공부일 뿐이죠. 그리고 무술이라는 것은 몸을 단련할 뿐이죠. 이 두 가지를 호흡법과 마음 닦는 공부를 두 가지를 동시에 병행해야 된다하는 것이 智生雙修라고 일단 알아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智生雙修의 교화를 이루는 것이니라. 이것이 고구려의 건국자인 고주몽 성제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을파소의 가르침

을파소   위국상   선년소영준   

乙巴素가 爲國相에 選年少英俊하여


위선인도랑     장교화자  

爲仙人徒郞하니 掌敎化者를


왈참전     중선수계     위신고탁    

曰參佺이니 衆選守戒하여 爲神顧托하며


장무예자   왈유의  

掌武藝者를 曰瑜衣니


겸조성율     위공정신야  

兼操成律하여 爲公挺身也라.


상언어중 왈  신시이화지세 

嘗言於衆 曰 〈神市理化之世에


유민개지     일부지치    

由民開智하여 日赴至治하니


즉유소이긍만세 불가역지표준야  

則有所以亘萬世 不可易之標準也라


네 번째는 우리 을파소라는 분의 참전개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을파소라는 분은 고국천황 때 국상이었습니다. 고국천황 9대임금 고구려의 9대임금 179~197년까지 임금의 자리에 있었던 분인데  유리명제때 국상이었던 을소라는 분의 손자라고 합니다. 압록강 근처사람이구요.

 을파소가 위국상에 을파소가 국상이 되었어요. 국상이 되어서 최고의 벼슬자리에 올라가서 選年少英俊하여 연소한 영준들을 뽑아 모아 가지고 나이어린 영재들을 뽑아모았어요.

그래서 爲仙人徒郞하니 선인도랑을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신라의 화랑도가 신라에서 자생한게 아니라 그 이전에 배달국의 제세핵랑군으로부터 고조선의 국자랑 천황랑으로 계승해서 이것이 고구려에서는 조의선인이 됩니다. 신라에서는 화랑이되구요. 백제에서는 무절이라고 그래서 또 다른 연소한 무사집단이 나오게 되는데요.

문과 무로 나누었네요. 掌敎化者를 曰參佺이라 그랬어요. 교화를 관장하는 자를 參佺이라 그랬어요. 백성을 교화하는 문적인 개념이죠. 백성을 교화하는 사람을 參佺이라 그랬구요. 衆選守戒 그 여러 무리들에게서 선발을 해서 수계를 지치게 해요. 계를 지키게 해서 爲神顧托하며 신을 위해서 의탁한 것을 돌아보게 한다. 해석이 조금 까다로운데요. 저도 확실치 않지만 이건 아마 신탁을 받아 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神托 삼신상제님께서 신이 의도한 것을 받아 내리는 거예요. 신탁을 받아 내리는 그런 역할을 해서 신탁을 받아서 세상을 교화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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掌武藝者 무예를 관장하는 사람을 瑜衣라고 그랬어요. 瑜衣. 瑜衣는 검은띠를 둘렀다고 합니다. 우두머리는 검은 옷을 입었다 그래요. 瑜衣라 하는데

兼操成律 겸자를 썼으면 앞에 참전 문을 닦는 것은 물론이고 문뿐만 아니라 겸에서 성율 이루어진 계율을 잡아가지고 爲公挺身也라. 공도를 위해서는 몸을 앞장을 세웁니다. 뺄 정자니까 몸을 빼어서 달려나갔어요. 우리민족의 정신의 근본이라면은 조의선인에 있는겁니다. 조의선인은 평소에는 삼신 상제님을 신앙하는 그런 수행자들입니다. 주문을 읽고 그때는 천부경을 읽고 참전계경을 읽고 삼일신고를 읽고 백성들을 교화하고 유사시에는 그들이 그대로 군인이 됩니다. 군인이 되어가지고 앞장서서 국란을 극복하는 선구자가 되죠. 사실 상제님 신앙인들이 조의선인이거든요. 그러니까 군대조직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 그것은 우리민족의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사시에는 다 군인이 되는거예요. 조의선인은.

嘗言於衆 曰 일찍이 대중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을파소가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神市理化之世에 神市는 배달국 시대의 수도죠. 神市의 이화지세에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던 그러한 시대에

由民開智하여 백성들의 지혜를 열어줌으로 말미암아 교육이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소질과 능력을 개발해 주는 것이 교육이라 그러죠. 백성들의 지혜를 열어줌으로 말미암아 日赴至治하니. 그래서 매일매일 지극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그러한 데에 이르렀으니

則有所以亘萬世 不可易之標準也라 이것은 만세에 걸쳐서 뻗칠 긍자에요. 만세에 걸쳐서 가히 바꿀 수 없는 표준이 되는 바다. 백성들의 지혜를 열어가지고 至治에 이르게 하는거예요. 이것은 不可易之標準이죠.

고   참전유계     청신이화중    

故로 參佺有戒하여 聽神以化衆하며


한맹유율     대천행공야  

寒盟攸律하여 代天行功也니


개자립심작력     이비후공야    

皆自立心作力하여 以備後功也니라〉


故로 參佺有戒하여 그러기 때문에 참전들은 말이예요. 계율이 있었어요. 우리가 장교화자를 참전이라 그랬잖아요. 참전들은 전의라는 것은 앞에 한번 찾아볼까요.

전이라는 것은 전자가 굉장히 어려운데요. 32쪽 찾아보세요. 종자는 국지소선야요 전자는 민지소거야라고 되어있죠. 종은 나라에서 선발된 영재들이에요. 전은 백성들이 천거한 영재들이에요. 그렇게 돼있죠. 백성들이 천거한 영재들을 지방에서 전부 천거를 받습니다. 뒤에 한번 또 나올지 몰라요. 삼월위전이라고. 참전들은 계율을 두었고요.

청신이 화중이라는 게 신의 목소리를 들어가지고 대중을 교화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성령을 받아가지고 대중을 교화한 것입니다. 신탁을 받아가지고 대중을 교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신. 그러니까 우리 민족은 신교의 근본 바탕은 성령을 받는 것이죠. 우주의 바탕이 신으로 되어있고 인간이 그 신의 세계를 뚫어가지고 그렇게 되어서 세상을 교화하는 겁니다. 우리 상제님의 일꾼들이 근본적으로 숙구지, 판몰이의 대세는 천지신명의 성령을 받아가지고 터질 때 근본적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이것이 역사적인 뿌리가 그렇게 되어있거든요.

한맹에는 또 역시 법이 있었어요. 한맹은 고구려의 동맹이죠. 10월달에 지냈기 때문에 추워서 한맹이라고 했습니다. 삼신상제님 추수감사제 제천의식입니다. 한맹에 유율하며 대천행공야라 하느님을 대신해가지고 공을 실천하는 겁니다. 공업을 실천하는 거요. 대천행공이 성사재인이죠. 성사재인의 얘기도 역사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개자립심작력하여 모두 스스로 마음을 세우고 입심이것은 뜻을 세우는 거예요. 장력.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립심작력하야 이비후공야라. 뒤에 세울 공을 대비하는 거다. 우리가 일을 제대로 하려면  사부님께서도 서원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장력 노력을 해야 하죠. 그래서 그렇게 되어야 만이 뜻을 세우고 노력을 해야 만이 큰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겁니다.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후공에 대비한다. 뒤에 세울 공을 준비하는 거죠. 을파소께서도 신교의 진리를 체득해가지고 그 모델을 배달국 시대에 두었네요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을 내려주셨습니다.

을지문덕의 호쾌한 심법세계

- 도통의 요체

을지문덕 장군도 이런 가르침을 내려 주셨습니다.

을지문덕   왈

乙支文德이 曰


 도이사천신     덕이비민방     오지기유사천하야  

〈道以事天神하고 德以庇民邦이니 吾知其有辭天下也라


도로서 천신을 섬기고 도로서 삼신 상제님을 섬기고. 우리민족은 하느님을 가장 잘 섬겨온 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증산도를 신앙하는 우리들이 그것을 계승한 남조선 사람들이죠.

덕으로서 민방은 백성과 나라를 보호해야 만이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보호해야 만이 그다음에 토를 라야라고 달아야한다고 봐요. 도이사천신하고 덕이비민방이라야 오직이유사천하야라 오직이유사천하야는 해석이 잘 안됩니다. 제가 생각한 거 하나를 전달해 드리면 도로서 천신을 섬기고 덕으로서 백성과 나라를 보호해야 만이 비로서 천하에 대해서 말을 둘 수가 있다. 자신의 도와 덕이 출중해야 만이 비로써 천하 사람들에게 할 말은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지 않으면 말을 못한다는 거죠.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돼야 만이 천하 사람들에 대해서 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아노라.

수삼신일체기     분득성명정     

受三神一體氣하여 分得性命精하니


자재광명   앙연부동      

自在光明이 昻然不動이라가


삼신일체의 기운을 받아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성명정(性命精)을 나눠 받았어요. 나도 성명정(性命精)이 있고 당신도 성명정이 있고 자제광명은 본래부터 있는 광명 이예요. 우리 마음속, 몸속에 본래부터 있는 광명이 아주 환하게 자리 잡고 있다가 부동하다가 유시감하며 때로 거기에 감응하는 것이 있어요. 그건 수행을 했을 때 감응하는 거죠. 마음속에 감춰져 있던 빛이 수행을 하면 그것이 감응을 하며 달이 도에 통한다. 그것이 발현하면 도가 거기서 통하게 되는 거예요. 마음의 빛을 보는 것이 도통을 하는 것입니다.

시내소이체행삼물 덕혜력   

是乃所以体行三物 德慧力하여


화성삼가 심기신     열만삼도감식촉     

化成三家 心氣身하며 悅滿三途感息觸하나니


이것이(도통이라는 것이) 바로 뭐냐? 도통이라는 것은 바로 삼물 덕혜력(德慧力)을 체득해서 실천하는 거예요. 덕이 출중해야 되죠. 지혜가 출중해야 되고 덕과 지혜가 출중하면 거기서 신이 솟구치게 됩니다. 이 삼물 덕혜력(德慧力)을 체행해야 해요. 체득해서 실천을 하고 이 심기신(心氣身)을 삼가라고 하는 데요 이 삼가 심기신(心氣身)을 변화시켜서 완성을 해야 돼요. 왜냐하면 마음에는 선악이 있고 기에는 청탁이 있고 몸에는 순수하고 잡박됨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변화시켜서 완성을 하며 삼도라고 하는 것은 감식촉(感息觸)이죠? 감(感)-정신적으로 느끼는 것, 식(息)-호흡을 통해서 느끼는 거, 촉(觸)-피부로 느끼는 것 이것이 외부와 접촉을 해서 느끼는 것을 삼도라고 얘기하는데요. 자세한 것은 삼일신고에 나오죠. 감은 희노애고탐염이요. 식엔 불난한열진습이요. 촉이라는것은 성색치미음전이라  6.6.6 다 더하면 18개의 경지가 나온다고 해서 18경자를 썼죠.

삼일신고에 있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해서 삼고의 감식촉(感息觸)을 기쁘게 충만하는 것이 도통이라는 거예요. 그 핵심은 어디에 있냐하면요.

요재일구염표     재세이화   

要在日求念標하여 在世理化하며


정수경도     홍익인간야  

靜修境途하여 弘益人間也라.


요점은 여기에 있다. 매일매일 염표(念標)를 구한다는 거예요. 염표문(念標文)이라고 합니다. 염표문(念標文), 생각끝 머리에서 항상 구하는 건데요. 염표문(念標文)은 여러분들이 173쪽을 보면 맨 끝에 줄 이예요.

일신강충, 성통광명, 제세이화, 홍익인간 

이 16글자가 염표문(念標文)이라고 합니다. 아마 옛날 조상님들은 이걸 항상 외웠던 모양 이예요. 일신강충, 삼신 상제님께서 내 마음자리에 내려와 계신다. 성통광명, 우리의 성품을 통해서 광명을 열자. 제세이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다스리고 교화해야 만이 홍익인간 할 수 있다. 이 16글자를 염표문(念標文)이라고 합니다. 이 16글자를 아주 매일매일 외우는 거예요. 그리고 제세이화라야 세상에서 다스리고 교화하며

정수경도     홍익인간야  

靜修境途하여 弘益人間也라.


고요하게 병과 도를 닦아요. 도라는 것은 감식촉(感息觸)이구요 경이라는 것은 18경 감의 6개 식의 6개 촉의 6개, 외부와 접촉하면서 내 마음에서 대응하는 경계 그것을 고요하게 닦아서 홍익인간(弘益人間)하는 것이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다. 저는 제세이화와 홍익인간을 우리 상제님을 신앙하는 우리 일꾼의 입장에서 비춰서 해석을 해본다면 우리가 제세이화의 개념을 잘 못 잡거든요. 우리가 상제님의 진리를 공부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세상 땅이 병들었고 이렇게 원한으로 가득 차있고 우리 상제님의 진리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제세이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상제님의 진리로서 다스리고 교화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여서 입도를 한다거나 도문에 들어오면 그것이 진정한 홍익인간이 아니겠느냐? 제세이화를 이해를 하면 개념이 조금 잘 잡힐 거예요. 제세이화라는 것은 옛날의 입장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삼신 상제님의 올바를 진리를 가지고 그들에게 넣어주는 것이죠. 그것이 제세이화다. 세상에 나아가서 올바른 진리로서 그들을 교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상제님의 진리가 더 이상 없잖아요.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여가지고 도문에 들어온다거나 상제님을 진정으로 신앙하게 될 때 진정으로 그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홍익인간이다.

- 한민족 상고시대의 윤리 덕목

환국왈오훈     신시왈오사  

桓國曰五訓이오 神市曰五事오


우리 민족의 윤리사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환국은 오훈이 있었다. 114쪽을 펴보세요. 환국본기 마지막인데요. 환국에 오훈이 있으니 신시에는 오사가 있었으니 소위 오훈이라는 것은 뭐냐? 성신불이요. 성경신이 근본이네요. 정성과 믿음으로서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요. 경근불태 공경하고 부지런해서 게으르지 않는 거예요. 첫 번째 두 번째 성경신이 다 들어가 있네요. 세 번째가 효순불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웃어른께 순종해가지고 어기지 않는 것이요.사왈염의불음, 청렴하고 정의로워서 음하지 않는 것이요. 오왈 겸화불투 겸손하고 남과 조화해서 싸우지 않는 것이 환국의 오훈입니다. 그 다음에 오사는  우과는 주곡하고 우과벼슬은 곡식, 먹고사는 것을 관장하는 벼슬이죠. 마가는 주명, 마가는 말을 타고 명을 전하듯이 명을 주장하고, 저가는 주병, 개가는 선악을 주관한다.

조선왈오행육정     부여왈구서  

朝鮮曰五行六政이오 夫餘曰九誓라


환국에는 오훈이 있었습니다. 신시에는 오사가 있었습니다. 조선에는 오행육정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목화토금수 오행의 이치를 강조했어요. 그래서 부루태자가 우임금에게 전해준 것이 오행 치수 법을 전해주고 어떤 오행사상이 고조선시대 때는 보편화 되어있습니다. 육정이라는 것은 아버지와 자식 임금과 신하 남자와 여자사이에 지켜야할 윤리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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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육정이 있었고요. 부여에는 부서가 있었습니다. 191쪽 펴보세요. 맨 끝에 대변경에 이르기를 ‘단군 구물이 개국호’ 단군 구물이 대 부여라고 이름을 고쳤잖아요? 대부여라고 하고 장단경에 도읍을 했는데요. 192쪽으로 나가서 절을 아홉 번 하면서 하나씩 맹세를 하는데요. 초배이 서중왈- 처음 절하고 대중에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면이 효우가라- 집안에 효도하는 것이 구서의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 재배는 193첫번째죠. 재배이 서왈 면이 우형제-구서의 첫 번째는 집안에 효도하고 두 번째는 형제에게 우애(友愛)있게 지내고, 삼배는 신우사우-스승님과 친구에게 믿음으로서 살고 , 사배 충우국-나라에 충성(忠誠)하고, 그다음 오배를 하고서는 손우군-무리에게 공손하고, 육배를 나가면 명지우정사-정사에 명민하고 지혜롭고, 칠배에 서하는 것은 용우전-전쟁에 용감하고, 팔배 196쪽으로 넘어가면 염우신-몸에 청렴하고 ,구배에 맹세하는 것은 의유직업-직업을 신성시하고 이것이 부여의 구서가 되겠습니다.

삼한통속   역유오계    

三韓通俗이 亦有五戒하니


그다음에 삼한 통속이 역유오계가 있었어요. 삼한 통속이 공통된 풍속이 오계가 있었는데요.

왈효충신용인     개교민이정평   

曰孝忠信勇仁이니 皆敎民以正平이오


왈 효충신용인이니, 효충신용인은요 우리가 원광법사가 화랑도들에게 세속오계를 전해줬다고 하죠. 사군이충,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퇴 그거 원광법사가 만든 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삼한 통속오계를 갖다가 화랑도들에게 다시 얘기해 주신 것뿐입니다. 그래서 제일먼저 효라는 것은 사친이효, 사군이충이 충 교우이신이 신 임전무퇴가 용 살생유퇴가 인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 우리민족이 전해 내려오던 계율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써먹은 것이지 다시 만든 게 아닙니다. 우리 민족은 이런 윤리와 도덕이 있었어요.

계 교민이 정평이요-대개 백성을 가르치는데 정직하고 평등하게 가르치고,

이직군지의   존언       

而織群之意가 存焉이니라


직군지이가 존언인이라-직군 짤 직자, 무리 군자  무리를 조직, 묶는 겁니다. 이런 윤리도덕이라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을 조직하는 그러한 뜻이 존재하고 있었느니라.

10분 남았는데  2장했습니다. 이게 모두 16장인데요. 제가 일부로 천천히 했습니다.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하니까, 이렇게 다 보면 재미있겠죠. 시간이 10분 동안 나가는 데까지 나가야할 것 같아요.

역대 성군, 영걸들의 역력한 자취

책성   유태조 무열제 기공비   

柵城에 有太祖 武烈帝 紀功碑하고


우리나라의 역대 영걸들의 자취가 지금 이렇게 남아있다는 건데요. 전부 북한 땅에 있고 만 주땅에 있어가지고 보기가 어렵지만 책성-두만강을 바로 넘어가면 훈춘 지방-에 태조무열제기공비가 있다고 그래요. 태조 무열제는 고구려의 여섯 번째 임금인데요. 53년부터 146년까지 제위에 계셨으니까 근100년을 임금 자리에 있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가장 길게 임금노릇을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책성에는 태조 무열제의 공적을 기록한 비가 있답니다. 지금은 찾아 볼 수 있는지 모르지만 없을 가능성이 크지요.

동압록지황성   유광개토경 대훈적비    

東鴨綠之皇城에 有廣開土境 大勳蹟碑하고


동암록은 압록강이죠. 황성은 집안 국내성이죠 거기에 유광개토경대훈적비하고 이 광개토 호태열제의 대 공적비가 있어요. 이게 광개토대황 비문이라는 겁니다. 413년에 돌아가지고 그 아드님 되시는 장수열제께서 414년에 세웁니다. 광개토열제비를 .

안주 청천강 안상   유을지문덕 석상   

安州 淸川江 岸上에 有乙支文德 石像하고


안주 청천강 강가에 을지문덕 장군의 돌로 만든 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소리강외   유연개소문 송덕비   

烏蘇里江外에 有淵蓋蘇文 頌德碑하고


그 다음에 오솔이강 바깥에 연개소문의 송덕비가 있대요.

평양 모란봉 중록에 유동천제 조천석   

平壤 牧峯 中麓에 有東川帝 朝天石하고


평양모란봉중덕에 동천제 조천석하고 하늘에 조예하는 즉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는 돌이 있습니다. 동천제 조천석은요 이때는 동천제때는 우리나라 관국엄이 침입으로 해서 247년에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겼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동천제의 유물이 평양에 있게  된 것입니다.

삭주 거문산 서록   유을파소묘   

朔州 巨門山 西麓에 有乙巴素墓하고


압록강 남쪽에 유을파의 묘가 있어요. 을파소가 동압록곡사람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아마 거기 삭주거문산 있는 데가 을파소의 고향인 것 같아요.

운산지구봉산   유연개소문묘      

雲山之九峯山에 有淵蓋蘇文墓하니라. 


운산의 고향에는 연개소문의 무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대기   왈  동천제   역칭단군      

朝代記에 曰 〈東川帝를 亦稱檀君이시니


우리 조대기에 대해 말씀 드렸죠. 조대기는 발해 유민이 가지고 온 것인데요. 조대기가 뭐의 접원이 되느냐 하면은 이명이라는 사람이 지명유기를 쓰는데 지명유기의 접원이 됩니다. 진영유기는 규원사화의 접원이 되지요. 조선시대 고려시대 조대기가 있었습니다. 조대기에 이르기를 우리 동천제 227-228년까지 제위에 있었던 고구려11대 임금님 인데요 동천제를 또한 단군이라고 일컬으시니

매당한맹     제영삼신우평양      

每當寒盟이면 祭迎三神于平壤하시니


매양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동맹의 때를 당하면 제사를 지내서 삼신 상제를 평양에 맞이하시니

금기림굴   즉기제소야  

今箕林窟이 卽其祭所也라〉


지금 평양에 있는 기림굴이 바로 천제를 지내던 장소 이니라

대영예전   시행수혈     유구제궁 조천석   

大迎禮典이 始行隧穴하여 有九梯宮 朝天石하니


삼신 상제님을 크게 맞이하는 예전이 처음으로 수혈(동굴 같은 곳)에서 행하였다고 해요. 그래서 구제궁에 조천석이 있었어요. 고구려 시대 때 평양에 다섯 개의 궁전이 있었는데 아낙궁, 장안궁, 등등해서 구제궁도 궁전 중에 하나입니다. 구제궁에 조천석이 있었는데요.


행로지인   개가지점야  

行路之人이 皆可指點也라


길가는 사람들도 모두 손가락으로 지적해요 “저기가 조천석이 있던 곳이다”라고

우유삼륜구덕지가     이장지      

又有三倫九德之歌하여 以獎之하시니


또한 삼륜은 애례도를 삼륜이라고 하는 데요 구덕은 금방 봤던 구서예요. 삼륜과 구덕의 노래가 있으니 구덕 같은 것은 지방에서 효도해라 뭐해라 해서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면 안 잃어버릴 것 아닙니까?

조의선인   개기선야  

皂衣仙人이 皆其選也오


국인소긍식자야  

國人所矜式者也라 


조의선인이 모두 선발을 했어요. 그래서 조의선인은 나라 사람들이 공경을 해요 식(式)이라는 것은 그들의 행동을 본받고.

불연     하이가영     여지위등어왕사자호  

不然이면 何以加榮하여 與之爲等於王使者乎아.


그렇지 않다면 어찌 조의선인들에게 영광을 더해서 그들을 왕의 사신과 동등하게 대우했겠는가?

광개토열제의 성덕과 동방문명의 종주권 장악

광개토경 호태황   융공성덕   탁월백왕    

廣開土境 好太皇은 隆功聖德이 卓越百王하사


우리 토경을 널리널리 개척한 호태황은 아주 엄청난 공과 성스런 덕이 백왕의 으뜸으로 뛰어나셔가지고

사해지내   함칭열제 

四海之內에 咸稱烈帝라


사해안에서 모두 열제라고 칭했다 열제는 공덕이 위대한 황제라고 일컬었다.

연십팔   등극우광명전       예진천악      

年十八에 登極于光明殿하시니 禮陳天樂하시고


나이 열여덟 살에 황국에 광명전이 있었던 모양 이예요. 18살에 광명전에 등극했다는 말 이예요. 예에는 천악을 쓰셨습니다. 자 여기 천악을 ?마크를 쓰시고.

매어임진   사사졸   가차어아지가     이조사기      

每於臨陣에 使士卒로 歌此於阿之歌하여 以助士氣하시며


매양 전쟁에 나아갈 때에 사졸들로 하여금 이 어아지가를 노래 부르게 했다. ‘어아지가(於阿之歌)’를 노래 부르게 했는데요. ‘어아지가(於阿之歌)’는 단군세기 30쪽을 펴보세요.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제천가가 있습니다. 넷 째 줄에 “어아어아요 아등대도신에 대은덕은 배달국 아등이 백백천첨물망이로다. 어아어아요 선심을 대공선하고 악심은 시적성이라도 아등백배 천청이니 대궁현동하고 현심즉시 일심동이로다. 어아어아요 아등백백 청천이니 개대궁이래 .. 비탕동 선심중에 일개설의악심이로다. ... 아등 대도신이로다.

이것이 단군할아버지의 아들인 2세 불우 단군 때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지낼 때 부르던 ‘제천가’인데요 이 제천가가 고구려 시대까지 내려와서 광개토대황이 ‘어아지가(於阿之歌)’를 전쟁에 나가는 군사들에게 부르게 했다는 겁니다.

차 어아지가 하니 이 어아지가를 노래 부르게 했다하니까 차자를 쓴 것을 보면 천악이라는 것이 삼신 상제님께 천제 올릴 때 쓰는 노래인데 본인이 등극할 때도 쓰고 전쟁할 때도 쓴다. 바로 천악은 ‘어아지가(於阿之歌)’를 얘기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조사기

以助士氣하시며 


군사들의 기백을 돋구시며

순기지마리산     등참성단    

巡騎至摩利山하사 登塹城壇하사


말을 타고 순행해서 강화도 마이산에 이르시어 참성단에 올라가서

친제삼신       역용천악        

親祭三神하실새 亦用天樂하시니라.


친히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실 때 또한 천악을 쓰시니라. 바로 천악은 어아가가 되겠죠.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릴 때 쓰던 겁니다.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너무너무 얼마 못했어요. 15장인가 되는데요. 지금 3장도 제대로 못했는데요. 아쉬움을 두면서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강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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